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혀진 진실
2023년 12월 11일 09:30,
남주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와대 국가위기상황센터 지하 벙커.
이영진 원장과 강기원 국장은 금일 아침 일찍 소집된 NSC(국가안전보장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며칠간 짱천의 진술과 자백을 바탕으로 작성된 최종 보고서를 가지고 지하 벙커 회의실을 방문했다.
한러전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기에 이곳 청와대 국가위기상황센터 지하 벙커에서는 NSC(국가안전보장회의)는 자주 소집되었으나 오늘은 특별히 우진길 교수와 관련된 플라즈마 핵심기술 유출 건에 대해 국가정보원으로부터 중간 수사 상황을 브리핑을 받기 위해 소집되었다.
추은희 대통령을 중심으로 양쪽 테이블에 NSC 위원들이 앉아있는 가운데 강기원 국장이 스크린이 장착된 한쪽 벽면에 서서 브리핑을 막 시작했다.
한 손에 마이크를 쥔 강기원 국장은 짱천 체포 이후 3일 간 강도 높은 취조를 통해 얻어낸 정보를 중심으로 브리핑을 이어갔다.
20여 분간, 브리핑이 진행되는 동안 NSC(국가안전보장회의)에 참석한 상임위원들은 진중하고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청취했다.
“이로써 플라즈마 핵심기술 유출 사건에 대한 중간 브리핑을 마칩니다.”
마이크를 단상 탁자에 내려놓은 강기원 국장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이영진 원장 뒤쪽 자리로 이동했다.
“또다시 지나국 놈들 입네까? 이 죽일 놈들은 당최 우리나라에 도움은커녕 항상 훼방만 놓은구만요. 이번 기회에 왜국처럼 확실하게 조치를 취해야디 않겠습네까?”
“맞습니다. 그냥 넘어가선 안 될 일입니다. 2년 전 당시 일본에 조치한 것처럼 신중국의 인민해방군 자체를 폐지하고 우리 국군이 주둔해야 이런 짓을 다시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북한 출신 관료답게 보수적인 성향인 통일정책부 김영철 부총리가 탁자를 가볍게 두드리며 다른 상위위원들을 둘러봤다. 이에 법무부 박범태 장관 역시 동조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2년 전, 제1차 동북아 전쟁이라 불리는 일본과 중국 그리고 미국과의 전쟁에서 연거푸 승리한 대한민국은 미국과는 평화적인 종전 협의로 평화적인 마무리 했지만, 중국과 일본은 달랐다.
일본 같은 경우, 1910년 국권피탈(國權被奪)) 즉, 경술국치를 시작으로 36년간 일본 식민지 통치를 받았던 역사적 국민감정이 남아 있던 터라 일본의 항복 조항 문서에 일본 자위군에 대한 전면 폐지와 더불어 일본 국토방위를 한다는 명목으로 대한민국 국군이 100년간, 일본 영토에 주둔한다는 초강력 조처를 했다.
사실 한중전 종전 당시에도 중국의 항복 조항 문서에 인민해방군의 전격 폐지와 대한민국 국군의 상주 주둔 조항을 넣자는 의견들이 있었다. 하지만, 일부 관료들이 반대했다. 이유로는 한반도보다 수십 배 넓은 중국 영토에 대한민국 국군으로만 대신 주둔시켜 방위 임무를 맡기기엔 역부족이다는 것과 대신 소수민족의 독립과 한족 중심의 중국을 적어도 2개 이상으로 분리하자는 의견에 힘이 쏠리면서 일본과는 다르게 그렇게 진행되었다.
결과적으로 소수민족들이 독립되고 한족 중심의 중국이 3개국으로 쪼개져 예전 G2라 불리던 중국은 사라졌지만, 예전 중국의 공산당을 그대로 계승한 신중국의 군사력은 다른 2개국보다 생각 이상으로 건실했고 2년간 내전 아닌 내전을 치르면서도 계속 키워나가고 있었다.
이 부분을 박범태 장관이 지적했다. 종전 당시 중국의 인민해방군을 완전히 폐지하고 대한민국 국군이 주둔했다면 이러한 짓을 벌일 생각도 못 했을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저 역시 김 부총리님이나 박 장관님 의견에 찬성하나 지금은 유출된 플라즈마 핵심기술을 회수하거나 폐기해야만 합니다. 그 이후에 국가적인 조처를 해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번 통일 정권에서도 차세대기술협력부 장관에 연임된 임태연 장관이 뜨거워진 회의실 열기를 가라앉히고자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놓았다.
“그렇지요. 임 장관 말만 따라 유출된 핵심기술의 회수나 폐기가 먼저라 생각됩니다. 브리핑대로 현재 국정원에서 잘 하고 있지 않습니까? 향후 신중국에 취할 조처에 대해서는 이견은 조율하데 성급히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윤연 국무총리가 차분한 어조로 임태연 장관의 의견을 보탰다. 하지만 극보수주의자로 알려진 국토교통부 정태국 장관이 다시금 열을 올리며 성토했다. 표정까지 실룩거리는 것으로 보아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국정원은 국정원대로 가고 정치적으로 신중국에 압박을 가해야지 않겠습니까? 예전의 우리 대한민국이 아닙니다. 예전처럼 물렁거리는 물두부처럼 보이면 안 됩니다.”
정태국 장관이 침까지 튀며 한 말이 절대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남북통일을 이루고 이제는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 오른 대한민국이 예전에 주변 강대국에 둘러싸여 정치적인 입김도 내지 못했던 시절은 아니었다. 정치적이든 경제적이든 또한 군사적이든 대한민국은 어느 국가를 상대로도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강대국 중의 강대국이었다.
“제가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국방부 강이식 장관이 살짝 손을 들고는 입을 열었다.
“저 역시 정 장관님과 같은 마음이며 더불어 대통령님께 신중국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가하자는 조언을 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은 러시아와 전쟁을 수행 중입니다. 전쟁 양상이 우리 대한민국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지만, 만에 하나 이번 건으로 신중국과 전쟁이 벌어진다면 승리는 할 수 있겠으나, 우리 국군 역시 적잖은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봅니다.”
강이식 장관의 말에 대통령을 비롯해 상임위원들이 경청했다.
“일단은 유출된 핵심기술을 회수하거나 폐기할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한러전을 끝낸 후 정식으로 신중국에 대해 조처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음, 기렇군요. 이거이 우리 국군이 너무 잘 싸워져서 가끔 러시아와 전쟁 중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디요. 하하하”
양측 의견이 대립하던 차, 강이식 장관의 차분한 의견과 김영철 부총리의 농담 섞인 말에 회의실 분위기는 한순간에 화기애애해졌다. 그리고 지금까지 듣고만 있던 추은희 대통령이 말문을 열었다.
“잘 들었습니다. 여러분들의 의견 하나하나가 좋은 말입니다. 저 역시 유출된 기밀에 대한 회수와 폐기가 최우선이라 봅니다. 또한, 국가적으로 신중국에 여러 압박을 가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가 신중국에서 빼돌린 기밀을 모르쇠로 일관하며 더욱 은폐한다면? 북경에서 활동 중인 우리 국정원 요원들이 힘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 원장 생각은 어떻습니까?”
차분히 말하던 추은희 대통령은 이영진 원장 쪽으로 고개를 돌려 질문을 했다.
“네, 대통령님! 대통령님 말대로 기밀에 대해 회수를 하거나 폐기할 때까지는 신중국에 대해 공식적으로 그 어떠한 조처를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다들 답답한 심정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좋은 성과를 낼 것입니다.”
이영진 원장은 자신이 생각한 바를 여러 상임위원을 둘러보며 부탁 조로 대답했다. 이에 모든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 ★ ★
2023년 12월 13일 18:00 (신중국시각 17:00),
신중국 북경시 화이러우구 대외정보국 비밀 안가.
짱천을 무사히 한국 국가정보원으로 후송한 이자성 과장과 요원과 마카오에 남아 있었던 나머지 팀도 모두 북경으로 이동한 상태였다.
북경에서 남궁원 과장과 합류한 대외정보1과는 곧바로 유출된 플라즈마 핵심기술의 회수를 위한 작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낮에는 관광객으로 위장하여 흑호대 본부는 물론 주석실의 내부망 서버실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고 밤에는 해킹하여 암호까지 푼 정보를 토대로 향후 진행할 작전 계획을 수립해 나갔다. 하지만 일주일이 다 돼가는 상황에서도 이렇다 할 정보를 수집하지 못하고 외부망 해킹자료 또한, 활용할 수 있는 수준까지 미치지 못했다.
이에 남궁원 과장은 특단의 조치를 하기 위해 대외정보1과 모든 요원에게 회의 소집을 했다.
저녁 시간이 되자 밖으로 나갔던 대외정보1과 요원들이 하나둘 퇴근하듯 이곳 비밀 안가로 들어왔다.
긴급회의 소집으로 인해 다른 날보다 2시간 일찍 들어온 요원들은 갈수록 추어지는 북경 날씨에 된통 당했는지 너도나도 거실 한쪽 벽에 설치된 벽난로에 모여들었다.
“아후, 오늘은 왜 이렇게 춥냐? 귀 떨어지는 줄 알았다.”
윤태진 팀장이 양손에 커피잔을 쥐고 코에 갖다 대고는 향을 맡으며 엄살을 부렸다. 북경의 12월 겨울 기온은 평균 영하 3도밖에 되지 않았으나, 이상기온 때문인지 요새는 영하 10도를 오고 갔고 오늘은 영하 13도까지 내려가는 강추위를 보였다.
요원들은 몸속에 보호 슈트 덕에 체온은 유지할 수 있었지만, 얼굴과 귀는 차가운 공기를 맞으며 추위를 버텨야 했다.
“팀장님! 내일부터는 이거 쓰세요.”
2팀 홍일점인 유하연 주임이 언제 준비했는지 앙큼한 귀마개 하나를 종이상자에서 꺼내 들고는 흔들었다.
“뭐야? 귀마개?”
“네, 귀엽죠? 오늘 외근 중에 팀장님 생각나서 샀어요.”
“아! 맘은 고마운데 이런 거 쓰면 명색이 정보요원인데 가오 아니 깃 떨어지지 않겠냐?”
“흥! 생각해서 산 건데······.”
이때 박기웅 팀장이 언제 왔는지 유하연 주임이 들고 있던 귀마개를 낚아채고는 머리에 썼다.
“오! 따뜻한데? 좋다야! 싫으면 내가 쓸게. 유 주임!”
“야마! 그거 내꺼거든? 내놔 마!”
윤태진이 몸을 날려 뺏으려 들자 박기웅은 획 뒤돌아 피했다.
“싫다며 마! 깃 떨어진다며? 왜! 쓰긴 싫고 남 주기엔 더 싫냐?”
양손으로 귀마개를 꽉 쥔 박기웅 팀장이 혀까지 내밀며 약을 올렸다.
“누구 안 쓴다고 했냐마! 내놔!”
“아 그만 들 하세요. 호호호, 다 줄려고 많이 사 왔어요.”
귀마개 하나를 두고 어린애처럼 두 팀장이 실랑이를 벌이자 유하연 팀장이 박장대소를 하며 종이상자에서 여러 개의 귀마개를 꺼내 보였다.
“왜 이리 시끄러워? 다들 모였으면 회의 준비들이나 하지!”
위층에서 남궁원 과장과 함께 내려온 이자성 과장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두 팀장을 향해 야단치듯 말하며 소파에 앉았다.
“아직! 4팀장과 팀원들이 오지 않았습니다.”
3팀장인 신은하 팀장이 거실에 모여있는 요원들을 보고는 말했다.
“4팀? 아! 4팀은 좀 늦을 거야. 따로 시킨 일이 있어서 말이야. 그럼 4팀 빼면 다 온 거지?”
“네, 과장님! 다 모였습니다.”
“좋아! 그럼 다들 회의하게 모여!”
“네, 알겠습니다.”
10여 명의 요원이 한쪽 벽면을 보고 거실에 바닥이나 의자에 앉았다.
“그럼 시작하지?”
“오케이!”
이자성 과장의 말에 남궁원이 요원들 앞에서 서고는 회의를 시작했다.
“오늘 이렇게 긴급회의를 하고자 한 것은 우리 요원들이 고생하는 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아서 조금은 위험할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을 취하고자 한다.”
남궁원 과장은 자신을 바라보는 요원들을 한번 쓱 하니 둘러보고는 말을 이어갔다.
“다들 알겠지만, 주석실 외부망 서버에서 해킹한 자료의 암호를 다 풀어봤지만, 영양가 있는 정보는 확인할 수 없었다. 또한, 요원들이 외부 활동을 통해 우리가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확률도 미지수이기도 해서 말이야. 그래서 우리가 찾아낼 수 없다면, 필요한 정보가 알아서 나오게끔 해야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알아서 나오게끔 하다니요?”
1팀 강원일 주임이 초등학생처럼 손을 번쩍 들고는 질문을 했다.
“말 그대로다. 우리가 찾을 수 없다면 필요한 정보가 알아서 나타나게끔 하는 방법! 그건 바로, 이거다.”
남궁원 과장은 방금 켜진 대형 TV를 가리켰다. TV 화면에는 여러 그림과 기호들이 그려져 표현되고 있었다.
“뭐, 이런 그림까지 보여줄 필요는 없지만,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하려고 말이야.”
“엇 저건?”
컴퓨터 해킹 분야의 전문가답게 특수보안팀 나성현 대리와 김영균 주임이 동시에 입을 떼고는 아는 체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