소설리스트

500화 (500/605)

분란

2024년 1월 12일 16:00 (신중국시각 15:00),

신중국 허베이성 랑팡시 외곽(중앙군구 사령부 임시주둔지).

급히 만들어진 인민성명발표. 여러 방송국 카메라와 수많은 기자 대가하고 있는 중앙군구 내 프레스 센터에 스샤오룽 총리가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일제히 터지는 카메라 셔터 소리가 프레스 센터를 울렸다.

단상에 올라온 스샤오룽 총리는 길게 숨을 내쉬고는 가져온 원고를 단상에 올려놓고는 첫 문장부터 읽어나갔다.

“친애하는 신중국 인민 여러분! 총리 스샤오룽입니다. 오늘 이렇게 인민성명발표를 하게 된 이유는 현재 전국적으로 일어난 소요사태에 대해서 한 말씀 드리고자 함입니다.”

스샤오룽 총리는 인민들의 심리를 자극하지 않고자 폭력사태를 소요사태로 순화시켜 말했다.

“현재 인민 여러분들의 심정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또한, 현재 사태의 발생 원인에 대해서 당은 물론 총참모부 역시 깊은 반성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스샤오룽 총리는 작심이라도 한 듯 단상 옆으로 나와 허리 깊숙이 인사를 했다. 공산국가인 신중국에서 국가 서열 2위인 총리가 인민들을 향해 허리까지 숙이며 사과의 인사를 하는 장면은 매우 낯설었다.

“현재 인민을 방패 삼아 한국군과 교전을 벌인 일선 모든 부대의 지휘관에 대해선 종전 후 철저한 조사를 걸쳐 인민의 엄중한 처벌을 할 것입니다. 또한, 시위대를 향해 총기 사용의 무력진압을 지시한 책임자 역시 현재 체포되어 군사재판에 넘겨질 것입니다. 존경하는 인민 여러분! 현재 우리 신중국은 한국군과 국운을 건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진정 어린 표정을 지으며 사과한 스샤오룽 총리는 이제는 진지한 표정으로 바꾸고는 자신을 보고 있는 방송 카메라를 주시하며 힘있게 말했다.

“인민이 있어야 국가가 있고 국가가 있어야 인민이 있습니다. 즉 인민과 국가는 동일체입니다. 하나라도 사라진다면 모든 것이 끝입니다.”

이렇듯 준비한 원고를 읽어간 스샤오룽 총리는 장장 30분 동안 걸쳐 인민성명발표를 이어갔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우리 당을 믿고 가슴속까지 끌어 오르는 분노를 잠시만 참아주셨으면 합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우리 당과 총참모부가 현재 난국을 어떻게 헤쳐나가는지 바라봐 주시고 응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단상 옆으로 나와 크게 인사를 한 스샤오룽 총리는 기자로부터 큰 박수를 받으며 퇴장했다.

“후후, 스샤오룽 총리가 많은 준비를 했군. 흥!”

주석실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 와인 잔을 들이키던 왕징위 주석은 자리에서 일어난 티비 앞으로 비틀거리며 걸어가더니 칭찬인지 아니면 비꼬는 말인지 모를 아리송한 말들을 내뱉었다.

하지만 표정은 매우 어두웠다. 왕징위 주석 역시 현재 돌아가는 상황이 매우 잘 못 돌아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성격 탓에 이성적인 판단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대신 매일 술을 마시며 현실을 부정하고 있었다.

한 손에 와인잔, 다른 한 손엔 시가렛을 쥔 왕징위 주석은 반쯤 풀린 눈으로 뒤뚱거리더니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제길,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되었는지······.”

한편, 전국으로 스샤오룽 총리의 인민성명발표가 방송을 타고 전해지자, 일부 시민들은 시위를 멈추고 집으로 돌아가기도 했으나, 그것 어디까지 일부였다.

대도시에서 피난 와 지낼 곳도 없이 임시피난처에서 생활하는 인민들은 불만을 멈추지 않았고 도리어 더욱 과격한 행동에 들어갔다. 이유인즉슨 이러한 상황에서도 국가 서열 1위인 왕징위 주석은 코빼기도 비추지 않고 총리가 대신해 인민성명발표를 했다는 이유였다.

스샤오룽 총리가 염려했던 부분이었다.

이처럼, 스샤오룽 총리가 인민성명발표를 했음에도 결과적으로 폭동사태는 불탄 집에 기름 붓은 듯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더욱 커져 버린 꼴이 되고 말았다.

★ ★ ★

2024년 1월 13일 10:00,

남주 서울특별시 강남구 국가정보원(원장실).

시종일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보고서를 읽는 이영진 국정원장, 맞은편에는 조금은 날카로운 인상을 주는 중년의 사내가 앉아있었다.

이름은 김원준으로 특수작전국 국장이었다.

이름만 보자면 마치 군조직 같은 특수작전국은 2021년 1차 동북아 전쟁이 끝난 후 전쟁 발발 시 전쟁 상대국에 침투하여 비정규전을 치를 수 있는 준군사조직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만들어진 국가정보원 산하의 비밀부서였다. 총 6과를 운영하며 요원들은 대부분 707특임여단이나 UDT/SEAL 등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유명한 특수부대 출신들이었고 예전 북한체제 당시 최고의 특수부대라고 할 수 있는 총참모부 정찰국 출신들 여럿 있었다.

특수작전국은 평시에는 국내에서 특수부대 못지않은 여러 고난도의 훈련을 받다가 전쟁이 발발하거나 비정규전이 필요한 상황이 되면 해당 지역에 침투하여 정보수집, 후방교란, 폭동 유발 등의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이번에 한러전이 발발했을 때도 특수1과와 2과가 모스크바를 비롯한 여러 중요 도시에 침투하여 임무를 수행 중이며 신중국에도 3과와 4과 요원들이 비밀리에 침투하여 각종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그리고 며칠 전부터 그들의 노고가 빛을 바라고 있었다.

현재 신중국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모든 폭력사태의 배후에는 이들이 있었다. 전장에서 자국의 인민을 방패막이 삼아 교전을 벌였다는 소문을 퍼뜨린 것과 전국적으로 확산한 폭력사태의 시발점인 중앙군구 사령부 앞에서 발생한 시위대에 대한 무차별적인 총기 무력진압 현장의 사진 촬영 및 유포 역시 이들의 작품이었다.

더불어 국경선을 통해 중화민국이나 동방공화국으로의 밀입국 활로를 개척한 것 역시 특수3과 요원들이었다.

“음, 생각한 것보다 너무 잘해줬어!”

보고서를 다 읽은 이영진 국정원장은 첫마디였다.

“그러게 말입니다. 사실 저희 역시 이 정도로 빨리 퍼질 줄 예상치 못했습니다.”

“어쨌든 우리에게 매우 잘 된 게 아닌가?”

“하하, 그렇습니다.”

“목숨 걸고 적지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요원들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철저히 관리해주게. 이번 한중전의 일등 공신이 아닌가?”

“네, 그리고 보고서에는 넣지 않았지만, 어제 새벽 밀입국 안내를 하다가 요원 한 명이 중화민국 국경경비대에 잡혔습니다.”

“다친 데는 없고?”

“네, 밀입국자 중 한 명이 지뢰를 밟은 바람에 발칵 되었지만, 다행히 요원은 무사히 중화민국으로 넘어와서 잡힌 듯합니다.”

“다행이군, 뭐 중화민국이야 우리와 현재 돈독한 관계이니 별 어려움은 없겠지만, 우리 쪽에서 직접 손을 쓰기보다는 외교부에 요청하는 건 어떤가?”

“네. 그러잖아도 외교부에 이미 협조 요청을 한 상태입니다. 아마도 내일 안으로는 중화민국에 있는 한국 대사관에서 물밑 작업을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음, 알았네. 그 건과 관련해서 특이상황이 발생하면 나에게 곧바로 보고해 주게.”

“네, 알겠습니다.”

“러시아 쪽은 어떻게 돼가나?”

“러시아 쪽은 며칠 안으로 진행 상황에 대해서 정리하여 보고드리겠습니다.”

“알았네. 그쪽,”

이때 인터폰이 울리고 아리따운 여자 비서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원장님! 대통령님과 점심 약속이 잡혀 있습니다. 지금 출발하셔야 합니다.

“알았네, 5분 후에 출발하도록 하지”

- 네, 준비하겠습니다.

“저는 이만 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김원준 국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 보고 땐 러시아 쪽도 좋은 성과가 있었으면 좋겠네.”

“네, 기대에 부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고 요원들을 너무 위험한 임무를 주지는 말고.”

“하하,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가볍게 묵례를 인사한 김원준 국장이 국장실 문을 나갔다. 그러자 이영진 국정원장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외투를 입고는 보고서가 든 서류 가방을 챙기고는 인터폰 수화기를 들고는 버튼을 눌렀다.

“지금 나가네”

- 네, 준비되어 있습니다.

★ ★ ★

2024년 1월 13일 22:00 (러시아시각 16:00),

러시아 모스크바 벙커 스테이트 R-13(회의실).

전날 우크라이나 베르단스크 민간공항에 사단급 규모의 한국해병대 정규군이 파병 온 것을 이제야 알아챈 총참모부는 비상이 걸렸다.

수백 기에 달하는 군용수송기가 자그마치 17,000km를 비행했는데도 알아채지 못했다는 건, 현재 러시아의 공중 정찰능력이 땅바닥에 떨어진 수준이라 해도 이상치 않을 정도였다.

미국이 비밀리에 지원한 아틀라스 정찰위성 덕분에 러시아 영공에 한국 공군 전투기 출현이 급격히 줄어들긴 했지만, 반대로 러시아 공군 전투기들 역시 자국의 영공임에도 불구하고 마음대로 출격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단지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서부권에서만 제공권을 확보하고 각종 항공기가 출격하여 정찰 및 제공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마저도 어렵게 되었다.

페르시아만 북단에 있는 제12항모전단에서 출격한 CUF-22P 피닉스 무인전투기들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남부까지 작전 반경을 넓히면서 러시아 공군의 제공권 구역을 위협했다.

이에 러시아 총참모부는 우크라이나 북단과 남부 여러 지역에 S-300 그럼블은 물론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는 S-400 트라이엄프와 S-500 트리움파터까지 가용한 모든 방공부대를 총동원했지만, 문제는 7세대 스텔스기로 분류된 CUF-22P 피닉스 무인전투기를 그 어떠한 레이더로도 탐지할 수가 없었다.

즉, 있으나 마나 한 방공 전력이었다.

“당장! 미국에 요청해야 합니다.”

원형 탁자에 힘준 주먹을 짚고는 다급함이 묻어있는 말투로 일갈한 공군 총사령관 아지즈 이브라히모프 대장은 이내 고개를 돌려 결정권을 가진 미하일 이바노프 장관을 바라봤다.

간절한 눈빛이었다.

“음, 그 부분은······.”

뭔가 문제가 되는지 미하일 이바노프 장관은 말끝을 흐리며 답변을 주지 않았다.

“지금 그런 거까지 따질 때가 아닙니다. 자칫 서부권 제공권마저 한국 공군에게 내주게 된다면 모스크바는 물론 이곳도 안전치 못할 것입니다.”

다그치는 아지즈 이브라히모프 대장의 말에 미하일 이바노프 장관은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떡였지만, 속 시원하게 대답하진 않았다.

“장관님!”

“아네, 알아! 하지만, 미국 정찰위성이 서부권 궤도에 진입하면 미국 놈들에게 우리 안방을 내주는 꼴이지 않나? 대통령께서도 그 부분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단 말이야.”

“앞서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런 거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지금 당장에라도 트리움파터 레이더에 탐지되지 않은 무인기들이 날아와 모스크바를 폭격할 수 있단 있습니다. 이렇게 제공권마저 내준다면 우크라이나에 새로이 파병 온 해병 기갑군은 맘 놓고 모스크바로 진공 할 것입니다. 또한, 미국은 이미 아틀라스 정찰위성으로 모스크바 방공망은 물론 서부권 내 우리 군의 모든 정찰정보를 획득했을 것입니다.”

계속되는 아지즈 이브라히모프 대장의 설득에 모스크바 수도방어사령관인 산자르 투르수노프 상장까지 대화에 끼어들었다.

“지금으로써는 이브라히모프 대장의 의견이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아틀라스 정찰위성을 운용했을 때부터 이미 우리 러시아군의 모든 군 정보를 획득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서부권에 정찰위성 협조를 요구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수도방어사령관까지 동조의 의견을 내자 미하일 이바노프 장관은 다른 지휘관들을 보며 물었다.

“다른 장군들은 어떻게 생각은 어떠한가?”

“네, 저 역시 이브라히모프 대장의 의견에 찬성합니다. 코앞에 닥친 불부터 꺼야지 않겠습니까?”

서부군구 총사령관인 파기즈 갈리울린 상장까지 찬성의 의견을 내자 군정권만 가진 육군, 해군, 공군 3군 총사령관 역시 찬성에 한 표를 던졌다.

“음, 그렇군, 알았네, 이 부분은 대통령께 재가를 받고 미국에 요청하도록 하겠네. 하지만, 대통령께서 재가할지는 모르겠어. 지금은 전략적으로 미국이 도와주고 있지만 어쨌거나 미국은 우리의 영원한 적국이 아닌가?”

미하일 이바노프 장관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저와 함께 가시지요. 장관님!”

그동안 듣고만 있던 블라디미르 베샤스트니흐 총참모장이 입을 열었다.

“그렇게 해주겠나?”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회의 끝나는 대로 함께 가시지요.”

“그러세”

총참모장이 함께 가준다는 말에 미하일 이바노프 장관의 표정이 조금은 밝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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