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바이
2024년 1월 05일 09:30,
남주 서울특별시 용산구 국립중앙의료센터(VIP 병동 308호 특실).
가까스로 의식을 회복하고 전담 의사의 여러 질문에 대답하던 남궁원 과장은 출입문 앞에서 굵은 눈물을 흘리는 이혜진 과장을 보고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
“어! 자기 왔어?”
누운 채로 밝게 웃어주는 남궁원, 하지만 그의 두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바보! 왜 이제야 깨어난 거야?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눈물을 쏟아내며 달려온 이혜진 과장은 그대로 남궁원 과장을 끌어안았다.
“흑흑흑”
닭똥 같은 눈물이 뺨을 타고 환자복을 적혔다.
“울지마! 나 아무렇지도 않아! 멀쩡하단 말이야. 자기야!”
대성통곡하든 우는 이혜진 과장의 등을 두드리는 남궁원 과장의 두 눈에서도 고여있던 눈물이 쏟아졌다.
“아! 자식! 꼴값을 떨어요. 하하하”
남궁원이 깨어났다는 말에 환자복 차림으로 이혜진 과장을 따라온 이자성 과장이 출입문에 기대어 씩 하니 웃으며 말했다.
“어! 왔냐? 넌 언제 깨어난 거야?”
“깨어나긴 마! 난 너처럼 의식을 잃은 적이 없었거든? 너처럼 약골이 아니란 말이다. 하하하”
“정말? 뻥 치기는······.”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는지 이혜진 과장이 안았던 두 손을 풀고 침대 옆으로 물러서자 남궁원 과장은 이자성 과장을 보며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에 이자성 과장은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다가오며 계속해서 놀려댔다.
“후반기 집체교육도 안 받은 네가 뭘 알겠냐? 내 입만 아프지”
“그래 넌 약골이 아니라 좋겠다. 자식아! 그래도 한번 안아보자!
와락!
대화할 때는 장난투로 아웅다웅해도 두 과장은 서로를 힘있게 끌어안았다.
“원! 임마야! 깨어나서 기쁘다.”
“자식! 너도 안 다쳐서 정말 다행이다. 하하”
겉으로 보기엔 이혜진 과장보다 더 진하게 포옹한 두 과장은 서로의 등을 다독여 줬다.
죽음을 각오하고 터뜨린 폭탄으로 지하 수십 미터에서 갇혔던 두 사내는 사실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 돌아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벅차오르는 무언가에 이들의 포옹은 한동안 지속되었다.
“뭐야! 워! 대낮에 두 남자가 민망하게 뭐하는 겁니까? 하하하”
언제 왔는지 문 앞에는 대외정보1과 요원들이 환한 웃음을 보이며 서 있었다.
붉은 제비 부대와 함께 구출 작전에 참여했던 대외정보1과 요원들은 다행히 누구 하나 다치지 않고 무사히 하이싼 공장지대에서 퇴각했고 어젯밤 늦은 시각에 톈진에서 돌아왔다.
그리고는 이렇게 날이 밝자 대외정보1과 요원들은 누구 하나 할 거 없이 두 과장이 걱정되어 병문안을 오게 된 것이었다.
“저희도 왔습니다.”
남궁원 과장과 함께한 특수보안팀 요원 두 명도 얼굴을 빼쭉 내밀며 손을 흔들었다.
“어서와! 다들 수고 많았다.”
이자성 과장은 요원 한명 한명과 악수를 하며 따뜻한 포옹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박기웅 대리와 악수를 한 이자성 과장은 진심 어린 눈빛으로 고마움을 표했다.
“네가 고생 많았다. 국장님께 얘기는 들었다. 박 팀장!”
“고생이라니요. 당치않습니다. 과장님이었다면 더 빨리 구출시켰을 겁니다. 늦게 구출해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아니야. 나였더라도 자네만큼 그렇게 노력 못 했을 거야.”
이때 윤태진 팀장이 손뼉을 치며 엄숙해진 분위기를 띄웠다.
“자자! 얘기는 차쯤하고 파티해야죠. 파티! 뭐해? 어서 풀어!”
“네네”
윤태진 팀장의 말에 대외정보1과 요원들은 저마다 들고 온 각자지 음식과 과일을 대접용 탁자 위에 쏟아냈다.
“간단한 샴페인 정도는 괜찮겠죠?”
윤태진 팀장이 샴페인을 흔들며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전담 의사에게 물었다. 이에 전담 의사는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 임무 성공과 두 과장님의 무사 귀환을 자축하는 파티 시작!”
“와!”
이날 이들의 재회 파티는 VIP 특실 전체가 떠나갈 정도로 시끌벅적했고 오후에 추은희 대통령과 국정원장의 방문 때까지 이어졌다.
★ ★ ★
2024년 1월 05일 10:30, (신중국시각 09:30),
신중국 베이징시 일대 X-15 벙커(총참모장실).
전날 작전현황장으로부터 수립된 플라즈마 사용 관련 작전 안 문서를 살피던 위안샤오차오 총참모장은 턱을 괴고 있던 손을 풀며 기다란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뭔가 머릿속에서 여러 복잡한 생각이 맴돌아 고민에 빠진 듯했다.
현재 신중국군의 플라즈마 폭탄 4발은 전선으로부터 후방 100km 지점인 린펀 일대에서 대기 중인 제38집단군 소속의 제200전략포병여단에서 보유하고 있었다.
기존 작전 안대로라면 신속한 국경선 돌파 후 오선(진저우)를 걸쳐 동북 삼성의 요충지인 요동(선양)까지 종심돌파 작전으로 빠르게 점령할 예정이었다. 당연히 남아있던 플라즈마 폭탄 4발은 종심돌파를 막는 한국군에 가차 없이 사용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교전 초반 한국군의 무차별적인 보복공격에 종심돌파 작전을 수행하려던 여러 집단군이 큰 피해를 보면서 수립된 작전 안은 틀어지고 말았다. 이로 인해 국경선 일대에서 밀고 당기는 힘겨루기로 전환되자 제38집단군 소속의 제200전략포병여단 역시 현재 위치에서 위장한 상태로 무한 대기 중이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탁자 위에 작전 안 문서를 내려 논 위안샤오차오 총참모장은 뭔가 결심했다는 눈빛을 한차례 보이고는 개인 스마트폰을 들었다. 그리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날세!”
- 네, 총참모장님!
들려오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제200전략포병여단장인 왕칭 소장이었다. 위안샤오차오 총참모장의 먼 친척뻘이기도 한 왕칭 소장은 몇 안 되는 총참모장의 측근 중의 측근이라 볼 수 있었다.
“자네도 작전현황장으로부터 작전 안 문서를 받았겠지?”
- 네, 받았습니다.
현재 작전현황장이 수립한 작전 안은 왕징위 주석으로부터 정식으로 승인받아 모든 상급부대 지휘관에게 전달되어 내부적으로 공식 결정된 작전 안이었다.
“자네가 나 좀 도와줘야겠어!”
- 뭐든 말씀만 하시면 따르겠습니다.
“고맙군! 내 부관이 자네에게 다른 작전 안을 보내줄 거야. 그러니 작전현황장에게 받은 작전 안은 무시하고 내 작전 안을 따르게”
- 음, 비공식적인 것입니까?
“그렇다네. 이건 국방부장과 내가 추진하는 작전 안이네.”
- 네, 알겠습니다. 따르겠습니다.
“좋아! 자네 참모들 입단속 철저히 하고 실행하도록 해!”
- 하하, 그 부분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총참모장님
“다시 연락하지”
- 네, 기다리겠습니다.
통화를 마치고 스마트폰을 내려 논 위안샤오차오 총참모장은 곧바로 인터폰을 열고는 부관을 호출했다.
“네, 불으셨습니까?”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부관이 곧바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왕칭 소장에게 보내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 ★ ★
2024년 1월 05일 15:00 (쿠르디스탄시각 09:00),
쿠르디스탄 공화국 서아제르바이잔주 오로이 모하마드(제7기계화보병여단).
나히체반자치공화국과의 국경선으로부터 남단 15km 떨어진 이곳 오로이 모하마드 평지에는 러시아 남부를 진공 할 부대 중 하나인 제7기계화보병여단의 장갑차와 전차, 그리고 각종 차량이 보기 좋게 사열한 가운데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전날 휴센아바드에서 출발한 3기계화보병중대도 대대본부와 합류 후 새벽 4시쯤에 이곳에 도착해 정비 및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렇게 장병들이 휴식을 취하는 가운데 여단 본부 임시 막사에는 여단 참모와 각 예하부대 지휘관들이 소집되어 막 회의가 시작되었다.
“회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한마디 하겠다. 앞으로는 쿠르디스탄을 떠나 나히체반자치공화국을 걸쳐 아르메니아 그리고 아제르바이잔을 통과할 예정이네. 외교부에서 3개국을 설득하느라 고생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 만큼, 타국 영토 통과 시 안전사고 유의하길 바라며, 절대로 민간인과의 마찰이나 피해가 없도록 신경 써줬으면 한다. 이상!”
본격적인 회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당부성 멘트를 달린 여단장 민준원 준장은 말을 마치고는 옆에 앉아있는 작전 과장에게 고개를 끄떡임으로써 시작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이에 작전과장 오서균 대령은 자리에서 일어나고는 그대로 스크린 옆으로 섰다.
“그럼, 지금부터 7기계화보병여단의 1차 진공 목표인 다케스탄까지의 진공로 브리핑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설명과 동시에 스크린이 켜지며 디지털 지도가 화면 가득 보였다.
“앞서 말했지만, 우리 7여단의 1차 진공 목표는 이곳 다케스탄주입니다. 현재 위치에서 직선거리 288km로 기존 수립된 진공로 거리로 계산한다면 380km로입니다.”
오서균 대령의 설명에 마쳐 디지털 지도에 여러 전술기호부터 실제 진공로로 보이는 파란선이 도로를 따라 그어졌다. 어느 부분에서는 도로가 아닌 곳으로도 선이 그어졌다.
“금일 오후 1시를 기해 75기보대대를 선두로 79전차대대와 76기보대대 그리고 여단본부 및 직할부대 순으로 기동합니다. 최종 진공 목표인 다케스탄주 국경선까지는 내일 오후 10시 도착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그러기 위해선 기동 간 총 4번 정도만 휴식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강행군이 예상되니 출발 전 만만의 준비를 해주길 각 부대장은 신경 써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듯 오서균 대령의 상세한 브리핑은 30분간 더 이어진 후 끝이 났고 여러 지휘관으로부터 질문이 쇄도했다.
“내일 오후까지 기동을 마치려면 빠른 기동이 관건이라 생각됩니다. 나히체반자치공화국이나 아르메니아에서 기동 시 전방 정찰 임무는 필수입니까?”
75기계화보병대대 대대장 최은수 중령이 가장 먼저 손을 들어 질문했다.
“기동 간 전방 정찰은 아제르바이잔 진입 후 마지막 휴식 지점인 민게체비르 이후부터 시작해도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확인한 바로는 나히체반자치공화국이나 아르메니아, 그리고 아제르바이잔 남단에서 친러 성향의 민간군이나 러시아군의 움직임은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알겠습니다.”
“자 다른 질문자!”
“76기보대대 8기보중대장 이윤원입니다. 이번 회의와 조금은 외람된 질문이나 궁금해서 질문드립니다. 우리 여단의 최종 임무는 어디까지입니까?”
“이 부분은 내가 말하겠다.”
회의 시작 전, 당부의 말을 전하고 뒷자리에서 듣고 있던 여단장 민지원 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현재 우리 여단에 떨어진 공식적인 1차 임무는 다케스탄주의 완전 점령이다. 그리고 예상컨대 추후 2차 명령으로 칼미키야를 걸쳐 볼고그라드스카야까지 진공하여 점령 작전을 펼칠 수도 있다고 본다.”
“여단장님! 여단급 규모로 3개 주 전체를 점령한다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여단장의 말에 중대장 이윤원 대위가 부정적인 견해를 말했다.
“당연하다. 연단급 규모로 3개 주를 점령한다는 건 어불성설이지······. 하지만 우리 연단 말고도 러시아 남부 진공 부대는 35기보여단과 11해기여단이 있지 않나? 아마도 공조 작전 예상된다. 이해가 됐나?”
“네, 알겠습니다.”
아리주에서 치안유지 임무를 수행했던 제35기계화보병여단은 가장 먼저 기동에 들어가 이미 아르메니아로 진입하여 현재는 H-17 도로를 따라 아르마비르 서단을 통과 중이었고 지금은 완전히 쿠르디스탄 공화국의 영토가 되어버린 키르쿠크주에서 기동을 시작한 제11해병기동여단은 막 서아제르바이잔주의 코이 서단을 통과 중이었다. 지역적으로 아래 지방에서 출발해 기동 거리가 멀었지만, 기동여단인 만큼 신속하고 빠르게 북진 중이었다.
이렇듯 쿠르디스탄 공화국의 독립을 위해 파병했던 피스부대의 3개 여단마저 본격적인 러시아 남부 진공에 들어감으로써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내전 지역인 도네츠크주와 루한스카주 그리고 크림자치 공화국으로 불리는 크림반도에 이어 러시아 남부 전체로 전선이 확대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동안 한국 국경선과 접한 북서단 전선에 모든 전력을 투입한 상황이었기에 계속되는 전선 확대는 러시아로써는 악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