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88화 (488/605)

수상한 움직임

“신타로 장관! 지금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벌써 3년 전 일을 잊은 겁니까?”

외교부 구로사와 키요시 장관이 인상을 찌푸리며 질타했다.

“키요시 장관! 잊지 않았으니 하는 소리가 아닙니까? 어느 국가가 타국의 군대에 의존하여 영토를 수호한단 말입니까?”

“그건 전범 국가로서 그에 맞는 국제사회로부터 받은 제약이 아닙니까? 우리의 잘못된 결정과 정치로 감내할 부분입니다.”

“감내요? 언제까지요? 수천 년 후까지요? 3년이면 충분합니다. 이제는 다시금 보통국가로 거듭나 우리의 힘으로 자주국방을 해야지요.”

이시하라 신타로 장관은 작심한 듯 극우성향의 발언을 토해냈다.

“그건 우리가 아닌 국제사회가 인정해야 합니다.”

“훗! 국제사회요? 그게 아니라 조센징 국가의 인정이겠지요. 그리고 과연 그런 날이 올 거로 생각합니까? 다들 순진하다 못해 멍청해 보입니다.”

“허허, 신타로 장관! 말이 심하지 않소?”

곤노 야스유키 장관까지 합세해 이시하라 신타로 장관을 질타했다. 이에 이시하라 신타로 장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손가락질을 하며 소리치고는 그대로 회으실을 나가버렸다.

“어리석은 인간들······. 어쩌다가 우리 대일본이 이 꼴이 났는지······.”

이에 우치다 총리를 비롯해 회의실에 남은 장관들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한마디씩 던졌다.

“허허! 저 사람, 예의라곤 찾아볼 수 없군”

“내버려 두시지요. 하루 이틀입니까?”

“독선에 아집에 어쩌다가 저런 인간이 장관 자리에 올랐는지······.”

신타로 장관의 제멋대로 한 행동에 회의가 중단되고 여러 장관이 곤노 야스유키 장관의 험담을 나누자 이번 회의의 주재자인 우치다 총리가 헛기침으로 어수선한 분위기를 잡았다.

“음! 음! 자! 다들 조용히 해주세요. 일단 오늘 회의는 잠시 휴정하며 오후 3시에 다시 열도록 하겠습니다. 신타로 장관에게는 비서관을 통해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때까지 신중히 생각해주시고 의사결정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렇듯 마무리 발언으로 회의를 휴정하려 하자 구로사와 키요시 장관이 다급히 손을 들고는 추가 질문을 던졌다.

“장관님! 한국 정부에서 이와 같은 상황을 알고 있습니까?”

구로사와 키요시 장관의 질문은 멍청해 보일 수 있는 질문이었으나 외교부 수장으로써 확실히 짚고 싶은 듯했다.

“당연히 모르지요. 또한, 알아서도 안 되고요. 향후 외교적으로 문제가 없도록 키요시 장관은 특별히 신경을 써 주세요.”

‘제길! 일은 자기가 벌어놓고 나보고 신경 쓰라니 한심하기는······.’

우치다 총리의 무책임한 태도에 살짝 짜증이 난 구로사와 키요시 장관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 ★ ★

2024년 1월 09일 11:00,

일본 도쿄 지요다구 경제산업부 청사 장관실.

안보회의에서 깽판 치고 자신의 청사로 돌아온 이시하라 신타로 장관은 장관실에서 누군 과와 은밀한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는 바로 비공식적으로 일본 방문 후 우치다 총리와 면담을 가졌던 미 외교부 줄리안 장관이었다.

같은 외교부 장관끼리의 회담이라면 이해가 될 일이었지만, 경제산업부 장관과 외교부 장관의 회담은 왠지 어울리지 않았지만, 이들은 회담 내내 심각한 표정을 일관하며 깊이 있는 대화를 이어갔다.

“음, 그 3명은 친한 성향이니 그럴 만도 하지요. 문제는 보안부 장관이 문제이군요.”

이시하라 신타로 장관으로부터 보안회의 내용을 상세하게 전해 들은 줄리안 장관은 고민이 생겼는지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에 이시하라 신타로 장관은 약간은 비열한 미소를 보이며 콧등에 걸린 안경을 검지로 올리며 말했다.

“다카시 장관은 약간 놀라긴 했으나 그리 반대하는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어쨌든 이번 거사를 성공시키려면 다카시 장관의 역할이 매우 큽니다. 장관께서 꼭 설득을 해주셔야 합니다.”

“하하,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그 친구가 조금은 신중한 성격이긴 하나 꽉 막힌 친구는 아닙니다. 의사 투표를 하기 전에 설득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신타로 장관만 믿겠습니다.”

“염려할 거 없습니다. 다카시 장관만 우리 쪽에 붙는다면 아슬하게나마 원하는 대로 결정될 것입니다.”

“하하하, 그래야지요. 일본의 미래를 위해서도 동맹국인 우리 미국을 위해서도 말입니다.”

사실 이시하라 신타로 장관이 오전에 있었던 안보회의에서 일부러 화를 내고 회의실을 나간 건 사전에 계획한 일이었다.

그의 계획은 이랬다. 안보회의에서 우치다 총리가 소집 안건에 대해 상정하면 그에 대한 여러 장관의 반응을 파악하는 것과 의사결정 투표를 보류시키기 위해 회의를 파행하기 위해 회의 중에 자리를 뜬 이유였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보자면 성공이었다. 의사결정 투표는 오후 3시로 연기되었고 여러 장관의 반응까지 파악했으니 이제 이번 거사의 가장 핵심인 보안부 미이케 다카시 장관을 비롯해 중립적인 태도를 보인 몇몇 장관만 구워삶는다면 줄리안 장관이 원하는 대로 흘러갈 수 있게 되었다.

“자! 그럼 시간이 별로 없으니, 다카시 장관은 신타로 장관님께 맡기겠습니다. 저는 나머지 장관들을 만나봐야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시죠.”

★ ★ ★

2024년 1월 09일 14:00,

일본 도쿄 신주쿠구 보안부 청사 주변.

한일전 당시 대대적인 폭격을 받아 완전히 파괴되어 방위성 관공서는 이제 보안부라는 이름의 관공서로 새롭게 지어져 자리 잡고 있었다. 예전만큼 높고 큰 규모의 건물은 아니었지만, 나름 현대식 건물로 재건축되어 신주쿠구 내에서 높은 건물에 속했다.

보안부 관공서로부터 서쪽으로 350m 떨어진 319도로 갓길에 짙은 선팅을 한 검은 밴 한 대가 서 있었다.

이 검은 밴의 정체는 국가정보원 일본본부 소속의 도쿄지부 차량이었다. 1시간 전부터 갓길에 세워진 채로 안에서는 여러 요원이 각종 첨단장비를 가지고 뭔가를 하고 있었다.

“그냥 침투해서 확인하는 게 더 쉬운데 말입니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젊은 요원이 헤드폰을 벗어젖히며 투덜댔다. 도쿄지부의 막내 요원인 이현호 요원이었다.

“집중 안 해? 당장 안 써?”

“눼!”

이현호 요원의 바로 맞선임인 김은호 대리가 눈을 부라리며 눈총을 주자 이현호 요원이 입을 빼죽 내밀고는 다시금 헤드폰을 썼다.

“넌 젊은 놈이 뭐든지 몸으로만 하려고 하냐? 나이 먹어서 이런 장비들 사용하는 게 힘들면 이해라도 하겠는데 말이야.”

“아! 김 대리님! 미션 임파서블도 안 보셨습니까? 모름지기 첩보 요원이라 하면 목숨 걸고 침투해야 제맛이지 말입니다.”

“하! 젊은 놈이 겉멋만 들어서리······.”

“김 대리님은 저랑 나이 차도 얼마 안 나면서 말끝마다 젊은 놈, 젊은 놈 합니까?”

“5살 차이가 얼마 안 나냐? 더 따지지 말고 잘 들기나 해!”

“녹음하고 있는데 꼭 이렇게 들어야만 합니까?”

“콱!”

“아! 듣고 있습니다.”

때리려고 하는 시늉에 방어 자세를 취한 이현호 요원이 다시 한번 입을 삐쭉거렸다.

이때 승용차 한 대가 미끄러지듯 다가오더니 검은 밴에 섰다. 그리고 한 남자가 내리고는 자연스럽게 검은 밴으로 향했다.

“아! 오셨습니까? 팀장님!”

김은호 대리가 인사를 건넨 인물은 도쿄지부 황진규 지부장이었다.

“그래, 뭐라도 건졌어?”

“네, 쓸만한 거 몇 개 건졌습니다.”

“그래? 좋아! 끝내는 대로 녹음된 파일 지부로 가지고 와!”

“네,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하고 난 준비 중인 1팀장 쪽으로 가보겠다.”

“알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황진규 팀장이 나간 후 그때까지 헤드폰에 집중하고 있던 이현호 요원이 순간 자신의 무릎을 치고는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예스! 제대로 하나 건진 듯합니다. 하하”

“그래?”

김은호 대리가 콘솔 장비에서 몇 가지를 조작하자 헤드폰으로 들려오던 감청 소리가 검은 밴 내부에서도 들리기 시작했다.

- 이번에 동의만 하시면 미화 천만 달러는 물론 정계 은퇴 후 미국에서 온 가족이 편안히 살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할 것입니다.

- 하지만, 너무 위험합니다. 보안대 병력이라고 해봤자 개인화기로 무장한 병력이 고작 6만 명밖에 안 됩니다. 그것도 3개 섬에 다 흩어져 있지 않습니까?

-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미 해병대와 특수부대에서 도와줄 것이고 태평양함대도 움직일 것입니다. 장관께서는 혼슈에 주둔 중인 보안대 병력만 최대한 훈련 명목으로 도쿄로 소집해 주세요.

- 앞서 말했지만, 혼슈 내 주둔 중인 보안대 병력을 모아봤자 3만여 명입니다. 그걸로 뭘 할 수 있겠습니까?

- 보안대는 이번 거사의 상징성일 뿐, 모든 일은 우리 미국이 알아서 할 것입니다.

- 후~

진한 한숨이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어떻습니까? 제대로 잡은 거 맞지요?”

“그래, 이 정도면 빼박이다.”

“그럼 이만 철수할까요?”

“오케이! 본부로 철수하자!”

“옛설!”

2시간 동안 이곳에서 감청한 대상자는 현재 보안부 장관실에 있는 미이케 다카시 장관과 미 외교부 줄리안 장관이었다.

대외정보국 도쿄지부는 진작부터 줄리안 장관의 일본 극비 방문을 알고 있었으며 하네다 국제공항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1팀 모든 요원이 밀착 감시를 해오고 있었다.

★ ★ ★

2024년 1월 09일 15:00,

일본 도쿄 지요다구 중앙청 국가안보회의실.

오후 3시가 되자 중앙청 국가안보회의실에는 총리를 비롯해 22명의 장관이 착석한 가운데 오전에 마저 못한 회의를 시작했다.

한바탕 설전이 오갔던 오전 안보회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오후 안보회의는 매우 차분함 속에 진행됐다.

“짧은 시간이지만 다들 심사숙고했을 거로 생각합니다. 이번 안건은 우리 일본의 미래가 걸린 매우 중대한 안건입니다. 이 점을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시고 의사결정 투표에 참여해 주세요.”

우치다 총리는 의사결정 투표를 하기에 앞서 진중한 어조로 장관들을 보며 당부의 말을 전했다.

“자! 그럼! 미국의 공식적인 군사지원 아래 일본 스스로 자국 방위국가로 거듭날 수 있는 자주독립국가 선포 건에 대한 의사결정 투표를 시작하겠습니다. 앞에 있는 버튼 중 찬성은 파란 버튼을, 반대는 빨간 버튼을 눌러주시기 바랍니다.”

잠시 후 22명의 장관은 저마다 자기 앞에 있는 2개의 버튼 중 하나를 눌렀다. 그러자 회의실 정면에 있는 큰 스크린에서 찬성과 반대 현황이 표기되었다. 찬성 11표, 반대 11표 동률로 나왔다.

그러자 장관들의 시선은 일제히 스크린에서 우치다 총리로 향했다. 장관들만으로 의사결정 투표가 동률이 나올 때는 총리가 투표권을 행사하여 결정하는 절차였기 때문이었다.

자신에게 쏠린 시선을 외면하듯 우치다 총리는 조용히 눈을 감고는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순간 찬성 숫자가 11에서 12로 바뀌었다.

“헛! 총리님 어떻게 찬성표에······.”

반대표를 던진 장관 중 가장 강하게 반대했던 외교부 구로사와 키요시 장관은 충격을 받은 듯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조금 전, 동률이 났을 때 구로사와 키요시 장관은 마음속으로 기대했었다. 우파 좌파 성향을 떠나 항상 일본 시민을 생각하는 우치다 총리였기에 당연히 반대표를 행사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는 다르게 우치다 총리는 찬성표에 투표했다.

“이로써 찬성 12표, 반대 11표로 일본 자주독립국가 선포 건은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탕! 탕! 탕!

“우치다 총리! 대체 무슨 생각으로 찬성표를 던지신 겁니까?”

곤노 야스유키 장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우치다 총리에게 손가락질하며 따졌다. 하지만 우치다 총리는 의사봉을 치고 선포한 후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을 나갔다.

“거기 서세요. 어딜 갑니까?”

“허허! 야스유키 장관! 총리께서 찬성하던 반대를 하던 왜 당신이 왈가불가합니까? 체통을 지키세요.”

원하는 투표결과가 나오자 이시하라 신타로 장관은 실실 쪼개며 곤노 야스유키 장관에게 약을 올렸다.

“뭐요? 당신? 이 인간이?”

“허허, 다들 왜 이러십니까? 진정들 하세요.”

“이 인간? 말이면 다인 줄 알아?”

국가안보회의실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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