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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10일 22:30 (러시아시각 16:30),
러시아 모스크바 벙커 스테이트 R-13(상황실).
상황실에서 각종 스크린을 보고 있는 러시아군 최고수장인 블라디미르 베샤스트니흐 총참모장의 머리에는 새하얀 새치가 내려 앉아있었다. 그만큼 며칠 새 여러 곳곳에서 벌어진 전쟁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 마음고생이 심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대한민국 국경선 일대인 북서부전선에서 중부군구는 물론 서부군구 소속의 여러 군급 전력을 추가로 지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전과를 올리지 못한 상태였다. 현재 북서부전선에는 러시아군 정규군만 자그마치 50만에 달했고 비정규군까지 합친다면 70만 명이었다. 이런 대병력으로도 고작 15만여 명인 한국군과 이주 이상을 치열한 공방전만 버렸다. 그리고 며칠 전부터는 제7기동군단에게 측면 공격을 허용하고는 전선 대열은 순식간에 무너져내려 사상자가 기하 급속도로 발생하고 있었다.
냉철하게 객관적으로 판단한다면 북서부전선 전쟁은 러시아군의 패배였다. 단지, 투입된 병력이 많은 만큼 꾸역꾸역 버텨나가고 있었다.
이에 총참모부는 결단이 필요했다. 전격적으로 후방으로 모든 부대가 퇴각하여 군 전열을 재정비하고 다시금 작전을 세워 공세작전을 이어가느냐 아니면 모든 부대가 전멸할 때까지 끝까지 전선을 지키느냐였다.
이러한 중대 결정을 감시 보류하고 상황을 지켜보기로 한 총참모부는 또 다른 고민이 그들의 목을 좁혀오고 있었다. 바로 제2차 돈바스 내전이라 불리는 우크라이나 도네츠크 및 루한스카 교전과 크림반도 방어, 그리고 본격적으로 러시아 남부로 북진하는 또 다른 한국군 세력이었다.
중부군구는 그렇다 쳐도 남부군구 소속의 2개 군마저 무리하게 북서부전선에 지원을 보냄으로써 남부군구 전력이 크게 떨어진 상황이었다. 어쨌든 이미 빼앗긴 도네츠크는 뒤로하고 루한스카만은 꼭 지키고자 임시방편으로 서부군구 소속의 여러 부대를 급히 파견했지만, 크림반도와 남부 방어는 매우 위태로울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직선거리로 5,000여km나 떨어진 북서부전선에 보낸 2개 군을 다시금 회군시킬 수도 없는 상황이기에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며칠 전, 쿠르디스탄 공화국에 파병 온 피스부대의 전투부대가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방향에서 북진한다는 것을 각종 정찰전력으로 파악했지만, 처음엔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3개 여단이라고 해봤자 1개 사단급 수준이었고 러시아에 속한 여러 자치국 수비대가 방어 교전을 벌여 시간을 벌고 그사이 남부군구의 제58군으로 방어전략을 짜면 어렵지 않게 러시아 영토에 닿기도 전에 괴멸시킬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판이었다. 이들 3개 여단은 쿠르디스탄 공화국을 독립시킨 장본인이었다. 하물며 자국에서 각종 첨단 무기를 제공한 이란은 물론 이라크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부대였다.
또한, 총참모부에서 이러한 오판을 하게 된 이유에는 오만함이 한몫했다. 이란과 이라크 군사력이 생각 이상으로 형편없었고 자국에서 제공한 첨단 무기 역시 이란군의 훈련도와 장비운용 실력이 한참 뒤떨어져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여 패전했다는 분석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었다. 바로 쿠웨이트 동단 100km 페르시아만 해상에서 주둔하고 있는 제12항모전단이었다.
1개 항모전단 전력으로 쿠르디스탄 독립전쟁 당시 이란과 이라크의 제해권은 물론 공해권마저 평정하고 지상 공격 임무까지 탁월하게 수행한 제12항모전단의 위력은 실로 대단했다.
비록 제12항모전단이 러시아 남부까지 1,400km 이상 떨어진 거리였지만, 세계 최초의 무인전투기 CUF/A-22NP 피닉스는 10여 분 만에 도달하여 제공권 확보 및 지상에 대한 엄청난 화력을 퍼부었다.
이런 여러 가지 잘못된 오판으로 인해 본격적으로 진공을 시작한 피스부대의 3개 여단은 파죽지세로 북진했다.
먼저 러시아와 국경선을 맞대고 있는 구루지아라 불리던 현재의 조지아는 아직도 2곳에서 러시아와 영토분쟁으로 몸서리를 겪고 있었다. 이중 흑해 해안가와 접한 북단에는 현재 피스부대 제35기계화보여단이 진공 하여 여러 크고 작은 도시를 점령해 나갔고 급기야 주요 도시라 할 수 있는 수호미 인근까지 도달한 상태였다.
그리고 두 번째 영토분쟁 지역인 시다카르틀리주의 북서지역은 제11해병기동여단(광룡)이 전광석같이 빠르게 진공 하여 반군 및 러시아 친위군을 국경선 밖으로 내몰고 있었다.
마지막 세 번째 카스피해 서쪽 해안가를 따라 북진한 제7기계화보병여단은 데르벤트를 걸쳐 이제는 여단 전력을 두 개로 나눠 주도인 부이낙스크와 마하치칼라를 동시에 점령 중이었다.
제12항모전단의 무인전투기로부터 엄청난 화력지원을 받은 덕에 생각 이상의 전과를 올렸다. 이에 총참모부에서는 한가지 진공 속도를 늦추고자 남부군구 소속의 특수부대를 시가전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보통 특수부대는 적 후방에 침투하여 주요인물 암살 및 주요시설 파괴 등으로 후방교란이 주 임무였지만, 이번만큼은 아군 도시에 투입하여 게릴라 전술로 최대한 시간을 끌고자 했다.
이에 수호미에는 제33수색여단이 투입되었고 부이낙스크에는 제100수색여단과 제10스페츠나츠여단, 그리고 마하치칼라에는 제22스페츠나츠여단이 투입되어 시가전을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
임시방편이긴 하나 그동안 점령당한 다른 도시들과 다르게 피스부대에 애를 먹게 하는 건 분명해 보였다.
★ ★ ★
2024년 1월 10일 23:00 (러시아시각 17:00),
러시아 다게스탄주 마하치칼라 시가지.
타타타탕! 타타타탕!
쯍쯍쯍쯍쯍~ 쯍쯍쯍쯍쯍~
마하치칼라 중심지인 시청 앞 광장을 사이에 두고 수많은 총탄과 레이저 빛줄기가 스쳐 지나갔다.
남쪽 건물 쪽에서는 장갑차에서 하차한 한국군 보병들이 대응 사격을 가했고 반대편 북쪽에서는 시청 건물을 비롯해 여러 건물에서 각종 소화기에서 불꽃이 튀기었다.
“아나 이 새끼들 만만치 않습니다?”
각종 총탄에 구멍이 뚫려 반쯤 너덜너덜해진 자동차 뒤에 바짝 기대어 엄폐 중이던 곽영환 상병이 살짝 고개만 내밀어 실드글라스로 전방을 확인하려던 찰라, 쏟아지는 총탄 세례에 급히 머리를 숙이며 욕설을 내뱉었다.
오전 마하치칼라 남단 평원에서 러시아 1개 차량화보병여단과 한바탕 한 후 오후부터 시가전에 들어간 75기계화보병대대는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격렬한 저항에 부딪힌 상태였다.
75기계화보여대대는 차량화보병여단을 격퇴했던 오전만 해도 마하치칼라를 쉽게 점령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시가전에서 맞붙은 적 보병들의 움직임은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마치 날아다니듯 동작은 신속했고 사격 솜씨마저 일품이었다.
러시아군 보병들의 개인화기에 맞아서 죽거나 다칠 일은 희박했지만, 살짝 움찔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나마 C-23P-M 현무 기동전투장갑차들이 화력지원을 해줘 막상막하로 교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야! 저놈들 보통 놈들 아니다. 군복도 그렇고 특수부대 놈들 같은데?”
CS-2 개인화기의 총구를 30도 각도로 치켜들고 30mm 스마트 유탄을 연발로 쏘아 재낀 김성호 병장이 바로 몸을 날려 곽영환 상병 쪽으로 오고는 속삭이듯 말했다.
“아 좁은데 왜 이리 오십니까?”
“이 자식이? 너 보호해주려고 왔지 마!”
이때 소대통신망으로 소대장의 음성이 전해왔다.
- 소대장이다. 전방 건물 여러 곳에 저격수 다수 출현! 다들 조심히 응전하라!
“에잇! 저격수까지? 김 병장님! 저격수 총이면 우리 보호슈트도 뚫립니까?”
“한번 맞아봐! 뚫리나 안 뚫리나 보게!”
“짐 그걸 농담이라고 하시는 겁니까?”
“아니? 농담 아닌데?”
“헐!”
격멸에 가까운 눈빛을 보인 곽영환 상병! 하지만 눈빛의 대상자인 김성호 병장은 자동차 위로 고개를 내밀며 전방을 확인했다.
타타타아앙! 타타타앙! 타앙! 타탕!
역시나 사방에서 총탄 사례가 펼쳐졌다.
“이크! 많기도 하다 개눔들!”
“뭘 그리 놀라십니까? 저런 구경의 탄으론 헬멧 안 뚫립니다.”
“잉? 크크크! 너 말투가 그 모양이냐? 하하”
“아닙니다.”
“김 상병아! 우리 저격수 한번 잡자!”
“저보고 미끼 하라는 건 아니지 말입니다?”
“짜식! 후임보고 어찌 미끼를 하라고 하겠냐?”
“방금 내가 확인했는데, 시청 건물로부터 왼쪽 2번째 건물 2층에 5명. 3층에 8명, 그리고 8층에 2명 있다.”
“워! 그 짧은 시간에 잘도 보셨습니다?”
“아무렴 내가 괜히 병장이겠냐? 하기야 너 같은 상병 나부랭탱이는 흉내도 못 냈지”
“예! 예!”
“어쨌든 내가 저쪽으로 달려갈 테니까. 아래층 놈들은 신경 쓰지 말고 8층에 있는 두 놈만 날려버려! 알았지?”
“예? 위험합니다.”
“시끄럽고! 준비나 해!”
잠시 후 심호흡을 몇 번 한 김성호 병장은 새로운 엄폐 지점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다다다다다다닷!
타타타탕! 타타타탕! 타타타타탕!
지그재그로 뛰는 김성호 병장을 향해 마치 소나기 떨어지듯 총탄이 쏘아져 내렸고 빗나간 탄들이 지면에 박히자 작은 불꽃을 튀겼다.
탕앙~
8층에서 시원한 총성 한 발이 울리자 뛰어가던 김성호 병장이 순간 중심을 잃고 기우뚱했다. 하지만 이내 동물적인 감각으로 가까스로 중심을 잡고 욕설을 내뱉으며 다시금 뛰었다.
“아 아파! 시발!”
허벅지에서 느껴지는 후끈한 고통에 일반 탄이 아닌 저격용 탄이라는 걸 직감한 김성호 병장은 8층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치켜들고는 엄폐장소로 몸을 날렸다.
한편 자동차 뒤에서 8층을 확인하던 곽영환 상병은 저격수로 보이는 인형 발광채가 창문 틈 사이로 총구를 내밀자 자동차 지붕 위에 CS3를 거치하고는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분대화기용인 CS3에서 8mm 레이저 빛줄기가 선을 그으며 8층 창문 틈 사이로 빨려 들어갔다. 짧은 시간, 연발로 날아간 수많은 붉은 빛줄기가 반경 1m를 거덜 냈다. 당연히 저격수와 감적수 2명 모두 벌집이 되어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갈기갈기 찢어졌다.
“오 예!”
대각선 전방에서 작은 엄폐물에 몸을 숨긴 김성호 병장이 엄지척을 하며 환하게 웃었다.
“야! 곽 상병아! 저격수 총으로도 보호슈트 멀쩡하다. 하하”
“정말 대단하십니다. 근데 전쟁 끝나고 형수님 만나려면 몸 좀 사리시지 말입니다.”
“아! 저게 잊을만 하면 생각나게 하네? 콱!”
“하하, 김 병장님 생각해서 조심하라는 거지 말입니다.”
“됐고! 나머지 저것들도 후딱 해치우자!”
“다른 분대원 오면 같이 해치우지 말입니다.”
“시간 없어! 그냥 우리 둘이서 끝내자! 내가 유탄 연발로 날리면 알아서 연발로 갈겨봐! 몇 놈은 황천길 보낼 수 있지 않겠냐?”
김성호 병장은 허리춤에 달린 유탄집에서 여러 발의 유탄을 꺼내 들고는 바로 유탄발사기에 장전했다.
철컥!
왼손으로 장전 손잡이를 밀어제친 김성호 병장은 곽영환 상병에게 눈빛으로 신호를 보내고는 이내 깊은숨을 내쉬고는 빠른 동작으로 건물 쪽으로 스마트 유탄을 뿌렸다.
퓨웅! 퓨웅! 퓨웅! 퓨웅!
타타타타탕! 타타타타탕! 타타타타탕!
포물선을 그으며 200m까지 날아간 스마트 유탄은 정확히 2층과 3층에 착탄하고는 바로 폭발했다. 엄청난 폭발력은 아니지만, 안에 있는 보병쯤은 벌집으로 만들고도 남을 위력의 폭발이었다.
쿠앙! 쿠앙! 쿠앙! 쿠앙!
폭발과 함께 시꺼먼 연기가 사방에서 피어올랐다. 이때를 놓칠세라 곽영환 상병도 CS3의 방아쇠를 당겨 시원한 빛줄기를 뿌려댔다.
쯍쯍쯍쯍쯍쯍쯍쯍쯍~ 쯍쯍쯍쯍쯍쯍쯍쯍쯍~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건물로 붉은 빛줄기가 꽂히자 웬만한 건물 벽들은 시원시원하게 뚫리며 건물 안을 휘저었다.
순식간에 전지팩 하나를 사용한 곽영환 상병은 잠시 숨을 고르고는 빠른 동작으로 새로운 전지팩으로 교체했다. 그리고 다시금 사격 자세를 잡았다. 한편 김성호 병장 역시 다시금 스마트 유탄을 재장전했는지 실드글라스를 통해 확인된 적군을 향해 스마트 유탄을 날리고 있었다.
이렇게 몇 분간 가용한 화력을 총동원하여 퍼부은 두 장병은 어느 순간 사격을 멈췄다. 그러자 자욱했던 흙먼지와 검은 연기는 서서히 가라앉았다.
“오! 클리어 같습니다. 하하”
실드글라스를 통해 건물 곳곳을 살핀 곽영환 상병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이에 김성호 병장은 자신의 어깨에 CS2 개인화기를 거치한 후 당연하다는 듯 게슴츠레한 표정을 지으며 개폼을 잡았다.
“이게 바로 대한민국 육군 병장의 힘이지!”
“아~ 예!”
순식간에 분대급 병력을 제압한 김성호 병장과 곽영환 상병, 흉물스럽게 변해버린 건물에는 더는 인형 발광채는 탐지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