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바이
2024년 1월 04일 10:30 (신중국시각 09:30),
신중국 베이징시 일대 X-15 벙커(작전회의실).
왕징위 주석으로부터 플라즈마 폭탄을 모두 사용하라는 지시를 받은 후 새벽 내내 고민한 위안샤오차오 총참모장은 급기야 모든 참모진을 소집하고는 현재 보유 중인 3발의 플라즈마 폭탄을 언제 어디서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 회의를 진행했다.
“총참모장님! 고작 4개밖에 남지 않은 플라즈마 폭탄을 모두 사용한다는 건 향후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전장 상황을 고려했을 때 있어서 섣부른 판단입니다.”
총참모부 중에서도 나름 강직한 성격의 소유자인 가오웨이광 총참기획장이 앞장서서 반대 의사를 내비쳤다. 이에 위안샤오차오 총참모장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그걸 누가 모르나? 하지만 주석님의 명령이지 않나?”
“명령도 명령 나름입니다. 이번 전쟁을 우리 총참모부에 전적으로 맡기셨으면 저희가 수립한 작전 안대로 가야지 않겠습니까?”
굳히지 않은 가오웨이광 총참기획장의 말에 위안샤오차오 총참모장의 눈썹이 미미하게 떨렸다. 총참기획장의 말이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현재 한국군은 사흘 후 여러 대도시에 대규모 공격을 감행할 것이라며 엄포를 한 상태입니다만, 결코 한국군은 실제로 실행에 옮기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에 우리가 먼저 전략급 무기를 사용한다면 한국군은 보복 차원에서라도 대도시에 대한 대규모 공격을 가할 것입니다. 총참모장님! 진심으로 말씀드립니다. 우리 플라즈마 폭탄은 한국군의 전략급 무기 사용에 대한 억제력으로 사용해야만 합니다.”
계속되는 가오웨이광 총참기획장의 주장에 위안샤오차오 총참모장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으나 부정할 수 없는지 긴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말했다.
“나 역시 자네의 말에 진심 동감하네. 하지만 어쩔 수 없네.”
“총참모장님! 진정한 군인이라면 잘못된 명령은 거부해야만 합니다.”
가오웨이광 총참기획장은 강직한 성격답게 물러서지 않고 더욱 힘주어 말했다. 이에 위안샤오차오 총참모장은 답답했던지 고개를 절레거리며 푸념을 털어놨다.
“휴! 그럼 자네가 직접 가서 주적님께 말해보게나”
답답한 마음에 위안샤오차오 총참모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제가 직접 말씀드리겠습니다.”
위안샤오차오 총참모장의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인 가오웨이광 총참기획장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이에 깜짝 놀란 총참모장이 손을 뻗으며 말렸다.
“자네? 정말 주석님께 가려고 하는 건인가? 그만두게.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고 그냥 명령에 따르세.”
“총참모장님!”
어정쩡한 자세로 멈춘 가오웨이광 총참기획장이 다시금 힘있게 말했다.
“어허! 자네 정말 왜 그런가? 당장 앉게!”
질책 아닌 질책성 언사에 가오웨이광 총참기획장은 더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힘없이 자리에 앉았다. 이에 위안샤오차오 총참모장은 기다란 탁자 양쪽으로 앉아있는 참모진들을 쓱 하니 둘러보며 말했다.
“혹, 총참기획장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있는가?”
총참모장의 질문에 참모진 누구 하나 손을 들거나 의사를 밝히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왕징위 주석의 명령을 수긍하는 듯했다.
“총참기획장! 다른 참모들은 모두 찬성하는 듯하군. 그러니 자네도 그만 단념하고 우리 총참모부가 한길로 갈 수 있도록 동참하게.”
가오웨이광 총참기획장은 고개를 살짝 숙임으로써 대답을 대신했다.
“좋아! 이번 플라즈마 폭탄 사용에 대한 계획안은 작전현황장이 맡도록 하게.”
반대 의사를 내비친 총참기획장을 대신해 궈징페이 작전현황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네, 알겠습니다.”
“주석님께서는 최대한 빨리 진행하라고 하니 금일 17시까지 계획안을 수립하고 보고하게나”
“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 ★ ★
2024년 1월 04일 14:30 (신중국시각 13:30),
신중국 베이징시 일대 X-15 벙커(작전회의실).
점심을 마치고 휴식 겸 밀렸던 서류를 검토하기 위해 자신의 집무실에 업무를 보던 위안샤오차오 총참모장은 개인 스마트폰으로 걸려 온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장예흥이네.
“국방부장님! 대체 어디에 계신 겁니까?”
3일 전, 참모진들이 모여있는 상황실에서 왕징위 주석으로부터 심한 모욕을 당하고 사라진 후 3일 만에 전화로 연락 온 장예흥 국방부장이었다.
- 그건 자네가 신경 쓸 필요는 없고 금일 주석으로부터 플라즈마 폭탄을 모두 사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들었네.
“네, 그렇습니다. 그것과 관련하여 국방부장님과 상의하려고 했으나 연락이 안 돼서 답답해하고 있었습니다.”
- 미안하군.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네.
“정말 어디에 계신 겁니까?”
- 차차 알려주겠네. 그것보다 정말 플라즈마 폭탄 모두를 이번에 사용할 것인가?
“음,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주석님의 명령이니······.”
위안샤오차오 총참모장 역시 적절한 명령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말끝을 흐렸다.
- 총참모장! 자네는 주석이 현재 정상이라고 생각하나?
뜬금없는 질문에 위안샤오차오 총참모장은 살짝 놀라며 되물었다.
“대체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 말 그대로네. 현재 한국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매일 술만 마시는 주석이 정상이냐고 묻는 거네.
“그, 그건 정상적이지 않다고 생각은 하지만, 스트레스 때문에 술 마시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 스트레스? 누군 스트레스를 안 받나? 주석이란 자리는 한 국가의 최고 수장이 아닌가? 수장이 전쟁 중에 술만 마시고 횡설수설한다는 건 신중국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네. 내 말이 틀렸나?
위안샤오차오 총참모장은 잠시 침묵을 이어가다가 입을 열었다.
“음, 국방부장님의 말에 동감합니다.”
위안샤오차오 총참모장 역시 요 며칠 왕징위 주석의 행동에 상당한 불만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군인 신분으로서 자신의 직무를 충실히 이행하고자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이군, 총참모장!
“네, 말씀하십시오.”
장예흥 국방부장은 한층 목소리를 깔고는 조용히 말했다.
- 자네에게 어려운 부탁을 해야겠어.
“네? 무슨 부탁이신지요?”
- 그것이 말이야······.
드디어 전화를 건 목적에 대해서 입을 연 장예흥 국방장관, 이들의 통화는 30분간 더 이어졌다.
★ ★ ★
2024년 1월 05일 02:00 (쿠르디스탄시각 4일 20:00),
쿠르디스탄 공화국 서아제르바이잔주 휴센아바드 외곽.
어둠이 짙게 깔린 휴센아바드 북단 외곽에는 십여 대의 장갑차들이 라이트마저 끈 채로 흙먼지를 뿌리고 있었다. 이들은 한동안 휴센아바드에서 치안유지 임무를 맡았던 3기계화보병중대로 전날 상급부대로부터 하달된 부대 이동 명령에 따라 하루 동안 이동준비를 마치고 대대본부와 합류하기 위해 기동하는 중이었다.
쿠르르르응! 쿠르르르릉!
거친 엔진음을 내며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빠르게 기동하자 C-23P-M 현무 기동전투장갑차에 탑승한 하차조 보병들은 죽을 맛이었다.
“우엑!”
312호 장갑차 하차조 보병 중에 막내인 윤호진 이병이 멀미 때문인지 계속해서 헛구역질했다.
“마! 이제 적응할 때도 되지 않았냐?” 잠재적
옆에 앉은 나한진 상병이 등을 두드려주며 쓴소리를 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차만 타면 멀미하는 체질이라······. 죄송합니다.”
“자식이 빠져서리! 멀미약 안 먹었어?”
“탑승하기 전에 먹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러냐?”
“죄송합니다.”
“야마! 너도 이병 때엔 장갑차만 타면 멀미 때문에 죽으려고 했던 놈이 후임 갈구기는 크크크, 안 그렇습니까? 김 병장님?”
나한진 상병과 동기인 곽영환 상병이 놀리듯 말하며 옆에 앉아있는 김성호 병장에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김성호 병장은 아무 말 없이 멍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었다.
“잉? 김 병장님! 먼 생각을 그리 하십니까?”
어깨로 툭툭 건드렸는데도 김성호 병장은 반응하지 않았다. 이에 손까지 뻗어 얼굴 앞에서 흔들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김성호 병장이 순간적으로 인상을 쓰며 손을 뿌리쳤다.
“뭐야 마!”
“아! 불러도 대답이 없으니 그러지 말입니다. 대체 뭔 생각을 그리 하시는 겁니까?”
“신경 꺼라 맘이 아프다.”
김성호 병장은 세상만사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팔짱을 끼고는 고개를 숙였다.
“아! 알았다.”
그제야 뭔가를 눈치챈 곽영환 상병이 손가락을 튀기고는 김성호 병장에게 몸을 바짝 밀착시키고는 조용히 말했다.
“아까 점심때 못 만났습니까? 만나러 나간 거로 아는데 말입니다.”
“신경 끄라 했다.”
“아! 후임은 걱정돼서 하는 말인데 너무 하십니다.”
“이럴 때 그냥 있는 게 나 도와주는 거다. 임마야!”
“그러지 마시고 얘기 좀 해주시지 말입니다. 작별 인사는 잘하셨습니까?”
부대 이동준비로 인해 점심시간에 소대장의 허락하에 잠시 외출한 김성호 병장은 로사린을 만나 작별 인사를 나눴다.
언어 장벽으로 인해 깊은 대화는 할 수는 없었으나, 영어와 보디랭귀지를 적절히 사용해 말하고자 하는 의미는 전달은 할 수 있었다.
그런 식으로 30분 동안 길지 않은 얘기를 나누고 부대로 복귀한 김성호 병장은 제대할 때까지 로사린을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매우 침울해 있었던 이유였다.
“아 이 자식! 기분도 안 좋은데 자꾸 말 걸래?”
“윽! 알겠습니다. 걱정돼서 물어본 건데······.”
곽영환 상병은 마치 레이저 쏘듯 째려보는 김성호 병장의 시선을 피하며 입을 삐죽거렸다. 이에 김성호 병장은 너무했느냐는 생각이 들자 다른 사람들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말했다.
“제대하면 바로 이곳으로 오겠다고 했다.”
“오! 정말입니까?”
“그랫 마!”
“그럼 로사린은 뭐라고 말했습니까?”
“기다린단다.”
“와우! 이거 국제커플 탄생이 아닙니까? 하하”
“야 조용히 말해!”
“크크,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마음이 더 안 좋다.”
“왜 말입니까?”
“몰라! 왜 그러는지!”
“김 병장님! 힘내십시오. 제대까지 앞으로 5개월이지 않습니까? 금방 갈 겁니다.”
곽영환 상병이 주먹을 불끈 쥐며 응원을 보냈다.
“아직도 5개월이나 남았냐?”
알 수 없는 답답함에 기분이 내려앉았던 김성호 병장은 조금은 풀렸는지 미소를 보이며 곽경환 상병의 헬멧을 가볍게 툭 하니 치며 농담을 던졌다.
“아! 1년 남은 저보단 좋지 않습니까?”
“상병 나부랭탱이 주제에 어디서 개월 수를 따져 마!”
언제부터 듣고 있었는지 맞은편에 앉아있던 분대장 홍한호 병장이 낄낄대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홍한호 병장은 원래 이번 달이 제대예정이었다. 하지만, 파병 및 전시체제 전환으로 인해 제대는 무기한 연기가 된 상태였다.
“아흑! 죄송합니다. 분대장님!”
★ ★ ★
2024년 1월 05일 09:00,
남주 서울특별시 용산구 국립중앙의료센터(VIP 병동 305호 특실).
4일 만에 구조되어 금일 새벽 다섯 시쯤에 이곳 국립중앙의료센터로 옮겨진 남궁원과 이자성은 곧바로 건강 이상 유무 확인을 위해 정밀검사에 들어갔다.
2시간에 걸쳐 총 300가지의 각종 정밀검사를 받은 두 과장은 다행히도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검사 결과가 나오자 VIP 특실로 옮겨져 안정을 취하게 했다.
이자성 과장 같은 경우 구조 당시에도 의식이 있어서 VIP 특실로 옮겨진 후 면회가 허용되었지만, 남궁원 과장은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않아 면회가 불가능했다.
전날 새벽부터 이곳 국립중앙의료센터에 내내 기다리던 이혜진 과장은 금일 아침 부로 이자성 과장의 면회가 허락되자 가장 먼저 방문했다.
“어때요? 몸은?”
“아! 괜찮습니다. 제가 원래부터 튼튼해서요. 하하”
이자성 과장은 조금은 어색한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마음 한편으로 이혜진 과장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다행이네요. 어서 쾌차하세요.”
“죄송합니다. 원이는 아직도 의식이 없는데 저만 이렇게······.”
이자성 과장은 뒷머리를 쓸어내리며 미안함 마음을 표현했다.
“아니에요. 그런 말 하지 마세요. 한 명이라도 이렇게 건강하면 다행인 거잖아요.”
“그래도 반대였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파묻힌 지 이틀이 지났을 때인가? 원이가 의식을 잃기 전, 이 과장님과 함께했던 여러 얘기를 많이 해줬어요.”
이자성 과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서 상세하게 얘기해줬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 때쯤 간호사 한 명이 문을 열고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남궁원 환자분 의식이 돌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