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근
2023년 12월 21일 16:00 (쿠르디스탄시각 10:00),
쿠르디스탄 공화국 서아제르바이잔주 휴센아바드(3기계화보병중대 주둔지).
11월 16일, 이틀간 치열한 교전을 통해 카라치야덴 점령에 성공한 75기계화보병대대는 이후 주변 일대의 크고 작은 마을을 차례대로 점령에 들어갔고 끝내 12월 11일 이란군을 서아제르바이잔주 밖으로 밀어내는 데 성공했으나 그렇다고 종전이 된 건 아니었다.
현재 75기계화보병대대와 쿠르디스탄 공화국의 제3수비사단 소속 55수비대는 서아제르바이잔주와 동아제르바이잔주의 북부 주 경계선을 두고 대치 중이었다. 특히 75기계화보병대대 중 3기계화보병중대는 주 경계선으로부터 서단 13km 떨어진 휴센아바드라는 마을을 전초기지로 삼아 최전방 경계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휴센아바드라 마을은 한때 200여 명이 거주하는 마을로 주민은 대부분 쿠르드족 출신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에 쿠르디스탄 공화국의 독립전쟁이 시작되자 남자들은 쿠르디스탄 수비대에 지원했고 노인과 여자, 그리고 아이들은 안전한 곳으로 피난을 갔다가 얼마 전, 3기계화보병중대가 휴센아바드를 완전히 점령하자, 피난 간 주민들은 하나둘 고향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대부분 노인과 여성, 그리고 아이들이었지만, 휴센아바드라 마을은 조금씩 활기를 띠었다. 일부 건물과 공공시설물들이 전쟁의 화마에 폐허가 되긴 했지만, 마을 주민들은 일심단결하여 복구작업에 들어갔고 피스부대의 공병부대에서도 각종 중장비를 지원하여 복구작업을 도왔다. 이에 휴센아바드 마을은 차쯤 옛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전쟁의 상흔에 삶의 터전이 폐허가 되고 사랑하는 가족이 죽는 슬픔을 겪은 주민들이었지만, 주민들의 얼굴은 항상 환한 미소가 가득했다. 그것은 수 세기 동안 외세의 힘에 눌려 타국의 영토가 되어버린 땅에서 최하층 대접을 받으며 빈곤한 삶을 살아가던 그들에게 쿠르디스탄 공화국의 독립은 그 어떠한 것보다 기쁘고 행복한 일이었다.
쿠르르르릉! 쿠르르르릉!
아침 일찍부터 주민들이 복구작업에 들어간 가운데 마을을 가로지르는 코이-마쿠도로 건너편에서 현무 장갑차 4대가 거친 엔진음을 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은 3기계화보병중대의 주둔지로 오른쪽은 역 C자형의 구릉지가 길게 형성되어 있어서 이란군의 각종 포격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천연요새와 같은 곳이었다.
도로에 진입한 현무 장갑차들은 주 경계선 일대의 정찰 및 마을 치안유지 임무를 위해 나온 1정찰소대 소속의 장갑차들이었다.
- 여기는 찐옥수수, 불량감자는 광장으로 이동해 마을 치안유지 임무를 수행하도록
“여기는 불량감자! 확인!”
도로를 따라 기동하던 중 소대장으로부터 명령을 하달받은 312호 장갑차가 행렬에서 이탈해 마을 광장 쪽으로 기수를 돌렸다. 그리고는 이내 광장에 도착하자 후방 채치가 열렸고 2분대 대원들이 하나둘 사주경계를 펼치며 하차했다.
“와!”
순간, 놀이터에서 놀고 있던 마을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하차한 2분대 대원들을 둘러싸고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아저씨! 초콜릿! 사탕 주세요.”
알아듣지 못할 쿠르만주어로 외치는 꼬마들, 2분대 대원들의 손을 벌리며 달라붙는 아이들 때문에 움직이지도 못하자 일제히 곽영환 일병에게 눈을 돌렸다. 곽영환 일병 역시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채로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외쳤다.
“야야! 애들아! 저번에 나눠준 게 다야. 더는 없어! 그리고 오늘은 임무 때문에 나온 거니 다음에 줄 테니까 다들 비켜! 다친다. 어서!”
하지만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초콜릿과 사탕을 달라는 표정을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없다고 애들아!”
지난 마쿠 교전에서 상처를 입고 피스부대 본부로 후송을 간 후 한 달간 치료를 받고 13일에 복귀한 곽영환 일병은 그동안 의료대대에서 모았던 초콜릿과 사탕을 이곳 마을 아이들에게 나눠준 적이 있었다. 그날 이후 마을 아이들은 곽영환 일병이나 3기계화보병중대 군인들만 보면 이렇게 손을 내밀려 달려들곤 했다.
“저 자식 때문에 우리까지 골치 아프다니까.”
김성호 상병 역시 아이들로부터 둘러싸인 채 꿈쩍도 못 하는 상황이 되자 곽영환 일병을 째려봤다.
“아! 이럴 줄 알았겠습니까? 그냥 귀엽고 예쁘고 해서 가지고 있던 거 준거뿐인데. 정말 김 상병님은 이곳 땅처럼 왜 이렇게 마음이 척박합니까?.”
“뭐! 척박해?”
“부상에서 돌아온 후임 좀 예뻐해 주시지 말입니다.”
“아나! 저게 병원 밥 먹고 오더만, 선임한테 엉기네? 확 빠져서리”
이때 구원투수가 등장했다.
“애들아! 이리들 와라!”
어느새 장갑차에서 내린 312호 단차장인 고기준 중사가 종이상자에서 자유시간 초코바를 잔뜩 꺼내 흔들자 아이들이 그쪽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와!”
“애들아! 천천히! 그러다 다친다. 다 나눠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언제 준비해왔는지 고기준 중사가 초코바를 나눠주는 바람에 아이들로부터 자유로워진 2분대 대원들은 분대장의 지시에 따라 본격적인 마을 치안유지를 임무에 들어가기 위해 분대장과 부분대장 2개 조로 나뉘어 각자 루트로 발걸음을 옮겼다.
12월 1일 이곳 쿠르디스탄 공화국에 도착한 4개의 공수육전사단의 병력은 교전 지역을 제외한 200여 개의 크고 작은 도시로 긴급 파견되어 본격적인 치안유지 임무에 들어갔고 더불어 신분정보 칩까지 쿠르디스탄 공화국의 모든 국민에게 이식되면서 폭탄 테러범들에 대한 사전 검거율이 크게 높아졌다. 이에 하루에 서너 번씩 일어났던 공화국 내 폭탄 테러는 확연히 줄어들긴 했으나 도시 같은 경우는 아직까지 폭탄 테러 위험에서 벗어나진 못했다.
“꼼꼼히 살피고 혹, 수상자 자 발견 시 바로 제압하도록!”
분대장 홍한호 병장의 마지막 지시를 뒤로하고 마을 위쪽으로 이동하는 부분대장조는 사주경계를 펼치며 곳곳에서 복구작업을 하는 주민들을 하나하나 스캔해 나갔다.
띠딕! 띠딕!
실드글라스를 통해 스캔을 할 때마다 신분정보 칩을 이식한 주민들은 작은 신호음과 함께 녹색 점으로 표기되어 쉽고 간단하게 피아식별할 수 있었다.
현재 쿠르디스탄 공화국의 대통령은 공화국으로 선포한 모든 영토에서 외국인에 대한 추방 명령이 떨어진 상태로 영토 내 거주자는 무조건 체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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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21일 17:00
남주 서울특별시 용산구 B2 벙커(국군 합동지휘통제소 회의실).
외교부 귀빈접견실에서 2시간 회의를 하고 돌아온 신성용 합참의장은 고위 참모진만 즉시 소집했다. 그리고는 신성용 합참의장이 직접 각 군 참모총장과 10여 명의 고위 참모진 앞에서 외교부 접견실에서 있었던 우크라이나 국방부 장관과의 회의 내용을 가지고 간략한 설명 시간을 가졌다. 10여 분, 핵심적인 부분에 대한 설명을 마치고 신성용 합참의장이 자리로 돌아가자 김용현 합참차장이 첫 질문을 했다.
“대통령님께서 정식적으로 승인을 하셨습니까?”
“음, 아직이네. 하지만 강 장관님 말을 전하자면, 심사숙고하시고 계시다는군, 또한 그런 자리를 만들었다면, 승인은 시간문제라고 보네.”
“의장님! 우크라이나 내전까지 개입하는 게 과연 우리나라에 도움이 되는지 의구심이 드는군요.”
김용현 합참차장의 부정적인 의견에 외교부에 함께 갔던 전략기획본부장 이훈상 중장이 대신 대답했다.
“합참차장님! 우크라이나 내전 개입은 한러전의 연장선으로 봐야 할 듯합니다. 오전, 해외정찰국의 정찰 보고에 나왔듯이 러시아군은 동부전선을 방어하기 위해 남부군구의 철도여단은 물론 49군까지 동원한 상태입니다. 즉, 우크라이나의 내전에 깊숙이 개입했던 49군마저 동원에 들어갔다는 건, 시베리아로 진공하는 우리 군을 어떻게든 총동원하여 막아내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걸 누가 모르나? 그렇다고 해도 미국이나 유럽마저 손 놓은 우크라이나 내전까지 개입하는 건, 아니라 보는 거네.”
“우크라이나 내전은 말이 내전이지 실제로는 반군을 막후에서 지원하는 러시아의 대리전이라 볼 수 있습니다. 현재 러시아와 전면전을 치르고 있는 대한민국으로서는 우크라이나 내전 개입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훈상 중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윤기윤 합참차장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렇디! 그렇디! 사실적으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전쟁이디요. 이번 기회에 우크라이나를 도와 내전을 종식 시키고 아예 남부 지역까지 점령해버리는 건 어떻겠습네까?”
윤기윤 합참차장의 지원사격에 이훈상 중장은 한층 더 목소리에 힘을 주고 설명을 이어갔다.
“그렇습니다. 윤 합참차장님의 말씀대로 현재 우크라이나 반군이 점령한 도네츠크주와 루한스카주를 탈환하고 볼고르라드스카야까지 치고 나간다면, 러시아는 동부전선에만 집중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러시아와의 전쟁이 끝날 때까지 우크라이나 모든 영토에 대한 우리 군의 사용을 승인하겠다는 약속도 하였습니다. 우크라이나 국경선에서 모스크바까지는 480km밖에 되지 않습니다.”
계속되는 이훈상 중장의 말에 일부 수긍이 되었는지 반대 의견을 냈던 김용현 합참차장은 한발 물러난 질문을 던졌다.
“음, 그런가? 그렇다면 우리 군이 우크라이나에서 교전할 여력이 될까?”
“그 부분은 앞으로 회의를 통해 결정할 부분이라 생각합니다만, 2개 기계화사단 정도면 충분히 우크라이나의 내전을 끝내고 더불어 볼고그라드스카야까지 진공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단, 현재 오만만에 있는 제12항모전단이 페르시아만으로 이동해 실시간으로 화력지원을 해준다는 전해하에 말입니다.”
이훈상 중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신성용 합참의장이 나름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하, 이 중장이 돌아오는 동안 많은 생각을 했군. 나 역시 우크라이나 내전 개입은 어떻게 보면 러시아의 목줄을 잡는 기회라고 생각이 들었네.”
“기렇구만요. 오전에 의장님께서 러시아의 자충수가 될 거라고 한 말이 이것을 두고 한 말이 아니었습네까?”
“하하, 사실 오전은 짐작으로 말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군요. 자! 자세한 부분은 앞으로 작전본부장과 함께 작전 안을 수립하는 것으로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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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21일 18:00 (쿠르디스탄시각 12:00),
쿠르디스탄 공화국 서아제르바이잔주 휴센아바드.
2시간 동안 휴센아바드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치안유지 임무를 수행 중이던 부분대장조는 무선통신을 통해 분대장의 집결 명령이 떨어지자 장갑차가 대기하고 있는 광장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곽 일병아! 오늘 점심 메뉴가 뭐래?”
점심 먹을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 김성호 상병이 단짝이자 맞후임인 곽영환 일병에게 물었다.
“김 상병님! 제가 그런 거 외우고 다닐 짬밥입니까?”
“와! 이 자식 봐라! 이젠 완전히 간이 배 밖으로 나왔네. 나왔어. 확!”
“야! 너희들 정신 안 차려? 아직 임무 중이야.”
앞서가던 부분대장 이진태 병장이 고개를 돌려 눈을 흘겼다. 이에 방금까지 티격태격하던 둘은 서로 간 얼굴을 맞대고는 귓속말로 주고받았다.
“아! 빡빡맨 아니랄까 봐 정말 빡빡하다. 안 그러냐?”
“그렇게 말입니다. 아마도 제대할 때까지 저리 빡빡할 겁니다.”
“킥킥, 내 말이! 아후! 빡빡맨!”
그때, 맨 뒤에서 따라가던 분대 막내인 윤호진 이병이 3시 방향 쪽을 유심히 보고는 다급히 소리쳤다.
“이 병장님! 3시 방향! 거리 80m 놀이터 뒤쪽 담벼락에 수상한 자 발견했습니다.”
“확실해?”
“네, 옆에 있는 건물에서 나와 담벼락으로 막 사라지는 놈들인데 분명 녹색 점으로 표기되지 않았습니다.”
윤호진 이병의 추가 설명에 부분대장 이진태 병장은 즉시 실드글라스를 인버터 모드로 전환해 놀이터 뒤편 담벼락을 확인했다.
띠딕! 띠딕!
담벼락 너머에 숨어있는 듯한 자세를 취한 2개의 인형이 뚜렷하게 확인되자 부분대장 이진태 병장은 즉각 지시를 내렸다.
“김 상병과 곽 일병은 5시 방향으로 각 잡고 접근하고 나랑 윤 이병은 12시 방향으로 접근한다. 앞에 노는 아이들 있으니까 되도록 조심스럽게 접근해!”
“네, 알겠습니다. 곽 일병아 가자!”
김성호 상병이 30mm 스마트 유탄기가 장착된 CS-2 레이저 라이플을 지향하며 오른쪽으로 우회하며 앞으로 뛰어가자 곽영환 일병도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