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50화 (450/605)

화근

2023년 12월 24일 14:30 (프랑스시각 06:30),

프랑스 파리 샤들드골국제공항.

전날, 방콕 수완나품공항에서 21시발 파리행 직항로 비행기를 타고 이곳 파리 샤들드골국제공황에 도착한 흑호대 전 대장 신바이칭은 가짜 여권으로 입국 심사대를 무사히 통과하고는 지하주차장 쪽으로 내려갔다.

사전에 약속이라도 한 듯 지하주차장 B-3 구역에 도달하자 검은 세단 한 대가 미끄러지듯 다가오더니 신바이칭 앞에 섰다. 그리고는 한 사내가 창문을 반쯤 열고는 마치 친구 대하듯 친근한 어투로 인사를 건넸다.

“오호! 드디어 이렇게 만나는군요. 재키 리입니다. 어서 타시죠.”

조수석에서 건장한 한 사내가 내리더니 이내 뒷문을 열어줬다.

“반갑습니다. 정식으로 인사하지요. 재키 리입니다.”

“신바이칭입니다.”

뒷좌석에 나란히 앉은 두 사내는 정식으로 자신을 소개하며 악수를 했다.

“보안은 문제없겠지요?”

“하하,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누굽니까? 이런 일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혹 지하 주차장에서 다른 사람 보셨습니까?”

“아니요. 보지 못했습니다.”

“그것 보십시오. 개미 새끼 한 마리 접근하지 못하도록 지하 주차장을 통제했습니다. 주차장에 설치된 CC 카메라 역시 우리 보안팀에서 확실히 막아놨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재키 리는 턱을 치켜들며 조금은 거만하게 말했다. 그만큼 전혀 걱정하지 말라는 행동이었다.

“음, 마음에 드는군요.”

신바이칭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재키 리는 슬쩍 실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그 물건은 잘 가져오셨겠지요?”

“그럼요. 잘 가지고 왔습니다.”

“하하, 그래요. 일단 우리 쪽에서 준비한 호텔에서 잠시 쉬다가 본격적인 사업 얘기를 합시다.”

“그럽시다.”

두 사내를 태운 검은 세단은 어느새 지하주차장을 나와서는 파리와 이어진 도로 위를 빠르게 달려나갔다.

★ ★ ★

2023년 12월 24일 16:00 (러시아시각 10:00),

러시아 모스크바 벙커 스테이트 R-08(회의실).

11월 27일 러시아의 대규모 핵전력 투사가 대한민국의 CAMD에 죄다 막혀 요격되고 도리어 보복응징공격에 전력로켓군 전력의 80%가 괴멸되면서 전쟁 양상이 크게 뒤바뀌는 결과에 충격을 받고 쓰러졌던 푸틴 대통령은 한동안 안정을 위한 치료를 받으며 지내왔다.

그리고 2일 전, 신중국으로부터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식이 날아왔다. 그것은 양국이 체결한 상호군사보호조약에 따라 2024년 1월 1일 02시를 기해 대한민국에 대한 신중국의 대대적인 공격을 가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푸틴 대통령이 기다리고 기다렸던 소식이었다. 이에 한동안 전쟁 권한을 총참모부에 위임하고 치료를 받으며 한발 물러섰던 푸틴 대통령이 한 달 만에 스테이트 R-08 회의실에 모습을 보였다.

러시아는 하바로브스키 변경주 전체가 한국군에 넘어갔고 부레야강을 두고 방어선을 구축했던 제35군의 주력군이 제7기동군단에 대패하면서 국경선을 따라 아무르스카야 남단 일대까지 내준 상태였다.

현재 제7기동군단의 진공을 막고 있는 북부 전선 일대의 러시아군 전력은 지난번 부레야강 방어 전투에서 주력군 대부분을 잃은 제35군의 직할부대가 제야강 너머에서 다시금 방어선을 구축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부대 병종이 화력지원이었던 터라 총참모부에서는 긴급히 제36군 전체를 제야강 최후 방어선에 투입한 상황이었다.

국경선에 인접한 블라고베센스크에서부터 북쪽으로 길게 이어진 제야강은 부레야강보다 강폭이 훨씬 넓고 깊은 강으로 방어하는 쪽에서 보자면 매우 유리할 수 있으나, 제7기동군단의 각종 전차와 장갑차의 도하 능력이 상상 이상으로 탁월하여 그리 큰 변수는 될 수 없었다. 또한, 대낮에도 평균 영하 10도까지 내려가는 매우 추운 날씨 때문에 제야강은 수십 톤의 장갑차도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꽁꽁 얼어 있었다.

“어떻게든 한국 기동군단의 진공을 막아야 해! 무조건 제야강 방어선을 사수하게”

오랜만에 이곳 스테이트 R-08 회의실에 참석한 푸틴 대통령은 총참모장으로부터 종합적인 보고를 받던 중 현재 상황에서 제야강 최후 방어선이 중요하다고 생각이 들었는지 질문을 통해 거론했다. 이에 블라디미르 베샤스트니흐 총참모장이 바로 대답했다.

“현재 36군 전체를 제야강 최후 방어선에 투입 시켰습니다.”

“막아낼 수 있겠나? 35군 전력도 50% 이상 잃었다고 하지 않았나?”

푸틴 대통령은 의구심을 품은 눈빛을 보이며 재차 질문했다.

“막아 낼 수 있다고 봅니다. 또한, 전략로켓군의 남은 모든 전력을 이곳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또한, 2항공군과 4항공군도 지원할 예정입니다.”

푸틴 대통령이 제야강 방어선에 이토록 신경을 쓰는 이유는 이랬다. 만에 하나 제7기동군단이 제35군을 격파하고 제야강까지 도하 하여 국경선을 따라 계속해서 진공하게 된다면 러시아로써는 매우 곤란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었다.

서부 국경선 일대에서 대대적인 진공을 준비 중인 제29군의 잔존부대와 지원 온 제41군과 제2군이 신중국이 약속한 2024년 1월 1일 02시를 준하여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하기도 전에 대한민국 제7기동군단에게 측면이 노출되어 공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된다면 신중국군과의 동시다발적인 대규모 공격 작전을 펼칠 수 없게 될 수도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현재 상황에서 제7기동군단의 진공을 막고 있는 제야강 방어선은 매우 중요했다.

“지원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면 제야강 방어선에 추가로 부대를 투입하게”

“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계속해서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푸틴 대통령의 질문에 잠시 브리핑이 지연된 블라디미르 베샤스트니흐 총참모장은 다시금 브리핑을 이어갔다.

“다음은 남부군구와 서부군구의 투입 현황에 대해 보고드리겠습니다.”

블라디미르 베샤스트니흐 총참모장이 다음 보고할 내용을 말하자 대형 스크린 화면이 바뀌었다.

남부군구와 서부군구에 주둔하는 여러 부대의 이동현황이 스크린에 표현되었다. 특히 러시아의 남서부에 위치한 남부군구의 예하부대 이동이 많았다.

“생각보다 남부군구의 부대 차출이 상당하군!”

스크린을 보던 푸틴 대통령이 살짝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에 블라디미르 베샤스트니흐 총참모장은 예상하였다는 듯 바로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남부군구의 제49군 전체와 2개의 철도여단입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통령님!”

“그럼 방안은 있나?”

“네, 제49군과 2개 철도여단 전력을 대신해 현재 이란에 제공한 모든 군사 장비를 다시금 회수 중이며 동원병력을 통해 보충할 예정입니다.”

“그렇게 되면 쿠르디스탄을 통한 한국군 흔들기는?”

“현재 상황에서는 실패했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이란 정부 역시 쿠르디스탄 공화국에 대한 독립을 인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블라디미르 베샤스트니 총참모장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렇다면 쿠르디스탄에 대한 내부 폭탄테러 작전도 실패한 건가?”

“현재 상황에서는 그렇다고 보입니다. 처음엔 쿠르디스탄 내부에서 여러 동요가 발생하긴 했지만, 한국군이 생각 이상으로 잘 대처하는 바람에 현재는 폭탄테러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사전에 발각되는 상황입니다.”

“허허, 암담하군. 암담해! 뭐 하나 되는 일이 없군그래!”

예전 같으면 불호령을 내렸을 푸틴 대통령은 저번에 쓰러진 후에는 건강을 위해서인진 모르겠지만, 한층 침착하게 현재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어쩔 수 없지! 그렇다면 언제쯤 이란에 제공한 장비를 회수하여 보충할 수 있겠나?”

“12월 31일 이전까지는 완료할 예정입니다.”

“더욱 신속하게 진행하게. 혹, 우크라이나 놈들이 이번 기회를 틈타 우리가 지원하는 반군에 총공세를 퍼부을 수 있으니까 말이야.”

“각종 정찰 전력을 총동원해 우크라이나군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파악 중입니다.”

★ ★ ★

2023년 12월 24일 18:00 (신중국시각 17:00),

신중국 북경시 화이러우구 대외정보국 비밀 안가.

유하연 주임의 활약 덕분에 주석실 내부 서버실에서 입수한 귀중한 정보를 가지고 플라즈마 핵심기술의 보관장소는 물론 확실한 폐기를 위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대외정보1과 요원들과 남궁원 과장 일행은 오늘도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현재까지 입수한 정보를 토대로 분석한 내용은 이랬다.

현재 플라즈마 핵심기술은 총장비부라는 국가 부서에서 보관 및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총장비부는 우리나라로 보자면 ADD(국방과학연구소)과 같은 국가 소속의 연구소와 같았다.

이에 남궁원 과장은 총장비부와 관련된 연구소 리스트를 확보하는 데 집중했고 현재까지 12개의 연구소를 알아냈다. 하지만, 대외정보1과 요원들이 비밀리에 침투하여 확인해본 결과 연구소 12개 모두 플라즈마 핵심기술과 관련 없는 일반적인 무기연구소였다.

“나 왔다.”

아침 일찍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나갔던 이자성 과장이 젖은 윗옷을 벗으며 들어왔다. 그리고는 남궁원 과장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어? 왔어? 그런데 밖에 비 오냐?”

“몰랐어? 겨울비인데도 마치 소나기 떨어지듯 한다.”

특수보안과 요원 2명과 함께 온종일 노트북과 씨름한 남궁원이었기에 밖에 비 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수고했다. 얼른 씻어라!”

“오냐! 샤워 좀 하고 올게! 크리스마스이브 날에 눈도 아니고 비가 뭐냐 대체!”

이자성 과장이 투덜거리며 자신의 방으로 걸어가자 옆에서 묵묵히 노트북 화면을 보며 작업하던 김영균 주임이 순간 동작을 멈추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 오늘이 크리스마스이브 날이었구나. 아! 젊은 청춘 이브 날에 방구석에 박혀 노트북만 치고 있으니······. 불쌍하다 불쌍해~”

“얏 마! 지금 크리스마스이브가 중요해? 국가 운명이 달린 임무를 수행하는 놈이!”

선임인 나성현 대리가 슬쩍 눈을 흘기며 질타했다.

“말이 그렇다는 거 아닙니까? 남궁 과장님! 안 그렇습니까?”

선임의 불편한 시선을 회피하듯 고개를 돌려 남궁원 과장을 바라본 김영균 주임, 이에 남궁원도 슬픈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게! 나도 오늘이 이브 날인 걸 몰랐네.”

이브 날이란 말에 곧바로 이혜진 과장이 생각난 남궁원 과장은 스마트폰을 꺼내 작년 크리스마스이브 날에 찍었던 사진을 봤다.

“오! 여기 어딥니까? 멋진데요.”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남궁원 과장의 스마트폰을 본 김영균 주임이 싱글벙글하며 물었다.

“여기? 아마 백두 스키장일걸.”

“워! 거기도 가보셨습니까?”

백두 스키장은 2018년 백두산 아래쪽에 건설한 대한민국 최고시설을 갖춘 스키장이었다. 고지대와 날씨 덕분에 일 년 중 6개월간 운용하고 백두산에서 흘러나오는 특유의 온천시설까지 갖춰져 있어서 국내는 물론 외국 관광객에게 유명한 장소 중의 하나였다.

“특별한 장소를 찾다가 거기에 갔지!”

“와! 이브 날이었으면 꽤 비쌌을 텐데요.”

“2박 3일 동안 한 300만 원 들었을걸!”

“워! 월급의 반이네요.”

김영균 주임이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절레거렸다.

“마! 넌 왜 과장님 개인사에 그리 관심이 많냐?”

“많은 게 아니고 그냥 궁금하니까 물어본 거지 말입니다.”

“시끄럽고 일이나 해!”

“에잇! 네네, 알겠습니다.”

계속되는 나성현 대리의 꾸지람에 입술을 내민 김영균 주임이 다시금 노트북의 키보드를 두드리려 하자 남궁원 과장이 일어서며 말했다.

“오늘 이브 날이기도 하니까 오늘은 야근하지 말자!”

“정말입니까?”

김영균 주임이 순간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

“그래! 타국에 와서 이브 날까지 이렇게 방구석에 박혀서 일만 하면 신세 처량할 테니 오늘은 기분 좀 내자!”

“오예스!”

“과장님! 그래도 되겠습니까?”

나성현 대리가 조금 걱정되는 표정으로 물었다.

“하루도 아니고 야근만 쉬자는데 뭘 그리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냐? 그리고 이거 봐!”

남궁원 과장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노트북 화면을 가리켰다.

“헉! 이건!”

“그래! 총장비부 소속의 비밀 연구소 같아!”

“와! 찾아내셨네요?”

“확실치는 않지만, 냄새가 나는 거 같아! 그러니까 오늘 밤은 야근하지 말고 편히 쉬면서 놀자고”

“오케입니다. 하하”

김영균 주임이 자신의 노트북을 닫고는 양손을 벌리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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