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89화 (489/605)

수상한 움직임

2024년 1월 09일 17:00 (신중국시각 15:00),

신중국 허베이성 랑팡시 외곽(중앙군구 사령부 임시주둔지).

수송헬기를 타고 베이징을 빠져나온 왕징위 주석과 당 간부들, 그리고 총참모부 지휘관들은 이곳 랑팡 외곽에 있는 중앙군구 사령부의 임시주둔지로 이동한 후 총참모부 지휘실을 차렸다.

그리고는 가장 먼저 전장 상황을 파악하려 했으나 계속된 통신장애로 인해 기존 통신장비는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이에 구시대적 발상이긴 했으나 각 집단군사령부와 중요 예하부대에는 연락병들을 직접 보내 전장 상황을 파악 중이었다.

그래서 이곳은 도깨비 시장처럼 각 부대에서 상황을 파악하고 온 연락병들이 분주히 오가며 정보를 전달했고 오퍼레이터들은 일일이 수작업으로 정보를 취합하여 각종 스크린에 표기했다.

이런 상황이 내일도 이어질까 걱정되는지 총참기획장에서 총참모장직에 오른 궈징페이가 피곤함을 떨치기 위해 고개를 좌우로 꺾으며 한마디 내뱉었다.

“언제쯤 통신이 제기되겠는가? 청나라 시대도 아니고 피곤하군”

“현재 가용한 모든 통신부대를 총동원하여 작업 중입니다. 최대한 오늘 안으로는 정상적인 통신체계를 갖추겠습니다.”

졸지에 총참모부 작전현황장 보직까지 맡게 된 중앙군구 총사령원인 마커 상장이 대답했다.

“오늘 중이라······. 알았네. 그나저나 파악된 전장 상황이 안 좋군. 대부분 모든 전선에서 밀리고 있으니······.”

지휘실 한쪽 벽면에 걸린 대형 스크린에는 현재까지 취합한 전장 정보가 각종 전술 기호로 표기되고 있었고 신중국군을 나타내는 전술 기호들이 대부분 국경선에서 밀려 남단 방향으로 내려와 있었다. 아직 100% 취합된 정보가 아니기에 현재 기준으로 전체 전장 상황을 판단할 수는 없으나 불길한 예감은 항상 적중하듯 이를 지켜보는 궈징페이 총참모장의 마음은 무거웠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합니다. 이런 식이라면 베이징은 물론 톈진까지 한국군에 밀릴 듯합니다.”

궈징페이 총참모장 역시 불리하게 돌아가는 전장 상황을 부정하고 싶지 않았는지 마커 상장을 보며 되물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마커 상장은 뭐 무슨 좋을 수라도 있나?”

“현재 파악한 바로는 한국군 역시 엊그제 공격으로 대부분의 전략급 무기를 소진했다고 보입니다. 아니 남았더라도 러시아군을 상대하려면 더는 우리 신중국군에 전략급 무기를 사용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에 전선 전체에 흩어진 아군 병력을 최대한 베이징과 톈진에 집중시켜 적어도 그 지역만큼은 막아내고 기회를 봐서 총공세로 밀고 올라가야지 않겠습니까?”

현재 상황을 냉철한 판단력으로 분석하여 제시한 마커 상장의 말에 검게 그늘이 져졌던 궈징페이 총참모장의 얼굴이 서서히 밝아졌다.

“음, 현재 상황에서 적절한 대응법인 듯하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각 부대에 명령 하달이 여의치 않다는 게 문제야. 현대전에서 상하부대 간 통신전달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뼈저리게 느끼는군”

가오웨이광 총참기획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으나 현재 통신상태가 먹통이라는 것 때문인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에 궈징페이 총참모장은 콧잔등에 주름을 잡고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에 마커 상장이 진지한 눈빛을 보이며 말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해야지 않겠습니까?”

“그래, 그래야겠지! 마커 상장은 지금 당장 참모진들과 함께 방어작전을 수립한 후 즉각 북부군구와 중앙군구의 모든 예하부대에 연락을 취하게.”

“네, 바로 방어작전을 수립하도록 하겠습니다.”

대답과 동시에 마커 상장은 총참모부 참모진은 물론 중앙군구 총사령부의 참모진까지 모두 데리고 작전회의실로 이동했다. 그리고는 현재 불리하게 돌아가는 전장 상황을 타개할 대책 작전회의에 들어갔다.

★ ★ ★

2024년 1월 09일 20:30 (신중국시각 18:30),

신중국 허베이성 푸닝현 남단 17km 평원.

지난 1일 선안(친황다오) 국경선 일대에서 전개하던 중 신중국군으로부터 플라즈마 폭탄 공격을 받아 사단 전력의 50% 이상의 손실을 당한 제6기계화보병사단(청성)은 제3기갑사단(백골)과 임무를 교대한 후 후방으로 물러나 긴급 재편성 작업에 들어갔다.

이후 제6기계화보병사단(청성)은 기존 3개 여단을 1개 여단인 2기갑여단으로 모든 전력을 합쳐 재편성을 완료했고 어제부터 ‘대공세 작전’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제6기계화보병사단(청성) 지휘관과 장병들은 전사한 동료의 복수 때문인지 하루 만에 제38집단군 소속의 여러 부대와 교전을 벌여 3번의 전과를 올렸다. 그리고 다시금 S364 도로를 따라 기동하던 2기갑여단의 1전차대대가 450m에 달하는 푸허 대교를 중간쯤 건넜을 무렵 매복하고 있던 신중국군의 출현과 동시에 공격을 가해왔다.

갑작스러운 LWR(Laser Warning Receiver)경보음이 울리자 선두에서 기동하던 C-2A1 흑호 전차는 자동으로 다영역연막탄을 사출했고 전자벙어기술인 SECM(Super Electronic Counter Measures) 발산했다. 그리고 흩날리는 연막탄 안에서 좌우로 회피기동에 들어갔다.

이에 하얀 꼬리를 물고 날아오던 여러 발의 대전차미사일은 제멋대로 공중으로 날아가 자폭하거나 아니면 빙글빙글 돌다가 강으로 떨어졌다.

쿠앙! 콰앙! 콰앙!

- 뭔가? 정찰 드론으로 확인 못 했나?

통신망을 통해 대대장의 질책성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 죄송합니다. 탐지하지 못했습니다.

- 일단 선두 소대는 전방을 꿇고 전진 기동해! 지형적으로 매우 불리하다.

대대장의 지시가 떨어지자 연막 구름 속에서 C-2A1 흑호 전차의 120mm 활강포에서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펑! 펑! 펑!

편도 3차선이라 폭의 한계로 동시사격이 가능한 3대의 C-2A1 흑호 전차가 1차 포격을 가한 후 앞으로 튀어나갔다.

쿠르르르르릉!

우렁찬 엔진음과 함께 최대속도를 내는 C-2A1 흑호 전차들은 계속해서 제압사격을 가했다.

피유우우웅! 피유우우우웅!

어느 선가 휘파람 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더니 이내 푸허 대교 곳곳에 박격포탄이 낙탄했다.

- 후방 8km 지점 언덕 너머에서 박격포 포대 확인! 총 36문으로 확인! 그리고 보병 다수 포착! 대략 1개 연대급으로 추정됩니다. 아! 그리고 민간인 보이는 사람도 다수 확인됩니다.

- 민간인? 네, 촬영된 영상 확대합니다. 연상 확인 바랍니다.

이에 K-22-지휘장갑차에서 지휘하던 대대장은 전송된 영상을 확인했다.

연대급 규모의 병력 앞에 민간인으로 보이는 수많은 사람을 마치 방패막이 된 것처럼 곳곳에 포진되어 있었다.

- 이런 미친 새끼들을 봤나. 민간인을 방패로 삼은 건가?

황당한 장면에 대대장은 자기도 모르게 통신망으로 욕설을 내뱉고 말았다.

그러는 사이 쏟아지는 박격포탄을 회피하며 푸허 대교를 건넌 여러 대의 C-2A1 흑호 전차들은 보이는 대로 신중국군 보병들을 유린했다.

쿠아아아앙! 콰앙!

가장 앞서서 기동하던 C-2A1 흑호 전차의 측면에서 귀청을 찢을듯한 폭발음과 함께 불꽃이 튀겼다.

순간 기우뚱한 C-2A1 흑호 전차는 별일 아니라는 듯 기동을 계속하며 방금 자신을 공격한 쪽으로 포신을 돌렸고 이내 활강포에서 고폭탄을 날렸다.

쭈웅! 콰아앙!

멀지 않은 거리에서 땅을 파고 숨어있다가 흑호 전차가 지나가자 상체만 내밀고 대전차미사일을 발사했던 신중국군 보병은 폭발과 함께 산화했다.

이렇게 하나둘 매복한 신중국군을 제압하는 동안 푸허 대교를 건너 흑호 전차의 수는 늘어났다.

한편 민간인을 방패 삼아 제2차 방어진을 구축한 신중국군에 대해 잠시 고민에 빠진 대대장은 대대 작전과장과 상의에 들어갔다.

현재 1전차대대 후방 15km에는 사단포병전력 중 포병전력을 보전한 2개 포병대대가 뒤따르고 있었다. 즉 아군 2개 포병대대에 화력 요청만 하면 순식간에 집중포격으로 제2차 방어진을 구축한 신중국군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민간인을 방패 삼았기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교전에 있어서 상당한 제약이었다.

만약 민간인을 무시하고 공격한다면 지금도 민간인 학살이니 뭐니 해서 국제사회로부터 온갖 비난을 받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대대장으로서는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방어진지를 구축한 병종이 보병이라는 것, 민간인 피해 없이 좌우로 우회하여 양 측면을 공격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방어진을 돌파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였다.

어쨌든 작전과장과 상의를 끝낸 대대장은 직접 헬멧에 장착된 터키온-Xa 통신기를 통해 명령을 하달했다.

- 선두 5중대와 본부중대는 현재 위치에서 잔당 소탕에 치중하고 6중대는 좌로, 7중대는 우로 우회하여 타켓 A로 지정된 적 방어부대를 섬멸한다. 될 수 있으면 방패로 삼은 민간인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유의하고, 지원 포격 없이 우리 전차대대 힘만으로 섬멸한다.

대대장의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일사불란하게 각 중대 전차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맹렬한 기세로 6중대와 7중대 전차들이 전방으로 고속기동에 들어가고 나머지 5중대 전차와 중대본부의 각종 장갑차가 끝까지 항전하는 매복한 신중국군을 처리해 나갔다.

그리고 몇 분의 시간이 흘렀다. 사정없이 하늘에서 떨어지던 박격포탄도 뜸해지고 매복한 신중국군도 거의 정리가 끝날 때쯤 누군지 모른 전차장으로부터 절규에 가까운 음성이 통신망을 타고 전해졌다.

- 9시 방향, 전 천자 다수 출현!

출현 보고가 끝나기가 무섭게 동시다발적인 포성이 울리며 주변 공기를 흔들었다. 이들의 정체는 최신예 99식A2 전차를 운용하는 제38집단군 소속의 전차대대였다.

퍼엉! 퍼엉! 퍼엉! 퍼엉! 퍼엉! 퍼엉! 퍼엉! 퍼엉!

공기를 찢을듯한 파공음이 울리는가 싶더니 여러 발의 날탄이 막 매복군을 소탕한 5중대 전차에 쏟아졌다.

콰앙! 콰아앙! 콰앙! 콰앙! 콰앙!

여러 대의 C-2A1 흑호 전차가 심하게 출렁거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피격되거나 교전 불가능한 피해를 본 전차는 없었다. 아무리 125mm 활강포를 장착한 신중국군의 최신예 전차라 해도 강력한 방호력을 갖춘 C-2A1 흑호 전차를 초탄으로 피격시킨다는 건 과한 욕심이었다.

먼저 선제공격을 받은 5중대 전차들은 바로 반격 사격에 들어갔다.

펑! 펑! 펑! 펑! 펑!

1km도 안 되는 짧은 거리였기에 빨랫줄처럼 뻗어 나간 플라즈마탄은 신중국군 99식A2 전차를 덮쳤다.

가장 앞에서 기동하던 99식A2 전차의 포탑이 공중으로 튀며 차체 내부에서 붉은 화염이 내뿜고 포탑은 뒤로 떨어지면서 전차 내부의 시커먼 연기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이렇듯 한번 사격으로 9대의 99식A2 전차가 화염에 휩싸이며 고철 신세가 되자 의기양양하며 선제공격을 가하던 신중국 전차대대는 연막탄 사출과 함께 좌우로 회피기동을 병행하며 다시금 공격을 가해왔다.

슈우우웅! 콰앙! 콰아앙!

퍼엉! 퍼엉! 퍼엉! 퍼엉!

어느새 진눈깨비까지 흩날리는 평원에서 서로를 향해 수많은 날탄과 플라즈마탄이 엇갈리며 날아가는 가운데 5중대에서도 가장 활약이 눈에 띄는 511호 전차가 지그재그 형식으로 기동하며 다가오는 적 전차를 차례대로 격파해 나갔다.

“다음 2번 표적! 날탄! 장전”

“날탄 장전~ 장전 완료!”

“발사”

펑!

1,200mm에 달하는 관통력을 자랑하는 플라즈마탄이 눈 깜짝할 사이에 날아가 표적으로 삼은 적 전차의 포탑 하단 정면장갑에 정확히 꽂히며 관통했다.

콰앙!

폭발반응장갑마저 무시하고 그대로 전차 내부까지 파고들어 폭발하자 58톤에 달하는 99식A2 전차는 들썩이며 사방에서 붉은 화염이 분출했다.

“피격! 다음 타킷 주십쇼!”

“없다!”

“네?”

“교전 끝났다.”

“벌써 말입니까?”

“그래! 정리됐다.”

“휴~ 어쨌든 무사히 끝나서 다행입니다.”

그제야 조준경에서 눈을 뗀 홍일준 상병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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