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란
2024년 1월 11일 10:00 (신중국시각 09:00),
신중국 허베이성 랑팡시 외곽(중앙군구 사령부 임시주둔지).
극심한 통신장애로 파발 띄우듯 통신병들을 직접 모든 예하부대에 보내 지령을 전달하고 정보를 취합한 총참모부는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다시금 현대적인 통신 장비를 운용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요 며칠 사이 총참모부로서는 돌이킬 수 없는 여러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평탄화 작전으로 대대적인 공격을 받아 일체 통신이 두절한 3일 동안 명령을 하달받지 못한 여러 일선 전투부대에서는 공세적으로 전환한 한국군을 막기 위해 인민을 방패 삼는 방어 전술을 사용했다. 확실히 전술적 효과는 보았다.
적국의 인민이지만 혹, 향후 문제 소지가 발생할 것을 염려한 한국군의 일선 부대에서는 소극적인 공세를 취했고 이로 인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교전 지역에서 물러나기까지 했다. 하지만 모든 일선 부대가 그런 건 아니었다. 제6기계화보병사단(청성)처럼 플라즈마 폭탄 공격으로 큰 피해를 봤던 부대에서는 전우의 복수 때문인지 아니면 지휘관의 호연지기 때문인지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기도 했다. 이로 인해 교전 지역에서 방패막이 신세가 되었던 인민들의 희생이 크고 말았다.
곳곳에서 이러한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다 보니 희생당한 인민과 그의 가족들 그리고 그러한 소식을 접한 또 다른 인민들의 불만은 쌓이게 되었고 마침내 어젯밤 터지고 말았다. 불만에서 분노를 바뀐 인민들이 일제히 일어나 시위가 일어나고 말았다. 여기서 문제는 시위대의 분노 대상자가 한국군이 아닌 신중국군이라는 것이었다.
자국의 인민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신중국군이 도리어 인민을 방패 삼아 자신들의 안위만 생각한다는 이유였다.
전쟁 기간 중 자국의 군대에 분노하여 이러한 시위가 발생한 것도 코미디이지만, 자국의 인민을 방패로 삼은 신중국군 역시 국제사회로부터 비난은 물론 놀림감이었다.
교전 지역에서 발생한 시위는 점점 전국으로 확산하였고 이곳 중앙군구 사령부의 임시주둔지에도 5만여 명에 달하는 시위대가 몰려오고 있었다.
“물러나라! 물러나라! 인민을 개돼지로 취급하는 당과 신중국군은 물러나라!”
마스크를 쓰고 각종 팻말을 든 시위대가 임시주둔지 정문까지 치고 들어오자 QBZ-95G 소총을 든 중대급 규모의 경비병들이 앞으로 나서서 시위대를 막아섰다.
일제히 사격 사세를 취하고 시위대를 막아선 경비병 사이로 상좌 계급장을 단 좌관급 장교가 머리를 삐죽 내밀며 앞으로 나왔다.
“중지! 시위 중지! 어디서 감히 시위질이야? 지금부터 한 걸음만 더 나서면 발포하겠다.”
허리춤에 달린 홀스터에서 QBZ-92 권총을 꺼내 들고 거만하게 얼음장을 논 장교는 중앙군구 사령부의 경비부대장인 펑젠위 상좌였다.
문제는 이때 터졌다. 선두에 섰던 시위대는 총구를 겨누고 막아선 군인들을 봤기에 발걸음을 멈췄지만, 뒤에서 따라오던 수만 명의 시위대는 알 리가 없었기에 갑자기 선 앞사람을 밀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시위대는 전체적으로 앞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워워! 밀지 마! 앞에 군인들이 막았다고”
“멈춰! 멈춰! 뒷사람들 멈춰!”
“왜 안 가는 거야? 앞으로, 앞으로,”
“가자! 우리의 힘을 보여주자!”
시위대 속에서 서로 간 고함이 터졌다. 하지만 한번 쏠린 시위대는 멈출 수 없었다. 급기야 맨 앞줄에 있던 시위자까지 쏠림현상이 이어지면서 다시금 행진하는 것처럼 시위대 전체가 앞으로 움직였다.
탕!
펑젠위 상좌는 가장 가까이 있던 남자의 이마에 대고 가차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이마 정중앙에 구멍이 뚫린 남자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지푸라기 쓰러지듯 뒤로 벌러덩 넘어갔다.
“키약!”
“악!”
“도망쳐!”
“군인들이 총을 쏜다. 도망가~”
총성 소리에 놀란 시위대는 앞다퉈 사방으로 뛰기 시작했고 펑젠위 상좌는 왼손을 들더니 이내 힘차게 내렸다. 사격을 가하라는 손짓이었다.
이에 진작부터 대열을 갖추고 사격 자세로 취하고 있던 경비병들은 일제히 사격을 가했다.
탕! 타타타타탕! 타타탕! 타타타탕!
한동안 총성은 끊이지 않았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펑젠위 상좌가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끝나지 않을 거 같았던 총성이 멈췄다.
임시주둔지 정문 일대 도로 위는 그야말로 피바다가 되고 말았다. 5만여 명에 달하던 시위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수백 구의 시신만이 처참한 몰골로 쓰러져 검붉은 피로 도로 바닥에 젖혔다.
“에잇 냄새”
진동하는 피비린내에 손수건으로 자신의 코를 감싼 펑젠위 상좌는 무심한 표정으로 부관에게 몇 가지를 지시하고는 그대로 주둔지 내로 들어갔다. 잠시 후 여러 대의 수송 트럭이 도착하자 부관은 경비병들에게 시신을 실으라는 손짓을 했다. 이에 경비병들은 어깨에 총을 메고는 마치 짐짝 싣듯 수송 트럭 적재함에 시신들을 집어 던졌다. 간혹, 신음을 내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들은 귀찮다는 듯 쌓여있는 시신 위로 아무렇게나 던져버렸다.
얼마나 그들이 인민의 인권을 하찮게 여기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찰칵! 찰칵! 찰칵!
어디선가 셔터 소리가 끊이지 않고 울렸다. 작금의 사태가 벌어진 곳으로부터 1km나 떨어진 작은 산릉선에서 누군가가 땅에 바짝 엎드린 채로 망원렌즈가 달린 카메라로 이 모든 걸 담고 있었다.
★ ★ ★
2024년 1월 11일 22:00,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 신치토세 공항.
전날 오전부터 이곳 신치토세 공항에 착륙한 군용수송기는 자그마치 150여 대, 이들 군용수송기는 적재구역에서 후방 해치를 열고 각종 전차와 장갑차 그리고 각종 차량의 적재작업이 한창 진행되었다.
최대 이륙중량까지 실을 수 있을 만큼 각종 중장비를 꽉꽉 채워 실은 군용수송기들은 유도병의 지시에 따라 이륙 대기지역으로 이동했고 빈자리는 금세 다른 군용수송기가 자리를 잡고 적재작업에 들어갔다.
“그대로 그대로!”
양손에 야간봉을 들고 수송반장이 유도하자 측면 스커트에 제3해병기동사단의 사단마크인 화룡이 멋지어지게 그려진 C-3A2 백호 전차가 호버시스템에 의해 바닥으로부터 30cm 뜬 상태로 해치 발판을 따라 움직였다.
“네, 좋습니다. 그대로 그대로! 조금만 조금만 깔깔깔 아달!”
수송기 내부 화물칸에 C-3A2 백호 전차가 무사히 올라오자 수송반장은 즉시 야간봉을 엑스자로 만들었다. 이에 기동을 멈춘 C-3A2 백호 전차는 천천히 바닥에 안착했다. 그리고는 엔진마저 끄자 비로소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운용병들이 달아 붙어 결박 및 고정안전장치를 달았다.
“전면부 2곳 결박 완료! 고정안전장치 장착 완료!”
“후면부 2곳 결박 완료! 고정안전장치 장착 완료!”
운용병들의 보고가 이어지는 가운데 백호 전차의 조종수 해치가 열리고 부사관 김경순 중사가 조종석에서 빠져나와 수송반장에게 깍듯이 인사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닙니더. 한계 무가 있다고. 것보다 파병 가믄 그곳에서 몸조심 하이소”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상사계급의 수송반장은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했다.
“네, 조심해야죠. 하하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충성!”
“충성!”
제1차 동북아 전쟁 당시 병장이었던 김경순 중사는 전차 조종수로 여러 전장에서 활약했었다. 종전 후 제대할 무렵 국방부에서는 시범적으로 제3해병기동사단(화룡) 전 병력을 간부화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이에 일차적으로 현역병 대상으로 장기복무 신청서를 받았다.
조건은 훌륭했다.
장기복무 신청 시 정년 보장은 물론 2년간 군 복무 기간을 계산하여 하사 3호봉으로 인정했고 부사관 임관과 동시에 일천만 원을 지급했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 평생직장은 물론 23살에 사회 3년 차에 버금가는 군 생활을 할 수 있었고 모름지기 부사관 월급 또한 대기업 못지않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김경순 중사는 장기복무 신청을 했고 3년이 지난 지금 중사로 승진하여 기존 부대에서 전차 조종수로 열심히 군 생활을 하고 있었다.
국방부에서 가장 먼저 제3해병기동사단(화룡)을 시범적으로 전 병력을 부사관급 이상으로 대처하는 사업을 하게 된 이유는 이랬다.
시간이 흐를수록 최첨단 기술을 접목한 값비싼 장비가 보급되면서 기갑부대 역시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전문적인 숙련도를 필요한 장비들을 운용할 수밖에 없었다.
예로 한층 업그레이드된 C-3A2 백호 전차 같은 경우 호버엔진이 장착되어 과거 캐터필러로 기동하던 때와 다르게 지상 위를 떠다니며 기동하게 되었다. 즉, 어떻게 보면 비행기 조종사와 같았다.
단순 지상을 떠다니는 비행기술이긴 어쨌든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전차 조종은 노련한 숙련도가 필요했고 이에 2년만 복무하는 현역병보다는 장기복무하는 부사관급 이상으로 현역병을 대처했고 장교 역시 기본적으로 5년간은 사단에서 복무를 마쳐야 타 부대로 전출할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3년 전 사단장이었던 조규홍 소장 역시 아직도 제3해병기동사단(화룡)의 사단장으로 복무 중이었다.
3년이 지난 현재 사단 전 병력이 부사관급 이상의 간부로 완전히 편제된 제3해병기동사단(화룡)은 그동안 세계 최강의 전력이라 불리던 제20기갑사단(결전)을 뛰어넘었다.
첫째, 그 어떤 부대보다도 노련한 숙련도를 자랑하는 부사관급 이상의 간부들이었고 둘째, 최신예 장비 운용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로 그들은 귀신 잡는 해병이었다.
김병순 중사가 조종하던 백호 전차를 끝으로 적재작업은 끝이 났다. 한편 탑승구역에서는 제3해병기동사단(화룡) 부사관급 이상의 해병들은 보기만 해도 무거워 보이는 군장을 메고 플랫폼 통로를 지나 군용수송기에 탑승하고 있었다.
기존 파병 계획과 다르게 이틀 먼저 출발하게 된 제1차 제3해병기동사단(화룡) 해병은 총 3,400여 명쯤 되어 보였다. 공군 군용기 중에서도 대형급에 속하는 CC-503 군용수송기 7기에 각각 500명씩 나눠 탑승에 들어간 지 30분, 이미 활주로에는 각종 중장비를 적재한 군용수송기들이 속도를 내며 하늘로 비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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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12일 02:00 (신중국시각 01:00),
신중국 후베이성 훙후시 국경지대.
운하로 사용되는 장강이 흐르는 이곳 훙후 남서단 외곽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달빛에 의지한 채 저마다 큰 짐을 지고 조심스럽게 밤이슬을 밟고 있었다. 대략 이원은 50여 명으로 젊은 남자 하나가 목소리 대신 손짓으로 지시하며 은밀히 움직였다.
3년간 이어진 중화민국과의 내전 아닌 내전이 치열하게 벌어졌던 충칭으로부터 400km밖에 떨어지지 않았기에 이곳 역시 양 국가의 삼엄한 경계가 펼쳤으나 한 달 전부터 신중국 측 국경선 경계는 아주 느슨해졌다.
이유인즉슨 대한민국과 다시금 전쟁이 발발하면서 총참모부는 국경경비대 병력마저 전장으로 이동시켰다. 이로 인해 100m마다 운영되던 초소는 지금은 1km마다 초소를 운영했다.
“다들 조용! 앉으세요.”
뒤따라오던 사람들에게 손짓과 함께 작은 목소리로 말한 젊은 남자는 갈대숲 사이로 얼굴만 내밀고 장강을 따라 좌우를 살폈다.
현재 이들이 있는 장소는 정확히 초소와 초소의 중간 지점이었다. 즉 좌·우측 초소로부터 정확히 500m 떨어진 지점이었다.
별다른 걸 느끼지 못한 젊은 남자는 뒤돌아서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지금부터 중요하니까 잘 들으세요. 겨울이긴 하지만 얼음이 완전히 얼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마음 단단히 맘먹고 강을 건너야 합니다. 중간에 섬 하나가 있는데 일단 그곳까지 수영으로 가겠습니다. 거리는 650m 정도 될 겁니다. 다들 아시겠죠?”
“네, 알겠습니다.”
“네, 네,”
이때 50대 여자분 한 명이 손을 들고는 질문했다.
“저는 수영을 잘 못 하는데 괜찮을까요?”
“튜브 가져왔죠?”
“네, 가져왔습니다.”
50대 여자는 가방에서 해수욕장에서나 사용할법한 튜브를 꺼내 보였다.
“부세요. 어서! 시간 없어요.”
“알았습니다.”
50대 여자는 대답과 동시에 튜브에 입을 갖다 대고 바람을 넣기 시작했다.
“저기! 정광씨 정말 이 길 안전한 겁니까?”
뒤쪽에 있던 한 남자가 물었다.
“내가 아는 루트 중에선 이곳이 가장 안전하니까 조급하지 마세요.”
정광이라 불리는 이 젊은 남자는 조선족 출신으로 한때 탈북민 전문 브로커로 유명했었다. 지금은 중화민국으로 밀입국하려는 자들을 도와주는 브로커로 활동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