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49화 (449/605)

화근

“꼼짝 마! 손들어!”

신속하게 우회하여 수상한 자들 바로 앞까지 도달한 김성호 상병이 총구를 지향하고는 소리쳤다.

이에 담벼락에 웅크리고 뭔가를 하던 이들은 깜짝 놀라며 김성호 상병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야야! 너희들 정체가 뭐야?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손들고 일어나! 곽 일병! 이 새끼들 수상한 짓 하면 바로 쏴버려!”

“네, 알겠습니다.”

수상한 자들은 알아듣지 못할 한국말이었지만 현재 돌아가는 상황이 어떤지를 파악했는지 엉거주춤한 자세로 손을 들었다.

“스캔해봐!”

김성호 상병의 지시에 곽영환 일병이 실드글라스의 비전 모드를 변경해 손든 자들을 스캔했다.

“어라! 이 새끼들 옷 안에 폭, 폭탄이 있는데요?”

“폭탄?”

“네, 온몸에 둘렀습니다. 정형적인 폭탄 조끼를 입은 거 같은데요? 이거 어찌합니까?”

긴장했는지 곽영환 일병의 목소리가 떨렸다. 열흘 가까이 이곳에서 보안유지 활동을 했지만, 막상 폭탄테러 분자들과 마주치니 당혹감이 상당했다.

“뭘 어째! 제압해야지!”

“그러다가 저놈들 확 터뜨리면 어찌합니까?”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말고 눈 부릅뜨고 지켜봐!”

이때 왼쪽으로 우회했던 이진태 병장과 윤호진 이병이 합류했다. 사격 자세를 취하고 다가온 부분대장 이진태 병장이 물었다.

“뭐야? 이놈들!”

“저놈들 폭탄테러 분자들 같습니다. 옷 속에 폭탄 조끼 확인했습니다.”

김성호 상병이 현재 상황을 보고했다. 이에 이진태 병장이 슬금슬금 폭탄테러 분자들에게 다가가며 일갈했다.

“하~ 이런 촌 동네에서 뭘 터뜨릴 게 있다고 여기까지 기어왔어. 이 자식들은······.”

이때 엉거주춤한 자세로 손을 들고 있던 폭탄테러 분자 중 한 명이 자신의 윗옷을 확 하니 젖혔다. 그러자 녹색 조끼에 선으로 연결된 급조폭탄들이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이에 흠칫 놀란 이진태 병장이 발걸음을 멈췄다.

“뭐야! 이 새끼들 뭐! 터뜨리겠다는 거야. 뭐야? 이 병장님! 그냥 동시에 사격해서 대갈통 날려버리죠.”

김상호 상병이 윗옷을 젖힌 사내의 얼굴에 총구를 지향하며 소리쳤다. 이에 이진태 병장은 급히 손바닥을 펴 보이며 제지하는 동작을 취했다.

“기, 기다려봐! 순간 잘못하면 이 일대가 다 날아가!”

이진태 병장은 건너편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오전에 초콜릿을 달라고 매달렸던 이 마을 아이들이었다. 만에 하나 폭탄이 터진다면 자칫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이 다칠 수 있었다.

이렇게 잠시간 긴장감이 팽팽해지며 침묵의 대치가 이어지는 가운데, 놀이터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이 한국 군인을 보고는 오전처럼 또다시 초콜릿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아무 생각 없이 환호성을 지르며 뛰어오기 시작했다.

“이런 엿 됐다. 아이들 이쪽으로 못 오게 막아!”

이진태 병장의 지시에 윤호진 이병과 곽영환 일병이 잽싸게 놀이터 쪽으로 달려가 아이들을 막아섰다.

“아저씨 초콜릿 주세요. 먹을 거 주세요.”

“애들아! 저쪽으로 가며 줄 테니까 아저씨 따라와 알았지?”

급한 나머지 곽영환 일병은 거짓말로 아이들을 놀이터 넘어 안전한 곳으로 유인해 갔다. 그러는 사이 폭탄 조끼를 보여줬던 테러분자는 슬쩍 눈치를 살피고는 폭탄 격발기를 흔들어 보였다. 그리고는 천천히 뒷걸음을 치기 시작했다. 이에 다른 한 명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 뒤를 따랐다.

“움직이지 마! 개자식들아!”

이진태 병장의 고함에도 불구하고 테러분자들은 계속해서 뒷걸음을 치더니 이내 약속이라도 한 듯 양쪽으로 갈라져 뛰었다.

“쏩니까? 이 병장님!”

다급히 물어보는 김성호 상병의 말에 이진태 병장은 아이들이 폭탄 위험지대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확인하고는 바로 대답했다.

“쏴! 왼쪽으로 튀는 놈은 내가 맡을 테니까. 오른쪽으로 튀는 놈은 네가 맡아!”

쭈웅! 쭈웅!

두 발의 가벼운 레이저 빔 발사음이 울렸다.

이진태 병장이 쏜 레이저 빔은 도망가던 테러분자의 머리통을 제대로 꿰뚫었다. 하지만 김성호 상병이 레이저를 쏘는 순간 몰아친 모래바람에 조준점이 흩트려지고 말았다.

붉은빛의 레이저 빔이 테러분자의 귓불을 스치며 빗나갔다.

“아! 제길! 빗나갔습니다.”

나름의 특등사수라 자부하던 김성호 상병은 중요한 순간에 맞추지 못하자 그대로 몸을 날려 담벼락 뒤로 모습을 감춘 테러분자를 쫓기 시작했다.

- 그 새끼 튄 방향에 학교가 있어! 왠지 목표가 학교 같으니 무조건 학교로 들어가기 전에 해결해야 해! 안 그럼 학생들 피해가 커질 수 있어!

뒤통수에서부터 이마까지 레이저에 뚫려 쓰러진 테러분자의 상태를 확인 한, 이진태 병장이 귀청이 찢어질 정도의 큰소리로 통신을 보내왔다.

“네,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대답과 동시에 이를 악물고 뛴 김성호 상병은 인버터 비전 모드로 건물들을 투시해 도망가는 폭탄테러 분자를 뒤쫓았다. 이진태 병장 말대로 폭탄테러 분자는 학교 쪽으로 죽어라 달리고 있었다.

“개자식! 목표물이 학교였어? 아무 죄도 없는 아이들을 죽이려고? 그렇게는 안됐다. 개자식아~”

기억자 골목을 돌아 테러분자의 뒷모습을 확보한 김성호 상병은 그대로 몸을 날려 연발로 레이저 빛을 날렸다.

쭈웅쭈웅쭈웅쭈웅쭈웅~

바닥에 뒹굴 때까지 레이저 빔을 날린 김성호 상병이 둔탁하게 한 바퀴를 구르고 다시금 사격 자세를 취하며 레이저 빔을 쏘려고 했으나 이내 멈췄다.

폭탄테러 분자는 여러 발의 레이저 빔에 머리통이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길바닥에 미동도 없이 쓰러져 있었다.

“휴! 잡았습니다. 분대장님!”

- 피해 본 사람들은 없지?

“네,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해치웠습니다.”

- 오케이! 나는 이놈 폭탄 조끼 해체하고 바로 그쪽으로 갈 테니 김 상병도 그놈 폭탄 조끼 조심히 해체해!

“알겠습니다.”

통신을 끝낸 김성호 상병은 조심스럽게 쓰러져 있는 폭탄테러 분자에게 다가갔다. 머리통은 완전히 피떡이 되어 뇌수와 피가 쏟아져 내린 상태였다. 이에 김성호 상병은 주렁주렁 달린 폭탄 조끼를 조심스럽게 벗겨냈다.

★ ★ ★

2023년 12월 22일 15:00 (신중국시각 14:00),

신중국 베이징 공산당 당사(주석실 대회의실).

플라즈마 증폭탄 개발에 착수했던 총장비부의 수장인 푸디후차오가 10여 일만에 공산당 당사를 방문하여 회의실에서 고위관료들과 함께 앉아있는 왕징위 주석에게 그동안 플라즈마 폭탄에 대한 개발 현황을 보고했다.

“수고했네, 수고했어!”

왕징위 주석은 보고를 다 듣고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아닙니다. 주석님께서 대폭적인 지원을 해주셔서 기간 내에 이 정도 성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푸디후차오 부장은 대단한 성과를 냈음에도 겸손한 말투로 대답했다.

“하하, 어쨌든 수고했네. 그럼 실전에 사용할 수 있는 플라즈마 폭탄은 언제쯤 볼 수 있는가?”

“앞으로 3일 후면 20kt급 플라즈마 폭탄 10개가 완성됩니다. 하지만, 실제로 폭발 실험을 하지 못해 100% 성능을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시면 실제 폭발 실험까지 걸쳐 미미한 부분까지 수정하여 개발을 완료하겠습니다.”

“음, 그러기엔 러시아 놈들이 하도 떼를 써서 말이야. 어제도 푸틴한테 전화가 와서 개 난리를 쳤단 말이지. 일단 20kt급 폭탄 10개는 계획했던 대로 3일까지 완성하여 국방부에 인계하게.”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말이야. 1Mt급 이상의 위력을 가진 플라즈마 폭탄도 개발할 수 있겠는가? 앞으로 1개월 내로 말이야.”

“그건, 어렵습니다. 주석님!”

“그럼 얼마나 더 걸리지?”

“적어도 2개월 이상은 걸릴 것으로 생각됩니다.”

“2개월이라······.”

왕징위 주석은 잠시 고민을 하드는 듯하더니 이내 말했다.

“좋아! 1Mt급은 차츰 개발하도록 하고 일단 20kt급부터 생산량을 늘려나가게. 인원, 돈 뭐든지 말만 하게 무조건 지원할 테니까 말이야.”

“알겠습니다.”

푸디후차오 총장비부장은 바닥에 머리가 닿을 정도로 깊숙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푸디후차오 부장! 자네의 공은 절대 잊지 않겠네. 이제야 저 빌어먹을 한국놈들을 죄다 동북 삼성에서 쫓아낼 수 있고 다시금 중국을 하나로 통일할 수 있게 되었어. 하하하”

플라즈마 폭탄 개발을 완성했다는 소식하나에 왕징위 주석은 세상 모든 건 가진 듯 주석실이 떠나갈 정도로 박장대소를 했다.

하지만 푸디후차오 부장의 표정은 왕징위 주석이 좋아하는 만큼 어두워졌다. 사실 시간에 쫓겨 20kt급 플라즈마 폭탄을 완성하긴 했지만, 개발 총책임자인 그조차 플라즈마 폭탄의 성능을 장담하지 못했다. 한마디로 최종 검수를 하지 못한 미완성 폭탄과 같았다.

예전 한때 중국 제품 중에 생각 이상으로 품질이 좋아 대륙의 실수라며 조롱 아닌 조롱으로 칭찬을 받던 제품들이 있었지만, 플라즈마 폭탄은 그런 기대를 할 수 있는 일반 제품이 아니었다. 최첨단 기술 중에서도 최첨단 기술이 접목된 무기로 완벽하지 않으면 절대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무기가 아니었다.

이런 불편한 사실을 숨기고 순간 모면을 위해 미완성의 플라즈마 폭탄을 개발 완성했다고 보고한 푸디후차오 부장은 앉아있는 현재 자리가 마치 가시방석과 같았다. 이에 눈치를 보고 있다가 한마디 던졌다.

“주석님! 저는 보고를 마쳤으니 이만 총장비부로 돌아갔으면 합니다. 아직 확인해야 할 일들이 많아서 말입니다.”

“아! 그렇지! 그렇지! 미안하네. 바쁜 자네를 이렇게 잡아둘 순 없지! 어서 가서 하던 일을 계속하게나”

“그럼 이만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푸디후차오 부장이 나가자 왕징위 주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기다란 회의 탁자를 양손으로 짚고는 연설하듯 큰 소리로 말했다.

“이제 우리 신중국도 핵폭탄을 뛰어넘는 플라즈마 폭탄을 10개나 보유하게 된 이상! 동북 삼성 수복은 물론 지난 중한전의 패배를 만회해야 할 때라고 봅니다. 이에 장예흥 국방부장은 동북 삼성은 물론 한반도 진공까지 포함한 작전 안을 수립해 보고하고 리바우둥 외교부장은 즉시 러시아에 연락해 동북 삼성에 대한 우리 신중국의 대공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하시오.”

“네, 알겠습니다. 주석님”

“네,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두 부장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자 왕징위 주석은 한층 더 강한 어조로 회의실이 떠나가도록 말했다.

“한국을 괴멸시킨 후에는 우리 신중국이 다시금 대륙 통일을 이룰 것이오. 돈에 눈이 먼, 동방공화국이나 우리 공산당 체제를 배신하고 민주주의에 물든 중화민국을 섬멸해야지 않겠소?”

“맞습니다. 주석님!”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대륙 통일 신중국 통일”

고위관료들은 저마다 아부성 발언을 외치며 손뼉까지 쳤다.

★ ★ ★

2023년 12월 23일 18:20 (태국시각 16:20),

태국 방콕 수완나품 공항.

짧은 머리에 짙은 선글라스를 쓴 한 사내가 은밀히 주변을 살피며 입국 심사대로 걸어갔다. 그는 흑호대 전 대장인 신바이칭이었다.

왕징위 주석으로부터 퇴직금 명목으로 받은 돈과 그동안 모았던 모든 돈을 스위스 계좌에 이체한 후 어젯밤 가짜 신분증으로 비밀리에 태국의 수도인 방콕에 숨어들어온 신바이칭은 수완나품 공황에서 파리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막 입국 심사대를 통과하고 있었다.

“대장님! 표적 토룡! 막 입국 심사대를 통과했습니다.”

- 그래? 수고했어. 다들 철수해! 이후는 파리에 있는 또 다른 팀이 알아서 할 거야.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는 북경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기둥 뒤편에서 짧게 통화를 마친 사내는 주변에 있는 다른 부하들에게 손짓으로 철수 명령을 내렸다.

이 사내는 댜오이난 대장의 심복 중의 심복인 흑호대 12팀 류진 팀장으로 그는 부하들과 줄곧 신중국에서부터 이곳 방콕 수완나품 공황까지 신바이칭을 몰래 따라붙어 감시해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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