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루기
2024년 1월 01일 23:50 (신중국시각 22:50),
신중국 톈진시 베이천구 공업단지 15구역 외곽.
팀원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안가에서 나와 다시금 이곳 15구역에 온 박기웅 팀장, 평범한 옷차림에 등에는 CRB-330 장비가 들어있는 배낭을 메고 있었다.
어둠을 틈타 근처까지 도달한 박기웅 팀장은 몸을 숙이고 전방을 살폈다.
“제길, 실드글라스라도 가지고 올걸,”
안가에 보호슈트는 물론 실드글라스 와 각종 첨단장비를 죄다 벗고 맨몸으로 나온 박기웅 팀장은 살짝 후회했다.
어쩔 수 없이 맨눈으로 확인해야만 했다. 어둠이 짙게 깔리고 설상가상 황사마저 심해 20m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가끔 비치는 서치라이트를 통해 어설프게나마 전방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문제는 오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높이가 3m에 달하는 펜스가 처져 있었고 20m 간격으로 중무장한 군인 여러 명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그리고 시시때때로 펜스를 따라 장갑차들이 돌아가며 순찰을 했다.
이에 박기웅 팀장은 처음엔 주변 높은 건물 위로 올라가 CRB-330 장비로 스캔해보려 했으나, 짙은 황사와 거리상 문제로 제대로 스캔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 마음을 고쳐먹고 안으로 뚫고 들어가기로 했다.
문제는 3m 높이의 펜스와 중무장한 무장 군인들, 맨몸이다시피 한 박기웅 팀장으로서는 뚫고 들어가기가 녹록지 않았다.
일단, 중무장한 군인들의 간격이 넓어 보이는 펜스 쪽으로 일단 접근하기로 마음을 먹은 박기웅 팀장은 차디찬 바닥에 엎드려 포복으로 조금씩 앞으로 나갔다.
큰 배낭까지 메고 포복하려니 신속하게 움직이지 못했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양쪽 군인들의 눈을 피해서 펜스까지 10m를 남긴 상태에서 갑자기 지면이 울리며 진동이 느껴졌다.
이에 본능적으로 진동이 전해지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차륜형 장갑차가 라이트를 켜고 달려오고 있었다.
쿠르르르릉!
라이트가 비치는 범위는 아니었지만, 금방 다가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발각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이에 박기웅 팀장은 급히 배낭을 벗어 펜스 쪽으로 던지고는 최대한 빠른 포복으로 전환했다.
슥윽스윽스윽스윽~
다행히 배낭이 떨어지며 낸 소리는 중장비 돌아가는 작업 소음에 묻혔고 박기웅 팀장 역시 순찰 장갑차에 들키지 않고 펜스 앞까지 도달했다. 먼지를 일으키며 순찰 장갑차가 지나가자 펜스 앞에 납작 엎드린 박기웅 팀장은 양쪽 군인들의 동태를 살폈다. 별다른 반응이 없자 그제야 거친 숨을 내쉬며 안도했다.
‘이제 이 펜스만 넘으면 9부 능선은 넘는 건데······.’
공사장에나 볼 거 같은 은색 펜스를 만져 본 박기웅 팀장은 배낭끈을 끊어 두 개를 연결하자 1m 남짓 되는 줄이 되었다. 그리고 연결고리는 벌려 갈고리처럼 만들었다. 이렇게 완성된 줄을 가지고 펜스 위로 던져 갈고리가 상단에 걸리게 한 다음 몸까지 매달리며 당겨봤다.
제대로 걸린 듯했다. 이제 남은 건 양쪽 군인들의 눈을 피하고 신속하게 넘어가기만 하면 되었다. 일단 끈 떨어진 배낭은 중장비 소리가 크게 나는 때를 기다려 펜스 반대편으로 던졌고 그다음 걸려 있는 줄을 잡고 펜스를 손쉽게 넘었다.
펜스를 넘은 후 한시름 놨다고 생각한 박기웅 팀장은 펜스 밖보다 더 많은 군인이 곳곳에 배치되어 경계를 서고 있는걸 보고는 온갖 인상을 찌푸렸다.
“드럽게 많네. 짱게새끼들”
펜스 안으로 들어오면 좀 나을까 생각했던 박기웅 팀장은 더 많은 군인 때문에 짜증이 확 밀려왔다.
짧은 욕설로 현재 기분을 표현한 박기웅 팀장은 왼쪽 20m 지점에 반쯤 무너져진 건물을 쳐다봤다. 아마도 폭발 위력에 휘말리면서 옆 건물임에도 무너져 내린 듯했다. 그만큼 대외정보1과가 사용한 M2-Kill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직감할 수 있었다.
“저거다.”
맨 위쪽까지 올라간다면 모든 곳을 다 스캔할 수 있다고 판단한 박기웅 팀장은 배낭을 집어 들고는 좌우 앞뒤를 살피며 은밀히 움직였다.
후우~
몇 분 후 무너져내린 건물 가장 높은 곳까지 오른 박기웅 팀장은 배낭에서 조심스럽게 뽁뽁이로 감겨있는 CRB-330 장비를 꺼냈다. 그리고 뽁뽁이를 제거한 후 바로 조립에 들어갔다.
오후 내내 방에서 틀어박혀 CRB-330 장비의 조립방법과 사용 설명서를 달달 외우다시피 한 박기웅 팀장은 깜깜한 상황에서도 능숙하게 조립을 완료했다.
조립이 완료된 CRB-330 장비는 마치 매우 커다란 DSLR 카메라처럼 생겼다. 이에 앞으로 매고 전원 버튼을 누르자 상단 LCD 화면이 환해졌다.
모든 준비를 끝마친 박기웅 팀장은 주변 아래를 살폈다. 혹시나 경계를 서고 있는 군인들이 있나 서였다.
다행히 아무도 없을 걸 확인하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CRB-330의 사각 렌즈를 무너져 내린 하이싼 공장 지대로 향하고는 스캔을 시작했다. 이에 작동음이 울렸고 상단 LCD 화면에는 지하 내부 상황이 표현됐다.
뚜두! 뚜두! 뚜두!
스캔할 장소가 너무나 넓어 한쪽부터 차례대로 스캔을 시작한 박기웅 대리는 신이라도 있으면 두 손 모아 빌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참 각 스캔을 하는 도중 지하 30m 지점에서 뭔가가 탐지되었는지 또다른 작동음이 울려댔다.
띠딕! 띠딕! 띠딕! 띠딕!
형체는 매우 작았지만, 생명체 반응은 분명했고 한자리에 2개가 모여 있었다.
‘뭐지? 크기로 봐서는 동물인가?’
화면상 탐지된 생명체 크기는 대략 사람 얼굴만 했다. 순간, 박기웅 팀장의 얼굴은 화색이 돌았고 두 눈은 커졌다.
‘그래, 얼굴이야 얼굴! 당연히 보호슈트 때문에 몸은 탐지가 안 되었던 거야. 그러니 얼굴만 나오는 거지’
박기웅 팀장은 급히 CRB-330 콘솔 키보드를 조작해 정확한 위치를 저장했다.
‘오 하나님, 살아있어! 살아있어! 감사합니다.’
순간 벅차오르는 감정 때문인지 CRB-330 콘솔 키보드를 조작하는 박기웅 팀장의 손은 떨렸다.
‘됐어! 됐어!’
문제는 구출이었다. 현재 두 과장이 탐지된 위치로부터 40m 지점에는 여러 대의 굴착기가 동원되어 아래쪽으로 파 내려가고 있었다. 당연히 주위에는 장갑차와 중무장한 군인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어떻게 구출한담······. 탐지된 정보로는 지하 삼십 미터는 되는데······.’
CRB-330 장비를 다시금 분해해 배낭에 넣으며 구출할 방법을 생각했지만, 도저히 혼자선 엄두가 안 났다.
‘어쨌든 두 과장님이 살아계신 걸 안다면 1과 요원들도 도와주겠지······. 일단 여기서 벗어난 후 알려야겠다.’
여기까지 생각한 박기웅 팀장은 왔던 경로로 은밀하고 신속하게 움직였다.
★ ★ ★
2024년 1월 02일 00:10 (러시아시각 1일 18:10),
러시아 모스크바 벙커 스테이트 R-13(상황실).
지금까지 수십 차례 한국 전투기와 공중전을 벌인 결과 별다른 전과 없이 일방적인 학살을 당했던 러시아 전투기였으나 오늘은 분명히 달랐다.
한국 전투기보다 3배에 달하는 전투기가 출격했고 지상의 수많은 방공부대가 지원했다지만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의 아틀라스 정찰위성으로부터 데이터링크 된 레이더 탐지정보 덕분이었다.
그렇다고 막상막하를 보여주는 교전 상황은 아니었다. 러시아 전투기들이 훨씬 많이 요격되고 있었지만, 한국 전투기들 역시 적잖은 요격을 당한 현황이 전술 스크린에 표기되고 있었다.
나름 만족하는 교전 상황이 벌어지고 있지만. 푸틴 대통령의 표정은 그리 밝지는 않았다.
아직도 신중국 전투기들이 출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기존 공동작전 안대로 제시간에 맞춰 신중국 전투기가 출격했다면, 이 정도로 러시아 전투기들이 불필요하게 요격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심 신중국 전투기들을 제물로 삼고 그 틈에 탐지정보를 받은 러시아 전투기가 한국 전투기를 공격하여 자국의 전투기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했던 바람이 틀어지고 말았다.
이처럼 양국이 체결한 상호군사보호조약은 빛 좋은 개살구마냥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어떻게든 동맹국을 이용해 자국의 이익을 취하고자 하는 시꺼먼 속내만이 꿈틀거릴 뿐이었다.
우당탕!
둔탁한 소리가 울리고 U자형 탁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왕징위 개자식! 이제야 출격시켰단 말이야?”
방금 참모로부터 보고를 받은 푸틴 대통령은 흔들리는 탁자를 부여잡고 일갈했다.
“이번 한국과 전쟁이 끝나면 기필코 저 더러운 왕징위 자식에게 우리 러시아의 무서움을 보여줘야겠어.”
“그래도 지금이라도 출격해 다행이지 않습니까?”
눈치 없는 유리 니키포로프 재무장관의 말에 푸틴 대통령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다행? 지금 우리 전투기 몇 대가 요격되었는지 몰라서 하는 소린가?”
“아, 죄송합니다. 저는 그게······.”
“모르면 그냥 입 다물고 보기나 하게.”
괜히 말했다가 핀잔만 당한 유리 니키포로프 재무장관은 뒷머리를 쓸며 고개를 숙였다.
이때 블라디미르 베샤스트니흐 총참모장으로부터 또 한차례 푸틴 대통령이 역정 낼만 한 보고가 올라왔다.
보고 내용은 이랬다. 30분 전, 반군과 러시아 친위군이 지키고 있던 항구도시 마리우풀이 한국 해병대와 우크라이나군에게 함락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또 한차례 탁자를 후려친 푸틴 대통령은 급기야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마리우풀에 증원군을 보낸다고 하지 않았나?”
오전, 한국 해병대가 스파르천코프를 공격했다는 보고를 받은 총참모부는 도네츠크주 내 군사적 요충지인 마리우풀을 지키기 위해 남부군구 사령부에 지원병력을 보내라는 지시를 내렸었다.
이예 남부군구 사령부는 예하부대 중 하나인 로스토프온돈에 주둔 중인 제18차량화보병사단 제587차량화여단에 마리우풀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에 제587차량화여단은 오후 6시에 전 병력이 마리우풀을 향해 기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제587차량화여단이 마리우풀에 도착하기도 전에, 마이우풀은 이미 시가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우크라이나군과 반군 및 러시아 친위군이 시가전을 벌이면 짧으면 며칠에서 길게는 한 달이 넘게 걸리기도 했다. 이렇듯 시가전에 들어가면 보통 장기전으로 전환된다는 것에 반군들은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한국 해병대는 달랐다. 오전 11시부터 스파르천코프 공격에 들어갔던 제5해병사단 제51해병연대 27해병대대는 3시간 만에 반군을 모조리 소탕해 버렸다.
한창 내전이 활발하게 벌어졌던 2015년도, 우크라이나군과 반군은 작은 도시 스파르천코프를 두고 한 달이 넘도록 치열한 시가전을 버리고 나서야 반군이 가까스로 점령한 적이 있었다.
즉, 한 달이 넘게 걸려 스파르천코프를 점령한 반군과 비교했을 때 해병대가 3시간 만에 점령한 것은 러시아군과 반군은 상상은 물론 절대 예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로 인해 반군과 러시아군은 주변 마을과 도시에 대한 대책 방안을 수립하면서도 서두르지 않았다. 충분한 시간이 있다고 판단했고 마이우풀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받은 제587차량화여단 역시 오후 6시에야 대서야 준비를 마치고 기동을 시작했다.
어쨌든 스파르천코프를 3시간 만에 점령한 27해병대대는 뒤따라오던 우크라이나군에 제65차량화보병사단의 예하부대에게 인수인계를 하고 곧바로 45km 떨어진 마리우풀로 빠르게 진공 했다.
인구 10만의 중소도시인 마이우풀은 러시아 측에서 보자면 군사적 요충지로 매우 중요한 도시 중 하나였다. 그것은 아조프해를 관할하는 러시아 해군 함정이 정박하는 군항이 있기 때문이었다.
러시아에 있어서 아조프해의 해상권 장악은 매우 중요했다. 바로 크림반도 문제와 귀결되기 때문이었다.
만약 러시아가 아조프해의 해상권을 상실한다면 현재 러시아령으로 귀속된 크림반도는 지리적 특성상 러시아 본토와 단절되고 만다. 케르치해협대교가 있다지만, 우크라이나군이나 한국군이 마음만 먹으면 케르치해협대교는 언제든 폭파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즉, 결론을 말하자면 아조프해의 해상권을 잃으면 러시아 본토와 단절된 크림반도 역시 우크라이나군에게 손쉽게 점령당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한국 해병의 진공이 예상과 다르게 너무나 빠른 진공을 한 듯합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제 막 도착한 제587차량화여단이 수복할 것입니다.”
“마이우풀이 수복이 늦어지면 문제는 크림반도야. 크림반도. 어떻게 되찾은 크림반도인데······.”
역정을 내던 푸틴 대통령은 말끝을 흐리고는 자리에 철퍼덕 주저앉고는 뒷머리를 감쌌다. 순간 치민 화에 고혈압 증세가 재발한 듯했다.
“대통령님! 괜찮습니까?”
“신경 쓸 거 없고 그래서 대책이 뭔가?”
“네, 현재 해협대교를 통해 크림반도에 증원군을 급파하라는 명령을 남부군구에 하달한 상태입니다.”
“이번에도 어물쩍거리지 말고 신속히 이동하라고 하란 말이야.”
“네, 그러잖아도 남부군구 사령관에게 확실히 얘기해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