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
2024년 1월 01일 05:15, (신중국시각 04:15),
신중국 톈진시 베이천구 공업단지 15구역(하이싼 공장 안).
‘열린다. 열린다. 열린다’
다다다닥! 다다다닥!
퇴각할 시간이 다가오자 급해진 남궁원 과장은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우며 번개같은 손놀림으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제발!’
기도하는 마음으로 엔터를 쳤다.
띠딕!
‘풀, 풀렸다!’
기쁜 마음에 무의식적으로 만세를 부르려던 남궁원은 자신의 입을 막았다.
‘크, 큰일 날 뻔했다.’
고개를 돌려 사무실 주변을 살핀 남궁원 과장은 길게 숨을 내쉬고는 양손을 모으고 손목을 풀었다. 2시간 가까이 쉬지 않고 키보드를 쳤더니 손목과 손가락이 얼얼했다.
그러고는 본격적인 삭제 작업에 들어갔다. 디지털 포렌식 방식으로도 절대 복구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자료 폐기를 위해 남궁원 과장은 미리 준비한 일종의 컴퓨터 바이러스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몇 분의 시간이 흐르고 실행된 프로그램은 폴더에 담긴 자료들을 차례대로 삭제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누군가 사무실로 들어오는 인기척이 들렸다.
‘제길, 하필 이런 때!’
실행되고 있는 노트북을 몸으로 덮어 투명상태로 만든 남궁원 과장은 숨죽이고 출입문 쪽을 살폈다.
뚜벅! 뚜벅!
출입문이 열리고 후레쉬를 든 두 명의 무장 경비병이 모습을 드러내고는 사무실 이곳저곳을 후레쉬로 비췄다.
한참을 후레쉬로 비추고 아무 이상이 없자 나가려던 두 명의 무장 경비병은 순간, 노트북 하드웨어가 돌아가는 소리가 커지면서 뭔가를 느꼈는지 발걸음을 돌리고는 남궁원 과장 쪽으로 다가왔다.
아무래도 실행된 프로그램이 대량의 자료를 완전히 삭제하느라 CPU에 무리가 가면서 팬 돌아가는 소리가 커진 듯했다.
“헤이! 뭔 소리 안 들려?”
“무슨 소리?”
“저, 저쪽! 뭔가 돌아가는 기계음 같은 소리!”
“자네는 참 귀도 밝아!”
두 군인은 후레쉬를 비추며 서서히 남궁원 과장이 엎드려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제길! 이러다가 들키겠군! 어쩔 수 없지! 선수를 치자!’
5m도 안 되는 거리까지 두 경비병이 다가오자 남궁원 과장은 허리춤에서 CS5A1 레이저 피스톨을 빼 들고는 방아쇠를 당겼다.
쮸웅! 쮸웅!
경쾌한 레이저 발사음이 울리자 두 경비병은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바닥에 꼬꾸라졌다. 하지만, 일이 꼬이려고 했는지 레이저에 복부를 관통당한 한 경비병이 자신의 소총 방아쇠를 무의식적으로 당기고 말았다.
타타타타타타탕!
우렁찬 총성이 사무실을 넘어 밖으로 울려 퍼졌다.
“엿 됐다.”
짧은 욕설을 내뱉은 남궁원 과장은 쓰러진 채로 난사하는 경비병의 머리통을 정조준하여 사격을 가한 후 재빠르게 노트북을 확인했다.
아직도 50%에 달하는 자료가 삭제되지 않고 남아있었다.
‘시간이 부족해!’
남궁원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삭제프로그램이 돌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노트북을 들고 나갈 수도 없었다. 랜선으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때 이자성 과장으로부터 무음성 통신이 날아왔다.
- 여기는 알파 제로! 원! 대체 무슨 일이야? 발각된 거야?
아무래도 총성을 듣고 다급히 무음성 통신을 날린 듯했다. 이처럼 이자성 과장이 총성을 들었다면 이곳을 경비하는 경비병들 역시 들었을 터, 입술을 질근 깨문 남궁원 과장은 차분히 무음성 통신을 날렸다.
“여기는 부라보 제로! 경비병 두 명을 해치웠는데 재수 없게도 한 놈이 총을 쐈네 그려.”
- 안 되겠다. 원아! 지금 당장 거기서 나와!”
“안돼! 아직 삭제할 파일이 남았어!”
- 야! 무장 군인들이 그쪽으로 몰려간다고. 그리고 지금 전지팩 잔량도 얼마 남지 않았잖아. 더 늦었다가는 빠져나가는 것도 힘들어!
“그럼 어쩔 수 없지! 너희들이나 늦기 전에 빠져나가!”
- 뭔 개소리야 마!
“개소리가 아니라, 현재로썬 이 방법밖엔 없다. 난 마저 작업을 끝마쳐야 하니 통신 끊는다.”
- 야! 남궁원!
뚜우~
무음성 통신을 끈 남궁원 과장은 새로운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그 프로그램은 우진길 교수가 플라즈마 핵심기술에 심어둔 암호코드를 추적할 수 있는 이현 박사가 만든 추적프로그램이었다. 단점이 인터넷 환경이 아닌 곳에서는 작동되지 않아 추적이 불가능했지만, 현재 이곳은 비밀연구소 자체 내부망이었다. 즉, 인터넷 환경이 아니더라도 내부망으로 직접 연결되어 있다면 추적이 가능하다는 얘기였다.
추적프로그램이 암호코드가 심어있는 파일을 추적하고 삭제프로그램으로 완전히 폐기하는 것, 이것이 남궁원 과장의 의도였다.
두 가지 프로그램이 동시에 돌아가자 노트북은 더욱 거친 기계음을 내뱉었다.
“사랑하는 컴퓨터야! 유종의 미를 걷도록 하자!”
엎드린 자세로 노트북에 입맞춤한 남궁원은 비장한 표정을 짓고는 CS5A1 레이저 피스톨 들고는 출입문 쪽으로 향했다.
남궁원 과장은 노트북이 작업을 마칠 때까지 이곳을 지키려는 듯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서랍과 책상 등을 출입문 쪽으로 옮겨 엄폐물을 만든 후 자세를 낮춘 남궁원 과장은 X-K02 단말기를 확인했다.
전지팩 잔량은 22%, 시간으로 계산한다면 15분 정도가 남은 상태였다. 마치 자신의 삶이 앞으로 15분밖에 남지 않은 거처럼 느끼자 남궁원 과장은 서글펐고 갑자기 이혜진이 생각났다.
“에잇 이럴 줄 알았으면 평소에 잘해줄걸”
정신적 육체적으로 무너졌을 때 옆에서 힘이 되어주고 삶의 버팀목이 되어주던 고마운 여인, 처음 만날 날부터 옛 추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이렇게 옛 추억을 회상하는 사이 멀리서부터 군홧발 소리가 들리더니 점점 더 커져 왔다.
“어디야! 이쪽이야?”
“저쪽 사무실 쪽인 듯합니다.”
슬쩍 고개를 내밀고 왼쪽 복도를 실드글라스로 확인하니 무장한 10여 명의 경비병이 이쪽으로 뛰어오고 있는 것을 투시 상태로 확인할 수 있었다.
“좋아! 스콜피온 놈들도 해치운 난데, 저런 피라미들쯤이야.”
내심 밀려오는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자가최면을 건 남궁원은 CS5A1 레이저 피스톨을 쥔 오른손에 힘을 주고는 사격 자세를 취했다.
TCS 모드 상태라면 몇 명이 몰려오 건 충분히 해치울 수 있었다. 그리고 TCS 모드가 풀릴 때쯤이면 노트북의 프로그램도 작업을 끝마칠 것으로 예상했다.
길게 한숨을 내쉰 남궁원 과장은 안정된 자세를 취하고는 복도를 따라 가장 앞서서 뛰어오는 경비병부터 조준점을 맞추고는 사격을 가했다.
쭈웅! 쭈웅! 쭈웅! 쭈웅! 쭈웅!
여러 개의 붉은 빛줄기가 빛 속도로 날아가자 앞서 달리던 경비병부터 영문도 모르는 채 앞으로 꼬꾸라졌다.
“으악!”
“뭐, 뭐야?”
갑자기 앞에 경비병들이 뛰다 말고 바닥에 나뒹굴자 뒤에서 뛰어오던 경비병들이 번개같이 흩어지면서 각자 엄폐물 뒤로 숨었다. 그리고는 반사적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출입문 쪽으로 사격을 가했다.
타탕! 타타타타탕! 타앙! 타타탕!
벽으로 기대 쏟아지는 총알 사례를 피한 남궁원 과장은 실드글라스의 인버터 모드로 벽 넘어 경비병들의 위치를 스캔한 다음 다시 한번 상체만 내밀고는 정밀 사격을 가했다.
쭈웅! 쭈웅! 쭈웅!
크억!
벽 뒤에 숨었던 한 경비병이 거친 신음을 내뱉으며 쓰러졌다.
“대, 대체 뭐, 뭐야? 뭐가 쏘는 거야?”
경비병 중에 최고선임으로 보이는 듯한 자가 앞에서 영문도 모르는 채 부하들이 쓰러지자 안 되겠는지 지원 병력을 호출했다.
“여기는 3섹터! 3섹터로 지원 병력 요청 핫”
쭈웅! 쭈웅! 쭈웅! 쭈웅! 쭈웅! 쭈웅! 쭈웅!
이때 전방이 아닌 후방에서 한 무더기의 빛줄기가 쏘아졌고 통신으로 지원 병력을 요청하던 선임 경비병을 포함한 7명이 정확히 뒤통수에 레이저 빔 구멍이 뚫린 채 쓰러졌다.
“뭐, 뭐지? 엇? 아나 저 자식······.”
재차 사격하려던 순간, 경비병들이 쓰러지자 무슨 상황인지 몰라 어리둥절했던 남궁원 과장은 이내 알아차렸다.
“어이! 친구! 여기서 뭐 해?”
7명을 한꺼번에 쓰러트린 이자성 과장이 투명상태로 뛰어왔다.
“지금 웃음이 나오냐? 넌 왜 온 거야?”
남궁원 과장 옆으로 뛰어온 이자성 과장은 잠시 숨을 고르고는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왜 오긴 자식아! 친구 구해주러 왔지. 가자! 내가 엄호해 줄게.”
“지랄! 내가 도망갈 수 있었으면 진작 갔지! 아직 안되!”
“시간 없어! 몇 분 후면 TCS 모드도 풀려!”
“그걸 누가 몰라?”
남궁원 과장은 잠시 틈을 내 노트북을 확인했다. 여전히 폴더에 있는 플라즈마 핵심기술 자료들은 모두 삭제가 되었지만, 추적프로그램으로 찾아낸 자료들은 여전히 삭제 중이었다.
“아직 남았다.”
“얼마나 남았는데? 지금 나가지 못하면 여기서 비명횡사한다.”
“한 10여 분 정도 남은 듯한데?”
“노트북 남겨두고 가면 되지!”
“그랬다가 만약에 저놈들이 노트북을 끄거나 작살내면? 그럼 말짱 도루묵 된다. 다른 요원들은?”
“진작에 퇴각 명령 내렸지. 지금쯤이면 모두 빠져나갔을 거야. 이제 여기엔 너와 나만 남았다.”
이자성 과장은 CS5A1 레이저 피스톨의 탄창전지팩을 교환하며 대답했다.
“자식! 늦기 전에 너라도 가라!”
“웃기시네. 내가 네놈만 남겨두고 갈 거 같냐? 음, 저 노트북만 10분간 지키면 되는 거야?”
“그렇긴 하지!”
“좋아! 그럼 내가 지킬 테니까 원! 네가 빠져나가라”
“뭐? 컴퓨터의 컴자도 모르는 컴맹이······.”
“자식아! 지키기만 하면 된다며?”
“아! 됐고,”
타타타탕! 타타타탕! 타타탕! 타타탕!
어린애들처럼 티격태격하는 사이 어느새 한 무더기의 경비병들이 양쪽 복도에서 밀려오며 무분별하게 사격을 가했다.
“뭐야? 이거!”
“야야! 우리 TCS 모드 풀렸다.”
TCS 모드가 풀린 것도 모르고 신나게 대화한 두 사내는 현재 상황이 어이없었는지 피식하며 웃었다.
타타탕! 타타탕!
“저놈들이다. 사격해! 야! 수류탄도 던져!”
화재경보기 오작동일 때 모습을 보였던 두춘 중교가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TCS 모드가 풀리고 모습을 드러내자 그동안 무턱대고 사격하던 경비병들은 공격할 대상이 눈으로 보이자 더욱 저돌적으로 공격을 가해왔다.
쾅아! 쾅!
양쪽에서 쏟아지는 엄청난 총알 사례에 수류탄까지 날아와 폭발했다.
수류탄 파편 정도는 보호 슈트로 충분히 막아낼 수 있었지만, 귀청을 찢을듯한 폭발음에 귀가 먹먹했다.
“원! 네가 왼쪽 맡아! 난 오른쪽 맡을 테니까”
“오케이!”
쭈웅! 쭈웅! 쭈웅! 쭈웅! 쭈웅!
타타탕! 타타탕! 타타탕!
“휴우! 애들이 너무 많다. 이거 피스톨만으로는 버겁겠는데?”
한번 사격으로 경비병 3명을 쓰러트린 이자성 과장이 벽 사이로 몸을 엄폐하고는 한숨을 내렸다.
“조금만 더 막으면 돼!”
이때 노트북에서 조그마한 소리가 울렸다. 이에 뛰어가 확인한 남궁원 표정이 환히 바뀌었다.
“완, 완료! 완료했어! 미션 클리어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판에 웃는 남궁원의 모습에 이자성 과장 역시 피식하니 미소를 보였다.
“자식! 좋아하기는······.”
“이 과장!”
“왜!”
“폭탄은 다 설치했지?”
“응! 원격조정기는?”
“내가 갖고 있다.”
“그럼 터뜨려!”
“뭐? 다 죽자는 거야?”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남궁원의 말에 이자성 과장은 놀란 표정으로 반문했다.
“그럼 어쩌냐?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겠냐?”
“음,”
드드드드드득! 드드드드드득!
이때 중화기의 연발 총성이 울리며 엄폐한 벽을 벌집으로 만들었다. 희뿌연 연기와 파편이 쏟아졌다.
“개자식들! 두 명 잡겠다고 중화기까지 동원했어?”
인버터 모드로 벽 넘어 상황을 투시로 확인한 이자성 과장이 희뿌연 연기로 인해 입을 막으며 일갈했다.
“그러니까 터뜨리라고.”
“원! 진심이냐?”
“그럼 이 상황에서 농담하겠냐?”
“자식! 멋지네.”
남궁원 과장의 어깨를 툭 하니 친, 이자성 과장은 안쪽 주머니에서 원격조정기를 꺼냈다. 그리고 두 사내는 총알이 빗발치는 상황임에도 서로의 얼굴을 잠시간 쳐다보고는 알 수 없는 미소를 보였다.
“자식아! 널 친구로 알게 되어 좋았다.”
“자식아! 사돈 남 말이다.”
서로에게 농담 아닌 농담을 건넨 두 사내는 힘있게 악수했다. 그리고 이자성 과장은 왼손에 움켜쥐고 있던 원격조정기의 버튼을 눌렀다.
콰앙! 콰콰콰쾅!
엄청난 폭발음이 동시다발적으로 울리며 사방에서 폭발이 이어졌다. 지하건물 전체가 흔들리며 천장에서 파편들이 쏟아졌고 이러한 폭발은 점점 두 사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잠시 후 수십 차례 지하에서 폭발이 일어난 하이싼 공장은 땅속으로 빨려 들어간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대신 시꺼먼 연기와 화염만이 갈라지 틈 사이로 피어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