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27화 (427/605)

꼬리 밟기

2023년 12월 2일 13:00,

남주 서울특별시 종로구 외교부 청사.

한러전 발발 이후 대사관에서 내내 지내고 있던 에고르 티토프 대사는 갑작스러운 강경희 장관의 호출에 심드렁한 표정으로 외교부 청사를 방문했다.

그리고 안내받은 접대실에 들어온 에고르 티토프 대사의 얼굴은 한층 더 심하게 구겨졌다. 접대 장소가 귀빈 접대실이 아닌 일반 접대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전쟁 상대국의 대사이기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러한 조치는 현재 대한민국 정부가 러시아 대한 반감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한 사례였다.

“오랜만에 뵙는군요.”

불편한 심정을 뒤로하고 억지로 웃는 표정을 지은 에고르 티토프 대사가 인사치레했다.

“앉으시죠.”

무미건조한 어조로 인사말을 대신한 경경희 장관은 맞은편 소파에 앉는 에고르 티포트 대사를 무표정으로 바라봤다.

“무슨 일로 이렇게 부르셨는지요?”

“네,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겠습니다. 현재 러시아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우리 국민을 상대로 한 폭력사태에 대해서 즉각적인 진압조치를 하시기 바랍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알면서도 모른 척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아직 정보를 받지 못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에고르 티토프 대사는 처음 듣는다는 얼굴을 한 채 반문했다.

“뭐 상관없습니다. 티토프 대사가 알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지요. 단지, 지금 당장 본국에 연락해서 현재 폭력사태를 처리하지 않는다면 우리 대한민국의 대대적인 보복공격을 할 것이라는 겁니다.”

“아! 그러니까요. 폭력사태라니요? 뭐 좀 알아듣게 말씀을 해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능청스러운 연기다.’

대한민국 외교부의 수장답게 강경희 장관은 에고르 티토프 대사가 일부러 모른 척한다는 것을 단번에 간파했다.

“제가 그것까지 설명해줄 시간도,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는군요. 알든 모르든 제가 한 말에 대해서 그대로 본국에 보고하세요.”

“하! 너무하십니다. 장관님! 저와 알고 지낸 지 수년인데 이런 식으로 대화를 끌고 가시는 건 상대에 대한 실례가 아닙니까?”

“자꾸 주객이 전도되는 말을 하시는데요? 앞으로 1시간입니다. 제가 한 말이 본국에 전해지지 않고 조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모스크바는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쿵!

능청스럽게 대화를 끌고 가려던 에고르 티토프 대사는 강경희 장관의 협박성 발언에 순간적으로 흥분했는지 회의 탁자를 치며 노기 띤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무리 전쟁 상대국이라 하지만, 수백만의 민간인이 사는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를 지구상에서 지워버리겠다니요?”

“모스크바뿐이겠습니까? 러시아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모든 산업시설 역시 잿더미로 변할 것입니다.”

강경희 장관은 추은희 대통령의 분노를 에고르 티토프 대사에게 그대로 전달했다.

“허허! 이거 참! 이런 협박을 하려고 저를 부른 겁니까? 당치도 않습니다. 러한전이 잠시 소강상태에 빠졌다고 다 이긴 것처럼 말씀하시는데 큰 착각을 하시는 겁니다. 조만간 한국이 감당하지 못할 엄청난 공격을 가할 것입니다.”

에고르 티토프 대사는 대화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억지스러운 주장을 펼쳤다.

“앞으로 58분 남았군요.”

에고르 티토프 대사의 말을 한쪽 귀로 흘리고 시계를 보며 말했다.

“58분이든 5분이든 맘대로 하시지요. 그런다고 우리 러시아가 눈 하나 껌뻑일 거 같습니까?”

“티토프 대사! 모스크바에서 푸틴 대통령이 숨어있을 곳이 총 20곳이지요? 스테이트 R-01부터 R-20까지요. 맞죠? 얼마 전까지 R-13에 있었지요? 뭐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모릅니다만,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반경 100km를 날려버리면 푸틴 대통령과 총참모부가 스테이트 어디에 숨어있든 문제가 안 되겠지요?”

“뭐, 뭐라구요? 지금 전쟁 상대국의 지도자를 잡자고 수백만의 민간인을 학살하겠다는 말입니까?”

“학살이라······. 대사에게 학살이란 말을 들을 줄 몰랐네요. 우리 대한민국을 향해 수백 기에 달하는 전략 핵미사일을 발사한 러시아 대사로부터 말입니다.”

“핵미사일이라니요. 핵탄두가 장착된 미사일은 한 기도 없었습니다.”

“초등학생도 안 믿을 말은 하지 마세요. 유치해집니다. 티토프 대사! 시간은 계속 흐릅니다. 이제 55분 남았군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마음대로 하시죠. 만약에 그럴 능력도 없겠지만, 혹 모스크바에 조금이라도 피해를 준다면 국제사회로부터 한국은 민간인 학살국가로 낙인찍혀 국제적 제재를 받을 것이오.”

강경희 장관은 앉은 자세를 바꿔 다리를 꼬고는 피식 웃었다.

“풋! 현재 대한민국을 예전의 대한민국으로 보십니까? 국제사회 눈치를 보는 그런 대한민국은 사라진 지 꽤 된 거 같은데 말이죠.”

강경희 장관은 양손까지 벌리며 전혀 문제없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흥! 그거야 두고 볼 일이지요.”

틀린 말이 아닌지라 짧게 대답한 에고르 티토프 속마음은 부글부글했다.

“더는 대화가 필요 없을 듯하군요.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하고 끝내죠. 현재 항공우주군에서 모스크바 상공에 떨어트릴 GOAB(Grandfather Of All Bombs)를 2기를 무장한 상태로 출격 준비에 들어간 상태입니다.”

강경희 장관이 말한 GOAB(Grandfather Of All Bombs)은 사실상 애칭이었고 실제 정식명은 X-PSB(플라즈마 수퍼증폭탄)으로 러시아가 지구 최강이라는 차르봄바 56Mt급보다 2배의 위력을 가진 100Mt급 폭탄이었다. 자칫 지구의 자전축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지구전멸급 무기였다.

강경희 장관이 애칭으로 말한 것은 러시아가 현존 최강의 재래식 폭탄이라고 자랑하는 ‘모든 폭탄의 아버지’ FOAB(Father Of All Bombs)를 빗대 말한 것이었다. 즉 모든 폭탄의 아버지보다 더욱 강력한 모든 폭탄의 할아버지라는 의미였다.

“자! 이건 GOAB에 대한 간략한 정보입니다. 가면서 보세요.”

탁자 위에 문서 하나를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금만 이거 받고 꺼져라’라는 뜻이었다.

“멀리 나가지 않겠습니다.”

“환대한 접대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차 한잔 안주는 대접에 대해 비꼬듯 말한 에고르 티토프 대사는 탁자 위에 올려져 있는 문서를 낚아채듯 들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접대실에서 나갔다.

이제 러시아 운명은 에고르 티토프 대사의 결정에 달렸다. 그가 지금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드려 러시아 정부를 설득하든가, 아니면 협박으로 치부해 보고하지 않던가. 어쨌든 45분 후면 그가 어떤 결정을 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 ★ ★

2023년 12월 2일 13:30,

남주 서울특별시 중구 사서문로 도로(주한 러시아대사 관용차 안).

대화할 때마다 남은 시간을 알려준 강경희 장관의 말에 신경이 쓰였는지 에고르 티토프 대사는 자꾸만 손목시계를 쳐다봤다. 그리고 그의 오른손에 들려있는 문서도 신경이 쓰였다.

문서 안에는 GOAB이 불리는 X-PSB(플라즈마 수퍼증폭탄)에 대한 상세한 제원이 나와 있었다. 한발만이라도 모스크바에 떨어지면 폭심지로부터 반경 100km는 수년간 사람이 살 수 없는 화염지옥으로 변할 정도의 위력이라고 쓰여있었다. 그런 폭탄을 두 발이나 무장한 상태로 모스크바로 날아가고 있었다.

단순히 협박으로 치부하기는 어려웠다. 지금까지 제1차 동북아전쟁과 제2차 동북아전쟁이라 불리는 러한전에서 대한민국이 보여준 군사력은 충분히 가능하다 볼 수 있었다.

“아! 제길, 이를 어쩐다. 보고해야 하나.”

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평온한 서울 시내 풍경을 창문 너머로 바라보는 에고르 티토프 머리는 복잡하다 못해 두통이 밀려왔다.

‘괜히 보고를 안 했다가 나중에 잘못되면 나만 덤터기를 맞을 수 있다. 일단 보고를 하는 게 나을 듯하다’라는 생각으로 기울었다. 생각을 정리한 에고르 티토프 대사는 조수석에 앉아있는 수행비서관에게 지시를 내렸다.

“대사관에 도착하면 바로 외교부장과 연락할 수 있도록 조치하게”

“네, 대사님!”

★ ★ ★

2023년 12월 2일 13:50 (러시아시각 07:50),

러시아 이바노프스카야 오블래스트 이바노보 외기권.

내부무장실에 X-PSB(플라즈마 수퍼증폭탄) 2기를 장착한 제1우주전투비행단 알파편대 CFS/A-31SP 삼족오 우주전투기 1호기가 외기권에서 마하 20이라는 속도로 막 이바노보 상공을 지나치고 있었다.

지상 타격 목표 지점인 모스크바까지는 앞으로 246km 거리, 마하 20의 속도라면 1분도 안 되어 도달할 매우 짧은 거리였다.

“히야! 이거 정말로 GOAB를 투사하는 임무에 투입될 줄 꿈에도 생각 못 했는데 말입니다.”

부조종사 오태빈 대위가 떨리는지 가슴을 매만지며 길게 숨을 내쉬며 한마디 뱉었다.

“나도다. GOAB는 상징적인 무기인 줄 알았더니 실전에 사용하게 될 줄이야.”

알파편대 편대장이자 1호기 주종조사인 최영호 중령 역시 무장한 무기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기에 현실직감이 되지 않았다.

“저 어떡해요.”

뒷좌석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조은빈 대위가 울상을 짓고는 군인답지 않은 말을 내뱉었다.

“두 분은 그냥 비행하지만, 실제 폭탄 투하는 제가 하는 거잖아요.”

만에 하나 최종 투하 명령이 우주항공군 사령부로부터 승인이 난다면 항전운용통제관인 조은빈 대위가 투하 버튼을 눌러야 했다. 단 한발만으로도 적게는 수백만에서 많게는 천만 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할 수 있었다.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핵폭탄 투하 이후 단발성으로 가장 많은 사상자가 발생할 수 있었고 문제는 그 피해는 수백 배에 달한다는 것이었다.

즉, 조은빈 대위 자신이 엄청난 사상자를 발생시킬 수 있는 폭탄 투하의 최종 장본인이 되는 것이었다. 군인으로서 조국을 위해 전쟁을 수행하는 건 당연하지만, 천만 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할 수 공격의 장본이라면 문제는 달랐다. 향후 전쟁 트라우마로 인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고생할 수도 있었다.

“조 대위! 내가 투하할게. 걱정하지 마!”

조은빈 대위가 뭘 걱정하는지 잘 알고 있는 최영호 중령은 고개를 둘려 잉크를 하며 말했다. 헬멧 바이저에 가려 잉크 하는 눈은 보이지 않지만 말이다.

“정말 기장님이 하실 건가요?”

“그래!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

“흑! 감사해요.”

짧은 대화가 오간 사이 1분은 지났고 고도를 낮추며 비행하던 삼족오 우주전투기 1호기는 모스크바 상공에 도달했다.

“고도 80km 유지하고 자전 속도에 맞춰 비행한다.”

“고도 80km 유지, 속도는 자전 속도로”

최영호 중령의 명령에 따라 오태빈 대위가 복명복창하며 조종간 레버를 조작했다. 이제 삼족오 우주전투기 1호기는 자전 속도에 맞춰 비행하며 모스크바 상공에서 대기하는 일만 남았다.

“폭탄 투하까지 시간은?”

최영호 중령의 질문에 조은빈 대위가 즉시 대답했다.

“앞으로 10분 22초입니다.”

“오케이, 부기장! 통신망 체크!”

“현재 성남기지와 정상적으로 통신망 연결되어 있습니다.”

“오케이!”

모든 준비 상태를 확인한 최영호 중령은 자동비행 모드 상태로 전환한 후 팔짱을 끼고 잠시 눈을 감았다.

최영호 중령에게도 천만 명 이상의 사상자가 날 수 있는 임무 수행은 적잖은 부담으로 다가왔다. 더군다나 조은빈 대위 대신 폭탄 투하 버튼을 누란다고 했으니 그 부담감은 배로 다가왔다.

적막감이 흐르는 조종실, 기다리고 기다리던 10분의 시간이 지났다. 어김없이 제1우주전투비행단 본부로부터 통신이 날아왔다.

- 알파 원! 여기는 제1우전단 본부다.

“본부! 여기는 알파 원! 현재 모든 준비를 마치고 명령 대기 중!”

- 알파 원! 여기는 제1우전단 본부! 항우군 사령부로부터 명령을 하달한다.

올 것이 왔다고 생각이 들자 최영호 중령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대답했다.

“본부! 여기는 알파 원! 명령 접수 대기 중!”

- 알파 원! 여기는 제1우전단 본부! 현재 시각 14시 02분 26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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