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98화 (498/605)

분란

한창 중화민국과 교전이 심할 때는 매우 위험하여 손님이라 할 수 있는 밀입국자들이 별로 없었으나 대한민국과 전쟁이 발발한 후로는 오늘처럼 하루에 많게는 50명이 넘게 밀입국자들이 발생했다.

인당 5천 위안을 받고 50명 정도만 보내도 한국 돈으로 4,000여만 원이 넘는 돈을 만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리 큰돈은 아니었다. 건너편에서 기다리고 있는 동료와 수익을 배분해야 하고 중화민국에서 살 수 있도록 가짜 신분증까지 만들어주면 실제 자신에게 돌아오는 돈은 얼마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목숨을 담보로 하는 일이기에 인당 10만 위안을 받는다고 해도 크게 느끼지 못할 일이었다.

“겨울이라 물살은 심하지 않으니까 서로 간 묶은 줄을 의지한 채 천천히 가겠습니다.”

강가에 도착한 전광은 손으로 수온을 확인하고는 가장 먼저 입수하자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도 차례대로 따라 들어왔다.

“윽! 추워!”

누군가가 뼛속까지 얼어붙을 거 같은 차가움에 자기도 모르게 입을 놀렸다.

“쉿! 조용!”

정광은 검지로 입에 갖다 대고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이렇게 50여 명은 사람들은 최대한 조용히 달빛을 조명 삼아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한 번에 건너기엔 장강의 폭은 매우 넓었다. 가장 좁은 폭이라 해도 1.2km에 달했다. 이에 중간 거점으로 작은 섬을 택한 이유였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성인이라 해도 수영하다 지쳐서 물살에 떠내려갈 수 있었고 한 줄로 묶여 있었기에 한 명이 잘못되면 모두 다 떠내려가 물귀신이 될 수 있었다.

작은 물살을 가르는 소리 외에 정적만이 흐르는 장강, 30여 분만에 이들은 작은 섬 끝자락에 도달했다.

다들 지쳤는지 섬에 오르자마자 다들 바닥에 드러눕고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650m 거리를 수영으로 건넌다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닌 듯했다.

“그렇게 있다가 얼어 죽어요. 다들 짐 속에서 담요 꺼내 덮으세요. 10분 정도 쉬겠습니다.”

거친 숨을 내쉬며 사람들에게 일일이 다가가 담요를 덮어준 정광은 그제야 바닥에 앉아 자신도 작은 담요를 덮고는 섬 주변 일대를 살폈다.

강 중간쯤에 모래가 쌓여 만들어진 섬이었기에 인기척은 없었으나 조심해서 나쁠 게 없었다.

“저 화장실 좀······.”

이런 위험한 상황에서 화장실이라니······. 정광은 살짝 짜증이 났는지 작은 목소리로 질타했다.

“건널 때 물속에 싸지 뭔 화장실입니까?”

“죄송해요. 큰 거라······.”

40대 정도로 보이는 여자는 금방이라도 쌀 거 같은 표정을 지으며 어찌할 줄 몰라 했다. 이에 정광은 손으로 섬 한쪽을 가리켰다.

“빨리 갔다 오세요. 여기서 오래 못 있어요.”

“네, 감사합니다.”

엉덩이를 부여잡고 정광이 가리킨 곳으로 기우뚱거리며 40대 여자는 사라졌다.

그리고 10분이 지났다.

“출발 준비하세요. 담요는 다시 각자 가방에 넣고 비닐로 물이 안 들어오게 신경 쓰세요.”

다시 한번 사람들에게 지시를 내린 정광은 고개를 돌려 조금 전 화장실 간다고 사라진 40대 여자 쪽을 바라봤다.

“왜 이렇게 안 와”

“죄, 죄송합니다. 제가 갔다 올게요.”

남편인 듯한 남자가 행여 자기 마누라 때문에 지체될까 봐 고개를 연신 숙이고는 사라졌던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불꽃이 터지며 폭발음이 울렸다.

콰앙!

“악! 지, 지뢰다.”

단번에 지뢰라 생각한 정광은 다급히 소리쳤다.

“다들 저 방향으로 수영 치세요. 어서!”

“아이쿠! 우리 마누라, 우리 마누라 어찌합니까?”

마누라 찾으러 걸어가던 남자는 폭발음에 깜짝 놀라고는 정광에게 달려와 매달렸다.

“늦었어요. 당신이라도 살려면 어서 뛰세요.”

“정광 선생! 우리 마누라 좀.”

“아! 제길!”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매달리는 남자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된 정광은 짜증에 뒷머리를 긁고는 소리쳤다.

“알았어요. 먼저 가세요. 당신 부인은 내가 데리고 갈 테니”

“애고, 감사합니다.”

“어서 짐 챙겨서 뛰어요. 더 늦으면 총 맞아 뒈져요.”

“네, 네,”

이때 신중국 초소에서 조명탄을 쏘았는지 여러 발의 조명탄이 환한 빛을 비추며 천천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정광은 이를 악물고 지뢰가 터진 곳으로 달렸다.

점점 더 밝아지는 섬, 서서히 사람들의 형체도 뚜렷해졌다.

타타타타탕! 타타타타탕!

여김 없이 신중국 측 초소에서 기관총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마도 강을 건너는 사람들을 향해 사격을 가하는 듯했다. 이번 밀입국은 실패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광은 참혹한 장면을 보고 말았다. 예상했던 대로 지뢰를 밟았는지 오른쪽 다리가 날아간 여자가 모래밭에 쓰러져 검붉은 피를 흘리고 있었다. 달려나간 무릎부위는 너덜너덜했고 왼쪽 다리 역시 파편을 맞아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살, 살려, 우욱!”

말하려다 한 움큼의 피를 쏟아낸 여자는 힘겹게 손을 들어 정광에게 도움을 청했다.

정광은 망설였다. 살 가망성이라도 있다면 업고라도 데리고 갈 텐데······. 상태가 너무 심각했다.

이때, 총성과 함께 사방에 모래가 튀었다.

타타탕! 타타타타탕! 타타탕!

팟팟팟팟! 팟팟! 팟팟팟!

“에잇 제길!”

일갈과 함께 여자를 업은 정광은 무조건 중화민국 방향으로 뛰었다. 생각보다 가벼운 느낌, 다리 하나 없다고 가볍게 느껴지는 게 신기했다. 공기를 가르는 파공음이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으아아아아아!

공포심을 줄이고자 이갈린 비명을 지른 정광은 끝내 반대편 물가에 도착했고 그대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첨벙!

한 손으로 여자를 지탱하고 한 손만으로 죽으라고 물살을 휘저었다.

팟팟팟팟!

총알은 그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사방에서 작은 물살이 튀었다. 하지만 정광은 포기하지 않았다. 어디서 나오는 초인적인 힘인지 그는 끝내 강을 건너 중화민국 땅에 도착했다.

“손들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중화민국의 국경경비대 여러 명이 어둠 속에서 나타나 총을 겨눴다. 아마도 총소리에 달려온 듯했다.

일단 여자를 바닥에 눕히고 손을 든 정광은 고개를 돌려 원래 건너려고 했던 방향을 바라봤다. 조명탄 불빛에 환히 볼 수 있었다.

“시발!”

그의 눈에는 여러 시신이 물에 떠밀려 내려오고 있었다. 아마도 끝내 강을 건너지 못하고 모두 총에 맞아 죽은 듯했고 기다리고 있던 동료도 도망간 듯 보이지 않았다.

“뭐야. 이 여자 죽었잖아? 시신 들고 온 거야?”

한 군인이 바닥에 누워있는 여자를 보고는 고개를 절레거렸다. 아마도 오랫동안 물속에 있다 보니 오다가 과다출혈로 죽은 듯했다.

“너, 정체가 뭐야?”

선임으로 보이는 군인 하나가 총구를 가까이 대며 물었다. 그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정광은 그대로 바닥에 대자로 눕고는 만사 귀찮다는 듯 힘없이 말했다.

“아! 몰라 브로커! 그냥 밀입국 브로커!”

현재 중화민국이나 동방공화국으로 국경선을 넘어 도망치는 신중국 인민들의 적지 않았다. 특히 요 며칠 사이에는 신중국을 탈출했다는 인민 수가 50만 명을 넘었다는 비공식적인 소문이 들리기도 했다.

마치 대한민국이 통일되기 전, 북한에서 탈출하는 탈북민 사태가 여기 신중국에서도 벌어지고 있었다.

★ ★ ★

2024년 1월 12일 10:20 (신중국시각 09:20),

신중국 허난성 허비시 중앙공안건물 앞.

쿠앙!

창문을 깨고 들어 건 화염병이 터지며 공안건물 안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던져! 저기! 저기도 던져!”

오토바이 헬멧에 각종 안전 장구를 입은 다수의 남자가 양손에 들고 있던 화염병을 사정없이 공안건물에 투척했다.

공안건물 밖에 주차해놨던 공안차나 싸이카는 이미 불길에 휩싸여 활활 타오르고 있었고 시꺼먼 연기가 주변 일대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쏴! 쏴버려!”

4층에서 창문을 열고 누군가가 소리쳤다. 그러자 여러 곳에서 창문이 열리고는 권총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탕! 타앙! 타탕! 탕! 탕! 탕!

“크억!”

막 화염병을 던지려고 자세를 취했던 한 남자가 가슴팍에 총을 맞고는 그대로 앞으로 꼬꾸라졌다. 그리고 들고 있던 화염병이 바닥에 부딪혀 터지면서 불길이 남자를 휘감았다.

“으악”

불에 삼켜진 남자는 바닥을 둥글며 고통의 비명을 질렀댔고 이에 옆에 있던 다른 남자들은 불을 끄기 위해 윗옷을 벗고는 그대로 불붙은 남자를 덮었다.

하지만, 문제는 공안건물에서 쏟아지는 총알들은 그들을 내버려 두지 않았다.

“윽!”

“커억!”

윗옷을 휘저으며 불 끄던 남자들도 총에 맞고는 픽픽 바닥에 쓰러졌다.

“야! 저기에 던져!”

누군가의 외침에 벽 뒤에 숨어있던 한 남자가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수류탄 하나를 가방에서 꺼내더니 이내 안전클립과 안전핀을 뽑았다. 그리고는 3층 창문을 향해 냅다 던졌다.

콰앙!

포물선을 그으며 날아간 수류탄은 정확하게 3층에 있는 어느 창문 하나를 깨고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묵직한 폭발음이 울리는가 싶더니 너덜너덜해진 공안 하나가 창밖으로 내팽개쳐지며 지상으로 추락했다.

쿵!

둔탁한 소리와 함께 피떡이 되어버린 공안, 이를 본 공안들 역시 악에 받쳤는지 건물 안에서 얼쩡거리는 자들을 향해 무자비한 사격을 이어갔다.

이런 폭동 이상의 사태는 이곳뿐만이 아니었다. 허비 일대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급기야 어디선가는 공안 무기고까지 털었는지 일반인들이 중무장한 상태로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공안이나 당국 청사들만 골라 테러를 가했다. 총성과 폭발음 그리고 시민들의 비명이 끊이질 않았다.

★ ★ ★

2024년 1월 12일 11:00 (신중국시각 10:00),

신중국 허난성 융청시 남동단 5km 지점.

허난성의 융청은 인구 120만여 명이 살고는 중급 도시로 지리적으로 동방공화국 국경선과 근접한 도시 중 하나였고 지리적으로 특이하게 3면이 국경선으로 둘러싸인 형국이었다. 즉, 도시를 기준으로 삼면 어디든 동방공화국과 연결되어 있다는 얘기였다.

한족 중심으로 중국이 크게 3개국으로 쪼개진 후 신중국은 정치적 이념이 다른 중화민국과는 다르게 동방공화국과는 유대관계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외교관계를 이어오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국경선 경계는 느슨했고 왕래 역시 간단한 절차만 밟으면 오갈 수 있었다. 하지만, 신중국이 본격적으로 대한민국과 전쟁을 벌이면서 동방공화국 쪽 국경선은 모조리 폐쇄 된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융청에서 동방공화국 국경선으로 연결된 모든 도로에는 수많은 차량이 기다란 행렬을 보였다. 그중 S303 도로에 차들이 밀리면서 갓길까지 차들로 빼곡했다.

이들은 목적은 신중국을 벗어나려는 탈출자들이었다. 지난 7일 대도시 위주로 대규모 폭격을 받아 삶의 터전을 잃고 더군다나 며칠 전부터 신중국군이 인민을 희생시키는 전술로 교전을 벌이고 있다는 소문과 전날 오전, 중앙군구 사령부 앞에서 시위하던 시위대를 무참하게 학살한 증거 사진들이 퍼지면서 탈출 러쉬가 본격화되고 있었다.

이에 국경수비대는 톨게이트처럼 생긴 국경선 출입구를 모두 폐쇄하고 총구를 겨누고는 돌아갈 것을 명했다.

하지만, 명절 때 고속도로처럼 빼도 박도 못할 정도로 차량이 몰린 상태였기에 인민들은 저마다 차에서 내려 항의를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항의 수위는 높아져서 분위기 또한 험악해졌다.

급기야 출입구 국경수비대 대장인 주위천 중좌는 중화기까지 동원하여 항의하는 인민들을 막아섰다. 현재 전국 곳곳에서 소요사태가 발생한 것을 알고 있는 주위천 중좌의 표정에는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살 깃을 여미는 추운 겨울임에도 주위천 소좌의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볼살을 타고 흘러내렸다.

“국경선을 열란 말이야. 무서워서 도저히 이곳에서 못 살겠다고”

“열어라! 열어라!”

점점 더 몰려드는 시민들, 그들의 얼굴은 마치 성난 황소처럼 화나 있었고 어떤 이의 손에는 멍키스패너 같은 철재로 된 공구들을 들고 있었다.

“돌아가세요. 국경은 폐쇄되어 통과 못 합니다. 이건 당 명령이라 어쩔 수 없습니다.”

확성기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주위천 소좌의 목소리는 시민들의 함성에 묻혀버렸다.

“안 되겠습니다. 여러분 밀고 갑시다.”

누군가가 소리치자 여기저기서 맞장구를 쳤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시민들은 자신들의 차에 타더니 일제히 시동을 켰다.

부르르릉! 부르르릉!

앞차부터 요란한 엔진음을 내더니 일제히 앞으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끼이이이잉!

순간 놀란 중화기 사수 하나가 주위천 소좌의 사격 명령이 없음에도 움찔하고는 자기도 모르게 방아쇠를 당기고 말았다.

타타타타타타타탕! 타타타타타타타타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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