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근
2023년 12월 20일 10:30 (신중국시각 09:30),
신중국 베이징 공산당 당사(주석실).
불미스러운 일이 연이어 터지는 가운데 아침 일찍 왕징위 주석으로부터 호출을 받은 신바이칭 대장은 흑호대가 아닌 주석실이 있는 공산당 당사로 출근했다. 그리고 주석실 비서관으로부터 잠시 대기하라는 얘기를 듣고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던 중 주석실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나왔다.
흑호대 부대장인 댜오이난 이었다.
순간 당황한 신바이칭 대장과는 다르게 댜오이난 부대장의 표정은 자연스러웠다. 또한, 아무 일 없다는 듯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당당하게 걸어나갔다.
왠지 등골이 오싹할 정도의 불길한 의구심이 든 신바이칭 대장은 멀어져가는 댜오이난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저자가 나에게 보고도 없이 주석실을 방문한 거지?’
부대장을 불러세워 방문 목적에 관해 물어보려 했으나 비서관이 바로 앞까지 나와 들어가라는 손짓을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문을 열고 주석실에 들어갔다.
“부르셨습니까?”
신바이칭 대장은 평소와 같이 절도있는 동작으로 거수경례를 하며 부동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왕징위 주석의 얼굴을 은밀히 살폈다. 플라즈마 핵심기술 공작 성공 이후 항상 반갑게 맞아주던 평소의 표정과는 사뭇 달라 보였다.
널따란 주석실의 한복판에 있는 대형 소파에 앉아있는 왕징위 주석은 굳은 표정으로 손짓을 했다.
“그리 앉게”
“감사합니다.”
주석실에 들어올 때부터 싸늘함을 느낀 신바이칭 대장은 아무래도 방금 나간 댜오이난 부대장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했다. 이런 생각에 잠시 빠진 신바이칭 대장은 왕징위 주석이 한 말을 놓치고 말았다.
“자네, 내 말은 듣는 건가?”
잠시 딴생각에 빠져 자신의 말에 경청하지 않는 신바이칭의 자세에 살짝 기분이 상한 왕징위 주석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느라. 정말 죄송합니다.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자네 말이야. 요새 무슨 일 있는 건가?”
왕징위 주석은 뭔가 알고 있는 거처럼 곁눈질하면서 떠보듯 말했다.
“아! 아닙니다. 그런 일 없습니다.”
“그런 일이 없기는······. 주석실 전용 서버 본부에 해킹은 물론 외부침입자가 발생했다는데 아무 일도 없는 건가?”
“그, 그건, 저희 소관이 아니라”
신바이칭 대장의 양 주먹에 땀이 고였다.
“소관이 아니라고? 그런데 왜 니다홍 실장에게는 해킹 건에 대해 보고를 하지 말자고 했지?”
“그, 그건, 해킹 자료에 우리 흑호대의 정보도 유출되었다는 보고를 받고 직접 조사를 한 후에 보고하자는 말이었습니다. 보고하지 말자는 얘기는 아니었습니다.”
“아! 그런 건가? 니다홍 실장의 말과는 다르군, 그렇다면 둘 중의 하나가 나에게 거짓 보고를 한다는 말이겠군?”
“당치 않습니다. 누가 감히 주석님께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서로 간 오해로 일어난 일로 보입니다. 제 의사를 잘못 말했거나 아니면 니다홍 실장이 잘못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가?”
왕징위 주석은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짓고는 서류함에서 문서 하나를 꺼내고는 탁자 위에 던졌다.
타악!
“이게 무엇입니까?”
자신 앞에 던져진 문서를 본 신바이칭 대장은 조심스럽게 문서를 집어 들며 물었다.
“장리칭에 관한 보고서야!”
순간 신바이칭 대장의 머릿속에서는 방금 문 앞에서 마주쳤던 댜오이난 부대장이 생각났다.
‘댜오이난! 이 개자식이 나 모르게 보고를 했군’
그리고는 등줄기에서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주석님! 그, 그걸 어떻게”
“지금 그게 중요한가?”
“주석님! 그 부분 역시 정확한 상황을 파악한 후 보고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정확한 상황 파악이든 뭐든, 이런 중요한 문제는 바로 보고를 해야지 않나?”
왕징위 주석은 인상을 꾸기고는 노려보기까지 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장리칭, 그렇지. 작전 닉네임은 짱천이라 했던가? 홍콩에서 공작을 주도한 자가 실종이라니······. 뭔가 석연치 않단 말이야. 만에 하나 한국 정보국에 납치되었거나, 아니면 자진 투항해 공작 정보를 흘렸다면?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 한국 국가정보원의 동향을 파악 중입니다.”
“그래서 알아낸 건 있나?”
“그건 아직! 여러 루트를 통해 확인하고 있으니 조만간 파악할 수 있을 겁니다.”
“무능하기는······. 장리칭이 사라진 지 이주가 넘었는데도 아직도 파악 중인가?”
소파에서 일어선 왕징위 주석은 앉아있는 신바이칭 대장 뒤로 걸어가 어깨에 손을 올렸다.
“서버 해킹과 외부침입자 건은 아무래도 장리칭과 연관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네. 즉, 한국 정보국이 움직였다고 봐야지! 그래서 말인데······.”
말끝을 흐린 왕징위 주석은 신바이칭 대장의 어깨를 힘껏 쥐고는 말을 이어갔다.
“한국 정보국이 대외적으로 이 문제를 제기하기 전에 우리 쪽에서 먼저 내부적으로 깔끔히 해결해야겠어!”
‘내부적 해결? 제길! 나를 희생물로 선택했다는 건가?’
주석실에 들어올 때부터 느꼈던 싸늘한 분위기가 현실로 다가온 순간이었다. 신바이칭 대장은 첩보국 수장답게 곧바로 왕징위 주석이 한 말에 대한 의도를 파악했다.
한국 정보국이 눈치를 챘다는 판단하에 대외적으로 문제가 불거지기 전에 공작 배후 조직의 수장인 나를 잘라 어느 정도 무마시키겠다는 뜻이었다. 즉 꼬리 자르기였다.
주석의 의도를 정확히 꿰뚫은 신바이칭 대장은 선수를 치고자 최대한 의연한 태도로 대꾸했다.
“제가 흑호대 대장 자리에서 물러나겠습니다.”
“역시 자네답군. 나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했어, 당부컨대 절대로 희생양이 되었다고 생각하지 말게나. 우리 조국을 위한 대의라 생각하게.”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제가 언제쯤 주석님의 비서실 쪽으로 복귀할 수 있겠습니까?”
“그건 걱정하지 말게. 내가 약속하지 않았나? 이번 일이 잘 풀리면 곧바로 부르겠네. 그때까지 잠시 휴가라 생각하고 맘 편히 쉬고 있게나”
“알겠습니다. 주석님.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내가 미안할 따름이지. 그리고 말이야. 자네 뒤를 이어서 댜오이난 부대장을 대장직으로 승진을 시킬 거야. 수년 동안 자네 밑에서 일했으니 나름 적격자라 생각해서 말이야.”
댜오이난을 대장직으로 승진시키겠다는 주석의 말에 순간 역겨움이 밀려온 신바이칭은 토할뻔했다.
‘그 개자식의 목적이 내 자리였어?’
하지만, 신바이칭 대장은 머릿속 생각과 다르게 댜오이난 부대장에 대한 좋은 말을 쏟아냈다.
“네, 맞습니다. 제 후임으로 댜오이난 부대장만 한 사람은 없을 거 같습니다. 성실하고 항상 책임감 있게 임무를 수행해 왔습니다.”
“그렇군. 자네가 그렇게 말해주니 당장 인사이동을 해야겠군.”
탁자를 가볍게 친 왕징위 주석은 자신의 책상으로 돌아가 금으로 도금된 카드 하나를 꺼내고는 신바이칭에게 내밀었다.
“이건, 그동안 자네가 흑호대 대장직을 수행하면서 고생했다는 의미로 받는 금일봉이라 생각하게나.”
“아! 이렇게까지 안 해주셔도 됩니다. 주석님!”
“받게. 당장에 자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이거밖에 없어서 그러네.”
“감사합니다. 주석님!”
주석으로부터 받은 금도금 카드의 용도는 신바이칭이 언제든 국영은행인 중앙은행에 제시하면 최대 일천만 위안까지 받을 수 있는 비공식적인 국가카드였다. 대한민국 돈으로 환산한다면 15억 원에 달하는 적지 않은 큰 금액이었다.
★ ★ ★
2023년 12월 20일 11:20 (신중국시각 10:20),
신중국 베이징 시청구 흑호대 본부.
부글거리고 엿 같은 상황을 참고 흑호대 본부 대장실로 돌아온 신바이칭 대장은 바로 댜오이난을 호출했다.
“댜오이난! 감히 나의 허락도 받지 않고 주석님께 직접보고를 해?”
대장실에 들어온 댜오이난 부대장을 향한 신바이칭의 첫 마디였다.
“죄송합니다. 대장님! 저로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보고로 인해 그동안 수년간 모시든 상관이 잘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댜오이난 부대장은 생각 이상으로 당당했다.
쿵!
“뭘 어쩔 수 없었다는 거야? 앙?”
신바이칭 대장은 힘껏 책상을 내려치고는 입술까지 파르르 떨며 끌어 오르는 분노를 표출했다.
신바이칭 대장 이렇게 분노하는 건 단지 대장직에서 물러나서가 아니었다. 주석이 약속은 했지만, 정치계에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인 주석 비서실의 한자리도 사실상 영영 물 건넜다고 봐야 했다. 즉 천만 위안 받고 나가떨어지라는 얘기였다.
자신의 야망을 불태울 수 있는 정치계 진출마저 끊겨버렸기에 댜오이난 부대장에 대한 증오와 분노는 상당했다. 더 미치는 건 그런 댜오이난을 자신이 어떻게 할 방법은 없다는 것이었다. 댜오이난은 이제 흑호대의 새로운 대장직에 오를 자였고 자신은 끈 떨어진 백수나 마찬가지였다.
흑호대 내, 자신의 측근 요원들을 이용해 댜오이난 부대장을 제거하는 방법도 있지만, 자신에게 돌아올 후폭풍이 더 클 것은 자명해 보였다. 끈 떨어진 자신을 향해 측근 요원들이 따를지 미지수였다.
호통치는 거 외에 이렇다 할 재재 방법이 없는 신바이칭 대장은 당당하게 서 있는 댜오이난을 향해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꼴도 보기 싫으니 나가!”
“흑호!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흑호대는 제가 열심히 잘 이끌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댜오이난 부대장은 마치 약 올리려는 듯 몇 마디를 던지고는 거수경례 후 대장실에서 나갔다. 이에 대장실에 혼자 남게 된 신바이칭 대장은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문득 정신을 차린 신바이칭은 책상 밑 작은 금고를 열고는 각종 위장용 가짜여권과 개인 물품, 그리고 플라즈마 핵심기술 복사본이 담겨있는 USB를 꺼내 작은 가방에 담았다.
‘정치계 진출 기회마저 완전히 사라진 지금, 이제 갈 길은 하나다.’
이런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최후의 돌파 수단을 준비해온 신바이칭은 금고에서 꺼내 가방에 넣었던 폴더 폰을 다시금 꺼내 1번 버튼을 눌렀다.
뚜우우우~ 뚜우우우~
신호가 가고 잠시 후 누군가 받았다. 그는 바로 유럽에서 브로커로 유명한 재키 리였다.
-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하
“재키 리! 3일 후 방콕에서 파리행 비행기를 탈 것이오. 비행기 시간은 당일 전화로 알려주겠소.
- 알겠습니다. 모든 조처를 해 놓을 테니 안심하고 오십시오.
“알겠소. 그럼 그때 봅시다.”
간단히 통화를 마친 신바이칭 대장은 작은 가방을 들고 그대로 대장실을 나섰다.
한편, 대장실에 미리 설치한 CC 카메라를 통해 신바이칭 대장의 행동을 모니터로 관찰하고 있는 댜오이난 부대장, 그는 대장실에 나온 후 바로 이곳으로 와서 모니터를 지켜보고 있었다.
‘생각한 대로 흘러가는군’
사실 댜오이난 부대장 역시 신바이칭 못지않게 출세욕이 강한 남자였다. 항상 기회를 엿보던 댜오이난 부대장은 근래 일어난 여러 사건을 기회로 삼아 자신을 막고 있는 신바이칭 대장을 내치고 그 자리에 자신이 올라가고자 했다.
이런 이유로 장리칭 실종 건과 어제 있었던 해킹 건, 그리고 서버 본부에 외부인 침입 사건까지 모두 왕징위 주석에게 빠뜨리지 않고 모두 보고했다. 또한, 댜오이난 부대장은 단순 보고에만 그치지 않았다. 사실 보고내용대로라면 자신의 자리까지 위태로울 수 있었다. 이에 한가지 심오한 묘수를 생각했다.
한국 정보국이 흑호대의 공작을 기정사실로 밝혀낸다면 양 국가 간의 국가적 문제로 번지는 건 물론 국제사회로부터 강력한 자재를 당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에게 한가지 빠져나갈 방법이 있다고 설득했다.
그것은 신바이칭이 주석 몰래 플라즈마 핵심기술 복사본을 가지고 있으며 유럽에서 활동하는 무기밀매 브로커인 재키 리에게 연락을 취하라는 지시를 받아 연결해 줬고 지금은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이것을 역이용하여 국제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한국 정부가 대외적으로 플라즈마 핵심기술 유출 공작 건과 관련하여 외교라인을 통해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시 신바이칭 대장의 개인적 욕심에 의해 흑호대를 움직였고 플라즈마 핵심기술을 빼돌린 후에는 유럽의 재키 리를 통해 큰돈을 벌려고 했다. 즉, 신중국과는 전혀 무관하며 신바이칭의 개인적 범죄행위다.
더불어 신중국 정부 역시 이와 같은 사실을 알게 된 후 즉시 신바이칭을 대장직에서 파면하고 조사를 하려던 중, 유럽으로 도망갔다는 주장을 펼치자는 의견이었다. 이에 왕징위 주석이 듣기에 그럴듯해 보였다. 이에 댜오이난 부대장의 요청을 모두 승인했다.
이것이 신바이칭 대장이 주석실을 방문하기 전, 왕징위 주석과 댜오이난 부대장과의 은밀한 거래의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