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근
2023년 12월 21일 10:00
남주 서울특별시 용산구 B2 벙커(국군 합동지휘통제소 회의실).
18일 부레야강을 도하하고 제35군의 주력 방어부대를 격멸시킨 제7기동군단은 임시 숙영지에서 하루 동안 정비 시간을 가졌고 현지시각 20일 오전 9시에 본격적인 주변 일대의 도시 점령 작전에 들어갔다.
제77기계화보병사단(극진)은 주력 방어부대의 보급기지였던 바자틴스크으로 진공했고 수도기갑사단(맹호는) 여단별로 부레야강을 따라 형성된 노보부레이스키, 부레야, 프라그레, 스로이키, 레이치킨스크 등을 점령해 나갔다.
또한, 제20기갑사단(결전)은 자바틴스크로부터 북서단 110km 떨어진 벨로고르스크으로 빠르게 진공했다.
부레야강을 끼고 지리적으로 유리한 상황에서도 도하 방어부대가 도리어 괴멸에 가까운 큰 피해를 보자 제35군 사령부는 큰 충격에 빠지고 말았다. 주력 중의 주력군인 제21친위전차사단, 제67차량화소총병사단, 제265차량화소총병사단, 제266차량화소총병사단, 제128기관총포병사단이 괴멸되어 이제 직접적 교전에 투입될 수 있는 전투부대는 직할부대 중에서는 1차 방어작전에 투입되었다가 살아 돌아온 제364독립헬기연대 소속의 MI-28 하보크 공격헬기 18기뿐이었다.
나머지는 간접적 화력을 지원하는 포병연대와 2개의 로켓여단이 다였다. 예하부대 역시 다르지 않았다. 제164친위방공로켓연대를 제외하고 직접적 교전에 참여할 수 있는 부대는 제2친위전차연대과 제371전차연대, 제192차량화소총병사단뿐이었다.
장비의 우수성을 배제하더라도 제35군의 남은 전력은 제7기동군단과 표면적 숫자에서도 한참 밀리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이에 제35군 사령부는 벨로고르스크와 스보보드니 사이로 흐르는 제야강을 최후 방어선로 설정하고 모든 부대를 강 너머 곳곳에 주둔시켜 임시 진지를 구축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또한, 1차 방어작전에 참여했던 패잔 병력과 주변 일대 도시에서 동원사단을 편제해 조금이나마 부족한 전력을 보충했다.
이렇듯 제35군의 모든 전력이 제야강 너머로 이동한 상황에서 그 어떠한 적도 없는 설원지대에는 제20기갑사단(결전)이 마치 질풍노도처럼 야지에서 낼 수 있는 최고속도로 기동하며 벨로고르스크로 향했다.
가끔 선봉으로 기동하는 사단 직할 수색기갑대대에 대전차유도탄병들이 나타나 간헐적인 공격을 해왔지만, 강력한 제압사격으로 제거하며 나아갔다.
3년 전에 있었던 한중전 당시의 만주 진공 작전보다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는 이번 시베리아 점령 작전 성과에 합동참모본부의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좋았다.
블라디보스토크를 시작으로 연해주 일대와 추미칸, 그리고 부레야강 도하 작전에 이어 자비틴스크와 주변 일대의 도시들을 점령하는 동안 단 한 명의 전사자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부분이 매우 고무적이었다.
부상자는 여럿 발생했지만, 상대적으로 47,000여 명의 전사자와 80,000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한 러시아군과 비교하자면 하늘과 땅 차이였다.
연이어 이어지는 나름 만족할만한 성과에 아침 일찍부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세부 작전 안에 대해 회의를 하던 합동참모본부는 해외정찰국으로부터 현재까지 정찰된 정보에 대한 브리핑 시간을 가졌다.
평시 항공우주군 소속이었다가, 전시나 비상시 합동참모본부의 직할 정찰전력으로 로 운용되는 해외정찰국 소속의 모든 CS-SS 아폴로 정찰위성들은 한반도의 77배에 달하는 러시아 영토를 실시간으로 정찰하여 감시하고 있었다.
“현재 중부군구 소속의 육군 전력인 제2친위군과 제41군에 이어 나머지 군구 직속의 부대와 전략로켓군인 제92로켓여단과 제119로켓여단, 그리고 제950로켓포병여단이 제35군의 화력지원을 위해 후방에서 전개 중인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상세한 정보는 화면을 보시기 바랍니다.”
해외정찰국 부국장인 박정규 준장의 설명에 따라 해당 회의실 중앙 스크린 화면에 여러 전술 기호로 표기되었다.
“또한, 동부군구와 중부군구의 특수부대로 불리는 스페츠나츠와 공수군 소속의 여러 강습여단이 치타 근방에서 집결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조만간 대대적인 공중강습작전을 실행할 것으로 보이며, 분석결과 후룬베이얼일 가능성이 가장 큰 것으로 보입니다.”
“허허, 그게 가능한가? 우리 영공을 통과한 후 강습을 시도한다고?”
설명을 듣던 중 공군참모총장 김은호 대장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에 설명하던 박정규 준장은 마치 자신에게 뭐라 말하는 것처럼 들렸는지 주눅이 든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현재 전개된 상황을 정찰을 통해 분석한 결과라······.”
“아! 알았네. 계속하게”
“네, 그럼 계속 설명을 이어가겠습니다. 다음은 남부군구의 정찰 현황입니다.”
박정규 준장은 레이저 포인트를 사용해 스크린 화면에 비친 디지털 지도의 곳곳을 가리켰다.
“근래 남부군구 소속의 부대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특히 철도군인 제37독립철도여단과 제39독립철도여단은 남부횡단철도를 따라 동부로 이동 중인 것을 5일 전에 확인하였으며, 스타브로폴에 본부를 둔 제49군 역시 직할 및 예하 모든 부대가 주둔지를 이탈해 동부 방향으로 이동, 현재 쿠르간스카야주까지 기동을 마친 상태로 확인되었습니다.”
“남부군구까지 움직였단 말인가?”
육군참모총장 이은형 대장이 깜짝 놀라며 상체를 앞으로 내밀었다. 제49군이 속한 남부군구는 현재 러시아 남서부 일대의 분쟁지역을 책임지고 방어하는 핵심전력이었다.
그루지아의 남부 자바와 서부 아브카치아 분쟁 지역과 2013년 합병된 크림반도를 비롯한 우크라이나의 반군이 활동하는 루한스카주와 도네츠크주에서 교전을 벌이고 있는 부대이기도 했다. 이렇듯 실제로 분쟁지역에서 직접적 군사적 활동을 벌이고 있는 부대까지 동원되어 동부로 이동 조치가 되었다는 것은 합동참모본부로서는 매우 놀랄 일이었다.
전쟁 초기 합동참모본부에서는 러시아의 4개 군구 중 중부군구 정도만 전쟁에 관여할 것으로 예상했었다.
“현재까지는 남부군구의 제49군과 철도군만 동원된 것으로 보이나, 제4항공 및 방공군 소속의 항공전력도 이동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화면을 보시기 바랍니다.”
설명 중 박정규 준장이 스크린 화면을 가리키자 여러 기의 Su-35 플랭커 전폭기가 지상으로부터 매우 낮은 고도를 유지하며 빠르게 동부로 날아가는 동영상이 보였다.
“이것은 어젯밤 아폴론 17호가 바시코르토스탄 일대를 정찰하던 중 운 좋게도 촬영한 영상입니다.”
“저게 4항공 소속의 전투기란 말인가?”
김은호 대장이 다시금 질문을 던졌다.
“단정 지을 순 없지만, 4항공 소속일 확률은 높습니다.”
“만에 하나 남부군구의 4항공 전력까지 한러전에 동원된다면 중부군구의 2항공 전력은 무조건이겠군”
“네, 그렇습니다. 중부군구의 2항공 전력 역시 우리 정찰전력을 피해 곳곳에 전개 중입니다.”
“러시아 아들이 이번 전쟁에서 어떻게든 이겨보려고 사활을 건 듯합네다.”
윤기윤 합참차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지금까지 듣고만 있던 신성용 합참의장이 살짝 미소를 보이며 의미심장한 말을 건넸다.
“저런 무리한 전력 전개가 자충수가 될 듯합니다.”
“합참의장님! 그거이 무슨말입네까? 자충수라니요?”
“하하, 그건 오후에 외교부에 갔다 온 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거이, 이거이 합참의장님이 우리 몰래 뭔가 숨기고 있고 만기래! 궁금하니 그냥 말해 주시라요.”
“하하, 아직 결정된 거 없습니다. 오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하하, 그래요. 알갔습네다.”
두 장성이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정찰 브리핑이 끝난 박정규 준장이 거수경례하고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이에 자리에서 일어선 신성용 합참의장은 참모진들을 둘러두며 말했다.
“작전본부장은 정찰정보를 토대로 현 작전 안의 수정할 부분에 대한 회의를 진행하고 나머지는 다시금 일터인 상황실로 돌아갑시다.”
합참의장이 가장 먼저 회의실에서 나가자 작전본부실 참모진을 제외한 나머지 참모진들도 우르르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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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21일 14:00,
남주 서울특별시 종로구 외교부 청사(귀빈 접견실).
약속 시각에 맞춰 외교부 청사에 도착한 신성용 합참의장과 수행원들은 외교부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귀빈 접견실에 들어섰다.
그곳에는 미리부터 강이식 국방부 장관을 비롯해 여러 사람이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이렇게 외교부 청사까지 오라고 하셔서 미안합니다.”
외교부의 수장 강경희 장관이 환한 웃음을 보이며 맞아줬다.
“아닙니다. 장관님! 하하. 아! 장관님께서도 미리 와 계셨군요. 제가 늦은 겁니까?”
“아닐세. 약속 시각보다 미리 와 있었네.”
자리에 앉으며 강이식 국방부 장관과 인사를 건넨 신성용 합참의장은 맞은편에 앉아있는 외국인 두 명에게 시선을 돌렸다.
“인사하세요. 이분은 우크라이나 주한 대사 바실 마르마조프 님이시고 이분은 국방부 장관인 발레리 헤레테이이십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합참의장 신성용입니다.”
강경희 장관의 소개에 따라 차례대로 악수와 인사를 건넨 신성용 합참의장이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강경희 장관이 금일 회의와 관련해 간단한 설명을 했다.
2013년 유로마이단 사건 이후 2014년 크림 위기 그리고 2014년 4월 돈바스 전쟁 발발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내전은 9년이 지난 상황에서도 루한시크주와 도네츠크주 곳곳에서는 총성과 포성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2017년 2월 18일, 우크라이나 정부와 반군은 뮌헨에서 20일부터 휴전에 들어가기로 합의했고 12월 27일에는 우크라이나군과 반군은 수백 명의 포로를 맞교환하기로 합의하고 러시아 측과 우크라이나 측도 합의했다.
하지만, 이러한 평화적 합의는 오래가지 못했다. 2018년 1월 10일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 자이체베 인근에서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반군과 다시금 교전이 시작되었다. 2018년 9월 17일 우크라이나 포로셴코 대통령은 러시아와 우호조약을 전면 파기했다. 우크라이나는 크림반도 침탈과 돈바스 전쟁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와 옛날에 맺은 우호조약은 이미 휴짓조각임을 국제사회에 천명한 셈이다. 반대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공격할 핑곗거리가 생겼다.
2019년 2월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 노골적인 군사행동에 들어가 반군과 함께 우크라이나군을 압박해 전선을 확대했고 2023년 현재, 루한시크주와 도네츠크주 대부분을 반군이 점령했다.
* 유로마이단 : 2013년 11월 21일 야누코비치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친러 정책에 반대해 대대적인 시위가 일어났다. 정부의 강경 진압에도 불구하고 결국 정권을 몰아내고 새로운 친서방 과도정권을 수립한 사건.
* 2014년 크림 위기 : 유로마이단 사건 이후,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이 실각하고, 친서방 세력이 우크라이나 임시정부의 구성원이 되자 러시아는 강력히 반발하며, 우크라이나의 임시정부를 '쿠데타로 권력을 탈취한 합법적이지 않은 정권'으로 규정함과 동시에 러시아인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러시아군이 크림반도에 전광석같이 개입, 이후 주민투표 시행해 우크라이나에서 독립하여 러시아에 합병으로 이어졌다. 즉, 크림반도를 러시아 자국 영토로 강제적 편입한 사건.
* 돈바스 전쟁 : 유로마이단 사건의 여파로 인해 우크라이나의 도네츠크주와 루한스크주 등 동부 지역에서 친러파들이 시위를 일으키고 반정부 단체가 만들어졌다. 이후 러시아의 크림 공화국 합병 계기로 대규모 친러시아 시위로 확대되었으며 끝내 도네츠크 인민 공화국과 루간스크 인민 공화국은 러시아군의 지원을 받아 분리주의를 제창하여 돈바스 지역을 중심으로 우크라이나군과 독립전쟁을 시작했다.
우크라이나는 예전 소비에트연방에서 독립한 후 미국과 유럽으로부터 핵 폐기에 따른 경제적 군사적 지원을 약속받았으나 막상 핵 폐기 후 크림반도의 러시아 합병과 내전이 발발한 상황에서도 이렇다 할 경제적 군사적 지원을 받지 못했다. 한마디로 뒤통수를 맞은 꼴이었다.
이렇듯 미국과 유럽에 대한 불신이 쌓이고 더불어 러시아로부터 지속적인 군사적 지원을 받는 반군과 9년간 지옥 같은 내전을 겪어온 우크라이나 정부는 대한민국이 러시아와 전면전을 벌이고 예상외로 전장 상황이 대한민국에 유리하게 돌아가자 며칠 전, 우크라이나 페트로 포로센코 대통령은 친서를 통해 추은희 대통령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친서 내용은 이랬다.
공공의 적인 러시아로부터 군사적 지원을 받는 반군을 토벌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해달라는 군사협조 요청이었다. 또한,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로 진공할 수 있는 길목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오늘 회의 목적이 바로 친서에 따른 세부 사항을 조율하기 위한 회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