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83화 (483/605)

응당한 대가

쿠카카캉! 콰콰캉!

융기현상에 의해 지각이 들고 일어나며 마치 성난 파도가 수십 미터 높이로 밀고 나가며 집어삼키듯 지상의 모든 것을 땅속 아래로 끌어드렸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인구 이천만여 명이 살던 베이징은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검붉은 화염만이 꿈틀거리는 용암지대처럼 변하고 말았다.

이러한 끔찍한 장면을 연출하는 도시는 베이징 말고도 톈진을 비롯한 바오딩, 스지좡, 정저우, 뤄양, 시안, 우안 등 신중국을 대표하는 모든 도시에 지옥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 시각, X-15 벙커에서도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계속되는 흔들림으로 천장은 갈라지고 각종 흙먼지가 쏟아졌다. 또한, 강철로 만들어졌던 벽들도 외부 압력에 의해 휘어지거나 볼록 튀어나와 얼마나 큰 충격이 벙커 내부를 강타했는지 짐작하게 했다.

벙커 안 각종 첨단장비와 조명들이 꺼졌다 켜지기를 반복하더니 이내 짙은 암흑으로 변해버렸다. 이런 때를 대비해 마련된 비상 발전기마저 정상적으로 작동이 되지 않는지 꺼져버린 조명은 다시는 켜지지 않았다.

“머, 먼가? 불 좀 켜란 말이야.”

지하 100m 아래에서 곳곳에서 쏟아지는 흙먼지를 맞으며 조명까지 꺼지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회의 탁자 밑으로 몸을 숨겼던 왕징위 주석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주석님!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어디선가 벙커 책임관이 엉금엉금 바닥을 기어오며 말했다.

“당장 켜! 당장!”

“네, 지금 조치 중입니다.”

이렇게 진흙 같은 어둠 속에서 10여 분을 기다리자 비상 발전기가 작동했는지 하나둘 비상용 붉은 조명이 켜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황실의 각종 첨단장비는 켜지지 않았다.

마치 정육점 조명마냥 붉은 조명이 상황실을 보여주는 가운데 그제야 총참모부 여러 지휘관이 저마다 통신 수단을 통해 베이징과 다른 대도시 상황을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무선통신부터 유선통신까지 모든 통신 수단은 먹통이었다.

“어떻게 되었는지 어서들 보고해!”

어느 정도 진정이 됐는지 왕징위 주석은 의자에 앉고는 정신없는 지휘관들을 다그쳤다.

“주석님! 잠시만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현재 상황이 여의치 않아 연락하는 데 문제가 많습니다.”

“계속 기다리라 그 말밖에 못 하나?”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왕징위 주석에 말에 참담한 표정을 지은 궈징페이 작전현황장이 고개를 떨궜다.

“꼴도 보기 싫군. 난 주석실로 갈 테니 어느 정도 정리되면 바로 보고해!”

“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놈의 기다려! 기다려! 제길!”

눈을 한번 흘긴 왕징위 주석을 획 하니 몸을 돌리고는 붉은 조명 비친 상황실을 비서관들과 함께 빠져나갔다.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여기저기에서 지휘관들이 한숨을 내쉬며 하소연하듯 서로 간 잡담을 나누는 가운데 현재 총참모장에 이어 서열 2위인 궈징페이 작전현황장이 앞으로 나서고는 지시를 내렸다.

“당분간 외부와의 통신 연결은 어려울 듯하군요. 그러니 외부로 나가 상황을 파악해야겠습니다.”

궈징페이 작전현황장의 말에 총참모부 참모진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제가 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총참모부 내 정보부 소속의 다이샹위 소장이 손을 들고는 말했다.

“그래요. 다이샹위 소장이 밖으로 나가 상황파악하고 통신도 재개할 수 있도록 조치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현재 지상으로 연결된 모든 엘리베이터가 중지되어, 비상계단으로 걸어서 올라가야 합니다.”

벙커 책임관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에 궈징페이 작전현황장이 되물었다.

“비상용 엘리베이터도 말인가?”

“네, 비상 발전기가 돌아가긴 하나, 조명 쪽으로 모든 전원이 연결된 상태라······.”

“일부 조명을 끄고 전환한다면 엘리베이터 작동은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좋아! 그럼 상황실과 주석실 그리고 통로 외에는 모든 조명 소등하고 비상용 엘리베이터로 전원을 전환하게.”

“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벙커 책임관은 거수경례한 후 부하들과 함께 비상발전소가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잠시 후 지상으로 올라갈 준비를 마친 다이샹위 소장과 참모진들이 비상용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20여 명을 태운 비상용 엘리베이터는 충분한 전원공급이 안 되어 올라가는 속도는 현저니 느렸다. 몇 분 후 지상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신중국은 베이징에 여러 X급 벙커를 만들 당시 3년 전 있었던 한국과의 전쟁 경험을 토대로 비상시 탈출 용도로 만들어진 비상 엘리베이터의 모든 외부장벽을 초고강도 장갑판으로 만들어 웬만한 핵폭탄이 터져도 버틸 수 있게 만들었다.

비상용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다이샹위 소장 일행은 계단으로 이뤄진 통로를 이동한 후 철문 앞에 도착했고 자동개폐 장치가 고장 나 여러 명이 달라붙어 수동으로 철문을 개폐했다.

두께가 무려 1m에 달하는 초고강도 장갑판으로 만들어진 철문이 기이한 소리를 내려 좌우로 서서히 열렸다.

순간 붉은빛과 함께 엄청난 열기가 열린 철문 사이로 뿜어져 들어왔다. 이에 다들 외마디 비명과 함께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며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는 저마다 한마디씩 내던졌다.

“뭐, 뭐야 대체······.”

“여기가 어디야?”

“악! 뜨거워!”

그들에게 비친 바깥 광경은 한마디로 끔찍했다.

원래 철문과 지상은 같은 높이였으나 지금은 철문보다 5m나 낮은 높이로 지상은 꿈틀거리는 액체형 화염이 부글부글했고 가끔 곳곳에서 화염이 하늘 높이 분출했다. 쉽게 설명해 5m 높이에서 용광로를 바라보는 꼴이었다.

다이샹위 소장은 화끈거리는 열기에 더는 볼 수가 없었는지 위 옷으로 얼굴을 가리고는 다시금 비상용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동행한 부하 한 명이 낙심한 표정으로 물었다.

“뭘 어떻게 해? 다 끝났어!”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자네는 저걸 보고도 희망이 보이나?”

“그렇다면 이번 전쟁 역시 한국에 졌다는 말입니까?”

“전쟁에서 진 게 아니라 신중국은 망했다고 봐야겠지······.”

“아!”

“당분간은 외부로 나갈 수 없을 거 같으니 일단 벙커로 돌아가 보고를 해야겠군. 류예 상교!”

“네, 정보관장님!”

“자네는 일단, 외부와 통신 재계를 해보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나는 일단 내려가서 보고 하겠네. 자네도 통신 재계가 안 되면 1시간 후에 내려오도록 해!”

“알겠습니다. 그럼 먼저 내려가십시오.”

★ ★ ★

2024년 1월 07일 23:30,

남주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와대 국가위기상황센터 지하 벙커.

신중국에 대한 제2차 보복공격인 ‘평탄화 작전’ 상황을 상황실에서 지켜보던 추은희 대통령과 여러 국무위원은 화면에 펼쳐진 참혹한 광경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기존에 전략급 무기의 파괴력을 못 본 것은 아니었으나, 이렇게 대도시를 목표물로 사용한 것은 이번 정권에서는 처음이었기에 와 닿은 충격은 생각보다 큰 듯했다.

이에 아무 말 없이 정찰위성으로부터 송출된 화면만 묵묵히 보기만 했다.

우우우우웅~ 우우우우웅~

이렇듯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누군가의 폰에서 진동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방해될까 봐 급히 전화를 받은 사람은 강경희 장관이었다.

- 오 차관입니다.

“네, 무슨 일로?”

- 현재 미국과 EU 회원국으로부터 항의 전화가 빗발치고 있습니다.

“이번 신중국 공격 건 때문인가요?”

- 네, 그렇습니다. 장관님!

“음, 우리가 예상 못 한 것은 아니니 일단, 오 차관께서 기존 메뉴얼대로 대응해 주세요.”

-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강경희 장관은 작은 한숨을 쉬고는 대통령 옆으로 다가가 귓속말로 보고했다.

“생각보다 빨리도 왔군요.”

강경희 장관으로부터 항의 건에 관한 내용을 전달받은 대통령은 자신의 손목시계를 보면서 씁쓸한 미소를 보였다.

대통령이 생각하기에 미국이나 EU에서는 신중국에 대한 공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가 이때다 싶어 동시다발적으로 항의 전화를 했다고 생각이 들었다.

“네, 예상한 것보다는 빠른 듯합니다.”

“그래요. 어쨌든 간에 고려하고 한 일이니 잘 대응해야겠지요.”

“네, 대통령님, 그래서 저는 이만 외교부 청사로 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네, 그럼 이만 저는 물러가 보겠습니다.”

인사를 마친 강경희 장관이 급히 상황실을 빠져나가자 대통령은 합동참모본부에서 파견 온 이민기 대령에게 물었다.

“아직 피해 현황은 집계되지 않았습니까?”

“네, 아직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평탄화 작전’은 베이징과 톈진을 제외하면 나머지 대도시는 산업단지나 공장이 밀집한 곳에만 공격을 감행했다. 하지만, 대부분 산업단지나 공장지대가 도시 내에 있거나 밀접한 거리였기에 민간주거시설이나 민간인들이 피해를 보는 건 뻔한 일이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이민기 대령이 합동참모본부로부터 날아온 피해 현황 보고서를 받아보고는 바로 추은희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대통령님! 피해 현황 집계 보고서입니다.”

추은희 대통령은 조금은 긴장한 표정으로 보고서를 받아드렸다. 그리고 첫 장을 넘기고는 이내 아랫눈썹 근육이 파르르 떨렸다.

“이게 정말, 피해 현황 보고서인가요?”

“네, 정확한 집계는 하루 정도는 더 소요될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보시는 보고서는 예비집계 보고서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대략 80% 정도만 맞다고 생각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80%라도 너무 심각하군요. 사상자만 1,300만 명이라니요.”

추은희 대통령 입에서 나온 숫자는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한번 공격으로 군인도 아닌 민간인 사상자가 1,300만 명인 것은 전쟁 역사상 찾아볼 수 없는 엄청난 숫자였다.

“불가피한 일이었습니다.”

낙심한 추은희 대통령을 위안하고자 옆에서 비서실장이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이건······. 사상자 1,300만 명 중에 사망자가 950만 명! 저번에 보고한 예상 피해 현황보고서와는 너무나 다르지 않습니까?”

당시 예상한 피해 현황보고서에는 사상자가 대략 100만 명 정도로 집계했었다. 이에 추은희 대통령은 공격 전까지 최대한 30만 명 이내로 피해를 줄이라며 신중국 시민에 대한 적극적인 피난 경고방송과 홍보를 더욱 강화하라고 지시를 내렸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30만 명으로 생각했던 대통령의 바람과는 다르게 추정 사상자가 1,300만 명이 나오자 낙심을 넘어 충격에 빠지고 말았다.

★ ★ ★

2024년 1월 07일 23:50 (신중국시각 22:50),

신중국 베이징시 일대 X-15 벙커.

벙커로 다시 내려온 다이샹위 소장은 왕징위 주석을 비롯한 총참모부 지휘관 앞에서 보고하자 다들 큰 충격에 빠지고 말았다.

“그럼 나갈 수 없다는 말인가?”

왕징위 주석의 물음에 다이샹위 소장은 고개를 좌우로 절레거리며 말랬다.

“네, 당분간은 이곳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 같습니다. 주변 일대가 마치 용광로 같아서 지상으로는 이동할 수 없습니다.”

이에 궈징페이 작전현황장이 다시금 질문을 던졌다.

“그럼 헬기는 어떻겠나?”

“헬기 역시 낮은 고도로 호버링은 불가능할 거 같습니다. 뿜어져 오르는 열기도 열기지만 가끔 솟구치는 화염에 자칫 헬기가 위험할 수 있습니다.”

“허허, 그럼 완전히 이곳에 갇힌 꼴이지 않나?”

“일단 지상의 열기가 식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헬기든 뭐든 공중 전력으로 빠져나가는 방법밖엔 없을 거 같습니다.”

“그럼 외부와의 통신은 어떻게 되었나?”

“현재 정보부 기술자 몇 명이 남아 통신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깜깜하군. 깜깜해!”

두 장성의 대화에 왕징위 주석이 두 장성을 보며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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