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당한 대가
선글라스를 끼고 검은 슈트를 입은 남자들이 곳곳에서 삼엄한 경호를 하는 가운데 배불뚝이 사내가 당 정복을 입고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신중국의 최고수장 왕징위 주석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합동참모본부의 상황실에서는 아폴론 정찰위성으로부터 왕징위 주석이 X-15 벙커에서 나와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 수송 헬기를 타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사실 ‘평탄화 작전’이 시작되기 전 합동참모본부에서는 왕징위 주석이 숨어 있던 X-15 벙커 위치를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또한, 제우스 위성에서 발사한 C-SH 지노그-II 미사일 역시 X-15 벙커로부터 착탄 지점을 크게 벗어나게 했다. 즉 왕징위 주석을 일부러 살려줬다는 것이었다.
왕징위 주석이 숨어있던 벙커 위치를 파악한 상태에서 ‘평탄화 작전’을 수립할 당시 참모들의 의견이 상충하는 한 가지가 있었다. 바로 왕징위 주석의 생사 결정이었다.
한쪽에서는 ‘평탄화 작전’ 시 왕징위 주석과 총참모부를 완전히 섬멸하여 전쟁을 신속하게 끝내자였고 다른 한쪽은 그렇게 되면 현재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각 집단군이나 하급부대를 컨트롤 할 수뇌부가 사라져 자칫 모든 예하부대를 모두 상대하게 되어 종전이 더 길어질 수 있다는 의견이었다.
결과적으로 후자 의견에 힘이 실리며 왕징위 주석과 총참모부는 이번 ‘평탄화 작전’에 살아남았지만, 향후 자신들에게 일어날 일을 미리 알았다면 그리 좋아할 일은 아니었다.
어쨌든 하늘에는 J-20 스텔스 전투기 여러 대가 편대 단위로 비행하며 엄호하는 가운데 대형 수송 헬기에 탄 왕징위 주석과 총참모부 참모진은 지옥으로 변해버린 베이징을 벗어나 남단으로 향했다.
이렇게 왕징위 주석이 베이징을 빠져나가는 영상을 보자 ‘평탄화 작전’ 당시 몰살시키자는 쪽에 있었던 윤기윤 합참차장이 한마디 던진 이유였다.
“지금이래도 늦지 않았는데 말이디······.”
턱을 매만지며 스크린에 눈을 못 떼는 윤기윤 합참차장에게 다가간 신성용 합참의장이 슬쩍 말을 건넸다.
“윤 차장님 많이 아쉬운가 봅니다.”
“아쉽다 못해 열받디요. 의장 동지! 지금이라도 미사일 한 발이면 끝나지 않습네까?”
“하하, 그 마음 이해합니다. 하지만, 지금 결정이 더 나은 결과로 돌아올 겁니다. 조금만 기다려 봅시다.”
“이거이 명령 한마디면 되는 것을······. 음, 음, 어쩔 수 없디요.”
헛기침을 몇 번 한 윤기윤 합참차장은 못마땅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돌아가며 이런 생각을 했다.
‘남조선 동무들은 너무 복잡하게 생각한단 말이디. 쉽고 간단하게 갈 수 있는데도 말이야. 피곤하구만, 피곤해’
“윤 차장님! 저 역시 아쉽긴 하지만, 어쨌든 다수 의견으로 결정된 사항이니 따라가야지 않겠습니까?”
이은형 육군참모총장 역시 못내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위로 아닌 위로의 말을 전했다.
“그렇디요. 따라가야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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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08일 17:00,
남주 서울특별시 용산구 국방부 브리핑실.
오후 6시가 넘어갈 때쯤, ‘평탄화 작전’에 의해 신중국의 사상자 통계 집계가 완료되었다. 이에 국방부에서는 신중국을 비롯해 여러 국가의 방송 매체에서 허무맹랑한 사상자 발표를 우후죽순 이어가자 이를 바로 잡고자 발표하기로 했다.
인류 전쟁 역사 아래 단기 공격으로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한 이번 ‘평탄화 작전’에 세계 관심사는 실로 대단했다. 그만큼 비인륜적 전쟁행위라며 쏟아지는 비난도 상당했다.
브리핑실 단상 선 국방부 오진환 대변인이 카메라를 보고는 정중히 인사를 건네 후 곧바로 브리핑을 시작했다.
“현재 여러 국가에서 근거 없고 무분별한 사상자 발표로 인해 우리 대한민국에 대한 비난이 쇄도하는 만큼 이와 관련하여 정확한 정보를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좌측 스크린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인사말을 마치자 단상 옆 대형 스크린에 신중국을 지도가 보였다. 그리고는 전략급 무기가 사용된 도시에서 꼬리말 형식으로 여러 정보가 표현되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완전한 데이터는 아니나 최대한 집계한 자료에 의하면 민간인 사상자는 925만 명으로 확인되었으며, 각기 도시 사상자는 스크린에 나와 있는 것과 같습니다.”
대통령에게 보고했던 사상자 1차 집계 자료보다는 375만여 명이 줄었으나 925만 명이라는 숫자는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었다.
여러 도시 중 가장 큰 사상자가 발생한 도시는 베이징이었다. 사상자 수가 전체 60%에 달하는 647만 명에 달했고 사망자 추정 600만 명에 달했다. 다른 도시보다 거주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이기도 했으나 이렇듯 가장 큰 사상자가 발생한 원인은 피난민에 대한 신중국 정부의 통제 때문이었다.
다른 도시부터 중앙정부가 위치한 베이징에서는 피난민에 대한 통제가 가장 심했고 이로 인해 적어도 300만에 달하는 피난민이 다시금 베이징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오진환 대변인은 사상자 통계 자료를 발표한 후 이와 같은 큰 사상자가 발생한 원인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했다. 즉 이러한 큰 사상자가 발생한 원인이 신중국 정부의 잘못된 판단으로 민간인 사상자가 크게 발생했다는 것을 강조했다. 더욱이 공격전 7일간, 민간인에 대한 피난경고 방송과 전단살포 등 인도적 차원에서 국가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취했음을 대외적으로 알렸다.
어떻게 보면 ‘평탄화 작전’에 따른 국방부 대변인의 사상자 통계 자료 발표였으나 궁극적인 목표는 대외적으로 쇄도하는 비난을 방어하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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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08일 20:00 (라트비아시각 13:00),
라트비아 리가 EU 본부 의장실.
예상과 다르게 추은희 대통령의 완강한 성명발표에서 사태 심각성을 인지한 미 국무부 메인 존슨 장관은 곧바로 이곳 라트비아 수도 리가의 EU 의장본부를 방문했다.
갑작스러운 메인 존슨 장관 방문에 마쳐 EU 회원국 대표들도 급히 이곳 EU 의장본부에 도착하여 앞으로 30분 후에 있을 회의를 준비 중이었다.
회의 시작에 앞서 EU 의장국 대표인 마리스 펠식스 의장과 미팅을 가진 메인 존스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친서 서한을 전달했다.
“오! 트럼프 대통령께서 친서로 저에게 이렇게 편지를 보내다니······.”
미 대통령 문장이 각인된 고급스러운 서한을 받아든 마리스 펠식스 의장은 환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친서 내용을 천천히 읽어간 후 조금은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메인 존스 장관을 바라봤다.
“이게 정말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내용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음, 쉽지 않은 내용이군요.”
“그래서 이렇게 대통령께서 친서로 보낸 이유입니다. 펠식스 의장님께서 회원국 대표들에게 힘 좀 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마리스 펠식스 의장은 탁자 위에 친서 서한을 내려놓고는 턱을 괸 채로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가졌다.
친서 서한에 담긴 내용이 생각보다 심각한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추은희 대통령의 대국민 성명발표 방송을 본 마리스 펠식스 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 서한대로 동의하고 시행한다면 자치 EU 역시 전쟁의 화마에 휩싸일 수도 있는 그런 내용이었다.
“음, 제가 EU 의장이긴 하나, 제 개인적 의견보다는 모든 회원국 대표들의 의견이 우선이라 생각됩니다. 회의에서 안건으로 올리겠지만, 개인적인 힘은 보탤 수 없을 거 같습니다.”
“의장님! 의장님 힘이 절실히 필요할 때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고,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니요. 이런 중대한 사항에 대해서는 제 개인적 의견을 낼 수 없습니다.”
단호하게 거절하는 마리스 펠식스 의장이었다.
“음, 그래요. 그렇다면 의장님, 오늘 회의에서 제게 발언권을 주실 수 있습니까?”
“네, 그 정도 부탁은 가능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잠시 후 회의실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메인 존스 장관은 가볍게 인사를 하고는 의장실을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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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08일 20:00,
일본 도쿄 중앙청 내각총리실.
라트비아에 미 국무부 메인 존스 장관이 방문했다면 비공식적으로 일본을 방문한 미 외교부 줄리안 장관이 한국 정부 모르게 우치다 총리와 비밀 회담을 했다.
우치다는 지난 아베 정권 당시 후생노동 대신의 자리에 있었던 자로 패전 이후 일본 정치판이 한국에 의해 완전히 개편되면서 총리 자리에 오른 인물이었다.
전쟁의 폐허로 인해 잃어버린 20년이라 불리는 불경기 못지않은 경제적 위기와 한국의 시장 식민지가 되어버린 일본이었지만 썩어도 준치라는 말처럼 예전 2위의 경제 대국답게 매년 2.2%대의 경제성장률을 꾸역꾸역 버티고 있었다.
“우치다 총리님! 언제까지 일본 국방력을 한국에 의지하려 합니까?”
간단한 인사말을 나눈 후 줄리안 장관은 곧바로 본론으로 넘어갔다. 이에 우치다 총리는 찻잔을 입에 갖다 댄 채로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말았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말 그대로입니다. 자국의 영위를 타국에 맡긴다는 건 구시대적 발상입니다. 이제 일본은 일본인의 힘으로 지켜야지 않겠습니까?”
“음, 그건 당연한 말이긴 합니다만, 현재 일본 상황이······.”
“우치다 총리님! 상황이라는 건 언제든 바뀌는 부분이지요. 총리께서 마음만 먹는다면 우리 미국이 도와줄 수 있습니다.”
줄리안 장관은 미끼를 던지고는 곁눈질로 우치다 총리의 표정을 살폈다.
“어떤 마음을 먹으란 말인가요?”
“그걸 몰라서 도리어 저에게 물으시는 겁니까?”
“네, 쉽게 이해가 안 돼서 말입니다.”
우치다 총리는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허허 답답한 인간이군, 왜 한국이 이 인간을 총리 자리에 올려놨는지 이제야 알겠군’
뇌리에서 이런 생각을 든 줄리안 장관은 가지고 온 가방에서 두툼한 서류뭉치 하나를 꺼내 들고는 우치다 총리에게 건넸다.
“이건 뭡니까?”
“새로운 일본의 비전입니다.”
“네?”
“분량이 크니 천천히 읽어보세요. 제가 내일 오후 비행기로 출국하니 그때까지 읽어보시고 답변을 주시면 됩니다. 총리님! 두 번 다시 없을 기회이니 긍정적으로 봐주시기 바랍니다.”
“음, 뭔지는 모르겠지만, 자세히 읽어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그래 주시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께서 임기를 마치기 전, 일본을 방문하신다고 합니다.”
“오! 그래요? 언제든 환영하니 꼭 뵙고 싶다고 전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이······. 아차차! 오늘 방문이나 제가 드린 문서는 한국이 알아서 좋을 게 못 되니 보안 좀 유지해주세요.”
자리에서 일어서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줄리안 장관은 당부의 말을 전했다.
“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 이만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잠시 후 총리비사관의 안내를 받으며 줄리안 장관이 총리실에서 나가자 우치다 총리는 탁자 위에 놓인 두툼한 문서를 집어 들었다.
우치다 총리는 한국에 의해 총리에 오른 인물로 3년간 총리직을 수행했지만 그렇다고 골수 친한파는 아니었다. 그는 지금까지 일본 정치인에게는 볼 수 없었던 서민적인 사고를 하는 정치인으로 오직 일본 국민을 위해 총리직을 수행해왔다. 그렇기에 지난해에 있었던 중간선거에서도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2년간 총리직을 수행하게 되었다.
현재 일본 총리직은 3년 임기에 1번만 연임할 수 있는 제도로 바뀌었다. 이는 지난 아베 정권이 4번이나 연임하여 장기집권한 철폐를 없애고자 바뀐 제도였다.
첫 장을 넘기며 읽어나가는 우치다 총리의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어떤 때는 엷은 미소를 어떤 때는 미간에 힘을 주어 내천자를 만들기도 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대략 내용을 모두 읽은 우치다 총리는 탁자에 문서를 내려놓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
‘자칫 일본에 또다시 커다란 회오리바람이 불 수도 있겠군’
이런 생각이 뇌리를 스치자 우치다 총리는 인터폰의 버튼을 눌렀다.
삐익!
- 네, 총리님! 나가모토 비서관입니다.
“내일 오전 9시에 안보회의를 소집할 테니 모두 호출해 주세요.”
- 네, 알겠습니다. 총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