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바이
2024년 1월 06일 02:00 (미국시각 5일 13:00),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웨스트윙 안보보좌관실).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 안보보좌관과 펜타곤에서 온 여러 군 지휘관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회의 중이었다.
현재 이들의 관심사는 신중국에 대한 한국군의 대규모 2차 보복공격을 실제 가할 것인가였다. 현재 공격 지점으로 지정한 신중국의 대도시에서는 피난 행렬이 줄을 잇고 있었다.
각종 언론매체와 매일 하늘에서 떨어지는 피난 경고 전단에 처음에는 콧방귀를 끼며 무시했으나 공격 날짜가 다가올수록 불안했던지 3일째부터는 피난 행렬이 이어졌다.
이와 관련하여 안보보좌관 쪽과 군 지휘관들의 의견은 갈라졌다.
백악관 안보보좌관 쪽에서는 한국군의 제2차 보복공격을 단순 엄포와 기만전술이라 판단했다.
근거는 이러했다. 한러간 전쟁 발발로 인해 세계 경제는 서서히 불황으로 빠져들고 있는 상황에서 신중국까지 참전하여 그 속도는 빨라졌다. 세계 시장으로 불리던 중국이 여러 국가로 쪼개지면서 시장규모가 작아졌다고는 하지만 신중국 역시 인구 5억이 넘는 무시 못 할 시장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군이 실제로 대규모 2차 보복공격을 감행한다면 세계 경제 불황은 오랜 기간 지속할 것으로 판단, 한국 정부 역시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는 거였다.
이러한 현실적 이유로 인해 신중국에 대한 제2차 보복공격은 단순 엄포이며 전쟁 양상을 자국에 유리하게끔 하기 위한 수단 및 꼼수에 불과하다는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펜타곤 미 합동참모본부의 생각은 달랐다. 국가 간 전쟁에 있어서 세계 경제 불황까지 걱정하며 전쟁을 치를 국가는 없다는 것이었고, 사상 최고의 경제성장률을 보이는 한국입장에서 보면 세계 경제가 불황으로 빠진다고 해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수준에 이미 다다랐다는 판단, 무엇보다 플라즈마 핵심기술을 빼돌려 이번 전쟁에 사용하여 큰 피해를 준 신중국에 대한 국민의 악감정이 최고조라는 점을 들어 제2차 보복공격은 예정대로 진행하리라 판단했다.
양측의 주장이 이렇게 첨예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한국이 보복공격을 할 것인지 안 할 것인지가 궁금한 게 아니야. 어느 쪽이 우리 미국에 유리한 상황인지가 궁금할 뿐이야.”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대답은 이렇듯 뻔했다. 자국의 이익, 다시금 세계 1강 올라가고자 하는 생각뿐이었다.
“대통령님! 우리가 러시아에 정찰위성을 지원한 것처럼, 신중국 역시 최대한 이번 전쟁에서 한국을 압박해야 합니다.”
안보보좌관실에서도 명석한 두뇌로 이름난 클린트 뎀프시 부보좌관이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상이 어쨌든 신중국에 대한 보복공격을 못 하도록 유럽 국가와 함께 한국에 압력을 가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EU 국가들이 동참하겠는가?”
파비안 존스 안보보좌관이 질문을 던지자 클린트 뎀프시 부보좌관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술술 대답을 이어갔다.
“EU 국가들의 경제 역시 신중국과도 밀접한 관계입니다. 만약 신중국이 한국군의 대규모 보복공격에 제기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타격을 입는다면 EU 국가들의 경제 또한 크게 흔들릴 것입니다. 우리 미국이 앞장서 EU와 손잡고 한국을 압력을 가한다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음, 그럴듯한 얘기군. 좋아! 이 부분은 국무부에서 회의가 끝나는 대로 EU에 연락하여 조율해보고 군사적으로 지원할 부분은 없을까?”
클린트 뎀프시 부보좌관의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특유의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엔 오스틴 베리 합참차장을 바라보며 의견을 구했다.
“러시아에 정찰위성을 지원한 것도 상당한 리스크를 안고 있는 상황에서 신중국에게까지 군사적 지원은 어렵다고 봅니다.”
오스틴 베리 합참의장은 딱 잘라 말했다.
“저 역시 군사적 지원 부분은 베리 합참의장과 같은 의견입니다.”
파비안 존스 안보보좌관이 합참의장에 말에 힘을 보탰다.
“음. 그렇군,”
트럼프 대통령은 다리를 꼬고 상체를 등받이에 밀착한 채로 한 손으로 턱을 매만지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3년 전, 세계 최대 강대국의 대통령임에도 불구하고 USSC라는 비선 실세 단체에 의해 꼭두각시 역할을 해오던 트럼프 대통령은 남과 북이 통일되고 급기야 한중전과 한일전 발발, 이에 잘못된 정책으로 일본을 편들어 미 본토까지 한국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사실상 항복을 위장한 평화협정을 맺은 트럼프 대통령은 상당한 정치적 위기에 빠질뻔했다.
하지만 그것은 외적으로 보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위기일 뿐, 내면을 깊이 들여다본다면 대통령에게 모든 권력을 집중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 미 상하원의회까지 마음대로 좌우 지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보유하고 있던 USSC 위원들이 한국 특수부대에 의해 지하 깊은 곳에 감금 아닌 감금된 사태는 결과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크나큰 혜택으로 돌아갔다고 볼 수 있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그동안 USSC로부터 지시를 받았던 정치인, 기업인 그리고 군 최고 지휘관들은 한마디로 목에 걸렸던 족쇄가 풀리자 트럼프 대통령을 중심으로 3년간 USSC와 관련된 일체의 모든 흔적을 지워나갔다.
현재 USSC와 관련된 정보를 가지고 있는 국가는 한국과 러시아가 유일했다. 즉 두 국가만이 미국이 감추고자 하는 최대 약점을 가지고 있으며, 이 약점을 통해 필요할 때마다 미국을 흔들 수 있다는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고 이에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국가적이든 개인적으로든 어떻게든 매듭을 짓고 넘어가야 할 과제 중 하나였다.
그러기 위해선 현재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한러전과 한중전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었고 저번 푸틴 대통령으로부터 USSC 건을 가지고 협박을 받았을 때 군사기밀 중 S급에 해당하는 아틀라스 정찰위성을 조건 없이 지원한 이유이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 정도는 언제든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현재 미국을 제치고 세계 1강 자리에 오른 한국은 눈엣가시일 정도로 상대하기 벅찬 수준에 이르렀다고 판단했다.
어떻게든 이번 기회에 한국의 국력을 최대한 소모하게 하여 다시금 미국이 제어할 수 있는 수준의 국가체계로 만드는 것만이 자국의 최대 약점을 무마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자세를 푼 트럼프 대통령은 좌우로 앉아있는 안보보좌관과 합참의장 등 주요 실세들을 두루 살피고는 소파 팔걸이를 툭 하니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의는 이 정도로 끝내고 안보보좌관은 즉시 국무부 장관과 함께 EU에 연락하여 협조를 구하도록 하게. 그리고 이쯤에서 일본을 써먹어야겠어!”
“일본을 말입니까?”
일본이란 말에 줄리언 그린 외교부 장관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한국 모르게 일본 총리와 핫라인을 연결할 수 있도록 하게. 현재 시점에서 일본을 통해 한국 내부를 흔들기엔 적격이라서 말이야.”
“알겠습니다. 바로 연결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절대 한국에서 눈치채지 못하게 해야 하네.”
“알겠습니다.”
★ ★ ★
2024년 1월 06일 16:00,
남주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와대 국가위기상황센터 지하 벙커.
회의실 중앙 스크린에는 신중국 전체를 보여주는 디지털 지도가 보였고 그 옆에는 신성용 합참의장이 서 있었다.
앞으로 23시간 후 신중국에 대한 제2차 무제한 보복공격인 작전명 ‘평탄화 작전’을 앞두고 최종적으로 대통령에게 브리핑하고 있었다.
“민간인 시설과 피해가 생각보다 커 보이는군요.”
이번 보복공격으로 신중국이 입을 피해현황 데이터를 살펴본 추은희 대통령의 표정은 매우 어두웠다.
1차 보복공격부터 2차 보복공격까지 모든 전권을 합참의장에게 전임했기에 반대는 안 했지만, 한 국가의 최고수장으로써 느끼는 부담감은 상당했다.
“대통령님께서 걱정하는바, 잘 알고 있으나 현재 우리나라의 국운을 걸고 치르고 있는 전쟁입니다. 불가피한 상황입니다. 대통령님!”
“그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추은희 대통령은 끝내 말끝을 흐리며 하던 말을 멈췄다. 지금 상황에서 이런 얘기를 한들 결과적으로 승인할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대통령님! 2차 보복공격을 하기 전까지 최대한 민간인 피해가 없도록 모든 조치를 단행하고 시작하겠습니다.”
“그래요. 꼭 그렇게 해주세요.”
당부 아닌 당부의 말을 전한 추은희 대통령은 씁쓸한 미소를 보였다. 국가 간 전쟁에서 적대국 민간인까지 걱정하는 자기 자신이 웃겨 보인다고 순간적으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신성용 합참의장이 원하는 대로 ‘평탄화 작전’ 승인을 받고 돌아간 후 얼마 되지 않아 국가위기상황센터 지하 벙커에 외교부 강경희 장관이 2차관과 함께 방문했다.
이로 인해 잠시 밖으로 나가 따듯한 햇볕이라도 쬐려고 생각했던 추은희 대통령은 잠시 뒤로 미루고 회의실에서 강경희 장관 일행과 미팅을 했다.
“죄송합니다. 미리 방문하겠다는 연락드리지 못하고 급히 오게 되었습니다.”
“비상시국에 그럴 수 있지요. 마음 쓰지 마세요. 그나저나 급한 용무인 거 같은데 바로 본론으로 가시지요.”
“네, 대통령님! 1시간 전, EU의 의장국인 라트비아 EU 의장과 미국 국무부 장관으로부터 이번 신중국에 대한 제2차 보복공격과 관련하여 항의 서한이 도착했습니다.”
* EU(유럽연합)의 이사회 의장국은 각 회원국이 정해진 순서에 따라 6개월씩 수임했고 현재 2024년 의장국은 라트비아였다.
뜬금없는 말에 추은희 대통령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항의 서한이라니요?”
“현재 세계 경제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신중국에 대한 2차 보복공격은 세계 경제가 완전히 불황으로 빠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보복공격을 멈춰 달하는 요구입니다.”
“그렇다고 타 국가 간 전쟁을 제3국에서 왈가불가할 순 없지 않습니까?”
황당한 표정에 이어 심기가 불편한 표정을 지은 추은희 대통령은 도저히 이해가 안 가지는 탁자까지 두드리며 말했다.
“저 역시 서한을 받은 후 즉시 EU 의장과 미 국무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정확한 의도를 확인했으나, 서한 내용과 마찬가지로 이들은 세계 경제를 위한 조치이며 만약 2차 보복공격을 감행한다면 우리 대한민국의 모든 수출품에 대해 제한 조치를 하겠다고 합니다.”
심각한 내용이었다. 현재 EU(유럽연합)와 미국은 한국에 있어서 순위 안에 드는 중요 수출국들이었다. 특히 전자제품과 반도체 그리고 선박이나 자동차 등 고부가 가치성의 제품들은 EU와 미국이 일이 위를 다투는 큰 시장이었다.
기존 중국이 10여 국가로 쪼개지면서 중저가 제품들은 새롭게 신흥 시장으로 떠오른 인도나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주요 수입국이었지만, 앞서 말했듯이 고가의 첨단 제품의 주요 수입국은 선진국으로 구성된 EU와 미국이었다. 고가 제품만으로 분류했을 경우 대략 40%에 달하는 수치였다.
무시할 수 없는 수치였다. 만약 EU와 미국이 모든 수출 제품에 대해 제한 조치를 했을 경우 상당한 타격은 입을뿐더러, 한국으로 들어오는 수입품 마저 제한한다면 현재 러시아 및 중국과 전쟁을 치르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전쟁 수행능력마저 떨어질 수 있었다.
쿵!
추은희 대통령은 회의 탁자를 후려치며 말했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그동안 가만히 있다가 하루 앞두고 이런 식으로 무례한 항의 서한을 보낸 이유가 궁금하군요. 특히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과거를 잊은 듯합니다.”
“저 역시! 타 국가의 전쟁을 세계 경제 운운하며 이런 식으로 항의 서한을 보내는 것은 외교사례에 있어서 결례라 봅니다.”
강경희 장관 역시 맞장구치듯 불쾌하게 느낌 감정을 그대로 말했다. 이에 추은희 대통령은 인터폰으로 정책실장과 경제수석을 호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강 장관님!”
“네, 대통령님!”
“서한에 대한 답변기일은 언제까지인가요?”
“답변기일은 없습니다. 즉, EU와 미국 국무부는 무조건 보복공격을 철회할 것으로 생각한 듯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자신들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족속들이군요. 나는 이번 보복공격을 철회할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답변기일도 없으니 일부러 우리의 결정을 알려줄 필요도 없군요. 안 그런가요?”
오기까지 발동한 추은희 대통령은 차분하면서도 화난 어조로 말했다.
“네. 맞습니다.”
이때 인터폰에서 정책실장과 경제수석이 도착했다는 비서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라고 하세요.”
문이 열리고 민준원 정책실장과 나상만 경제수석이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현재 상황을 전해 들은 정책실장과 경제수석의 얼굴은 그늘이 졌다.
두 사람의 표정을 살핀 추은희 대통령은 질문을 던졌다.
“만약 EU와 미국이 우리 제품에 대한 수입을 제한한다면 경제적으로 입을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 분석할 수 있겠습니까?”
“시간은 걸리겠지만, 대략적인 분석은 가능합니다.”
“좋습니다. 분석도 분석이지만, 그에 맞는 대책 방안도 함께 마련해 주세요. 가능하겠죠? 민 정책실장님!”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