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혀진 진실
2023년 12월 7일 20:30,
남주 서울특별시 강남구 국가정보원 대외정보국(2과 취조실).
박원호 팀장에게 한 차례 더 혹독한 주먹 사례를 맞고 평생 잊지 못할 기절 경험을 여러 번 한 짱천은 바닥에 웅크린 상태로 신음을 토하고 있었다.
“시작해!”
취조실 반사거울 너머 작은 방에는 짱천에 대한 취조 장면을 보기 위해 이영진 원장이 직접 방문했다.
팀원의 안내를 받으며 이영진 원장이 의자에 앉자 대외정보국 강기원 국장이 마이크에 대고 지시를 내렸다.
“시작하지”
강기원 국장의 지시에 대외정보2과 3팀 요원들이 취조실에 들어와 짱천을 일으켜 세우고는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맞은편 의자에는 북경어가 유창한 3팀장 김성현 팀장이 앉고는 질문할 내용이 적힌 문서를 탁자 위에 올려놨다. 그리고는 가지런히 두 손을 모으고는 살벌한 눈빛을 발산했다.
“자! 지금부터 질문을 시작할 거야. 숨김없이 아는 대로 모조리 말하는 게 네 신상에 좋을 거야. 안 그럼 내일도 매타작으로 하루를 보낼 테니까 말이야.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지?”
김성현 팀장의 말에 짱천은 움찔했다. 자칫 잘못했다간 내일도 오늘 같은 끔찍한 경험을 더는 하고 싶지 않았다. 이에 순간적으로 무서움이 엄습해오자 자기도 모르게 움찔한 것이었다.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일수록 이렇게 멘탈 붕괴에 직면하게 되며 도리어 끝없이 밑바닥까지 추락할 수 있었다. 그렇듯 온종일 무자비한 매타작을 당하면서 짱천의 머릿속에는 오직 이 생각뿐이었다. ‘제발, 궁금한 게 있으면 질문해라 뭐든지 다 말하겠다.’
“뭐, 뭐든지 물어보시오. 다 말, 말할 테니······.”
힘겹게 입을 연 짱천, 모든 걸 포기한 상태로 보였다.
“그래, 그래야 할 거야.
질문 리스트의 첫 장을 넘긴 김성현 팀장이 첫 질문에 들어갔다.
“소속”
“흑호대 해외정보부 2팀입니다.”
“이름?”
“장이씽, 닉네임은 짱천입니다.”
“짱천! 플라즈마 기밀 유출과 관련하여 세부 정보는 어디서 받았나?”
“흑호대 해외정보부 부장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이 자식아! 내가 말하는 건, 흑호대가 어떻게 우진길 교수와 가족 정보를 누구로부터 받았냐는 거야.”
“그, 그것은,”
“왜, 말하기 싫은 거야? 그럼 내일 이만 때쯤 다시 볼까?”
“아, 아닙니다.”
짱천은 손사래를 치며 허둥댔다.
“그럼 아는 대로 불어, 한 번 더 모르는 척 연기 떨면 오늘 취조는 끝이고 다시 한번 끔찍한 경험을 해 줄 테니까 말이야.”
“네, 네, 우진길 교수에 대한 정보는 2년 전 한국 정보부로부터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시종일관 살벌한 눈빛을 발산하며 음산한 어조로 질문을 던지던 김성현 팀장이 속으로 흠칫 놀랬다.
“뭐? 한국 정보부?”
“네,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한국 정보부라면 어디를 말하는 거야?”
“국정원은 아니고 연수국의 고위관료로 알고 있습니다.”
“연방광역수사국 고위관료?”
“그거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 현장 팀의 팀장급이라, 그 위 단계까지는 진짜 모릅니다.”
짱천은 제발 믿어달라는 눈빛으로 애걸복걸했다.
사실 국가정보원에는 자백하게끔 만드는 일명 진실의 약이라 불리는 특수 물약이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사용하면서 일부 취조자의 뇌에 치명적인 부작용이 일어나면서 될 수 있으면 사용을 자제해왔고 짱천 역시 부작용을 염려해 구식방법을 선택했는데 제대로 들어맞았다.
그 시각 취조실 건너면 작은 방에서 지켜보고 있던 이영진 원장이 굳은 표정으로 강기원 국장에게 말했다.
“연수국의 고위관료라면 누구일 거 같나?”
“음, 아무래도 이번에 국가전복죄로 구치소에 수감 된 김형철 부국장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는군”
“그 인간 밖에는 이런 짓을 벌일 사람은 없다고 봅니다.”
“그래, 자네 말대로 김형철 부국장이 가장 의심이 되지, 몹쓸 인간, 국가전복죄에 이어 국가기밀 유출의 발단이 될 정보를 적국에 흘리다니, 정말 한심스럽군. 그렇다고 김형철을 확정할 순 없으니, 연수국에 대해서도 수사가 필요할 듯하군, 이거 참, 강혁 국장이 또 난처해지겠군.”
이영진 원장은 혀를 차며 잠시 어두운 천장을 바라보는 사이 건너편 취조실의 취조는 계속되었다.
★ ★ ★
2023년 12월 10일 13:30,
남주 서울특별시 강남구 국가정보원 대외정보국(회의실).
3일간 강도 높은 짱천의 취조를 진행한 대외정보국 2과는 자백받은 정보를 토대로 보고서를 작성했고 금일 국장급 간부 회의에서 브리핑을 통해 보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음, 음, 지금부터 짱천이 자백한 정보를 토대로 브리핑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회의실 한쪽 벽면에 설치된 스크린 앞에 선 대외정보국 강기원 국장이 헛기침을 두 번하고는 입을 열었다.
“2021년 4월 신중국 주석실의 직속 첩보기관인 흑호대는 연방광역수사국 고위관료로부터 플라즈마 원천기술의 주요 연구원인 우진길 교수와 그의 자녀에 대한 정보를 전달받고 본격적인 기밀유출 공작을 실행했습니다.”
“저기! 연수국 고위관료는 누구인지 밝혀졌습니까?”
대테러수사국 안연우 국장이 손을 들고는 질문을 던졌다.
“현재, 비밀리에 연수국 고위관료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비밀리에 수사 중이나, 아직 밝혀진 건 없습니다. 단지, 국가전복죄로 현재 구치소에 수감 되어있는 김형철 전 부국장으로 좁혀지고 있습니다.”
“연수국 수사는 어디에서 맡고 있습니까?”
안연우 국장의 추가 질문에 이영진 원장이 끼어들었다.
“그 부분은 내가 말하겠네. 같은 사정 기관이기도 해서 이번에는 국가비리암행원에서 직접 수사 중이네. 여기 있는 국장급 이상 간부들은 극비 중의 극비니 다들 알고만 있도록 하고 기밀 유지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잠시 질문으로 인해 브리핑이 끊겼던 강기원 국장은 다시금 브리핑을 이어갔다. 흑호대가 우진길 교수의 정보를 획득한 후 홍콩에서 거주하는 자녀의 손주를 납치, 그리고 2년간 플라즈마 핵심기술을 빼돌린 경과에 대해서 시간대별로 상세한 설명을 했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짱천이 2년간 홍콩에서 플라즈마 핵심기술을 빼돌리는 공작을 벌이면서도 개인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마약밀매 조직인 칭다오파를 홍콩으로 끌어들여 뒷배를 봐주고 큰돈을 벌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플라즈마 핵심기술 유출 공작이 성공적으로 끝난 후 1개월간의 휴가를 보내기 위해 마카오에서 여러 카지노를 돌아다니며 도박을 해 그동안 칭다오파로부터 수금했던 돈을 모두 탕진했고 급기야 대외정보1과에 자신의 신상정보가 발각되는 빌미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30여 분간의 브리핑이 끝나고 국장들로부터 몇 차례 추가 질문을 받은 강기원 국장이 자리에 앉았다.
“수고했네. 강 국장! 모든 사건의 경위가 밝혀진 만큼 지금부터는 유출된 플라즈마 핵심기술의 확실한 회수나 그게 안 된다면 철저한 폐기라 봅니다.”
급기야 자리에서 일어난 이영진 원장은 진중한 표정으로 여러 국장을 둘러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대외정보국이 전담하는 작전임에도 불구하고 국장급 이상의 모든 간부를 불러모아 이러한 회의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 국가정보원의 이름을 걸고 반드시 유출된 플라즈마 핵심기술을 회수 및 폐기할 수 있도록 모든 부서가 하나가 되어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기 바라는 바입니다.”
★ ★ ★
2023년 12월 10일 17:30, (신중국시각 16:30),
신중국 베이징 시청구 흑호대 본부.
왕징위 주석으로부터 비서실 쪽 자리를 약속받아 매일 기분 좋게 지대던 흑호대 신바이칭 대장에게 암울한 보고가 올라왔다.
“대체 그게 무슨 말인가? 장리칭이 사라졌다고?”
“네, 3일 전부터 긴급 연락망으로도 연결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왜 그걸 이제야 말해?”
신바이칭 대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두 눈으로 노려보며 질타하자 부동자세로 서서 보고하던 댜오이난 부대장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우물쭈물했다.
플라즈마 핵심기술 유출 공작의 현장 책임자로 본명이 장리칭인 짱천이 만에 하나 신변에 문제가 생긴다면 직접적으로 신바이칭 대장에게도 악재로 다가올 수 있는 주요한 인물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단순 연락 두절로 판단한 바람에······.”
“이런, 멍청한, 내가 그리 말하지 않았나? 홍콩에서 공작을 폈던 요원들 확실히 관리하라고 말이야.”
“죄송합니다.”
댜오이난 부대장은 연거푸 고개를 조아리며 죄송하다는 말만 해댔다. 이에 못마땅한 표정으로 질문을 이어갔다.
“마지막 위치는?”
“마카오 베네치안 호텔입니다.”
“그래서 조치는 취했나?”
“네, 현재 파견된 홍콩지부 요원들이 급파하여 조사 중입니다.”
“진척상황은 없고?”
“그것이, 현재 조사 중이긴 하나, 4일 전, 카지노 VVIP 룸에서 큰 소란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장리칭과 연관된 거 같습니다.”
“VVIP 룸? 장리칭이 무슨 VVIP 룸이야? 무슨 돈이 있다고······. 그리고 소란은 무슨 소란? 상세하게 말해봐!”
친바이칭 대장의 계속되는 질문에 댜오이난 부대장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그리고는 몇 일간 조사한 내용을 소상히 보고했다.
“그게 대체 무슨 말이야? 홍콩에서 공작 활동을 하는 동안 마약밀매 조직과 연계해 사업을 해? 제정신이야?”
“흑호대 영향력을 발휘하여 아무래도 개인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벌인 듯합니다.”
“이 미친 새끼! 그래서 그 VVIP 룸에서 납치라도 당했다는 건가?”
흥분한 나머지 친바이칭 대장은 탁자 위에 올려놨던 화분을 그대로 발로 걷어찼다.
짱그랑!
“베네치안 호텔 VVIP 룸 소속의 보안직원을 매수해 확인한 바로는 아무래도 납치된 것으로······.”
“대체 누가?”
“칭다오파의 라이벌인 삼합회 홍콩지부의 룽라이파 소행일 수도 있으나······.”
댜오이난 부대장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말끝을 흐렸다.
“있으나? 또 다른 뭔가가 있다는 건가?”
“그, 그것이 한국 정보국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 정보국이라는 말에 친바이칭 대장은 의자에 철퍼덕 주저앉고는 잠시 공황 상태에 빠졌다.
주석으로부터 비서실의 한 자리를 따놓은 상태에서 만에 하나 한국 정부가 플라즈마 핵심기술 유출 공작의 배후가 신중국 주석실이라는 것을 밝혀냈다면 정치계에 뛰어들어 자신의 야망을 펼치려던 자신의 꿈은 일순간 물거품이 될뿐더러 자칫 모든 책임을 지고 숙청될 수도 있었다.
잠시 허망한 표정으로 넋을 잃고 있는 신바이칭 대장에게 댜오이난 부대장이 염려 섞인 어조로 물었다.
“대장님! 괜, 괜찮습니까?”
“지, 지금 괜찮게 생겼나? 제길, 그런데 한국 정보국일 수도 있다는 근거는 뭔가?”
“보안직원의 말을 듣자면, 장리칭이 납치될 당시 납치범들의 장비들이 예사롭지 않았다고 합니다. 투명상태로 변하거나 호텔 옥상으로 이동한 후 흔적도 없이 사라진 점도 그렇고······. 특히 투명상태로 변할 수 있는 장비를 보유한 건 한국 정보국밖에 없습니다.”
“장리칭 이 개자식 때문에 내 꿈이 산산이 부서지겠군. 부대장!”
“네, 대장님!”
“만에 하나, 자네 말대로 한국 정보국에서 눈치를 채 장리칭을 납치했다면 이건 매우 큰 문제야. 우리 목숨이 걸린 문제란 말이야.”
댜오이난 부대장 역시 인정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된 이상, 최대한 한국 정보국, 그 뭐지? 국가정보원인가?”
“네, 맞습니다.”
“그쪽 상황 어떻게든 파헤쳐봐! 그리고 우리도 살길을 찾아야겠어. 유럽에 있는 재키 리에게도 연락해놔”
“네, 알겠습니다.”
잠시 후 댜오이난 부대장이 나가고 대장실에 혼자 남게 된 신바이칭은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지금 상황에서 살길은 이것뿐인가?’
신바이칭 대장은 책상 밑에 있는 작은 금고에서 USB 메모리를 꺼내 들었다. USB 메모리 안에는 그동안 우진길 교수로부터 빼돌린 플라즈마 핵심기술 복사본이 담겨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