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루기
2024년 1월 2일 01:00 (러시아시각 00:00),
내몽골자지주 후룬베이얼 북서단 상공.
거리 77km, 고도 8km 상공, 블랙문 편대의 레이더에는 크고 작은 항공기 100여 기가 뚜렷이 탐지되었다.
합동참모본부와 공군 작전사령부, 그리고 항공우주군 작전사령부는 사전에 각종 정찰전력으로 이들의 정체는 탐지했었으나, 백중지세로 공중전이 펼쳐지면서 수립된 작전 안이 틀어질 수밖에 없었다.
기존 작전 안대로라면 러시아에서 출격한 전술폭격기와 전략폭격기, 그리고 공수를 위해 비행하는 각종 군 수송기는 우주전투비행단에서 담당하기로 했다. 하지만, 공중전이 예상외로 흘러가자, 전술폭격기와 전략폭격기를 요격한 삼족오 우주 전투기들은 군 수송기를 뒤로하고 급히 공중전에 합류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합동참모본부는 러시아 수송기들이 공수침투로 예상되는 후룬베이얼로부터 100km까지 접근하자 더는 미룰 수 없다는 판단하에 공군 작전사령부에 명령을 내렸고 이에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교전하던 비행대대에 명령이 하달됐다.
- 여기는 블랙문 투! 컨택 원! 밴딧이 너무 많은 듯합니다. 죄다 최신기종인데요?
블랙문 부편대장이 호위기로 보이는 적기의 수를 확인하고는 염려되는 목소리로 통신망을 통해 보내왔다.
“여기는 블랙문 원! 컨택 블랙문 편대! 쫄 거 없어! 우리가 근거리까지 도달했는데도 러시아 호위기로부터 공격받지 않았다는 건, 탐지되지 않고 있다는 거야. 그러니 다들 정신 차리고 하던 대로 하자!”
- 여기는 블랙문 투! 그렇긴 합니다만, 적기 수도 수지만 우리 무장상태가······.
“우리만 있는 거 아니잖아? 잠시 후면 다른 편대에서도 지원 올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말자고. 다들 오케이?
- 블랙문 투! 라져 뎃!
- 블랙문 쓰리! 라져 뎃!
- 블랙문 포! 라져 뎃!
오길성 소령 말대로 군 수송기를 호위하는 러시아 최신예 전투기들은 50km 안까지 진입했는데도 불구하고 블랙문 편대의 정체를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미국의 아틀라스 정찰위성으로부터 레이더 탐지정보를 데이터링크를 받는다고 해도 한계가 있었다. 현재 반경 200km 안에는 900여 기에 달하는 각종 항공기가 엉키고 설킨 상태로 교전 중이었다. 또한, 대한민국 전투기들을 100% 탐지하지도 못하는 상황이었기에 현재 군 수송기를 향해 달려들고 있는 블랙문 편대를 놓치고 있었다.
“블랙문 원! 컨택 블랙문 투! 쓰리! 에프너 버너 온! 버스터! 앤 밴딧 어텍킹! 컨택 블랙문 쓰리! 인게이지 오펜스”
- 여기는 블랙문 투! 괜찮겠습니까?
오길성 소령의 명령에 부편대장이 걱정되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블랙문 원! 컨택 블랙문 투! 뎃 올라잇!”
- 블랙문 투! 라져 뎃!
괜찮다는 대답에 블랙문 투와 포 전투기는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애프터 버너를 작동했다. 순간적으로 튀어나가듯 2기의 주작 전투기는 수초 만에 속도를 마하 7까지 끌어올렸고 이러한 속도 덕분에 호위기의 대열을 뚫고 군 수송기 코앞까지 도달했다.
갑자기 출현한 대한민국 전투기에 당황했는지 가장 앞서가던 IL-476 일류신 수송기는 오른쪽으로 크게 선회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대이륙중량이 195톤에 달하는 육중한 기체가 주작 전투기의 가시거리를 벗어나는 건 불가능한 일, 아마도 수송기 조종사는 통신망이 터져라. 호위기를 찾고 있음이 자명했다.
쭈웅쭈웅쭈웅쭈웅쭈웅~
블랙문 포 주작 전투기에서 쏟아지는 붉은 빛줄기가 IL-476 일류신 수송기의 동체 측면을 훑고 지나갔다. 하지만 대형 수송기답게 한차례 레이저 빔 공격으론 격추할 수 없었다.
시꺼먼 연기가 곳곳에서 뿜어져 나왔지만, IL-476 일류신 수송기는 계속해서 한쪽으로 선회하며 벗어나려 애썼다. 이때 다른 표적을 요격하던 부편대장으로부터 통신이 날아왔다.
- 여기는 블랙문 투! 컨택 포! 밴딧 조종실이나 엔진을 노려!
- 블랙문 포! 라져 뎃!
부편대장으로부터 조언을 들은 윙맨 박민태 중위는 조종간을 최대한 당겨 급선회한 후 다시금 IL-476 일류신 수송기 왼쪽 엔진을 향해 레이저 빔을 뿌렸다.
쭈웅쭈웅쭈웅쭈웅쭈웅~ 쭈웅쭈웅쭈웅쭈웅쭈웅~
두 번의 가벼운 방아쇠 당김에 빛 속도로 뻗어 나간 붉은 빛줄기는 그대로 좌측 엔진 두 개에 꽂혔다.
콰앙! 콰콰앙!
왼쪽 엔진 두 개가 동시에 폭발하고는 붉은 화염을 뿜었다. 이에 IL-476 일류신 수송기는 중심을 잃고는 왼쪽으로 급격히 기울어지며 고도가 떨어졌다.
이렇게 자체 추력을 잃고 추락하듯 빠르게 고도를 떨어뜨리는 IL-476 일류신 수송기를 뒤로하고 블랙문 포, 박민태 중위는 또 다른 수송기를 향해 자신의 애마 속도를 높였다.
★ ★ ★
2024년 1월 2일 01:10,
남주 서울특별시 용산구 B2 벙커(국군 합동지휘통제소 상황실).
시종일관 긴장감이 감도는 합동지휘통제소의 상황실. 오퍼레이터들의 각종 보고 소리 외에는 다들 입을 굳게 다물고 지켜보기만 했다.
그만큼 현재 상황이 생각 이상으로 심각하다는 단적인 예였다.
“공작사로부터 보고입니다. 현재 제38전비단 110전비대 소속 전투기들이 국경선 넘어 영공 내로 진입한 적 수송기를 공격 중이라는 보고입니다.”
여럿 보고 중 신성용 합참의장의 표정을 밝게 만드는 보고였다.
“화면으로 확인할 수 있겠나?”
합참의장의 말에 상황실장 남태권 소장이 곧바로 대답했다.
“확인하겠습니다.”
잠시 후 오퍼레이터와 얘기를 주고받은 상황실장 남태권 소장이 고개를 돌려 큰 소리로 말했다.
“잠시 후 5번 스크린을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알았네. 고맙네.”
일분 정도가 지나고 5분 스크린 화면이 바뀌고는 아폴론 정찰위성에서 찍은 영상 화면이 나타나자 일제히 작은 함성이 울렸다.
스크린 화면에 가득히 보이는 러시아 수송기들이 저마다 날개에 장착한 엔진에서 붉은 화염을 뿜으며 지상으로 추락했고 멀쩡한 수송기들 역시 고기동으로 비행하며 레이저 빛줄기를 뿌리는 주작 전투기에 의해 하나둘 엔진에 불이 붙은 채로 추락했다.
이런 장면이 보이자 마치 전쟁영화를 보듯 입을 벌린 채로 감상에 젖었다.
“수송기는 몇 대 정도 남았다고 하던가?”
“현재까지 격추한 수송기는 총 44기입니다. 적 호위기의 방해로 시간이 지체되었다고 합니다.”
“음, 그렇겠지, 현재 무장상태가 12mm 레이저 벌컨 뿐이니. 더군다나 호위기의 방해니······.”
“걱정하디 마시라요. 조금 더 우리 영공 쪽으로 진입하면 지상군 대공 부대에서 확실히 처리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만에 하나 러시아가 공수침투를 일찍 하면 어쩌나 생각돼서 말입니다.”
“이거이, 이거이. 합참의장동지께서 걱정이 많이 느셨구만기래.”
“정규군도 아니고 특작군이 도심도 아니고 한창 살벌하게 교전이 벌어지고 있는 전장에 떨어져서 뭐 하겠습네까? 총알받이나 더 되겠습네가? 아니디. 빔받이라고 해야하니?”
윤기윤 합참차장이 반 농담섞인 말을 하자 옆에서 팔짱을 끼고 5번 스크린을 주시하고 있던 김용현 합참차장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래도 러시아 스페츠나츠는 쉽게 볼 놈들이 아닙니다.”
“내래 알디요. 스체츠나츠인가 스페츠나츠인가 하는 놈들 실력을 말이디요. 어쨌든 후방교란이니 뭐니 하는 짓은 절대 못 할 겁니다.”
“저도 그랬으면 좋겠군요.”
깊게 파여있던 주름을 어느새 푼 신성용 합참의장이 조용히 혼잣말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몇 시간 후, 후룬베이얼에 공수로 침투하려 했던 스페츠나츠와 공수군은 대부분 상공에서 수송기와 함께 산화하는 신세가 되었다. 일부 수송기에서 비상탈출하듯 공수 투입을 했지만, 운이 없게도 이들이 공수로 투입된 장소는 양 국가가 치열하게 교전을 벌이던 중간지점이었다. 이로 인해 이들은 지상에 도착하기도 전에 각종 대공포에 공격을 받았고 지상에 도착한 스페츠나츠나 공수군들 역시 소나기 떨어지듯 쏟아지는 폭탄에 대부분 사망하고 말았다.
후방지역 교란을 목적으로 대규모 투입된 스페츠나츠와 공수군은 작전 한번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전력에서 제외되고 말았다. 더욱이 5할에 가까운 군 수송기를 잃은 러시아군으로서는 향후 전쟁 물자 수송에 크나큰 차질을 맞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피해는 새 발의 피였다. 이번 대규모 공중전으로 러시아는 6할에 가까운 약 482기가 격추되어 이제 남은 공군전력으로는 기껏해야 모스크바와 동유럽 영공을 지킬 정도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부족하다고 봐야 했다. 미국의 아틀라스 정찰위성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매우 심각한 손실이었다.
결과적으로 러시아는 더는 한러전에 있어서 공군전력을 투사할 여력이 없게 된 셈이었다.
또한, 신중국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이번에 출격한 신중국 공군의 각종 전투기는 450기, 이중 살아남아 복귀한 전투기는 고작 12기였다. 그것도 초반 교전 당시 지휘관 전투기가 요격을 당하자 겁에 질려 그대로 내뺐기 때문에 살아 돌아갈 수 있었다.
양국 합쳐 1,000기에 달하는 엄청난 대규모 공군전력에 맞선 대한민국 공군 역시 제1차 동북아 전쟁을 포함해 가장 큰 피해를 본 공중전으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격추된 아군 전투기는 총 142기로 조종사 전사자는 32명, 실종자 11명, 나머지 99명은 지상군이 구출하여 기지로 귀환할 수 있었다.
러시아와 신중국 양국의 피해 현황과 비교하자면 대략 10대 1.4 비율로 매우 적은 손실이었고 격추된 대부분의 기종 역시 대부분이 F-15k 슬램이글과 CF-35A 라이트닝, 그리고 CF-16Z 파이팅 팰콘 등 로우급으로 분류된 기종들이었다. 하지만 합동참모본부와 공군 작전사령부는 심각한 상황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러시아와 신중국 공군전력이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보았지만, 대한민국 공군 역시 앞으로 마음 놓고 적 영공에서 작전을 전개하기가 힘들어졌다. 그 이유는 그동안 무적으로 알고 있었던 스텔스 성능이 무력화되어 레이더에 탐지되었다는 이유였다.
같은 문제로 북서부전선 일대에서 대규모로 전개 중인 러시아군의 진공도 더는 막기가 힘들어졌다. 수적 불리함을 공군전력의 폭격 지원으로 막아냈으나 더는 공군전력을 투입하지 못한다면 밀릴 수도 있다는 판단이었다.
이에 날을 꼬박 새우고 공중전을 지켜보던 합동참모본부 지휘관과 참모들은 잠도 못 자고 대책 방안 수립에 들어갔고 오후 1시가 되어서야 1차 대책 방안이 수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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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02일 13:30, (미국시각 00:30),
미국 버지니아주 엘링턴 펜타곤(합동참모본부 대회의실).
전쟁 당사국이 아니면서도 이번 제2차 동북아 전쟁을 가장 큰 관심을 두고 지켜보던 트럼프 대통령과 국방성 관계자들은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이번 결과에 대해서 매우 흡족한 분위기였다.
첫 번째는 아틀라스 정찰위성의 레이더 성능이 생각 이상으로 탁월했고 두 번째로는 한국 공군전력의 큰 손실이었다. 세 번째는 러시아나 신중국 역시 잠재적으로 미국과의 경쟁국으로서 군사적 큰 타격을 입었다는 이유였다.
미국이 생각했을 때 가장 원하던 결과이기도 했다.
장시간 전쟁 상황을 실시간으로 지켜본 트럼프 대통령과 국방성 지휘관들은 늦은 시간 다시금 합동참모본부 대회의실에 모여 향후 2차 동북아 전쟁 양상에 대해 회의를 했다.
미국이 다시금 세계 1강 자리에 올라서기 위해서는 이번 제2차 동북아 전쟁 결과가 중요했다. 미국이 원하는 데로 결과가 나오긴 위해선 전쟁 양상을 정확히 예상하고 그에 적절한 조치를 해야만 했다.
사실 군사기밀 S급에 해당하는 아틀라스 정찰위성을 러시아군에 지원한 이유가 USSC 건을 가지고 협박한 푸틴 대통령의 요구를 들어준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내면을 들여다보자면 이번 3개국이 관여된 2차 동북아 전쟁에 있어서 승자는 없고 패자만 있는 전쟁결과를 만들기 위한 미국의 숨은 의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