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 밟기
2023년 12월 6일 09:00 (마카오시각 08:00),
중화민국 마카오특별구역시 어느 숙소.
3일 만에 홍콩이 아닌 마카오의 한 저렴한 호텔에서 다시 모인 대외정보1과 요원들은 아침 일찍부터 거실에 모여 간단한 회를 시간을 가졌다.
새벽에 홍콩에서 넘어온 이자성 과장은 거실 한쪽에 마련된 휴대용 화이트보드 앞에 선 후 요원들을 쭉 둘러보고는 회의를 시작했다.
“1팀과 2팀 며칠 동안 수고 많았다. 아마도 지금까지 국정원 요원으로 활동하면서 막가파 형식으로 임무를 수행했을 거로 생각한다. 그래서 두 가지 좋은 소식을 가지고 왔다.”
이자성 과장이 브이자 모양을 보이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첫째는 우리 위대한 남궁원 과장이 주석실 서버 해킹에 성공해 암호화된 문서를 풀고 있다는 것과 두 번째는 칭다오파 조직원 놈들로부터 짱천과 관련된 정보를 받았다.”
이자성 과장이 화이트보드에 뭔가를 써가기 시작했다.
“짱천이 사용하는 홍콩은행 계좌와 칭다오파 보스의 휴대폰 번호다.”
금일 새벽, 류칭지로부터 애걸복걸하는 연락이 왔었다. 필요한 정보를 구했으니 치료제와 교환하자는 연락이었다. 이에 이자성 과장은 새벽 어느 부두 창고에서 류칭지를 만나 치료제를 주고는 정보들 받아 바로 이곳 마카오로 넘어온 것이었다.
“현재 계좌번호와 칭다오파 보스의 휴대폰 번호는 본사 사이버보안국에서 추적 요청을 한 상태다. 칭다오파 보스가 열흘에 한 번 이 계좌로 입금을 한다고 한다. 운이 좋다면 짱천이 돈을 찾을 때 위치를 알 수 있을 것이며 휴대폰 번호 역시 실시간으로 감시에 들어갔으니, 연락할 때 위치 추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과장님! 뭐 그리 좋은 소식은 아닌 거 같습니다.”
잔뜩 기대했던 박기웅 팀장이 볼멘소릴 했다.
“이 정도면 감지덕지하지···. 언제부턴 입에 밥을 떠먹여 주는 임무를 수행했다고 그래? 박 팀장이 휴가 반납하고 이곳에 와서 불만이 많은 거 같다?”
“하하, 그럴 리가요. 아닙니다. 과장님”
쏘아보는 이자성의 눈빛에 박기웅은 손사래를 치며 어색한 웃음을 보였다.
“위에 말했듯이 남궁 과장이 암호화된 문서를 푼다면 좀 더 유익한 정보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과장님, 질문 있습니다.”
윤태진 팀장이 손을 높게 들었다.
“응, 뭐?”
“본사에서 음성통화 추적시스템인가 뭔가로 감시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어떻게 되었습니까?”
“안타깝게도 아직 별 소득이 없는 듯하다. 그래도 감시 구역을 이곳과 동남아 쪽으로 좁혀서 걸릴 확률은 커졌다고 한다. 기다려보자”
“네, 알겠습니다.”
“자자! 그럼, 팀장들은 팀원들 굶기지 말고 아침밥 먹인 다음 업무 시작하자!”
오혁수 대리를 보며 말하는 이자성 과장, 이에 오혁수 대리가 은근슬쩍 엄지 척을 보였다.
“자! 아침은 근처 호텔에서 제가 확실히 쏘겠습니다.”
박기웅 팀장이 어제밥 VIP층에서 환전한 달러를 치켜들고는 소리쳤다.
“워! 특비(특별활동비)를 맘대로 썼다간 나중에 감사 걸린다.”
박기웅 팀장의 어깨를 툭 치는 윤태진 팀장, 이에 박기웅 팀장은 한뭉치의 돈을 앞에서 흔들며 미소를 보였다.
“이거 어젯밤 VIP층에서 딴 돈이다. 하하하”
“넛마! 특비로 도박한겨?”
“도박은 자식아! VIP층 확인하려고 잠깐 한 거지!”
“뭐 했는데? 슬롯머신? 블랙 잭? 포커? 트랑테카랑트? 바카라?”
“블랙 잭!”
“오! 블랙 잭? 얼마나 땄냐?”
“그건 신경 끄고 사주는 거나 먹어라”
두 팀장이 실랑이를 벌이는 가운데 이자성 과장이 돈뭉치를 낚아챘다.
“이건, 그냥 특비에 보태고 팀별로 간단히 먹어! 나중에 일 잘 풀리면 그때 회식하는 거로 한다.”
“아! 너무하십니다.”
빈손이 되어버린 박기웅 팀장이 울상을 짓자, 윤태진 팀장이 혀를 내밀려 약을 올렸다.
“자자! 어서들 나가! 4팀장은 1팀과 2팀이 취합한 사진들 정리하고”
“네, 알겠습니다.”
★ ★ ★
2023년 12월 6일 11:00 (신중국시각 10:00),
신중국 북경시 동청 뉴월드 베이징 호텔.
해킹 성공 후 이곳 뉴 월드 베이징 호텔로 거처를 옮긴 남궁원 일행은 다운로드 한 자료 가운데 암호화된 자료를 푸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중요하다 싶은 자료들은 죄다 암호화가 걸린 상태였다.
“이 자식들이 이건 뭔 암호화 모듈이 이리 섬세해? 중국놈들 같지 않게? 이것도 대륙의 실수인가?”
날밤을 세며 작업하던 나성현 대리가 기지개를 켜며 중얼거렸다.
“후~ 그러게 말입니다. 첩첩산중이라고 해킹해서 잘 풀리는가 싶더니 이건 뭐 듣보잡 암호화 모듈이 뭡니까?”
옆에서 신나게 키보드를 두드리던 김영균 주임 역시 한숨을 푹 내쉬며 한탄했다.
다다닥! 다다다닥! 다닥!
두 요원이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가운데 남궁원은 암호화된 자료를 풀기위해 묵묵히 키보드를 두드리며 집중했다.
“역시, 남궁 과장님은 열정이 넘치셔! 대단합니다.”
“열정이 아니라! 빨리 해결하고 집에 가야지. 집에 여우 같은 마누라가 기다리고 있단 말이야.”
“아! 국정원에서도 한 미모 한다는 이혜진 과장님요? 부럽습니다. 전 기다리는 여자사람 친구도 없는데 말이죠.”
“국정원에도 여자 요원들 많잖아?”
“그럼 뭐합니까? 맨날 이 나라 저 나라 돌아다니며 방구석에서 이 짓 하는데요. 나도 보안국 내근직으로 옮겼으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나중에 남궁 과장님이 힘 좀 보태서 저 내근직 발령 좀 내주세요.”
“하하, 알았다. 이번 일 잘 끝나면 국장님에게 말할게. 그러니 놀지 말고 얼른 작업이나 하시지?”
“오예스~ 알겠습니다. 야! 김 주임 뭐해? 초 집중하란 말이야.”
“전, 지금이 좋습니다. 나는 아직 아직 젊기에~ 괜찮은 미래가 있기에~”
“지랄! 너도 이삼 년 더 해봐라. 그런 소리 나오나?”
“크크”
★ ★ ★
2023년 12월 6일 14:00 (마카오시각 13:00),
중화민국 마카오특별구역시 샌즈 코타이 베네치안 호텔(2015호실).
VVIP룸에서 밤새 도박을 하고 자신의 호텔방으로 돌아와 위스키를 퍼마시고 잠이 들었던 사내, 침대에서 일어나고는 이내 냉장고에서 생수 한 병을 꺼내 들고는 벌컥벌컥 마셨다. 이 사내는 전날 박기웅과 VVIP룸과 연결된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쳤던 사내였다.
커억~
더러운 트림을 한 사내는 소파에 벌러덩 앉고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대체 새벽에 얼마를 잃은 거야. 제길”
아직 깨지 않은 술기운에 머리를 흔들며 기억을 되짚었다.
“20만 달러인가? 제길!”
대략 원화로 2억에 가까운 돈이었다. 이 사내가 이러한 거금을 도박으로 날린 건 오늘 새벽뿐만이 아니었다. 이곳 마카오에 온 이후로 매일 카지노 도박장에 퍼주고 있었다.
짜증 난다는 듯 머리를 마구 휘저으며 안방으로 들어간 사내는 벽에 설치된 금고에서 007방을 꺼내 들고는 다시 거실 소파로 돌아왔다.
007 가방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는 바로 비밀번호를 맞췄다. 그리고 가방을 열자 권총 한 자루와 탄창 3개, 그리고 여러 국가의 여권과 유심칩 10여 개가 들어있는 투명한 상자가 있었다.
사내는 투명한 상자에서 유심칩 하나를 꺼내 자신의 샤오미 스마트폰의 유심칩과 바꿔 끼었다. 그리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헤이! 나야! 오늘 오전 저녁 7시까지 10만 달러 보내!”
- 네? 갑자기······. 수금은 3일 더 남았지 않습니까?
“뭔, 말이 많아? 보내라면 보낼 것이지, 당장 보내, 알았어?”
- 알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며칠 전, 뭐? 말을 하다가 말아?”
- 아, 아닙니다.
“뭔 일 있는 거야?”
- 아닙니다. 세력확장 중에 밑에 애들의 사소한 문제가 있어서······.
“헤이! 그런 일은 이제 자네 손에서 해결해야지 않겠어? 언제까지 내가 뒷배를 봐줘야 해?”
- 네, 맞습니다. 그래서 말하다 만 것입니다.
“저녁 7시까지야! 늦지 않게 보내!”
대답도 듣기 전 통화를 끝낸 사내는 바로 유심칩을 꺼내 꾸겨버렸다. 그리고는 거실 통유리 쪽으로 걸어가 상단에 있는 작은 창문을 통해 던져버렸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통유리 너머 펼쳐진 마카오의 스카이라인을 잠시 감상한 사내는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문 다음 불을 붙이고는 깊게 빨아 들렸다.
그리고 내뿜은 하얀 연기 사이로 비열한 느낌의 미소가 흐릿하게 보였다.
★ ★ ★
2023년 12월 6일 14:00,
남주 서울특별시 강남구 국가정보원(사이버보안국).
현재 사이버보안국 모든 부서가 우진길 교수의 기밀유출사건에 매달려 있다고 해도 무방했다. 사이버보안1과는 파르테논 연구소에서 보내준 추적프로그램을 운용했고 사이버보안2과는 납치범의 변조음성을 복원하여 세계 모든 통신망에서 오가는 통화음성을 비교분석하여 위치까지 추적하는 음성통화 추적시스템을 전담했다. 그리고 사이버보안3과는 이자성 과장이 요청한 계좌추적과 특정 번호에 대한 실시간 통화감시 임무를 맡았다. 마지막으로 사이버보안4과는 남궁원 일행의 해킹 임무를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모든 부서가 쉬지 않고 24시간 풀로 가동되는 가운데 동시다발적으로 2 부서에서 추적의 단서가 될 수 있는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갑자기 사이버보안3과 요원들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새벽에 이자성 과장으로부터 전달받은 특정번호에 수상한 통화가 걸려온 것이었고 위치 추적 결과 발신 위치가 마카오였기 때문이었다.
“발신 위치 마카오가 확실해?”
“네, 맞습니다. 팀장님!”
“위치! 최대한 상세하게 알아봐!”
“네, 알겠습니다.”
요원이 빠른 손놀림으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순간, 모든 요원의 시선이 한쪽 벽면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 쏠렸다.
위치를 표기하는 빨간 점이 깜빡였고 스크린에 보이는 마카오 디지털 지도는 점점 더 확대되었고 최종적으로 빨간 점은 샌즈 코타이 지역에 있는 베네치안 호텔에서 멈췄다.
“베네치안 호텔?”
“네, 방금 신호가 끝 겼는데, 마지막 신호가 잡힌 곳이 베니치안 호텔로 보입니다.”
“확실하지?”
“네, 팀장님”
“좋아! 수고했어! 난 바로 과장님께 보고하러 갈 테니, 계속 감시하고 있어!”
“네, 알겠습니다.”
한편 사이버보안2과 사무실 역시 흥분한 음성들이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왔다.
열흘이 넘도록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통화음성 추적시스템에서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변조된 음성을 복원했지만, 완벽할 순 없었다. 그런 이유였지는 그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던 통화음성 추적시스템에서 90% 정도 비슷하다는 비교분석 데이터 결과와 함께 위치가 추적되었다.
“90%라······. 이놈일 확률은 얼마 정도인가?”
“장담은 힘들지만, 90% 비교분석 결과라면 저놈이 범인일 확률이 높습니다.”
“통화 녹음은 하고 있겠지?”
“네, 비교분석 결과가 나온 이후 바로 녹음에 들어갔습니다.”
“좋아! 위치 추적은?”
“추적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서둘러!”
김기원 과장은 흥분된 어투로 재촉했다.
“아! 위치 확보했습니다.”
사이버보안2과 대형 스크린의 디지털 지도에도 마카오의 샌즈 코타이 지역에 있는 베네치안 호텔을 빨간 점이 표기되었다.
“마카오 베니치안 호텔?”
“네, 추적결과 베니치안 호텔입니다.”
“개자식! 드디어 잡았군, 지금도 통화 중인가?”
“아! 방금 끊었습니다.”
“좋아! 또다시 통화할지 모르니 다들 비상대기하고 나 팀장!”“네, 과장님!”
“나 팀장은 즉시 녹음된 통화 파일, 우은서 씨에게 확인해봐! 당장!”
“네,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