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45화 (445/605)

토끼굴 연기 피우기

2023년 12월 18일 18:45 (신중국시각 17:45),

신중국 베이징 시청구 주석실 외부망 서버실 본부.

비상계단을 통해 조심스럽게 옥상 바로 아래층까지 도달한 유하연 주임은 초조한 마음으로 왼팔의 X-K02 단말기 화면을 봤다. TCS 모드를 활성화할 수 있는 전지 잔량이 10%를 표기하고 있었다.

‘시간이 없어!’

비상계단을 타고 이곳까지 올라오는 동안 생각 이상으로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계단 곳곳에 설치된 통로 차단문과 가끔 계단을 이용하는 이곳 직원들 때문이었다.

이제 유하연 주임에게 남은 마지막 관문은 옥상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이곳 건물은 이상하게도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없었고 오직 긴 복도 반대편에 있는 엘리베이터뿐이었다.

‘정말 고약한 건물이네. 어떻게 계단을 통해 옥상으로 올라가는 길이 없는 거지?’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다시한번 SG-TAR 실드글라스로 복도 전체를 투시해 관찰했다. 하지만, 역시나 옥상으로 연결된 통로는 확인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군.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수밖에’

시간적 여유가 없는 유하연 주임은 생각을 굳히고는 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출입문 잠금장치를 X-K02 단말기를 이용해 열고는 조심스럽게 벽에 붙어 발걸음을 옮겼다.

철컥!

15m에 달하는 긴 복도를 숨죽이고 조심스럽게 걸어갈 때쯤 바로 앞, 문이 열리고 2명의 직원이 불쑥 나타났다.

철렁거리는 마음에 그대로 멈춰 선 유하연 주임, 다행히 2명의 직원은 자기들끼리 대화를 해가며 복도를 따라 반대편으로 걸어가고는 이내 다른 사무실로 들어갔다.

‘휴우!’

자칫 몸이라도 부딪쳐 들킬 수 있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옷소매로 닦아 낸 유하연 주임은 다시금 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드디어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 문제는 들키지 않고 엘리베이터 문을 여냐는 문제에 직면했다.

아무도 없는 상태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게 된다면 혹 엘리베이터를 감시하는 운용 보안요원들에게 들킬 수 있었다. 그렇다고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기다릴 수 있는 시간도 없었다.

1분 정도 고민하던 유하연 주임은 들키더라도 최대한 빠르게 옥상으로 올라가 탈출하자는 생각으로 마음을 굳혔다.

슬쩍 뒤돌아 복도를 다시금 살핀 후 빠른 손놀림으로 X-K02 단말기 조작해 엘리베이터를 호출했다.

삐빅!

3층에 멈춰있던 엘리베이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10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잽싸게 엘리베이터에 오른 유하연 주임은 옥상 버튼을 눌렀다.

문이 닫히고 서서히 옥상으로 엘리베이터가 작동하는 그때, 작은 흔들림과 동시에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덜컹!

‘뭐, 뭐지?’

뭔가 잘못되었다고 직감한 유하연 주임은 다시금 X-K02 단말기를 이용해 엘리베이터를 조작하려 했지만, 순간 조명과 함께 엘리베이터의 전원이 꺼졌다. 그리고 10층 복도에서 보안요원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그들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통신까지 주고받았다.

‘걸렸다.’

발칵 되었다고 생각이 든 유하연 주임은 즉시 SG-TAR 실드글라스의 비전 모드를 돌려가며 깜깜한 엘리베이터 안을 살폈다.

‘제길! 저건가?’

엘리베이터 사방에는 레이저 감시 장치가 보였다. 즉, TCS 모드로 모습을 감춰도 레이저 감지장치의 레이저 빛에 닿으면서 그만 걸리고 만 것이었다.

‘엘리베이터에 타기 전에 좀 더 신중히 살피고 탔어야 했는데······.’

뒤늦은 후회감이 밀려왔는지만, 이미 늦은 상태, 더군다나 X-K02 단말기에서 전지 잔량이 5%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는 경보음이 울렸다. 이에 정신이 번쩍 든 유하연 주임은 엘리베이터의 천장을 바라봤다. 이렇게 된 이상 엘리베이터 천장을 통해 직접 줄을 타고 옥상으로 올라가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아래쪽에서 보안요원들이 엘리베이터의 외부문을 억지로 열는 소리가 들렸다. 더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이에 엘리베이터 한쪽 벽면을 발판삼아 짚고 점프한 유하연 주임은 조그마한 사각 비상문을 양손으로 밀어 재끼고는 가까스로 사각 틈을 잡았다. 그리고는 힘을 다해 엘리베이터 위로 올라왔다. 이때 멈췄던 엘리베이터 전원이 켜지고 10층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키이이이잉! 위이이이잉!

유하연 주임은 여러 케이블 중 하나를 부여잡고는 매달렸다. 그러자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면서 허공에 매달리는 신세가 되었다. 유하연 주임은 있는 힘을 다해 케이블을 잡고 올라가기 시작했고 10층으로 다시 내려간 엘리베이터에 보안요원들이 뚫려있는 천장 비상문으로 플래시를 비췄다.

하지만 그들의 눈에는 케이블만 흔들릴 뿐 사람이란 흔적은 볼 수 없었다. 이에 보안요원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하면서 웅성거렸다.

으읍! 으윽!

신음을 토하며 흔들리는 케이블을 부여잡고 젖먹던 힘까지 내며 올라간 유하연 주임은 내벽 사이의 틈에 발을 딛고 중심을 잡은 상태에서 옥상 엘리베이터 외부문 사이에 손을 집어넣고 힘주어 벌렸다.

서서히 열리는 엘리베이터 외부문, 목숨이 오가는 상황이라서 그런지 유하연 주임은 평소보다 더욱 큰 힘을 발휘해 몸이 통과할 수 있을 정도까지 벌렸다. 그런 사이 전지량이 모두 소모되면서 유하연 주임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러자 지금까지 엘리베이터에서 천장 비상문을 통해 플래시만 비추며 웅성거렸던 보안요원들이 유하연 주임이 모습을 보이자 자동으로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 들어 사격을 가했다.

탕! 타타탕! 탕! 탕!

여러 발의 총성이 좁디좁은 엘리베이터 통로를 울렸다. 다행인 것은 몸만 바듯이 통과할 정도로 열린 외부문을 통해 유하연 주임은 몸을 날려 총알 사례를 모면할 수 있었다.

두 바퀴를 구르고 차디찬 옥상 바닥에 착지한 유하연 주임은 엄폐할 수 있는 환풍기 너머로 몸을 숨기고 바로 무음성 통신을 시도했다.

“여기는 알파 투 다시 포! 알파 제로 나와라! 이상!, 여기는 알파 투 다시 포! 알파 제로 나와라! 이상!,”

- 여기는 알파 제로! 알파 투 다시 포! 괜찮나? 이상!

“여기는 알파 투 다시 포! 괜찮다. 하지만, 옥상으로 올라오면서 정체가 탄로 났다. 현재 위치 옥상! 즉시 탈출할 수 있도록 조치 바람, 이상!”

- 여기는 알파 제로! 2분 이내로 스카이가 도착할 것이다. 이상!

“여기는 알파 투 다시 포! 기다리겠다. 이상!”

다급히 무음성 통신을 마친 유하연 주임은 고개만 내밀어 엘리베이터 외부문 쪽을 살폈다. 엘리베이터가 작동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보안요원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듯했다.

이에 유하연 주임은 홀스터에서 CS5-C1 레이저 피스톨을 꺼내 들었다.

탈출하기 전 총격전까지 불어질 상황! CS5-C1 레이저 피스톨의 슬라이더를 부드럽게 한번 당긴 유하연 주임은 안전클립까지 돌리고는 사격 자세를 잡았다.

이때 옥상 상공에서 은은한 기계음과 함께 순간적으로 약간은 거친 바람이 일었다.

우우우우우웅!

이에 고개를 돌려 옥상 상공을 바라본 유하연 주임의 얼굴에서 화색이 돌았다. 실드글라스를 통해 투명상태인 스카이버스가 측면 해치를 열고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타앙! 타앙! 탕! 타앙! 탕!

이때 총성과 함께 유하연 주임이 엄폐하고 있던 환풍기 상단에 불꽃이 튀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까지 올라온 보안직원들이 사격을 가하며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옥상 곳곳으로 신속하게 움직였다.

이에 반격을 가하려던 유하연 주임은 마음을 고쳐먹고 그대로 착륙하려는 스카이버스로 내달렸다.

탕! 탕! 카앙! 타앙!

피잉! 피잉!

달리는 유하연 주임 사이로 허공을 가르는 파공음과 함께 총알이 빗발쳤고 바닥에는 수많은 불꽃이 튀었다.

파악!

윽!

스카이버스에 거의 도달할 때쯤 유하연 주임의 등에서 망치로 때리는듯한 충격과 함께 고통이 밀려왔다. 총알 한 발이 등에 맞은 듯했다. 하지만 유하연 주임은 앞구르기 이후 다시금 자세를 잡고 이를 악물고 끝까지 뛰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몸을 날려 스카이버스에 탑승했다. 유하연 주임이 탑승과 동시에 기다리고 있던 스카이버스는 그대로 하늘로 솟구쳐 상승했다.

한편, 사격을 가하던 보안요원들은 유하연 주임이 갑자기 허공에서 사라지자 마치 귀신에 홀린 듯한 표정을 짓고는 옥상 곳곳을 뒤졌다. 그런 상황에서 유하연 주임이 탄 스카이버스는 순식간에 고도 1km까지 상승한 후 안전가옥 방향으로 기수를 돌려 유유히 날아갔다.

“와! 우리 유 주임 대단해!”

의자에 너부러지듯 앉아 거친 숨을 내쉬는 유하연 주임 옆으로 다가온 대외정보1과 본팀 오석진 대리가 물병을 내밀었다.

“말도 마세요. 그나저나 들켜서 어쩌죠? 마지막에 걸리는 바람에”

유하연 주임은 자신 때문에 이번 작전이 망쳤을까 봐 걱정되는 듯했다.

“뭘 어쩌겠어? 유 주임이 국정원 소속인 것도 모를 텐데······. 이 정도면 훌륭히 임무를 수행한 거야. 걱정 마!”

이때 무음성 통신으로 윤태진 팀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여기는 알파 투! 유 주임 괜찮아? 어디 다치진 않았어?

“네, 팀장님 저 괜찮아요. 다친곳도 없습니다.”

- 아! 걱정 많이 했다. 유 주임 잘했어! 우리 세 명보다 백번 나아!

“팀장님 쪽도 무사히 탈출한 건가요?”

- 응! 우리도 무사히 탈출했다. 현재 안전가옥으로 가고 있다. 이따가 보자!

“네, 그래요. 그럼 이따 봬요.”

- 그래,

20분 전, 흑호대 본부에 잠입한 윤태진 팀장과 팀원 2명은 건물 곳곳을 돌아다니며 실내 내부에 대해 스캔을 완성했고 이후 현관을 통해 무사히 탈출했다. 유하연 주임에 비해 별다른 성과를 내진 못했지만, 만에 하나 다시금 혹호대 건물에 잠입할 일이 있다면 내부 스캔 정보를 가지고 수월하게 잠입할 수 있게 되었다.

★ ★ ★

2023년 12월 18일 19:30 (신중국시각 18:30),

신중국 북경시 화이러우구 대외정보국 비밀 안가.

윤태진 팀장 일행에 이어 유하연 주임까지 무사히 탈출하고 특수보안팀에서 WCA를 통해 주석실 내무망 서버에 있는 상당한 분량의 정보를 빼돌린 상황에서 대외정보1과 요원들은 오랜만에 성공한 작전을 자축하기 위해 조촐한 회식 시간을 가졌다. 말이 회식이지 삼겹살에 소주 정도 마시는 정도였다.

안가 거실에서 둥글게 앉아 삼겹살을 구우며 서로 간 소주잔을 기울이며 분위기가 절정에 오르자 이자성 과장이 소주잔을 높게 쳐들고는 자랑스럽게 외쳤다.

“다들 수고했다. 특히 이번 작전을 기획한 우리 남궁 과장과 또한, 목숨을 걸고 임무를 완벽히 수행한 유 주임을 위하며 건배!”

“와! 건배!”

이에 요원들이 하나까지 환호성을 지르며 잔이 깨질 정도로 건배를 하며 소주를 들이켰다. 이때 입에 한가득 삼겹살을 넣고 씹고 있던 윤태진 팀장이 억울하듯 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번쩍 들고는 외쳤다.

“왜! 나와 나머지 팀원 이름은 뺍니까? 서운하게요?”

“아! 그래! 그래! 흑호대 건물에 잠입한 우리 윤 팀장과 나머지 전 대리, 그리고 오 대리에게 박수!”

“와! 짝짝짝!”

왁자지껄! 그동안 쌓여있던 스트레스를 풀며 즐거운 회식을 이어가는 가운데 남궁원에게 소주를 따르며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남궁 과장! 한마디 해!”

이에 남궁원은 소주잔을 비우고는 쑥스럽다는 듯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절레거렸다.

“야야! 짜샤! 그냥 한마디 해라!”

이자성 과장이 다시 한번 재촉하자 남궁원이 슬쩍 입을 열었다. 이에 모든 요원의 시선이 남궁원에게 쏠렸다.

“다른 건 모르겠고 매우 위험할 수 있는 임무였는데 여러분들이 불평불만 없이 따라줬고 또한 임무를 성공적으로 해줘서 고마운 마음뿐입니다. 아직 우리에겐 유출된 핵심기술에 대한 회수나 폐기의 최종 목표가 남아있으니 끝까지 우리 모두 일심단결하여 임무를 완수하고 고국으로 돌아갑시다.”

“네, 과장님!”

“하하! 우리 남궁 과장님은 너무 진지해”

“어머! 멋져요.”

대외정보1과 요원들이 남궁원의 말에 환호하며 손뼉을 쳤다. 이렇게 이들의 회식은 저녁 늦은 시간까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이어졌다.

한편 최고의 보안시스템으로 운용되는 주석실 전용 서버실 본부는 외부자 침입자 건으로 난리 아닌 난리가 난 상태였다.

건물 전체에 대한 수색작전이 펼쳐졌고 건물 내 모든 CC 카메라에 대한 정밀분석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은 왕징위 주석에게까지 보고가 되면서 일파만파로 커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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