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34화 (434/605)

일벌백계

2023년 12월 7일 00:25, (마카오시각 23:25),

중화민국 마카오특별구역시 샌즈 코타이 베네치안 호텔 스카이라운지.

전자봉만 들고 급히 스카이라운지로 내려온 박기웅 팀장은 특수안경을 통해 출입문 너머 상황을 확인했다.

스카이라운지 불은 이미 켜져 있었고 이자성 과장은 한쪽 벽면을 등진 채로 둘러싼 보안직원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과장님! 알파 원입니다. TCS 모드로 빠져나오세요. 제가 출입문에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 지직! 지직! 지지지지직!

이자성 과장과 방금까지 문제없이 통신했던 무음성 통신기에 이상이 생겼는지 잡음만 들려왔다. 아무래도 보안직원들과의 대치 상황 중에 통신 발신기가 고장 난 듯했다.

‘그래도 내 말에 반응은 했으니 수신기는 괜찮은 듯하군’

“과장님! 제가 TCS 모드로 저놈들 시선을 돌릴 테니 그때를 노려 옥상으로 올라가세요. 5초 후에 시작합니다.”

박기웅 팀장의 무음성 통신에 반응하듯 또다시 잡음이 들려왔다.

“생각대로 들었다는 거군. 좋아! 지금부터 귀신 놀이 좀 해볼까?”

박기웅 팀장은 왼쪽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고는 장착된 X-K02 단말기를 조작했다. 그러자 공간이 일그러지는 듯하더니 이내 박기웅 팀장은 투명상태가 됐다.

“후우~”

길게 숨을 내쉰 박기웅 팀장은 전자봉의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10cm만 한 전자봉 손잡이에서 낚싯대처럼 단계별로 봉이 튀어나와 펼쳐졌다. 총 길이는 70cm짜리 전자봉은 닿기만 해도 사람이 기절할 정도의 전압이 걸려있었다.

마음속으로 열까지 쉰 박기웅 팀장은 투명상태로 출입문 열고 그대로 이자성 과장 쪽으로 권총을 겨누고 있는 보안직원들 쪽으로 달렸다. 아니 날랐다고 해야 하나, 공중으로 솟구친 박기웅 팀장은 가장 먼저 보이는 보안직원의 머리통을 전자봉으로 후려쳤다.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보안직원은 짧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꼬꾸라졌다.

‘너무 강하게 쳤나?’

박기웅 팀장 생각처럼 강력한 고압전기가 아니더라도 세게 내려친 충격에 기절하고도 남을 듯했다.

“뭐! 뭐야?”

“으악!”

“악!

보안직원들은 마치 귀신을 본듯한 표정을 지으며 기겁했다. 그들의 눈에는 1m도 안 되는 짧은 은빛 봉 하나가 허공에서 춤을 추듯 움직이며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저, 저리 가!”

겁에 질린 몇 명의 보안직원은 뒷걸음질을 치며 도망갔지만, 강심장을 보유한 보안직원들은 허공에서 춤을 추며 이리저리 움직이는 은빛 봉을 향해 총격을 가했다.

탕! 탕! 타탕! 타앙!

하지만 은빛 봉은 마치 살아있는 듯 이리저리 피하고는 총격을 가한 보안직원들 한가운데로 파고들었다. 그리고는 이내 보안직원들의 머리와 팔다리를 사정없이 내려쳤다.

스치기만 해도 고압전기에 감전되어 그대로 실신하는 보안직원들이 속출했다. 또한, 동료 직원이 다칠까 봐 총도 쏘지 못하자 다들 허둥댔다.

한편 이자성 과장은 박기웅 팀장이 귀신 놀이를 하는 틈을 타 출입문 쪽으로 몸을 날렸다.

타타타타타탓!

한 바퀴 바닥을 굴러 보안직원의 한쪽 다리를 전자봉으로 내려친 박기웅 팀장은 건너편에서 이자성 과장이 테이블을 훌쩍훌쩍 넘으며 출입문으로 빠져나가는 걸 확인했다.

“도, 도망간다. 저놈 잡아야 해!”

은빛 봉 때문에 벽 뒤쪽으로 몸을 숨기고 있던 한 보안직원이 소리를 지려며 출입문 쪽으로 총을 쐈다.

탕! 탕!

‘이 자식이 어디에 총질을?’

박기웅 팀장은 앞에 있는 두 명의 보안직원 몸통을 은빛 봉으로 얼굴을 가격한 후 그대로 의자 여러 개를 짚고 점프를 하고는 손만 내밀고 총질하는 보안직원의 손목을 내려쳤다.

파악!

“으악!”

권총을 떨어뜨린 보안직원은 급기야 입에서 게거품을 물며 꼬꾸라졌다.

‘그러니 함부로 총질하지 말라고’

바닥에 낮은 자세로 착지한 후 고개를 돌린 박기웅 팀장은 이자성 과장이 충분히 옥상까지 도달했다 생각이 들었는지 거친 숨을 내쉬며 보안직원들 뒤쪽으로 전자봉을 냅다 던졌다. 이에 보안직원의 모든 시선은 회전하며 날아가는 은빛 봉으로 향했다.

‘귀신 놀이는 이제 끝났다. 자식들아’

방금까지 허공에서 춤을 추며 자신들을 마구 치던 은빛 봉이 순간 바닥에 떨어지고는 움직임을 멈추자 보안직원들 역시 뭔가에 홀린 것처럼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지켜봤다. 이때를 놓칠세라 박기웅 팀장은 열려있는 출입문으로 달렸고 이내 계단을 타고 옥상까지 올라와 TCS 모드로 활성화했다.

“수고했어!”

옥상 출입문에서 기다리던 이자성 과장이 박기웅 팀장이 모습을 보이자 어깨를 툭 치며 환하게 웃었다.

“하하, 일단 가시죠.”

“그래!”

두 사내는 옥상 지면으로부터 30cm 뜬 상태로 대기하고 있던 스카이버스에 몸을 실었다.

“알파 제로! 출발해!”

- 네, 출발합니다.

휘이이이이잉!

CMV-100 스카이버스는 자체 TCS 모드를 활성화하고는 별빛이 반짝이는 하늘로 순간적인 속도를 내며 높이 솟구쳤다.

멀어지는 베네치안 호텔의 옥상에는 그제야 보안직원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고는 아무것도 없는 옥상 곳곳을 돌아다니며 살폈다.

“자식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구나, 하하하”

창문 너머 이 상황을 구경한 박기웅 팀장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그럼 우리가 닭이냐?”

“하하, 속담 아닙니까? 아 맞다. 과장님은 TCS 모드로 탈출하지 않고 이리 부하를 고생시킵니까?”

“말 마라! 이것 봐라. 이것 봐!”

이자성 과장은 여기저기 찢어진 양복을 벗고는 왼팔을 올려 보였다. 왼팔에 장착된 X-K02 단말기 화면 중앙에 총알 자국이 난 상태로 사방으로 금이 가 있었다.

“하필 재수 없게도 여기에 총을 맞은 건지 원! TCS 모드가 완전히 먹통이 되었어!”

“아 그래서 무음성 통신도 안 된 겁니까?”

“그래! 그래도 다행인 건 수신기는 문제없어서 박 팀장 음성은 들을 수 있었지”

“하하, 불행 중 다행입니다.”

“그런데 자네는 내 명령 안 따르고 내려온 건 뭐야?”

“와! 물에 빠진 사람 구해졌더니 보따리 달라는 겁니까?”

“명령은 명령이지”

“어떻게 과장님 놔두고 우리만 탈출하겠습니까? 그런 명령은 앞으로도 안 들을 거니까 그렇게 아십쇼.”

“하하, 웃자고 한 소리야. 암튼 고마워. 아 맞다. 다른 팀에 철수 명령내린 거지?”

이에 옆에서 짱천을 지키고 있는 오석진 대리가 대신 대답했다.

“네, 현재, 알파 원과 투! 모든 팀원도 작전 지역에서 벗어나 새로운 안전가옥으로 이동 중이라고 연락 왔습니다.”

“오케이! 다들 수고했어. 잠시 소란은 있었지만, 이 정도면 완벽한 임무 완수라 보이는군”

“과장님! 이거 어쩔까요?”

이자성 과장이 양복 안에서 묵직한 주머니 하나를 꺼내 안에 있는 달러 코인들을 한 움큼 집어 들어 보였다.

“박 팀장! 그 주머니까지 몸에 메고 그렇게 날아다닌 거야?”

“왠지 짱천은 놓쳐도 이 주머니만큼은 꼭 가져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하하,”

“워! 그거 얼마 치입니까?”

오석진 대리와 달러 코인을 매만지며 놀라 했다.

“모르겠다. 대충 보면 한 13만 달러 치는 될 듯한데?”

모든 달러 코인을 바닥에 쏟아내자 1,000달러 코인부터 5,000달러 코인까지 여러 종류의 달러 코인이 바닥에 수북이 쌓였다.

“그건, 상부에 보고한 후 결정해야지.”

“그냥, 보고하지 말고 우리 특활비로 쓰는 건 어떻습니까? 그동안 개고생하지 않았습니까?”

박기웅 팀장이 입을 실룩거렸다.

“그래라. 그래. 특활비로 쓰자!”

이자성 과장 역시 팀원들이 홍콩에 온 이후로 하루에 3시간도 못 자며 고생한 걸 알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쿨가이 이 과장님이십니다. 하하”

박기웅 팀장이 엄지 척을 하자 이자성 과장은 그만하라는 듯 손사래를 치고는 정신을 잃은 채로 포승줄에 묶여 바닥에 누워있는 짱천을 한번 보고는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긴장이 풀리면서 피곤함이 몰려왔는지 눈을 감았다. 이때 오석진 대리가 질문을 했다.

“바로 대한민국으로 넘어갑니까?”

이자성 과장은 눈감은 채 대답했다.

“당연하지!”

“네, 알겠습니다.”

“나도 도착할 때까지 잠이나 자야겠다.”

박기웅 대리도 기다란 의자에 벌러덩 눕고는 입이 찢어질 정도로 하품을 했다.

대외정보1과는 11일 만에 우진길 교수 기밀유출 사건의 진실을 파헤칠 첫 번째 열쇠를 확보하게 되었다.

★ ★ ★

2023년 12월 7일 07:00,

남주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와대 국가위기상황센터 지하 벙커.

아침 일찍 가벼운 마음으로 청와대를 방문한 이영진 원장, 우진길 교수의 가족을 납치해 2년간 은밀히 기밀을 빼돌린 범죄단체의 리더 격인 짱천을 체포에 성공한 건과 그동안 파악한 내용을 취합해 중간보고 형식으로 보고하기 위해서였다.

한러전 발발 이후 업무시간이 따로 없는 청와대 지하 벙커에는 청와대 관계자는 물론 국방부를 비롯해 여러 정부 부서의 파견 온 직원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업무 중이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식사 중입니다. 그런데 원장님, 며칠 못 본 동안 얼굴이 많이 수척해졌습니다?”

이곳 지하 벙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지내온 임종원 비서실장이 가장 먼저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와 대통령 전용 회의실에서 이영진 원장을 맞이했다.

“아! 말도 마세요. 기밀유출 사건 이후, 발 뻗고 잘 수가 있어야지요.”

“그래, 수사 진척은 있습니까?”

“다행히 이렇게 보고할 내용이 생겨 이렇게 아침 일찍 오게 됐습니다.”

이영진 원장은 보고서를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살포시 웃었다.

“오! 다행이군요. 대통령님께서도 기밀유출사건과 관련하여 많은 신경을 쓰고 있었습니다.”

“송구스럽군요. 좀 더 일찍 좋은 소식을 가져왔어야 했는데······.”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인가요. 이렇게 짧은 시간에 진척된 수사 보고서를 가져온 것도 대단한 거지요.

똑똑

“실장님! 차 가져왔습니다.”

“아 들어오세요.”

잠시 두 사내는 따뜻한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고 10여 분 후 추은희 대통령이 식사를 마치고 부랴부랴 회의실에 모습을 보였다.

“아 죄송합니다. 늦었지요?”

추은희 대통령은 환한 웃음을 보이며 회의실 의자에 앉았다. 이에 일어서서 대통령을 맞이한 이영진 원장은 공손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후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대통령님! 저 때문에 아침 식사를 방해한 거 같습니다.”

“방해라니요? 당치 않습니다. 괜히 아침밥 먹기 위해 원장님을 기다리게 했다는 소문이 날까 겁나는데요? 하하”

“하하, 그런가요?”

특유의 농담을 건넨 추은희 대통령은 잔뜩 기대한 눈빛을 보이자 이영진 원장은 테이블에 올려놓은 보고서를 가리키며 말했다.

“우진길 교수의 기밀유출사건에 대한 수사 보고서입니다.”

“그래, 진척이 있습니까?”

대통령은 보고서를 집어 들어 첫 페이지부터 천천히 읽어나갔다.

“네, 보고서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우진길 교수 가족을 납치해 기밀을 빼 놀린 범죄집단의 정체와 총책임자를 체포했으며 그 배후세력까지 확인하였습니다.”

“정말입니까? 기대 이상이군요.”

대통령은 생각 이상의 수사 진척에 살짝 놀라며 보고서를 마져 읽어나갔다.

“흑호대? 흑호대라 조직이 신중국의 새로운 정보기관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주석실 직속 첩보기관입니다.”

“그렇다면 신중국 주석실에서 첩보기관을 통해 우진길 교수 가족을 납치하여 2년간 고통을 주고 기밀자료를 빼돌렸다는 얘기란 말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쿵!

“이런, 가당치 않을 족속들 같으니라고.”

추은희 대통령은 순간 흥분했는지 탁자를 치며 분노를 표출했다.

“현재, 국정원에 납치사건을 총지휘한 가칭 짱천이라는 자를 체포해 심문 중입니다. 그와 관련된 정보는 4페이지에 있습니다.”

“짱천! 이 자가 홍콩에서 우진길 교수 가족에게 천인공노할 짓을 버린 총책임자라는 말입니까?”

“네, 대통령님!”

“좋습니다. 이 자 입을 통해 기밀사건에 대해서 낱낱이 밝혀주세요. 어떠한 조치를 하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이번 기회에 신중국 주석실! 아니 왕징위 주석에게 일벌백계의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려줘야겠습니다.”

방금 추은희 대통령의 발언은 국가정보원에서 짱천에 대해 불법적인 고문이나 약물을 투여해도 묵인하겠다는 의미였다. 정치적으로 매우 위험한 발언일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 추은희 대통령이 느끼는 분노라며 더한 발언도 할 기세였다.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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