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54화 (454/605)

화근

2023년 12월 31일 15:00 (쿠르디스탄시각 09:00),

쿠르디스탄 공화국 서아제르바이잔주 휴센아바드.

200여 명이 거주하는 휴센아바드 마을은 새해맞이 ‘뉴러즈’ 행사를 즐기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거리에 나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전통민속춤을 추며 서로에게 준비한 음식을 나눠 먹고 있었다. 하지만 마을 모든 주민이 단지 ‘뉴러즈’ 행사를 즐기기 위해 이렇게 거리에 나온 것만은 아니었다.

4천만 쿠르드족이 그토록 염원했던 쿠르디스탄 공화국의 독립이 앞으로 1시간 후 전 세계에 독립선포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에 휴센아바드는 물론 쿠르디스탄 공화국의 모든 도시와 마을에서는 성대한 ‘뉴러즈’ 행사와 독립기념일 행사가 더불어 진행되고 있었다.

2일 전인 29일, 그동안 쿠르디스탄 공화국의 독립을 불인정하며 급기야 전쟁까지 벌였던 이란과 이라크 정부가 공식 채널을 통해 쿠르디스탄 공화국의 독립 인정과 국가 간 수교를 희망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더불어 대한민국의 중재로 그동안 한발 뒤로 뺐고 지켜보고 있던 터키 역시 쿠르디스탄 공화국의 독립을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보냈고 아랍연맹 역시 수긍한다는 의사를 보내왔다.

이에 쿠르디스탄 공화국 정부는 12월 31일을 쿠르디스탄 공화국의 공식 독립일로 지정하고 이제 독립선포만을 남겨둔 상태였다.

“십, 구, 팔, 칠, 육, 오, 사, 삼, 이, 일!”

마을 광장 한쪽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던 200여 명의 주민이 한목소리로 카운트 다운을 외쳤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쿠르디스탄 공화국의 독립선포 방송이 시작되었다.

한편, 이곳 휴센아바드와 주변 국경선을 지키고 있던 3기계화보병중대 소속의 장병들도 ‘뉴러즈’ 축제 참여는 물론 그들의 독립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일부 경계병을 제외한 모든 장병이 광장에 모여있었다.

“와! 이제 전쟁이 끝났다는 게 실감 납니다. 하하하”

카운트 다운을 함께 외친 곽영환 일병이 양손에 태극기와 쿠르디스탄 공화국기를 흔들며 함박웃음을 보였다.

“그렇게 말이다. 하하하!”

김성호 상병 역시 즐거운지 곽영환 일병의 머리를 흔들어 젖히며 함께 웃었다.

스크린이 환하게 비치며 쿠르디스탄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인 사에드 알 자베르가 모습을 보였다. 살짝 긴장했는지 그의 표정은 굳어있었고 입은 파르르 떨었다.

“친애하는 쿠르디스탄 공화국 국민 여러분!”

인사로 시작된 사에드 알 자베르 대통령의 독립선포 성명발표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우리 4천만 쿠르드족은 지난 수백 년간 세계열강의 힘의 논리에 의해 국가의 주권과 영토를 잃고 마치 부랑자처럼 고통을 당하며 100년이라는 세월을 지내왔습니다. 하지만 오늘, 그토록 염원하고 희망하던 우리 국가의 주권을 되찾고 영토를 되찾고 우리 가족을 되찾게······. 되, 되었습니다.”

어느새 사에드 알 자베르 대통령의 두 눈에는 굵은 눈물이 사정없이 흐르고 있었다. 아니 대통령뿐만이 아니었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정부 관계자들은 물론 TV로 지켜보고 있는 쿠르디스탄 공화국 모든 국민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휴센아바드 광장에서 이들을 지켜보고 있던 3기계화보병중대 장병들 역시 마치 자신의 조국이 독립이라도 한 것처럼 한마음 한뜻으로 함께 축하의 눈물을 흘려줬다.

어느 정도 감정을 추스른 사에드 알 자베르 대통령은 독립선포 성명발표를 이어갔다.

“오늘이 있기까지 수많은 국민이 목숨을 잃어가며 독립운동을 했는지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의 숭고한 목숨을 대대손손 잊히지 않도록 우리는 노력하고 교육을 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국민을 대표하여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이 은혜,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 정말 감사하며 감사합니다.”

알 자베르 대통령은 사전에 생각하고 있었는지 한국식으로 큰절을 했다. 이러한 장면이 방송을 통해 전해지자 휴센아바드 마을 주민들이 약속이라도 했는지 일제히 뒤돌아보고는 3기계화보병중대 장병들을 향해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전했다.

이에 3기계화보병중대 장병들의 가슴속에서도 뜨거운 감동이 밀려왔다. 그 누구 이러한 상황에서 감격하지 않겠는가?

“아닙니다. 감사라니요.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와우! 감사합니다. 하하”

“알럽! 쿠르디스탄!”

장병들은 환한 웃음과 함께 손을 흔들며 회답했다.

“와 이거 감동의 쓰나미네. 하하하, 어라? 곽영환이 너 아직도 우냐?”

김성호 상병 역시 손을 흔들며 답례하던 중 옆에서 훌쩍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곽영환 일병이 눈물 콧물을 흘리며 울고 있었다.

“흑흑흑! 김 상병님! 이런 상황에서 눈물이 그치겠습니까?”

“그러긴 하다만, 너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냐? 그러다가 대성통곡하겠다야.”

“흑흑흑, 놔두시지 말입니다. 후임 우는 것까지 갈구지 말란 말입니다.”

“알았다. 알았어. 우쭈쭈~ 계속 울어라! 킥킥킥”

어느덧 사에드 알 자베르 대통령의 독립선포 성명발표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이제 세계만방에 쿠르디스탄 공화국의 독립선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2023년 12월 31일 우리 쿠르디스탄 공화국은 전 세계에 독립했음을 선포합니다.”

와! 와! 와!

사에드 알 자베르 대통령의 독립선포에 휴센아바드 마을 주민들이 일제히 일어나 서로 간 부둥켜안거나 양손을 번쩍 들고는 환호성을 질렀다. 3기계화보병중대 장병들 역시 박수와 환호성으로 축하해줬다.

이로써 쿠르디스탄 공화국은 공식적으로 전 세계 모든 국가에 자주권을 확보한 독립 국가임을 알렸다. 사에드 알 자베르 대통령이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것으로 성명발표 방송이 끝나자 쿠르드족 특유의 민속 음악이 광장에 울리기 시작했고 주민들은 저마다 손을 잡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눈에서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행복함을 만끽하는 듯했다. 3기계화보병중대 장병 몇 명도 흥겨웠는지 주민들 틈에 끼어 마냥 어린아이들처럼 춤을 췄다.

“애들아! 가져온 거 풀자! 꼬마들 출동했다.”

냄새를 맡았는지 마을 아이들이 큰 눈망울을 보이며 3기계화보병중대 장병 쪽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이를 본 1정찰소대 고기준 중사가 매고 있던 배낭을 풀어 제치자 나머지 3분대 대원들도 각자 매고 온 배낭에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초콜릿과 사탕 등을 꺼내 들었다.

“와! 초콜릿이다. 저 먼저 주세요.”

벌떼처럼 달려든 아이들에게 어느새 둘러싸인 1정찰소대 대원들은 마치 산타클로스가 된 듯 앞다퉈 손 벌리는 아이들에게 한 아름 초콜릿과 사탕 등을 쥐여줬다.

“애들아! 많으니. 천천히 그러다가 다친다.”

고사리 같은 작은 손으로 한 뭉치 사탕을 들고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자 1정찰소대 대원들 행복함을 느꼈다.

“어라! 김 상병님! 아니지 내일이면 병장으로 진급하는 우리 김 병장님! 저기! 저기! 보십쇼.”

“정신없는데 왜?”

정신없이 아이들에게 초콜릿과 사탕을 나눠주든 김성호 상병은 곽영환 일병이 가리키는 곳을 봤다.

“형수님이잖습니까”

지난 9월 마쿠 시내에서 치안 임무 수행 중 이란 민병대의 박격포 공격에 김성호 상병이 몸을 날려 구해준 쿠르드 여성수비대 출신의 로사린이 한국군에서 제공한 K2 소총을 들고 서 있었다.

“뭐합니까? 배낭은 저 주시고 가보세요. 키키키! 애들이 비켜라! 우리 김 병장님! 연애 사업해야 한다.”

곽영환 일병은 실실 쪼개며 김성호 상병의 등을 밀었다.

“야야! 내가 왜 갓 마!”

“아! 몇 개월 만에 보는 형수님인데 얼굴 보고 인사는 나눠야지 말입니다.”

“이 자식이 자꾸 형수님이래. 콱!”

“에이! 좋으면서”

김성호 상병은 말은 그렇게 했지만, 표정은 싫지만은 않은 듯했다.

“어서 갔다 오세요. 조금 있으면 부대 복귀입니다.”

곽영환 일병이 억지로 등을 떠밀자 김성호 상병은 어쩔 수 없는 척하며 로사린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봐봐! 좋으면서 크크, 부대 들어가면 소문내야지!”

로사린 근처까지 다가간 김성호 상병이 우물쭈물하자 멀리서 바라보고 있던 곽영환 일병이 큰소리로 외치며 주먹 쥔 오른손을 힘차게 흔들었다.

“김성호 병장님! 화이팅!”

★ ★ ★

2023년 12월 31일 21:30,

남주 서울특별시 용산구 B2 벙커(국군 합동지휘통제소 상황실).

현재 제야강 도하에 성공한 제7기동군단이 러시아 제35군과 제36군을 상대로 치열한 교전을 펼치고 있는 상황에서도 상황실 윤기윤 합참차장과 참모진들의 관심사는 신중국 국경선 일대에 쏠려 있었다.

며칠 전부터 신중국군의 수상한 움직임을 파악하고 그에 맞은 몇 가지 방안을 수립하여 대처에 들어간 상태였다.

먼저 국경선 일대의 모든 부대에 경계강화 1호를 지시했다. 그리고 후방 지원부대인 제25경갑보병사단(비룡)을 방어구역 내에서 G111 및 S206 도로 등 국경선과 연결된 모든 도로를 차단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더불어 제3기갑사단(백골)은 선안(친황다오)시 후방 50km까지 제1기갑사단(전진)은 진원(링위안)시까지 준전시 체제로 전환하여 전진 배치했다. 이외에도 오선(진저우)를 방어하는 제5구단의 제8기계화보병사단(오뚜기)과 제1군 직할부대인 제11기갑사단(화랑)도 태성(판진)시까지 이동하라는 긴급 명령을 내렸다.

현재 국경선 일대에 전개되는 신중국군의 규모에 비하면 대한민국 국군은 턱없이 모자라는 전력일 순 있으나, 현대전은 눈에 보이는 수적 우세보다는 얼마나 우수한 장비를 보유했느냐가 관건이었다. 그리고 현재는 신중국보다 대체로 2에서 3세대 앞서는 온갖 장비를 보유한 대한민국 국군으로서는 수배에 이른 적 규모라 할지라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가득 차 있었다. 또한, 그 자신감에는 3년 전에 있었던 한중전의 승리도 한몫했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국경선 일대로 전개하는 신중국군의 위세가 장난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에 맞는 대책 방안을 수립해 전개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과도할 정도로 국경선에 신중국군이 몰려들었다.

“아무리 봐도 신중국군의 전개 현황을 보자면 마치 우리나라와 전쟁이라도 치르겠다는 느낌입니다.”

어제와 오늘 신중국군의 전개 현황을 중앙 스크린을 보며 일일이 분석하던 양민춘 중장이 초조했는지 자꾸만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내래! 양 중장과 같은 생각이디, 저놈들 단순한 국경선 강화가 아니야. 당장이라도 국경선을 넘어 진격할 전개가 아니네?”

“차장님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저걸 보고 그리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 않네? 내 생각엔 말이디. 저번 한중전처럼 우리가 선빵을 날리고 확 북경까지 진격했으면 하는구만 기래. 안그네?”

“하하, 만약 러시아와 전쟁을 하지 않고 있다면 저 역시 차장님과 같은 생각을 했을 겁니다.”

“그렇디, 그렇디, 저 웬수 러시아놈들만 아니믄 고민할 것도 없쥐!”

두 장성이 중앙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대화를 하는 동안 누군가 뒤에서 끼어들었다.

“무슨 재미난 얘기라고 하십니까?”

이에 윤기윤 합참의장이 고개를 돌리자 김용현 합참차장이 참모진들과 함께 서 있었다.

“어래? 김 대장! 왜 이렇게 일찍 왔나?”

“일찍 이라니요. 하하 벌써 22시가 다 돼갑니다.”

김용현 합참의장은 자신의 손목시계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시간이 벌써 이리됐네? 시간 참 빠르게 흘러가는구먼 기래”

한러전 발발 후 합동참모본부는 24시간 중앙지휘를 위해 합참의장과 2명의 합참 차장이 8시간씩 3교대 방식으로 근무를 섰다. 중요한 교전이나 회의가 있는 경우에는 모두 참석했지만, 특별한 상황이 아닌 경우에는 3교대 형식으로 쉬어가며 지휘를 맡았다.

“오늘 특별한 건 없었습니까?”

“신중국군의 국경선 전개하고 있는 것 외에는 별다른 건 없습네다.”

윤기윤 합참차장은 PC 태블릿을 건네며 말했다. PC 태블릿에는 8시간 지휘를 맡은 동안 있었던 모든 현황이 담겨있었다.

“네, 그렇군요. 어제보다 상당한 부대가 국경선 일대로 전개가 되었군요.”

건네받은 PC 태블릿으로 특이사항을 체크 한 김용현 합참차장은 인수인계를 했다는 표기로 지문인식기에 검지를 갖다 댔다.

삐빅!

“인계 완료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만 들어가셔 쉬시지요. 양 중장도 수고했네.”

“수고랄게 뭐 있습네까? 야간근무하는 김 대장이 수고해야디요. 하하 그럼 이만 우리는 가보갔습네다.”

“충성! 합참차장님 수고하십쇼.”

윤기윤 합참차장과 함께 근무를 섰던 작전본부장 양민춘 중장이 인사말을 건네며 거수경례를 했다. 이때 상황실 출입문까지 걸어간 윤기윤 합참차장이 고개를 돌리고며 말했다.

“김 대장! 노파심에서 한마디 하갔습네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중국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으니끼니 오늘 밤은 특별히 신경 써야 할 듯합네다. 내래 나이 먹은 늙다리디만 촉 하나만큼은 살아 있디요.”

“네, 각별히 주시하겠습니다.”

“기래요. 수고하시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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