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루기
2024년 1월 01일 23:30,
남주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와대 국가위기상황센터 지하 벙커.
일명 VIP 벙커로 불리는 청와대 국가위기상황센터 지하 벙커 상황실에서도 추은희 대통령을 비롯해 여러 장관이 자리에 앉아 기다리던 중 이영진 국정원장으로부터 플라즈마 핵심기술 유출사건의 최종 보고를 받기 위해 잠시 지하 벙커 집무실로 자리를 옮겼다.
대통령을 비롯해 안보실장과 비서실장이 자리한 가운데 이영진 국정원장이 서류 가방에서 보고서를 꺼내고는 정중히 건넸다.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이번에 투입한 모든 국정원 직원들에게 큰 포상을 해야 할 듯싶습니다. 국정원장께서 신경 써서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네, 그렇게 하도록 준비하겠습니다.”
“크나큰 걱정거리 하나가 줄게 돼서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죄송합니다. 그동안 심려를 끼쳐드려 말입니다.”
“심려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정말 고생 많았습니다.”
건네받은 보고서를 추은희 대통령은 천천히 한 장 한 장 읽어가며 흡족해했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읽던 대통령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이 원장님?”
“네, 대통령님!”
추은희 대통령은 보고서와 국정원장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제가 오전에 구두 상으로 보고를 받을 때 신중국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못들은 듯합니다. 우리 요원 두 명이 임무 수행 중에 순직했습니까?”
사실 오전에 대통령은 국정원장으로부터 플라즈마 핵심기술과 관련된 톈진 건과 프랑스 신바이칭 건에 대해서 간략히 구두로 보고를 받았다. 구두 보고 당시 톈진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요원 2명에게 작은 사고가 발생했다는 정도로 가볍게 인식하고 있었던 추은희 대통령은 보고서에 ‘이자성 과장, 남궁원 과장 사망 추정’이라 쓰여 있었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안타깝게도 비밀연구소가 폭발할 때 제시간에 탈출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이런 일이······. 보고서에는 사망 추정이라고 쓰여 있는데 그렇다면 사망한 것이 확실하지 않다는 말인가요?”
“확실히 확인하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폭발 당시 사용한 폭탄이 일반 폭탄이 아닌 매우 강력한 폭탄이었습니다. 그런 폭탄으로 폭발한 건물 내, 그것도 지하에 있었다면 아무리 보호슈트를 착용했더라도 살아남기는 힘듭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보고서에 쓰여 있는 것처럼 추정이지 않습니까? 확실히 사망한 것도 아니고 시신을 확인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다그치는 대통령의 질문에 이영진 국정원장은 고개를 떨구며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만에 하나 희망을 품고 구해내야지 않겠습니까?”
“저 역시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게 아닙니다. 하지만 그곳은 적진형 한복판이고 현지에 있는 직원들 보고에 따르면 현장 일대에 연대급 병력과 공안들이 24시간 지키며 중장비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이렇게 보고서에 사망 추정이라고 쓰고 손 놓고 있으면 어찌합니까?”
“죄송합니다.”
이영진 국정원장은 다시 한번 고개를 떨궜다.
“설령 불행하게도 두 과장이 사망했더라도 시신만큼은 어떻게든 조국으로 데리고 와야지요. 임 실장!”
대통령은 말하다 말고 고개를 돌리고는 옆에 앉은 비서실장을 불렀다.
“네, 대통령님!”
“지금 당장 합참 연결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대답과 동시에 임종원 비서실장은 인터폰을 통해 누군가에게 지시를 내렸다. 잠시 후 집무실 한쪽 벽면에 걸려 있는 대형 스크린에 불이 켜졌다. 그리고는 인터폰을 통해 여성 비서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합참 연결했습니다.
밝아진 스크린 화면에 신성용 합참의장이 모습이 나타났다.
- 충성! 합참의장 신선용입니다. 찾으셨습니까? 대통령님!
“죄송합니다. 지금 한창 중요한 상황인데······.”
- 아닙니다. 대통령님!”
“그래요. 그곳에 특전사령관도 계신가요?”
- 네, 있습니다. 대통령님!
“그럼, 화면에 함께 나와 주시겠어요?”
- 잠시만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잠시 후 신성용 합참의장 옆으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 충! 성! 특수전사령부 대장! 강정현입니다.
검은 베레모를 쓴 강직한 중년의 남자가 절도있게 거수경례를 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수고 많습니다. 강정현 대장님!”
- 아닙니다. 대통령님!
“바쁘시니 본론만 간단히 하겠습니다.”
- 네, 알겠습니다.
추은희 대통령은 화면에 나온 두 장성을 똑바로 바라보며 강한 어투로 말했다.
“최대한 빨리 VIP급 구출 작전을 해야겠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옆에 있는 국정원장이 전달할 것입니다. 다시 한번 더 말씀드리지만 VIP급입니다. 이점 참고하셔서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 네, 알겠습니다. 대통령님! 국정원장께 자세한 내용을 듣고 즉시 구출 작전 안을 수립하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 VIP급 구출이란, 추은희 대통령을 비롯해 국가 서열 10위 이내의 중요 관료에 한해 국가 전력을 총동원하여 구출하는 코드분류였다.
“네, 꼭 부탁드립니다. 바쁘시니 이만 연결은 끊으시지요.”
-충성!
두 장성의 거수경례를 끝으로 화상 통신이 끊어졌다.
“감,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이영진 원장이 탁자에 머리가 닿도록 크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감사할 일이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국가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은 분들에게 최소의 예의가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여기 쓰여 있는 남궁원 과장은 서현우 전 대통령으로부터 전해 듣던 그 남궁원이 맞는지요?
“네, 맞습니다. 퇴사 후 이번 일로 다시금 국정원에 입사했습니다.”
“허허, 이런,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이 이 정도로 발전할 수 있게끔 헌신한 분을······.”
추은희 대통령은 끝내 말을 잊지 못하고 한숨을 내쉬며 천장을 바라봤다. 이때 누군가로부터 연락을 받은 강현수 안보실장이 조용히 보고했다.
“대통령님! 상황실에서 연락이 왔는데 방금 막 러시아와 공중전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이 원장은 지금 즉시 합참으로 이동해 상세한 내용 전달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국정원도 함께 최대한 구출작전에 동참하겠습니다.”
“그래요. 그렇게 하세요. 자! 그럼 상황실로 이동합시다.”
★ ★ ★
2024년 1월 02일 23:40 (러시아시각 23:40),
러시아 자바이칼 지방 치타 대기권.
열권 밖에서 빠르게 비행하던 제2우주전투비행단 소속 인디아편대와 줄리엣편대 삼족오 우주전투기 8기는 본격적으로 성층권 내로 진입하는가 싶더니 이내 대류권에 도달했다.
이들의 일명 날파리 퇴치작전으로 치타 상공 고도 10km에서 기다란 횡대 대형을 갖추고 비행하는 A-100 프리미어 공중조기경보기 요격 임무였다.
서로 간 50km 간격으로 W자 형식으로 횡대 비행을 하는 A-100 프리미어 공중조기경보기 8기는 레이더 출력을 최대한 높여 국경선 일대로 몰려오는 한국 공군 전투기들을 탐지하고자 했다.
몇 초 만에 요격 거리까지 도달한 삼족오 우주전투기 8기, 선임 편대장의 목소리가 나머지 7기 삼족오 우주전투기에 흘러나왔다.
“지금부터 할당 표적 요격에 들어간다. 어려운 임무 아니니 빨리 해치우고 귀환하자!”
선임 편대장의 요격 명령이 떨어지자 나머지 7기의 우주전투기는 할당된 날파리를 치기 위해 각자 기수를 돌렸다.
쭈르릉! 쭈르릉! 쭈르릉!
가장 먼저 인디아편대 편대장기에서 강력한 50mm 초고출력 레이저 빔이 연속으로 뻗어 나갔다. 눈 깜짝할 사이 대기를 가르며 날아간 빛줄기는 가장 앞서서 비행하던 A-1000 프리미어 공중조기경보기 3호기의 동체를 뚫어버렸다. 순간적으로 여러 개의 구멍이 뚫려버린 공중조기경보기 3호기는 이내 검붉은 화염을 뿜어내며 폭발했고 크고 작은 파편들은 불이 붙은 채로 비상하며 퍼져나갔다.
100km 거리에서 불신의 일격을 당한 A-1000 프리미어 공중조기경보 3호기는 이렇게 어두운 하늘을 화려하게 수놓는 폭죽 신세가 되었고 나머지 공중조기경보기들 도 차례대로 같은 신세가 되었다.
어떤 공중조기경보기는 동료기가 폭발한 것을 알고는 본능적으로 채프와 플레이어를 불사조 날갯짓하듯 양쪽으로 뿌려댔다. 하지만 미사일이 아닌 레이저 빔에는 무용지물이었다.
살기 위해 기수까지 왼쪽으로 급선회하며 채프와 플레이어를 뿌리는 공중조기경보기를 향해 줄리엣편대 소속 삼족오 우주전투기 3호기에서 4연발 레이저 빛줄기를 뿌렸다.
4개의 50mm 초고출력 레이저 빔은 막 기수를 돌린 공중조기경보기의 후미에 강타했고 그대로 실내를 휘젓고는 조종실 창문을 뚫고 빠져나갔다. 비행기가 폭발하기도 전에 실내에 있던 20여 명의 승조원은 증발하거나 아니면 신체 일부분만이 검은 숯이 되어 바닥에 나뒹굴다가 비행기가 폭발하면서 사라졌다.
2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각, 러시아 전투기의 눈과 귀가 되어주던 8기의 A-1000 프리미어 공중조기경보는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지도 못하고 전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 시각 서만주 일대 상공, 제38전투비행단 제111전투비행대대 소속 CF-21P 주작 전투기 24기는 각자 팅거 팁 편대 비행을 하며 대대장으로부터 공격명령이 떨어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진작부터 각자 요격할 표적 설정을 완료한 상태였다.
“슈퍼문, 지금부터 각 편대장의 판단하에 할당 목표에 인게이스 오펜스 고.
- 블랙문, 카피 뎃!
- 뉴문, 카피 뎃!
- 화이트문 카피 뎃!
- 레드문 카피 뎃!
- 그린문 카피 뎃!
기다리고 기다리던 비행대대장의 공격명령이 떨어지자 각 편대는 편대장의 후속 명령에 따라 가장 사거리가 긴 S-AAM-500 코브라 공대공미사일부터 발사했다.
어두운 하늘, 내부 무장실에서 튀어나온 S-AAM-500 코브라 공대공미사일들이 차례대로 푸른빛을 발산하더니 이내 비행 방향으로 날아갔다.
마치 반딧불처럼 푸른빛을 발산하는 96개의 코브라 공대공미사일은 순식간에 작아지는 듯싶더니 이내 가시거리에서 사라졌다.
사거리 500km 거리를 마하 20의 속도로 74초면 도달할 수 있는 코브라 공대공미사일 96기는 러시아군의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라 할 수 있는 남부군구 제4항공군 소속 Su-50 파크파 전투기를 향해 날아갔다.
슛 앤드 포켓!
방금 발사한 코브라 공대공미사일을 뒤로하고 제111전투비행대대 주작 전투기들은 엔진 출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속도를 높였다. 이제 중거리 공대공미사일의 사거리 안으로 진입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쿠와아아아아!
제111전투비행대대에서 가장 앞서서 비행하는 편대는 블랙문 편대로 편대장은 예전 최영호 소령의 윙맨이었던 오길성 소령이었다. 윙맨 당시에는 대위였지만, 현재는 소령으로 진급해 블랙문 편대를 이끄는 편대장으로 군 복무를 이어가고 있었다.
특히나 오길성 소령이 타고 있는 블랙문 편대장기는 예전 최영호 소령이 탔던 기종으로 조종석 쪽 양 측면에는 동체 길이가 부족할 정도로 다양한 기종의 킬 마크가 새겨져 있었다.
백화점도 이런 백화점은 없었다. 예전 중국의 스텔스 전투기인 J-20이나 J-30을 비롯해 러시아의 Su-50 파크파와 Su-34 폴백, 그리고 미그사에서 개발한 최신예스텔스 전투기 Mig-37 MFI 시베리아, 하물며 한국 공군에서도 운용하는 F-35 라이트닝 II와 F-22 랩터까지 이렇게 다양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런 거 다 필요 없고 오길성 소령이 가장 자랑스러워 하는 건 일본 이지스 구축함인 공고함의 킬 마크였다.
미사일도 아니고 혼자서 레이저 벌컨 빔만으로 공고함을 무력화시킨 대한민국 최고의 탑건이 조종했던 편대장기를 이어받았다는 거에 오길성 소령은 나름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오길성 소령은 항상 대대에서도 선봉 역할을 해왔다. 그로 인해 편대원들은 항상 죽을 맛이었다.
최대속도로 비행한 블랙문 편대는 새로운 표적기와의 거리가 300km까지 다다르자 오길성 소령이 명령을 내렸다.
“편대 올 스탠바이 밴딧과의 거리 200에서 뮤직온 방울뱀 파이엇 래디!
- 블랙문2, 카피 뎃!
- 블랙문3, 카피 뎃!
- 블랙문4, 카피 뎃!
오길성 소령의 명령에 대답하는 순간, 편대장기의 윙맨인 블랙문3 항전 계기판에서 RWR(Radar warning receiver) 경보음이 울렸다.
“뭐지? 뭐지?”
갑작스러운 경보음에 순간 당황한 김민주 중위는 오작동인가 싶어서 계기판을 확인했지만, 이내 놀라고 말았다. 자신의 기체를 향해 2기의 지대공미사일이 마하 12에 달하는 속도로 날아오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