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31화 (431/605)

꼬리 밟기

2023년 12월 6일 14:20,

남주 서울특별시 강남구 국가정보원(사이버보안국 국장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보고가 올라오자 척혁준 국장은 상기된 표정으로 두 과장으로부터 차례대로 보고를 받았다. 그동안 우진길 교수의 기밀유출 사건 수사과 관련하여 별다른 성과를 보이지 못해 간부 회의에서 죄인처럼 어깨도 못 펴고 있던 척혁준 국장이었다.

“자네들 보고대로라면 대외정보1과에서 쫓고 있던 흑호대의 짱천이라는 자가 우진길 교수 가족을 납치했던 범인과 동일인물일 수 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그렇다고 봅니다. 만에 하나 우연의 일치로 두 인물이 동시에 전화를 걸 수도 있지만, 발신 장소까지 같다면 틀림없다 보입니다.”

2과 김기원 과장이 확신 찬 목소리로 말하자, 옆에 있던 3과 나태환 과장 역시 같은 생각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역시 동일인물이라 생각됩니다.”

“우은서 씨는 뭐라고 하던가?”

대외정보3과는 녹음한 통화 음성을 우은서 씨에게 보내 범인의 목소리와 같은지를 확인받은 상태였다.

“네, 우은서 씨말로는 당시 범인의 목소리가 매우 흡사하다고 합니다.”

“음, 대외정보1과가 범인을 제대로 쫓고 있었다는 얘기군. 그쪽에 정보는 보냈나?”

“네, 현재 확인된 정보 그대로 공유 중입니다.”

“3과는?”

“네, 저희도 확인되자마자 그쪽에 전달했습니다.”

3과 나태환 과장의 대답이 끝남과 동시에 척혁준 국장은 탁자를 가볍게 치며 자리에서 일어나 과장들을 둘러보며 힘있게 말했다.

“좋아! 2과 3과는 계속해서 감시체계 유지하고 4과!”

“네, 국장님”

“베네치안 호텔과 관련하여 뭐든지 다 뒤져봐! 5일 이상 투숙한 투숙객 정보 일체, 그리고 CCTV 확보해! 코드레드 급이야. 베네치안 호텔에 있는 개미 새끼 하나 놓치지 말고 죄다 세탁해!”

“알겠습니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이때 1과 강필호 과장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국장님, 신중국 정부가 배후라는 것이 밝혀진 이상, 국가적으로 움직여야지 않겠습니까?”

“아직은 아니야. 짱천을 잡아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고 유출된 기밀자료도 모두 폐기하려면, 계속해서 은밀하고 신중히 움직여야지 않겠나?”

“음, 그래야겠군요.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북경 쪽 상황은?

“현재 해킹한 문서 중에 암호화된 문서를 풀고 있다는 연락을 받은 상태입니다. 짱게 놈들이 이중 암호화 모듈로 해놔서 애를 먹고 있는 듯합니다.”

남궁원 과장 일행을 지원하는 4과 김기원 과장이 대답했다.

“시간이 걸린다면 우리 쪽에서 지원해야지 않겠나?”

“국장님, 남궁 과장을 비롯해 그쪽에 있는 요원들 실력이 본사 요원들보다 훨 낫습니다. 믿고 맡기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그렇군, 그럼 4과는 지시한 대로 진행하고 자! 마카오에서 고생하는 우리 블랙 요원들을 위해서 좀 더 분발하자고. 난 원장님에게 보고하러 가겠네”

“네, 알겠습니다.”

★ ★ ★

2023년 12월 6일 16:10, (마카오시각 15:10),

중화민국 마카오특별구역시 샌즈 코타이 베네치안 호텔 카지노.

베네치안 호텔 로비와 카페, 그리고 카지노에는 대외정보1과 요원들이 저마다 관광객으로 위장한 채 번뜩이는 눈빛을 숨기고 주변을 살폈다.

2시간 전, 본사로부터 짱천에 대한 정확한 위치 정보가 전달받고 4과 요원들을 뺀 나머지 모든 요원이 베네치안 호텔에 투입되었다.

하지만,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 위치 정보는 확보했으나, 짱천이라는 인물에 이렇다 할 확실한 정보가 없다는 것이었다. 특히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기에 이렇게 모든 요원이 투입되고도 찾을 수가 없었다. 단지 30대 후반의 동양 남자라는 거뿐, 첩보요원의 감으로 주변 인물들을 꼼꼼히 살필 뿐이었다.

VIP층에서 다시금 블랙잭 게임을 하는 박기웅 팀장은 게임 중에도 여러 테이블에서 게임을 하는 사람들과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일일이 살폈다. 그래서 그런지 집중력이 떨어져 특활비로 바꾼 코인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었다.

- 박 팀장! 그쪽은 특별한 거 없나?

무음성 통신으로 이자성 과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네, 별다른 거 없습니다.”

- 알았다. 계속 임무 수행해.

“확인!”

한편, VIP층 아래, 일반인 게임장에는 여러 요원이 곳곳에서 각가지 게임을 즐기며 예리한 눈초리를 쉬지 않고 살피고 있었다.

★ ★ ★

2023년 12월 6일 18:00 (신중국시각 17:00),

신중국 북경시 동청 뉴월드 베이징 호텔.

본사로부터 대외정보1과가 쫓고 있는 짱천의 위치를 확보했다는 소식에 다급해진 남궁원 일행, 1차 암호화 문서를 풀었지만, 생각지 못한 2중 암호화 모듈로 인해 잠깐의 휴식도 못 하고 2차 암호화 문서를 푸느라 전념했다.

“아! 짱게 새끼들, 정말, 토 나옵니다. 토 나와요.”

두 눈이 뻘겋게 충혈된 김영균 주임이 아까부터 주야장천 욕설을 내뱉으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야! 좀 시끄러워! 너 때문에 집중이 안 되잖아!”

옆에서 함께 작업하던 나성현 대리가 인상을 찌푸리며 질타했다.

“좀 봐주십쇼. 이렇게라도 안 하면 잠 올 거 같아서 그럽니다요.”

“그럼 좀 작게 말하면서 중얼거려라.”

“알겠습니다요.”

72시간이 넘도록 한숨도 못 자고 조그마한 노트북을 붙잡고 씨름을 하던 두 요원은 슬슬 체력의 한계에 부딪혔는지 신경이 날카로웠다.

“자네들은 잠시 쉬도록 해! 내가 마지막 작업은 끝마칠 테니까?”

남궁원 역시 밀려오는 잠을 억지로 참아가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아! 과장님이 일하시는데 우리가 쉴 수 있겠습니까? 함께 끝장을 봐야죠.”

“아냐! 거의 되가. 자네들이 작업한 소스 나한테 보내!”

“정말입니까?”

“그래! 바로 보내!”

“네, 알겠습니다.”

잠시 후 두 요원으로부터 소스를 전달받은 남궁원은 자신의 소스와 합친 후 암호화된 모듈을 풀 수 있는 해체 프로그램을 완성해 나갔다. 그리고 2시간 후,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드디어 굳게 닫혀있던 폴더가 하나씩 풀리기 시작했다.

“됐다! 됐어!”

남궁원의 환호에 소파에서 잠시 꿀맛 같은 잠을 자고 이던 두 요원이 벌떡 일어나더니 반사적으로 남궁원의 노트북 모니터에 얼굴을 내밀었다.

“워! 드디어 풀렸네요.”

“와! 개고생한 보람이 있네, 하하하, 남궁 과장님 역시 우리의 전설이십니다.”

“전설은 자꾸 그런 소리 할 거야?”

은근 전설이란 말에 기분이 좋은지 어색한 미소를 보인 남궁원은 암호화가 풀린 폴더를 하나하나를 마우스로 클릭하여 유용한 정보가 있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4번째 폴더를 클릭하는 순간, 안에 신중국 주석실 문장이 찍혀있는 문서 여러 개가 나왔다.

“이게 대체 뭘까?”

남궁원은 즉시 번역프로그램을 실행해 중문으로 쓰여 있는 문서 내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래, 그렇지. 제대로 찾은 듯하군”

번역프로그램으로 번역된 문서의 제목은 이랬다. ‘플라즈마 기밀유출 보고서’

“이 개자식들······.”

쪽지를 넘기며 번역된 보고서 내용을 잃어가던 남궁원의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욕설이 튀어나왔다. 문서 안에는 흑호대 요원들이 홍콩에서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진행하여 플라즈마 기밀을 빼돌렸는지에 대한 상세한 내용이 들어있었다.

우진길 교수의 기밀유출 사건에 신중국 정부가 배후일 수도 있다는 가정하에 북경까지 와 위험한 임무를 수행했지만, 이렇게 직접적인 증거자료를 접하니 순간적으로 울분이 터졌다.

“이 새끼들이 2년 전에 그렇게 당하고도 정신을 못 차렸네요. 이번 사건에 관련된 놈들 죄다 잡아다가 뒈질 때까지 감방에 처넣어야 해요.”

“김 주임! 그걸로 되겠냐? 짱게 놈들은 그냥 지도상에 지워버려야 해! 아주 깨끗이 말이야.”

두 요원이 흥분된 어조로 욕설을 내뱉는 동안 남궁원은 계속해서 쪽지를 넘기며 확인했다. 그리고 중간쯤 넘어갔을 때 마우스를 집고 있는 오른손이 딱 멈췄다.

기밀유출사건에 참여했던 흑호대 요원들의 신상 정보였다.

범죄조직을 가장해 우진길 교수의 어린 손자와 손녀를 2년 동안 인질로 잡고 협박하여 플라즈마 정보를 빼돌린 일당들의 신상 정보가 드디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홍콩에서 활약한 흑호대 요원은 총 12명으로 중국 시절 정보기관 요원이거나 특수부대 출신들이었다.

“아! 그런데 짱천이란 놈은 없는데요?”

함께 지켜보던 나성현 대리가 머리를 걸쩍거리며 말했다.

“짱천이란 이름이 실명이 아닐 수 있지! 어쨌든 팀장이라고 했으니 이놈일 수 있지 않겠어?”

남궁원은 흑호대 요원 중 팀장이라 쓰인 한 남자의 프로필을 마우스 포인트로 가리켰다.

이름은 장이씽, 키는 182cm에 몸무게는 85kg으로 전 중국 특수부대 PLA 출신으로 사진상으로는 30대 후반의 호남형으로 강인한 인상의 소유자였다.

“이놈이 짱천일 수 있다는 얘기군요.”

“나 대리는 지금 당장 이놈 사진 이 과장한테 보내! 얼굴도 모르면서 이 자식 찾겠다며 눈에 불을 켜고 돌아다니고 있을 테니까”

“네, 바로 보내겠습니다.”

★ ★ ★

2023년 12월 6일 20:10, (마카오시각 19:10),

중화민국 마카오특별구역시 샌즈 코타이 베네치안 호텔 카지노.

맨땅에 헤딩하듯 첩보요원의 촉으로만 짱천을 찾고 있던 대외정보1과에 단비 같은 정보가 도착했다. 그것은 짱천으로 추정되는 인물의 사진이었다.

모든 요원의 스마트폰에 짱천 추정 인물사진이 북경 남궁원 일행으로부터 전송됐다.

“어라? 이 얼굴 어디서 많이 본듯한······.”

박기웅 팀장은 자신의 스마트폰 화면에 보이는 사진을 유심히 보고는 고개를 꺄우뚱거리며 기억을 다듬었다.

‘그렇지! 이 자식 어제 VVIP 엘리베이터 앞에서 본 놈이랑 비슷하잖아?’

박기웅 팀장은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머금고는 딜러에게 게임을 그만하겠다는 손짓을 한 후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한 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고는 숙소에 있는 성상현 팀장에게 무음성 통신을 날렸다.

“성 팀장!”

- 네, 박 팀장님

“그쪽도 사진 받았지?”

- 네, 지금 사진 매칭에 들어갔습니다.

“그럼, 내가 찍은 사진부터 매칭해봐!”

- 네?

“어서! 어제 내가 본 놈과 비슷하단 말이야.”

- 아! 알겠습니다. 그럼 박 팀장님 사진부터 확인하겠습니다.

“서둘러!”

- 네, 몇 분 걸릴 수 있습니다.

“알았어. 기다릴게”

잠시 후 성상현 팀장으로부터 무음성 통신이 날아왔다.

- 박 팀장님! 박 팀장이 찍은 사진 중에 매칭 분석 결과가 95%로 나오는 사진이 있습니다. 약간 대각선상에서 찍은 사진인데도 95%로면 100%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시간대는?”

- 11시 23분입니다.

“맞아! 그 자식이다.”

- 네?

“VVIP룸으로 가는 엘리베이터에서 잠깐 마주친 놈이야. 처음 봤을 때 뭔가 느낌이 쌩하다 생각했는데, 그 자식이었어.”

- 워! 대박입니다.

“자네는 혹시 모르니 다른 사진들도 매칭 작업 계속해! 이 과장님한테는 내가 바로 보고할게”

- 네, 알겠습니다.

통신을 마친 박기웅 팀장은 단말기를 조작해 이번엔 이자성 과장에게 무음성 통신을 보냈다.

“과장님! 사진 받으셨죠?”

- 어! 박 팀장! 받았어. 뭐라도 찾았나?

“네, 그것 때문에 호출했습니다.”

- 그래, 뭔가?

“그 사진 어제 VVIP룸으로 가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본 놈입니다.”

- 정말이야? 확실해?

“네, 방금 성 팀장으로부터 제가 찍은 사진 중 95% 매칭 결과가 나오는 사진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놈입니다.”

- 그래? 그거 잘됐군, 슬슬 일이 풀리기 시작하는군.

“과장님! 사진도 확보했으니 코드 블랙으로 넘어가시죠”

- 음, 이럴 때일수록 신중해야 해! 확실한 기회일 때 실수 없이 잡아야 하니, 일단 자네 팀은 현재 위치에서 계속 감시해, 나머지 팀은 숙소로 철수시켜 금일 밤, 체포 작전 준비를 하겠다. 오케이?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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