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43화 (443/605)

토끼굴 연기 피우기

2023년 12월 18일 18:00 (신중국시각 17:00),

신중국 베이징 시청구 주석실 외부망 서버실 본부.

윤태진 팀장의 걱정과는 반대로 유하연 주임은 나름 블랙 요원답게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실내로 들어가는 출입문에서 한참 동안 기다리다가 이곳에서 근무하는 직원으로 보이는듯한 사람이 홍채인식 등 여러 절차를 걸치고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는 틈을 타 조용히 실내로 들어왔다. 유하연 주임은 먼저 통신 연결을 위해 위층으로 올라가는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최대한 발소리가 들리지 않게 신속하게 계단을 타고 올라온 유하연 주임은 벽면에 3F라 쓰여있는 계단에 서서 바로 통신 시도를 했다.

“여기는 알파 투 다시 포! 알파 제로! 여기는 알파 투 다시 포! 알파 제로!”

아쉽게도 통신은 되지 않았다.

‘제기랄!’

지상으로 올라왔는데도 무음성 통신이 터지지 않자 유하연 주임은 살짝 입술을 깨물고는 곰곰이 생각에 들어갔다.

‘어쩔 수 없지! 사전 지침대로 움직이는 수밖에’

이자성 과장은 위험한 작전에 투입하는 2팀에 이런 상황이 될 때를 대비해 기본적인 지침 사항을 교육했다.

혹, 혼자 내부에 고립되어 외부와 통신이 되지 않을 시 TCS 모드 상태로 최대한 건물 내부를 스캔하고 내부망 서버실을 찾는다. 이후 탈출 과정에서 중앙 현관이나 비상문으로 나오기 쉽지 않을 시 옥상으로 올라와 통신 재개 및 탈출 지원을 받는다.

머릿속에 지침 사항을 되새긴 유하연 주임은 본격적으로 건물 내부 수색에 들어갔다. 복도로 통하는 출입문에서 SG-TAR 실드글라스를 이용해 복도를 따라 CC 카메라가 있는지를 확인했다. 무턱대고 문을 열었다가 혹 CC 카메라에 포착돼 의심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갈라지는 복도 위쪽에 하나, 복도 끝에 하나!”

CC 카메라의 위치와 복도에 사람이 없음을 확인하자 이내 X-K02 단말기를 조작해 CC 카메라를 일시적으로 먹통으로 만들고는 신속하게 문을 열고 복도로 들어왔다.

유하연 주임은 최대한 벽에 붙어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복도 양쪽에 있는 출입문의 창문을 통해 하나하나 확인에 들어갔다. 문 위에 사무실 이름이 적혀 있었으나 모두 한문으로 쓰여 있어서 알아보기 힘들었다.

이렇게 유하연 주임은 30여 분 동안 7층까지 은밀히 이동하며 실내 모든 사무실을 하나하나 확인에 들어가던 중, 복도 끝에서 한 사내가 나타나자 벽에 붙어 숨까지 멈췄다.

복도에 출현한 중년의 사내의 오른쪽 옆구리에는 화웨이 브랜드의 노트북이 들려 있었다.

‘엇! 저건 남 과장님이 호텔에 남긴 노트북! 저걸 가지고 있는 놈은 분명 주의할 인물이다. 저놈을 따라가야겠다.’

중년의 사내는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이에 소리소문없이 바로 뒤에 선 유하연 주임은 눈치채지 않게 엘리베이터에 함께 탔다. 그리고는 숨소리마저 들릴까 봐 숨을 멈췄다.

티잉!

한참 동안 내려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기다란 복도가 한눈에 보였다. 복도 끝에는 2명의 사내가 지키고 있었다. 중년의 사내가 복도를 따라 걷자 그제야 멈췄던 숨을 가쁘게 내쉰 유하연 주임은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직전에 빠져나와 조용히 뒤따랐다.

환하게 비취는 조명을 따라 복도를 걷던 사내는 지키고 있던 2명의 사내에게 신분증을 보여주고는 이내 출입문 옆에 있는 홍채인식기에 눈을 갖다 댔다.

삐익!

홍채인식기에서 신호음이 들림과 동시에 출입문이 열렸다. 이때 유하연 주임은 고민에 빠졌다.

2명의 사내를 속이고 은밀하게 따라 들어가느냐 아니면 여기까지 내부 스캔을 마치고 슬슬 탈출해야 하느냐. 그 고민은 바로 끝났다. 머릿속에서 갈등하는 동안 몸은 본능적으로 중년의 사내를 따라 들어가고 말았다.

‘엇! 여긴가?’

실내로 들어온 유하연 주임은 눈에 비췬 광경을 보고 흠칫 놀랐다. 가로막은 벽면은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었고 안에는 스탠드 다이에 최첨단 서버 수백 개가 각가지 기계음을 내며 여러 불빛을 반짝이며 돌아가고 있었다.

컴퓨터에 문외한이 보더라도 이곳은 서버실 이었다. 문제는 외부망이냐. 아니면 내부망이냐였다. 이것을 알기 위해 유하연 주임은 유리 벽을 따라 걸어가는 중년의 사내 뒤를 계속해서 따라갔다.

중앙 서버실 옆에 또 다른 사무실 공간, 중년의 사내가 다시금 홍채인식기를 통해 출입문을 열고 들어갈 때 따라 들어가 한쪽 벽면에 섰다.

“어! 어쩐 일로 이곳까지 오셨습니까? 하하”

생각보다 넓은 사무실 공간에 한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중년의 사내를 맞이했다.

“응 조용히 얘기 좀 할 게 있어서······.”

중년이 사내는 다른 직원들을 의식했는지 다가와 악수를 청하는 사내에게 귓속말로 조용히 말했다.

“아! 네. 이리 오시지요.”

사내는 중년의 사내를 회의실로 안내했다.

‘음, 저자의 부서가 아닌 다른 부서라면 이곳은 외부망 서버실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곳은 내부망 서버실일 확률이 커’

나름 머릿속에서 쾌재를 부르며 회의실까지 몰래 따라간 유하연 주임은 그들의 대화에 집중했다.

“과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앉자마자 물어보는 사내의 말에 따르면 중년의 사내는 과장이라는 직책을 가진 자였다.

“조용히 이 노트북 좀 확인해줘!”

“네? 웬 노트북입니까?

탁자 위에 올려진 노트북을 끌어당긴 사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아직 이 부서는 소문을 못 들었군.”

둘밖에 없는 회의실을 고개를 돌려 확인한 중년의 사내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우리 외부망 서버실이 해킹을 당했어. 다행히 초반에 감지해 위치까지 추적했지. 근데 아주 가까운 거리라 우리 보안 직원과 흑호대 요원까지 해킹한 곳을 덮쳤는데 말이야. 아쉽게 놓쳤지. 하지만 해킹에 시도한 이 노트북을 확보할 수 있었네.”

“워! 정말입니까? 언제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은 사내가 노트북을 더욱 유심히 바라보며 전원을 켰다.

“우리 부서 실력자들이 확인했는데 별다른 걸 찾지 못했네. 그래서 실장님 승인하에 이곳으로 가져온 거야. 자네 실력이라면 뭔가 알아내지 않을까 해서 말이야.”

“헉! 비공식적인 겁니까?”

“맞아! 이건 비공식적인 거야. 공식적이었으면 자네 상관에게 공문을 보내고 원칙대로 했겠지. 하지만 그렇게 되면 시간이 지체되잖나. 샤오빙 자네가 확인 좀 해줘!”

“지금 바로요?”

“그래!”

샤오빙이라 불리는 사내는 주석실 내부망 서버실 연구원이었다. 24살이라는 나이에 베이징 대학원에서 컴퓨터 박사학위를 딴 자로 컴퓨터에 있어서 신중국 내 세 손가락에 드는 천부적인 실력을 갖추고 있는 자였다.

“확인해보려면 시간이 좀 걸립니다.”

“얼마나 걸리겠나? 일주일?”

“하하, 아닙니다. 한두 시간이면 됩니다.”

“휴! 난 또 시간 좀 걸린다고 해서 며칠 이상 걸리는 중 알았네.”

“아! 과장님 때문에 야근해야겠네요. 넉넉히 2시간 후에 오시면 결과를 말씀해 드릴게요.”

“고맙네. 오늘 야근 수당은 특별히 우리 부서에서 확실히 챙겨주겠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꼼꼼히 확인 좀 해줘!”

“누구 부탁인데요. 잘 알겠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두 사내의 대화를 X-K02 단말기 화면을 통해 번역된 글로 확인한 유하연 주임은 입꼬리를 올리며 피식 웃었다.

남궁원 과장이 일부러 호텔 거실에 남겨둔 노트북에선 단서가 될만한 아무런 정보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두 사내가 진지하게 대화하는 상황이 너무 웃겼다.

대화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난 중년의 사내가 샤오밍이라는 연구원의 어깨를 두드리고 회의실에서 나오자 함께 나온 유하연 주임은 또다시 고민에 빠졌다.

중년의 사내를 따라 이곳을 빠져나가느냐. 아니면 이곳이 내부망 서버실 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상, 최종 임무를 수행하느냐였다.

하지만 유하연 주임의 머릿속에서는 후자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내부망 서버실을 이렇게 운 좋게 들어올 수 있는 상황은 흔치 않았다. 당연한 절호의 기회였다.

X-K02 단말기 화면에 전지 잔량이 50%로 표기되어 있었다. 시간으로 따지면 45분 정도 나름 충분한 시간이라 생각된 유하연 주임은 바로 최종 임무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 바로 움직였다.

그동안 길 안내를 한 중년의 사내를 뒤로하고 유리 벽면을 따라 살피기 시작한 유하연 주임은 이내 중앙 서버실로 통하는 입구를 발견했다.

다행히 지키는 자도 없고 X-K02 단말기로도 무용지물이었던 홍채인식 보안시스템도 없었다. 비밀번호와 직원 카드로 인식으로만 운용되는 문 앞에선 유하연 주임은 주변 천장을 둘러봤다.

총 4개의 CC 카메라가 서버실 출입문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 외부와 통신만 됐다면 저 CC 카메라에 대한 조작 지원을 받았을 텐데······.’

X-K02 단말기로 4개 CC 카메라를 먹통으로 만들고 그 짧은 시간 다시금 출입문 보안장치를 조작해 안으로 들어가기엔 시간상 부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유하연 주임은 운에 맡기기로 하고는 바로 X-K02 단말기를 조작해 10초 정도 4개 CC 카메라를 먹통으로 만든 다음, 바로 출입문 보안장치 개폐를 시도했다.

긴장한 탓에 이마에서 한줄기 땀방울이 뺨을 타고 턱선에서 맺히고는 떨어졌다.

띠딩! 띠이이잉!

‘성공’

몇 초가 흘렀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출입문이 열리자 바로 들어간 유하연 주임은 숨도 쉬지 않고 서버 뒤쪽으로 몸을 숨겼다. 투명상태임에도 너무 긴장한 나머지 본능적으로 나온 행동이었다.

문이 닫히는 찰나, CC 카메라도 다시금 정상적으로 운용된 걸 확인한 유하연 주임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가만히 서 있었다.

불길한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바닥을 울리는 발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투명 유리 벽 너머 2명의 보안 직원이 출입문 쪽으로 뛰어왔다.

CC 카메라를 운용하는 팀에서 갑자기 4개의 CC 카메라가 고장이 났다며 복도에서 지키고 있던 보안 직원에게 급히 가보라는 지시가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보안 직원 2명은 출입문부터 양쪽으로 갈라져 걸어가며 투명한 유리 벽 너머 중앙 서버실 곳곳을 꼼꼼히 살폈다. 5분 정도 살펴본 이들은 특이한 점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통신을 보내고 난 후 다시금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5분간 쥐죽은 듯 가만히 있던 유하연 주임은 수많은 서버 중, 하나를 선택하고는 주머니에서 작은 케이스 하나를 꺼냈다. 케이스 안에는 작은 USB 장치가 들어있었다.

유하연 주임이 장착한 터키온-X 무음성 통신기보다 수십 배에 달하는 송수신율을 보이는 터키온-Y 통신시스템이 내장되어 있고 또한 임의로 자체폐기 시킬 수 있는 최첨단 USB였다.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내부망 서버 같은 것을 해킹하는 데 매우 필요한 장치 중의 하나였다.

최대한 들키지 않도록 맨 하단에 있는 서버 뒤쪽의 USB 삽입구에 USB를 꽂았다. 그러자 USB에서 푸른 불빛이 3번 정도 깜빡이다 꺼졌다. 제대로 작동하는 뜻이었다.

이제 남은 건 들키지 않고 서버실에서 나가는 것,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소매로 훔친 유하연 주임은 나갈 방법을 아까 전 미리 생각해놨었다.

중앙 서버실을 가나는 출입문선 유하연 주임은 심호흡을 하고는 X-K02 단말기로 아까와 마찬가지로 4개의 CC 카메라를 먹통으로 만들고 출입문 버튼을 눌렀다. 나갈 때는 손쉽게 노란 버튼을 눌러서 문을 열 수 있었다.

문이 열리자 유하연 주임은 빠른 걸음으로 복도로 나가는 또 다른 출입문으로 향했다. 보안 직원 2명이 복도에서 지키는 문이었다.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으며 경보하듯이 빠른 걸음으로 출입문에 다가올 때쯤 유하연 주임이 생각한 대로 출입문은 열렸고 얼굴에 불만이 가득한 보안 직원을 모습을 드러냈다.

CC 카메라 운용팀에서 다시금 가보라는 지시가 내려져 저러한 표정을 짓는 듯했다.

유하연 주임은 다가오는 2명의 보안 직원 사이로 빠져나와 막 닫치려는 출입문을 가까스로 통과하여 복도로 나오는 데 성공했다.

“휴우~”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 유하연 주임은 기다란 복도를 따라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