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 밟기
2023년 12월 2일 10:00,
남주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와대 국가위기상황센터 지하 벙커.
금일 아침, 지하 벙커에는 대통령을 비롯해 여러 고위관료가 모여 현재 블라디보스토크 시청에서 진행되고 있는 태극기 게양식을 시청하고 있었다.
제2차 동북아전쟁인 한러전이 시작되고 러시아 도시 중 블라디보스토크를 점령한 것은 두 번째였다. 첫 번째는 하바롭스크로 도시 점령 당시 한창 삼각지 섬멸 작전이 시작되는 시점이라 군사 작전을 위해 대외적으로 점령 사실에 따른 홍보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두 번째 점령 도시인 블라디보스토크에 대해서는 태극기 게양식 영상을 비롯해 대외적으로 세계 언론에 알렸다.
사실 블라디보스토크는 러시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고 의미 있는 도시였다. 태평양 진출에 있어서 겨울에는 쇄빙선을 이용해 사시사철 항만기능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부동항이었고 극동함대의 모항이 있는 도시였다. 즉, 블라디보스토크를 잃는다는 것은 광활한 태평양에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가 사라진다는 점이었다.
이것처럼 러시아에 있어서 그만큼 중요한 건 없었다. 러시아가 홋카이도를 그렇게 목매달며 대한민국 정부에 요구한 것과 한러전을 일으킨 이유 역시 본질에서 보자면 태평양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였다.
널따란 광장에 미래형 중장갑을 착용한 1중갑강습여단 병력과 103기갑여단의 각종 전차와 장갑차, 그리고 장갑차 하차조 전투보병들이 보기 좋게 도열한 가운데 스피커에서 퍼져나오는 애국가의 선율에 따라 힘찬 목소리로 제창했다.
시청 앞, 높이 30m에 달하는 게양대는 공병대가 미리부터 준비해와 새벽부터 힘들게 설치한 게양대였다. 애국가 제창에 따라 게양 대원은 절도있는 동작으로 천천히 대형 태극기를 게양했다.
현재 태극기 게양식은 공영방송사에서 직접 나와 대한민국은 물론 세계 모든 언론에 생중계로 중계했다. 한러전에 관심을 두고 있는 국가라면 자국의 시간대가 어떤 든 간에 속보를 통해 중계했다. 유일하게 전쟁의 당사자인 러시아만 국민적 사기를 위해 자국 방송은 물론 다른 국가의 속보로 내보는 뉴스까지 모조리 송출 차단을 시도했다. 하지만 100%로 차단할 순 없었다.
21세기 인터넷이라는 광대역 네트워크가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애국가 4절까지 제창이 끝나자 광장에 도열한 군인들이 손을 높이 들고는 환호했다.
저마다 함박웃음을 짓는 표정으로 서로 얼싸안고 소리를 지르며 마치 축제분이기를 연출하듯 조금 과장된 군인들의 행동은 고스란히 방송 카메라를 통해 생중계되었다.
“하하하, 이거 합참에서 신경 좀 쓴 듯합니다.”
게양식 방송을 시청하던 법무부 박범태 장관 역시 조금은 과한 듯한 군인들의 행동에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그러게 말입네다. 우리 장병들이 전투는 잘하는데, 연기력은 초보 같습네다. 하하”
통일정책부의 김영철 장관까지 털털한 웃음을 보이며 맞장구를 쳤다.
“장병들의 표정이 과장된 연기라 보십니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추은희 대통령은 다른 고위관료들과는 다르게 흐뭇한 표정으로 방송을 시청하며 말했다.
“나 또한 저 자리에 있었다면 장병들보다 더 환호하고 좋아했을 것입니다. 애국심이란 안에서보다 밖에 있을 때 자기도 모르게 우러나오는 거지요. 우리 장병들의 진심을 연기한다고 생각하는 건 모욕입니다.”
추은희 대통령의 일침에 두 장관은 얼굴이 화끈거리는지 홍당무처럼 변했다.
“저 역시 대통령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목숨을 걸고 점령한 장소에서 자국의 태극기가 게양되니 자기도 모르게 가슴속에서 우러러 나오는 행동이라 봅니다. 정말 가슴 벅찬 행동입니다.”
외교부 강경희 장관까지 대통령의 의견에 동조하자 김영철 장관이 반쯤 벗어진 머리를 쓰다듬으며 쑥스러워했다. 그리고 박범태 장관도
“이거이! 생각이 짤봤습네다. 죄송합니다. 대통령님!”
“저 역시 섣부르게 말한 듯합니다. 부끄럽습니다.”
“아니요. 죄송한 거 없지요. 사람마다 생각하는 관점이 다를 수 있으니까요. 너무 개의치들 마세요.”
대통령과 고위관료 간의 대화가 오가는 동안 태극기 게양식과 관련된 행사는 어느덧 끝이 났다.
방송이 끝나고 회의실로 자리를 옮긴 대통령과 고위관료들은 한러전과 관련하여 진행 현황을 보고 받은 시간을 가졌다.
회의는 대통령의 질문으로 시작되었다.
“현황 보고에 앞서 이번 블라디보스토크를 점령하면서 우리 장병전사자가 한 명도 없다는 것이 정말입니까? 합참으로부터 집계현황을 보고 받았지만, 믿기기 힘들어서요.”
“네, 맞습니다. 대통령님! 전사자는 없고, 부상자만 57명입니다. 부상자 또한 대부분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경상자들입니다.”
국방부 강이식 장관이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정말 다행입니다. 개전 초기 서부전선에서 많은 전사자가 나와 그동안 심적으로 매우 힘들었는데, 이번 블라디보스토크를 비롯해 여러 교전에서 전사자가 없다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는군요.”
“죄송합니다. 서부전선 전투는 저와 합참의 판단 실수로 생각지 못한 장병들의 희생이 컸습니다.”
방금 자랑스럽게 대답하던 강이식 장관은 국방부 장관으로서 책임을 통감하는지 살짝 고개까지 숙이며 말했다.
“강 장관님! 그것을 질책하려고 한 말은 아닙니다. 신도 아니고 전쟁에 있어서 100% 완벽하게 판단하고 실행시킬 수 있겠습니까? 단지, 앞으로 최대한 신중히 판단하셔서 우리 미래를 짊어나갈 젊은 장병들의 희생을 최소화해주세요. 대통령보다는 저 역시 자식들 둔 엄마로서 부탁드립니다.”
“네, 대통령님! 명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자 그럼! 보고를 시작하시죠.”
“네, 대통령님!”
줄곧 회의 탁자 끝자락에서 부동자세로 앉아있던 별 하나를 단 장성이 절도있는 동작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후 회의실 스크린 옆으로 걸어 나왔다.
합동통제지휘소 지하 벙커에서 밤낮을 뜬 눈으로 지휘하는 합참의장과 참모진들을 대신해 현재까지 전쟁 현황과 앞으로 있을 작전 현황을 전체적으로 보고하기 위해 합동참모본부에서 나온 작전본부 소속의 작전처장 황대훈 준장이었다.
“충성! 작전본부 작전처장! 준장! 황대훈입니다.”
거수경례와 함께 자기 자신을 소개한 황대훈 준장은 긴장했는지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전쟁 현황에 대한 브리핑을 시작했다.
시간은 어느덧 2시간이 흘러 황대훈 준장의 브리핑이 끝날 갈 때쯤, 누군가 회의실에 조용히 들어와 국가정보원 이영진 원장에게 귓속말과 함께 몇 장의 보고서를 건네고 나갔다.
흠칫 놀란 표정을 지은 이영진 원장은 서둘러 건네받은 보고서를 펼쳐봤다. 이영진 원장의 놀란 표정은 점점 심각한 표정으로 굳어갔다.
마침, 브리핑을 마친 황대훈 준장이 거수경례하고 제자리로 돌아가자 이영진 원장이 이때다 싶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대통령에게 방금 받은 보고서에 대해 보고했다.
“대통령님!”
“네, 말씀하세요.”
“방금 보고받은 내용입니다. 현재 러시아 전역에서 고려인이나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동양인을 대상으로 한 폭력사태가 일어났다는 정보입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폭력사태라니요?”
갑작스러운 보고에 추은희 대통령이 상체까지 앞으로 당기며 되물었다.
“금일 태극기 게양식을 본 러시아 시민들이 고려인이나 한국인으로 보이는 동양인을 상대로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인 폭력과 방화를 일삼고 있으며 특히 브랸스크와 쿠르스크에서 우리 국민의 피해가 속출했다고 합니다. 문제는 러시아 정부와 지방정부에서 이와 같은 폭력사태에 대해서 수수방관하여 피해는 더욱 커지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2020년 대외 교포 포용정책에 따라 해외에서 온갖 서러운 괄시와 대우를 받으며 어렵게 살아왔던 대외 교포 상당수가 정책 지원을 받아 고국 대한민국으로 돌아왔지만, 아직도 러시아 곳곳에는 고려인이라 불리는 교포와 그들의 후손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또한, 급작스럽게 발발한 한러전으로 인해 유학생이나 사업차 러시아에 방문한 사업가 그리고 많은 관광객이 있었다.
한러전 개전 초기 주러 한국대사관의 직원들이 총동원되어 주변 국가로 피신 조치를 했지만, 100% 피신 조치를 하지 못했다. 러시아 정부가 모든 국경선을 폐쇄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전쟁 위험이 가장 덜한 우크라이나 국경선과 가까운 브랸스크나 쿠르스크 도시 일대로 피난 조치를 했고 안전을 위한 몇 가지 지침 사항까지 전달했다. 절대 호텔이나 숙소에서 외출을 삼가고 최대한 대한민국 국민인 것을 숨기라는 지침이었다.
하지만, 금일 아침, 일부 러시아 시민들이 블라디보스토크 시청 앞 광장에서 태극기 게양식 행사가 거하게 진행된 것을 알게 되자, 이러한 사실은 러시아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주체할 수 없는 분노에 휩싸인 러시아 시민들은 동양인에 대한 가차 없는 폭력을 행사했다. 당연히 어느 도시보다 한국인이 많이 모여든 브랸스크나 쿠르스크 도시에서의 폭력사태가 가장 심하게 나고 말았다.
쿵!
이영진 원장의 보고에 강이식 장관은 탁자를 치며 아차 했다. 러시아인 대부분이 호전적인 성격이라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과 장병들의 사기를 드높이기 위해서 치러진 블라디보스토크에서의 태극기 게양식 행사가 득보다 실이 더 커지는 사태로 돌아오고 말았다.
“수수방관하다니요? 폭력사태에 대해서 러시아 정부가 나 몰라라 한다는 것입니까?”
대통령의 재차 질문에 이영진 원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대답했다.
“네, 대통령님”
상식적으로나 이성적으로 이해가 안 가는 러시아 정부의 행태에 추은희 대통령의 얼굴은 사색이 된 채로 할 말을 잃었는지 멍한 표정으로 말문을 닫고 말았다.
현재 대한민국은 한러전 개전 후 자국 내 러시아 민간인에 대한 안전을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있었다. 유학생과 장기체류자에 대해서는 숙소에서 장기적으로 지낼 수 있도록 각종 식량을 조달해 외부 출입을 자제하게 했고 관광객 역시 주요 호텔과 협약을 통해 장기 투숙할 수 있도록 하거나 가능하다면 러시아나 타국으로 출국할 수 있도록 조치를 했다.
현재 러시아에서 발생하고 있는 한국인과 동양인을 상대로 한 폭력사태와는 너무나 판이한 조치였다.
이것이 전쟁 상대국의 자국민에 대한 배려이자 이성적이고 상식적인 상응하는 조치이며 국제적 관례였다.
“대통령님! 러시아 국민성에 대해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듯합니다. 이러한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예상을 해야 했는데, 저의 불찰입니다. 송구스럽습니다.”
강이식 장관은 탁자에 머리가 닿을 정도로 깊숙이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이건 강 장관 잘못이 아닙니다. 러시아 국민성은 그렇다 치더라도 폭력사태를 일부러 수수방관하는 러시아 정부의 비상식적이고 국제관례를 무시하는 저들의 잘못입니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종속입니다.”
생각지 못한 사태에 잠시 당황했던 추은희 대통령은 강한 어조로 또박또박 고위관료들을 보며 말했다.
“강경희 장관!”
“네, 대통령님!”
“지금 당장 러시아대사를 불러 경고하세요. 우리 대한민국 국민과 동양인에 대한 폭력사태를 진압하지 않는다면 1시간 내 모스크바를 지도상에 지워버리겠다고요. 그뿐만 아니라, 러시아 경제를 지탱하는 모든 산업시설은 물론 작은 공장 하나까지 찾아내 모조리 불태워버리겠다고 말입니다.”
추은희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발언은 절대로 실언이 아니었다. 추은희 대통령이 마음만 먹는다면 모스크바뿐만 아니라 러시아 전체를 지구상에서 깨끗이 지워버릴 수 있는 군사력을 대한민국은 보유하고 있었다.
“네, 당장 조치하겠습니다.”
눈에서 마치 레이저가 나올 거 같은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일갈하는 대통령의 지시에 강경희 장관이 비장한 어조로 대답했다.
“강이식 장관도 합참에 지시를 내리세요. 모스크바 전체를 단숨에 박살 낼 전력을 즉시 동원하라고 말입니다.”
“네,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