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44화 (444/605)

토끼굴 연기 피우기

2023년 12월 18일 18:00 (신중국시각 17:00),

신중국 베이징 시청구 어느 뒷골목.

TCS 모드로 투입한 2팀과 통신을 하기 위해 자금성 서쪽 어느 건물 뒤쪽 골목길에 차를 세운 남궁원 일행은 계속된 통신 장애 때문에 알파 투 요원들과 연락이 안 되자 초조한 심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터키온-X 통신체계로 운용하는 무음성 통신이 장애로 인해 연결이 끊긴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당황함과 초조함 속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궁원 과장에게 비밀 안가로부터 기분 좋은 연락이 왔다.

유하연 주임이 서버에 꽂은 USB가 정상적으로 작동을 하면서 무선통신으로 주석실 내부 서버에 접촉했다는 것이었다.

“WCA를 놈들이 찾는 건 시간문제야. 최대한 흑호대와 유출된 기밀자료만 골라 내려받아! 알았지?”

WCA는 유하연 주임이 서버에 꽂은 USB의 정식 명칭이었다.

- 네, 알겠습니다. 과장님!

이때 이자성 과장이 남궁원의 어깨를 툭 치고는 말했다.

“스카이버스 자금성 쪽으로 이동하라고 해! 통신이 안 된 상태에서 지침 사항대로 움직이면 혹, 옥상으로도 탈출 시도를 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

이에 남궁원은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고는 이자성 과장이 한 말을 그대로 전했다.

- 네, 알겠습니다. 일단 자금성 상공에서 대기하다가 전달받은 좌표로 움직이라고 하겠습니다.

“오케이! 수고해!”

- 네, 수고하십시오.

“이 과장! 우리도 안가로 이동할까?”

통신을 마친 남궁원이 이자성 과장에게 물었다.

“안가 보다는 이 주임 있는 곳으로 가자!”

“이진경 주임?”

이진경 주임은 유하연 주임을 뒤따라 갔던 작전 닉네임 알파 포 요원이었다.

“응! 윤태진 팀장 쪽은 3명은 걱정이 안 되는데 혼자 떨어진 유 주임이 걱정돼서 말이야.”

“음, 그렇긴 하네.”

현재 이진경 주임은 검은 밴이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갔던 건물로부터 남쪽으로 200m 부근 길목에 차를 세워놓고 1시간이 넘도록 통신이 되지 않자 걱정이 되었는지 건물 앞을 유심히 살피며 통신이 기다리고 상황, 이자성 과장 일행이 탄 검은 밴이 도착했다.

“아직도 연락은 없지?”

검은 밴의 후문을 열고 들어온 이자성 과장의 첫 번째 질문이었다. 이에 이진경 주임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아직 없습니다. 그래서 걱정됩니다.”

“걱정할 거 없어! 아까 안가로부터 연락이 왔다. 유 주임이 내부망 서버를 찾아 WCA까지 장착한 듯해, 내부망 서버에 접촉했다고 하는 군, 그건 유 주임이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는 거야. 그리고 통신 연결이 안 될 때를 대비한 지침 사항도 잘 알고 있으니까 충분히 탈출할 수 있을 거야.”

“네, 알겠습니다.”

“저 건물이지?”

이자성 과장은 풀죽은 상태로 대답하는 이진경 주임의 어깨너머로 한 건물을 가리켰다. 유하연 주임이 들어간 주석실의 내외부망 서버를 운용하는 바로 그 건물이었다.

“네, 맞습니다. 저기 저 지하 주차장 입구로 들어갔습니다.”

“혹, 최악의 상황인 탈출 실패 시 직접 들어가서 구출할 준비도 되어있으니 기다려보자!”

“네, 과장님!”

어느새 건너편 길목에도 대외정보 1팀이 탄 승용차와 검은 밴이 길가에 주차된 다른 차량 사이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 ★ ★

2023년 12월 18일 18:10 (신중국시각 17:10),

신중국 베이징 시청구 흑호대 본부.

해킹범을 체포하기 위해 특수기동팀을 이끌고 소프 호텔에 갔다 온 황쉬엔 팀장과 댜오이난 부대장은 해킹범과 관련된 상황을 신바이칭 대장실에서 보고하고 있었다.

“현재 소프 호텔 뒤쪽 골목에서 놓치긴 했지만, 호텔을 중심으로 반경 50km에 대한 모든 CC 카메라를 확인하고 있으며 특수기동팀 외에도 중앙정보과 전체가 시내 곳곳에서 검문 수색 중입니다.”

“절대 놓치면 안 돼! 그놈들이 왜 하필 많고 많은 자료 중에 우리 흑호대와 관련된 정보를 빼돌리려고 했는지를 꼭 알아야 해. 레드팀도 투입 시켜!”

흑호대 레드팀은 암살을 전문으로 하는 부서로 흑호대 내에서도 난다긴다하는 정예 중의 정예로 뽑은 요원들이었다.

“네? 레드팀도 말입니까?”

“부대장! 다시 말해야겠나? 어떤 상황인지 모르겠나? 만에 하나 해킹범이 홍콩에서 우리 2팀이 했던 공작을 파헤치기 위해 해킹을 했다면 앞으로 어떻게 돌아가겠나? 내 생각엔 그 해킹범은 단순한 해킹범이 아니야. 빵즈놈들일 확률이 커”

“음, 그렇군요.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 했습니다.”

“그나저나 해킹범이 남긴 노트북은 어떻게 되었나?”

현재 상황을 냉철히 판단한 신바이칭 대장은 다시금 질문을 이어갔다.

“네, 현재 외부망 서버 보안실에서 해킹범들의 단서가 될만한 것을 찾기 위해 가져갔습니다.”

“분명 복사본이 없는 건 확실한 거지?”

“네, 보안 직원 말로는 없다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음, 짱천 실종 건도 그렇고 이번 해킹 건도 그렇고 자꾸만 불길한 일만 생긴단 말이야. 다들 정신 바짝 차리고 특수기동팀은 말이야.”

“네, 대장님!”

황쉬엔 팀장이 재차 부동자세를 취하며 대답했다. 마치 군인처럼 절도있는 행동이었다. 사실 특수기동팀이라 불리는 부서는 흑호대가 운용하는 사설 군대나 다름없었다. 대부분 각 군의 여러 특수부대에서 차출된 자들로 실제 소속이 국방부였다. 황쉬엔 팀장 역시 PLA(특수부대)에서 파견 나온 상교 계급장의 군인이었다.

또한, 부서 단위는 팀이었지만, 팀 아래 각 조의 인원은 20명이었고 총 40개 조를 운용하고 있었다. 즉 총인원이 무려 800명에 달하는 영(대대)급 규모였다.

“현재 각 도시에 파견된 팀원들 모두 불러들여.”

“네. 알겠습니다.”

“보안실이나 특이 사항 있으면 바로 보고하고 그만 나가봐!”

“네, 알겠습니다.”

거수경례를 하고 두 사내가 나간 후 신바이칭 대장은 책상 서랍에서 폴더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가고 잠시 후 유창한 영어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 마침 기다리고 있었는데 전화를 주셨군요.

“어떻게 되었소?”

- 얘기는 잘 되었소. 여러 곳에서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그들 중 가장 괜찮은 콜을 한 곳과 진도 있게 얘기 중입니다. 아마도 더 많은 돈을 만질 수 있을 듯하군요.

“그거 듣던 중 반가운 말이군요. 한데, 돈도 돈이지만, 나의 안전이 가장 우선이오.”

- 하하,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그들 역시 나랏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것보다 언제쯤이면 이곳으로 올 수 있겠습니까? 그들과 일정은 맞춰야 해서 말입니다.

“음, 그건 다음 통화 때 알려주겠소.”

- 알겠습니다. 일정이 잡히면 바로 연락을 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도 준비하지요.

“알겠소. 그럼 다음에 다시 통화합시다.”

신바이칭과 짧게 통화한 자는 유럽에서 브로커로 이름을 떨치는 재키 리라는 자였다. 특히 무기에 관해서는 이자를 통하지 않고 국가 간 무기 거래가 있을 순 없다는 말까지 나돌 정도로 영향력이 매운 큰 브로커였다.

통화를 마치자 폴더폰의 전원까지 끄고 서랍에 다시 넣은 신바이칭의 시선은 책상 밑 작은 금고를 가리켰다.

‘역시! 복사본을 챙겨놓길 잘했군, 나의 야망은 이룬 순 없게 되었지만, 또 다른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으니까 말이야.’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 ★ ★

2023년 12월 18일 18:30 (러시아시각 19:30),

러시아 아무르스카야 자비틴스크시 서단 55km 지점(제7기동군단).

도하 하는 아군을 위해 엄호사격 임무를 마치고 잠항도하에 들어갔던 712호 전차는 한창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는 교전에 투입되자 분주히 기동을 펼치며 주변 일대의 적 전차들을 섬멸해 나갔다.

제1차 동북아 전쟁 때부터 손발을 맞춰 왔던 전차장 김영주 중사와 포수 염훈기 하사는 마치 여포 같은 기동력을 발휘하며 벌써 20여 대의 전차와 장갑차 그리고 각종 엄폐물에 숨어 대전차유도탄을 발사하는 러시아 보병들을 학살 중이었다.

“3번 표적 패스! 바로 4번 표적으로”

2번 표적의 전차를 광자포로 날려버리고 막 3번 표적의 전차를 상대하려는 그때, 어디선가 날아온 대전차유도탄에 3번 표적의 적 전차가 피격되면서 대폭발을 하자 712호 전차장 김영주 중사는 미간을 좁히며 소리쳤다.

“대체 어떤 놈이 우리 먹잇감을······. 제길슨!”

“크크, 재들 보니 62여단 109대대 같습니다.”

제62기계화보병여단 106기계화보병대대 현무 장갑차들이 26전차대대를 뒤에서 따라오며 50mm 광자포와 다목적복합탄인 흑룡 미사일을 발사하며 교전하고 있었다.

“더 밟아 더 밟아! 재들 못 따라오게 말이야.”

“진짜 아무리 생각해도 요새는 정말 오 상사님한테 빙의 당한 거 같단 말이야.”

“7중대 행정보급관 했던 상사님 말씀하시는 겁니까?”

곳곳에서 전차탄과 대전차유도탄이 빗발치는 상황에서도 712호 전차를 능숙하게 조종하는 김일수 상병마저 재미난 대화에 끼어들었다.

“네가 어떻게 아냐? 입대도 안 했을 때 제대하신 분인데?”

현시경으로 다음 표적을 이리저리 찾던 김영주 중사가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

“제가 입대 전 7중대에 악마의 불도저 행보관이 있었다고 선임들이 이를 갈며 말하던데요?”

“하하하, 뭐? 악마의 불도저?”

“네,”

“4번 표적 명중! 완전 피격! 다음 타켓으로 넘어갑니다요. 근데 오랜만에 들어본다. 악마의 불도저! 하하하”

“뭐야. 김 하사도 오영택 상사님 별명을 알고 있었어?”

“아! 저도 사병 출신 아닙니까? 우리 사병 사이에서는 유명했죠. 행보관 되고 나서 애들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원! 그때 뭐냐. 장가가실 때 하객으로 온 애들 있죠. 7중대 2소대 얘들인가? 가물가물하네. 그때 애들 달걀 한판 사 왔다는데요? 아차 하면 던지고 도망가려고 하하하”

“뭐! 달걀? 하하하, 울 오영택 상사님 장가가는 날 난장판 될뻔했구나. 하하 뭐 생각하니 애들 괴롭히는 거 선수이긴 했지”

콰앙! 키이이잉!

포탑 왼쪽에서 상당한 충격이 가해졌다. APFSDS(날개안정분리철갑탄) 한발이 날아와 712호 전차 좌측 장갑에 제대로 꽂힌 듯했다. 강력한 SECM(전파교란시스템) 상태인데도 포탑 좌측에 제대로 맞았다면 매우 가까운 거리였다.

“뭐야?”

불쾌한 충격이 울렸던 쪽으로 김영주 중사는 현시경을 돌렸다.

9시 방향 거리 150m 큰 웅덩이에 납작한 포탑 형태에 포신만 빼꼼히 내밀고 있는 T-14 아르마타 전차를 확인했다.

“저놈을 왜 못 봤지? 건방진 자식! 혼구녕을 내주겠어. 긴급 표적 설정!”

“옛설!”

긴급 설정에 따라 포탑은 자동으로 빠르게 왼쪽으로 돌아갔고 몇 초도 안되 포수의 조준경의 광학 십자선이 정확히 T-14 아르마타 전차의 포신에 고정됐다. 이에 염훈기 하사는 망설임 없이 그대로 발사 판을 밟았다.

쮸웅!

콰아앙!

“오 예스! 긴급 표적으로 설정된 적 전차! 확실히 명중!”

쏨과 동시에 포신 바로 옆 포탑 장갑을 뚫고 붉은 입자가 내부를 휘젓자 압력에 의해 해치가 하늘로 날아갔고 그 사이로 붉은 입자가 용솟음치듯 분출했다. 그리고 몇 초 후 적재했던 탄이 폭발했는지 잇따른 폭발을 이어지며 적 전차는 산산조각이 났다.

“아! 이 맛에 포수 하지······. 나도 처음부터 포수 할걸······. 괜히 2년간 복무하면서 조종만 했네.”

“포수의 진정한 꿀맛을 네가 이제 알았구나?”

“전차장님 저번 전쟁 때 아드레날린 폭주했겠습니다.”

“말도 말아. 포주를 넘어 폭발했다.”

이때 오영택 상사님의 영원한 맞수였던 이경석 상사가 이끄는 3소대 731호 전차가 앞으로 치고 나가고 있었다.

“워! 울 돌갱이 상사님이 나타났다.”

제대한 오영택 상사가 군 복무 시절 오경석 상사를 자주 돌갱이라고 불러서 그런지 김영주 중사도 나라님 없을 땐 욕도 하듯 무의식적으로 돌갱이라 불렀다.

상사 진급 후 7중대 부중대장이자 전차장인 오경석 상사의 731호 전차는 질풍노도처럼 하늘에서 쏟아지는 적 포탄을 무시하고 전방을 휘저으며 사정없이 광자포를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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