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51화 (451/605)

화근

2023년 12월 25일 11:00,

남주 서울특별시 종로구 외교부 청사(접견실).

외교부 접견실 문이 열리고 비서관의 안내를 받은 중년의 사내가 들어왔다. 그 사내의 잔뜩 긴장했는지 더부룩하게 수염을 기른 얼굴의 표정에는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서 오세요. 오랜만입니다.”

접견실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던 강경희 장관이 특유의 미소를 보이며 반갑게 맞아줬다. 이에 살짝 당황했는지 중년의 사내는 억지스러운 웃음을 보이며 맞인사를 건넸다.

“네. 강 장관님!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그나저나 몸은 괜찮으신지요.”

어정쩡한 자세로 강경희 장관과 악수를 하고 접견 소파에 앉아 안부의 인사를 건네 중년의 사내는 2개월 전, 외교부 오진명 1차관에게 질책을 당하고 추방당했던 주한 이란대사관의 밀라드 이가에이 대사였다.

“네, 지금은 다 나아서 괜찮습니다.”

강경희 장관은 양손을 벌리며 여유롭게 말했다.

“다행입니다. 장관님! 걱정 많이 했습니다.”

진심인지 아니면 인사치레인지 모를 밀라드 이가에이 대사의 말에 강경희 장관은 연신 따뜻한 미소로 화답했다.

“이가에이 대사님 덕분에 빨리 나은 듯합니다.”

이에 양심에 찔리는지 밀라드 이가에이 대사는 땀나는 손을 비비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이렇게 다시 한국으로 올 수 있도록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전 일은······.”

“이가에이 대사님! 과거사는 잠시 접도록 하고 현재 정리할 일에 관해서 얘기 좀 하시죠.”

“아! 그러시죠.

2일 전, 대한민국 외교부로부터 주한 이란 대사를 입국시키라는 연락에 이란 외교부는 즉시 밀라드 이가에이 대사를 파견했다.

이란은 현재 진퇴양난에 빠져 군사적, 경제적으로 매우 곤란한 아니 위기에 빠진 상태였다. 쿠르디스탄 공화국의 독립을 저지하기 위해 러시아로부터 각종 군사 지원을 받으며 대한민국에서 파병한 피스부대와 전면전에 가까운 교전을 펼쳤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연신 패배를 했고, 제12항모전단으로부터 지속적인 폭격과 함대지 순항미사일 공격에 이란 경제의 버팀목이었던 원전지대와 각종 산업시설이 파괴되었다. 이로 인해 이란의 내수경제는 뿌리째 흔들렸고 시간이 흐를수록 경제적 붕괴에 직면하게 되었다.

하물며, 임시로 동맹을 체결했던 이라크 역시 키르쿠크 유전지대를 피스부대에 빼앗긴 후로는 이렇다 할 군사적 행동을 하지 못하고 실질적으로 손을 든 상태였다. 더군다나 러시아 제공했던 최신무기를 다시금 회수 조처를 한 상태라 이란 정부는 더는 피스부대와 전쟁을 이어갈 여력이 없는 게 현실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한민국 외교가 먼저 손을 내밀어 준 것은 이란 정부 측면에서 보자면 현재 위기상황을 모면할 수 있는 희망이었다.

★ ★ ★

2023년 12월 25일 13:00,

남주 서울특별시 용산구 장문로.

차를 타고 관저로 돌아오고 있는 밀라드 이가에이 대사는 한동안 생각 속에 빠져들었다. 그는 외교부 접견실에서 강경희 장관과 2시간 동안 오갔던 대화를 처음부터 떠올리며 하나하나 머릿속에서 정리하고 있었다.

“과연 현재 상황에서 최고 지도자께서 승인할까? 내 생각에는 그리 나쁜 조건은 아니라고 보는데 말이야. 아니지 나쁜 조건이 아니라 무조건 승낙을 해야 해!”

밀라드 이가에이 대사는 생각만 한다는 것이 자기도 모르게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2시간 동안 대화를 하면서 강경희 장관이 내민 제안은 밀라드 이가에이 대사가 생각해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이란이 쿠르디스탄 공화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현재 모든 군사적 행동을 중지한다면, 대한민국 정부는 파괴된 유전시설과 산업시설을 재건할 수 있도록 경제적으로 무상지원하며, 더불어 5년간 연 30조에 달하는 실질적 투자를 하겠다는 제안이었다.

이란이 입은 피해 현황을 금액으로 따져 비교하면 한참 모자랄 수 있는 제안이었지만, 현실적으로 보자면 이란은 생각할 것도 없이 감지덕지하고 제안을 수락할 일이었다.

어느 국가가 자국의 외교부 장관을 암살 시도하고 전쟁까지 치른 상태에서 패전 직전에 몰린 상대국에 이러한 호의적 제안을 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문제는 이란의 실제적 통치자인 모즈타바 호세이니 하메네이 최고 지도자의 결정이었다.

‘어떻게든 최고 지도자를 설득해야 해. 이런 좋은 기회를 날릴 순 없지!’

살짝 걱정이 든 밀라드 이가에이 대사는 운전 보좌관에게 다그치듯 말했다.

“좀 더 밟아! 서둘러 본국에 연락해야겠어.”

한편, 외교부에서 먼저 이란에 이러한 제안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한러전의 연장선이라 볼 수 있는 우크라이나 파병 건 때문이었다.

1개월이면 끝날 거 같았던 러시아와의 전쟁이 전면전 양상의 장기화가 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 파병 건까지 본격적으로 논의되면서 국방부는 파병 전, 선제 조건으로 쿠르디스탄 공화국의 독립전쟁을 조기에 끝내야 한다는 의견을 청와대에 제출했다.

이에 추은희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파병 건을 승인하기에 앞서, 외교부에서 적절한 제안을 제시해 이란과 협상을 진행하라는 지시를 내리게 되었다.

★ ★ ★

2023년 12월 26일 13:30,

남주 서울특별시 용산구 B2 벙커(국군 합동지휘통제소 회의실).

오전에 추은희 대통령으로부터 우크라이나 내전과 관련한 파병안이 정식으로 승인받았다는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합동참모본부는 우크라이나 파병 건에 대한 최종 점검차 회의를 소집했다.

처음 우크라이나 파병 건 얘기가 나온 후 합동참모본부의 작전본부 참모진들은 파병부대 선발 및 내전 개입에 따른 작전 안과 내전 진압 후 러시아 남부에 대한 세부 진공 작전 안까지 수립하느라 어느 때보다 분주한 며칠을 보냈다.

“금일 오전에 이란 정부로부터 정식으로 쿠르디스탄 공화국에 대한 독립을 인정하겠다는 연락이 왔다는군. 이에 대통령님께서 우크라이나 파병 건에 관한 승인을 하셨네.”

브리핑에 앞서 신성용 합참의장은 1시간 전, 강이식 장관으로부터 전해 들은 얘기를 50여 명의 참모진에게 전달했다.

“이라크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 이라크는 진작에 쿠르디스탄 공화국에 대한 독립을 인정한 듯하네. 더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거 같아! 살짝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쉽게 해결된 듯하군, 양 중장! 그럼 브리핑을 시작하지!”

신성용 합참의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시작을 알리자 아까부터 단상 왼쪽에 서 있던 작전본부장 양민춘 중장이 짧은 대답과 함께 거수경례하며 브리핑을 시작했다.

“지금부터 우크라이나 파병 건과 추가로 현재 쿠르디스탄 공화국에 파병된 몇 개 부대에 대해 간략하게 브리핑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양민춘 중장이 브리핑을 시작하자 회의실 중앙 스크린의 화면에 불이 들어오면서 여러 부대 이름이 보였다.

“먼저 우크라이나 내전 및 향후 러시아 남부를 진공할 파병부대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화면을 보신 것처럼 우크라이나에 파병할 1차 부대는 제5해병사단입니다.”

제5해병사단(지룡)은 2021년 11월에 창설한 해병부대로 일본의 대표적인 4개 섬 중 가장 작은 시코쿠 전체를 방어하는 보병체제의 해병부대였다. 작전본부 참모진들은 파병할 부대를 선별하는 과정에서 여러 의견이 있었지만, 끝내 일본 시코쿠를 방어하는 제5해병사단(지룡)으로 결정했다.

현재 북부 만주 내의 국경선 일대에서 러시아군의 추가 지원부대가 속속들이 합류하는 상황이었기에 만주와 한반도에 주둔 중인 부대를 파병부대로 결정할 수는 없었다. 이에 시코쿠를 방어하는 제5해병사단(지룡)으로 결정한 이유였다.

“현재 5해병사단은 3일 전부터 파병을 위한 준비에 들어간 상태이며 적어도 28일까지는 모든 준비를 마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각종 군 수송기를 통해 우크라이나 현지시각 29일 오후 11시에 도네츠크주 바로 옆인 자포리자주의 도크마크 군 비행장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금일 자정을 통해 전쟁물자와 각종 중장비 물자의 수송이 시작될 예정입니다.”

양민춘 중장의 설명에 따라 중앙 스크린에는 금일 밤부터 수송할 군사 장비 목록이 차례대로 보였다.

“제1차 파병부대인 제5해병사단의 주 임무는 우크라이나군과 함께 도네츠크주와 루한스키주의 반군 진압 및 탈환 작전에 치중할 예정입니다. 이어 제2차 파병부대는 3해병기동사단으로서 현재 점령 중인 사할린을 6해병사단의 31해병연대에 인계를 마치는 즉시 파병준비에 들어가 자포리자주의 베르단스크 민간공항으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예상 시점은 적어도 내년 1월 중순 안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거이, 그 먼 거리를 기동사단 전체가 움직이려면 꽤 힘들겠구먼 기래”

윤기윤 합참차장의 질문 아닌 질문에 양민춘 중장은 힘있게 말했다.

“사할린에 대한 인계절차가 완료하는 대로 모든 군 수송기를 총동원해 한 번에 수송할 예정입니다.”

“한 번에 말이네?”

“네, 그렇습니다. 현재 운용 가능한 중형급 이상의 군 수송기 300여 기가 동원될 것입니다.”

“그렇게 움직이면 혹, 러시아 방공망에 걸리지 않캈서?”

“항공 경로는 남쪽으로 크게 우회하여 베트남, 태국, 인도, 등 항공 경로 예정지 국가로부터 사전에 승인을 받을 예정입니다.”

“만에 하나 허락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이번엔 김용현 합참차장이 질문을 던졌다.

“만에 하나 한 국가라도 자국의 영공 통과를 승인하지 않는다면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인도양을 걸쳐 페르시아만으로 항공 경로를 선택할 예정입니다.”

“페르시아만이라면 이후 이라크 상공인데 괜찮겠나?”

“그 부분은 외교부에서 압력을 행사해서라도 승인을 받겠다는 말을 전해왔습니다.”

“알았네. 계속하지!”

“네, 앞서 말했듯이 제2차 파병부대인 3해병기동사단은 적어도 내년 1월 10일까지는 파병을 완료한 후 아조프해 북부 해안을 따라 기동을 시작! 신속하게 도네츠크주를 통과한 후 러시아 남부 지역 중의 하나인 로스토프스카야 오블래스트의 로스토프 온 돈을 점령하는 것을 1차 주 임무로 수행할 것입니다.”

설명을 마친 양민춘 중장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군 장성들과 참모진을 쓱 하니 둘러봤다. 질문이 있으면 받겠다는 의미였다.

“질문 없으면 이어가겠습니다.”

양민춘 중장은 질문이 없자 다시금 설명을 이어갔다.

“3기동해병사단이 도네츠크주를 통과하는 시점, 쿠르디스탄 공화국에 주둔 중인 피스부대 중 제11해병기동여단은 아제르바이잔을 신속하게 통과한 후 빠르게 북으로 기동하여 러시아 다게스탄 자치공화국으로 진공할 예정입니다.”

“아제르바이잔과는 얘기가 된 건가?”

지금까지 묵묵히 설명을 듣고 있던 신성용 합참의장이 질문을 던졌다.

“이 부분 역시 외교부에서 손을 쓰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럼 완전히 결정된 건 아니군!”

“네, 만약 아제르바이잔이 승인하지 않는다면 11해병기동여단이 북으로 기동하지 못한다면 플랜B로 전환할 예정입니다. 플랜B는 11해병기동여단 대신 현재 쿠르디스탄 곳곳에서 경계 임무를 수행 중인 공수육전사단 중 2개 공수육전사단을 다케스탄 자치공화국 주요 도시에 공수로 침투시켜 후방 일대를 흔들 예정입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변수까지 대비해 작전 안에 대한 브리핑은 어느덧 1시간이 흘렀다.

“이상으로 우크라이나 파병 및 내전과 러시아 남부 진공 작전 안에 대한 브리핑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했네.”

양민춘 중장이 거수경례한 후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앉자, 신성용 합참의장이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짧게 노고를 위로했다. 신성용 합참의장을 표정을 봤을 때 나름 만족한다는 느낌이었다.

“감사합니다. 의장님!”

“작본장과 참모들은 회의가 끝나는 대로 집에 가서 내일까지 푹 쉬다가 오게.”

“아닙니다. 상황이 상황인데 고작 3일 동안 잠을 못 잤다고 저희만 집에서 쉴 순 없습니다.”

“허허, 자네만 생각하나? 자네 참모진들 보게나. 다크서클이 볼까지 내려왔네.”

합참의장의 농담에 순간 회의실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하하하, 그렇디, 요 며칠 무리했어야. 내래 말 들어보니 3일 동안 잠도 못 잤다고 하던데말이디. 의장님 말대로 푹 쉬다오라우. 전쟁하려면 체력이 우선이지 안캈서?”

“그럼, 오후에 잠시 쉬다가 내일 일찍 출근하도록 하겠습니다.”

“허허, 고집하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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