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25화 (425/605)

정벌작전

2023년 12월 1일 21:00 (러시아시각 22:30),

러시아 프리모르스키 크레이 블라디보스토크 시가지.

양국의 포병부대가 서로를 향한 대포병 사격으로 전환된 후 본격적인 기갑전이 벌어진 지 2시간이 지난 시점, 3세대급으로 분류되는 T-90 전차 100여 대를 상대로 3.5세대 C-2 흑표 전차는 탁월한 성능을 앞세워 서서히 압도해 나갔다. 그리고 제8군단 제8항공단에서 출격한 FAH-91SP 송골매 공격헬기의 가공할 화력에 일방적으로 당한 33친위기갑여단의 T-90 전차는 십여 대만이 살아남아 긴급히 블라디보스토크 시가지로 퇴각했다.

이에 33전차대대는 퇴각하는 T-90 전차를 완전히 격퇴하기 위해 뒤쫓으며 시가지로 기동했고 후방에서 대기하던 제131기계화보병대대 C-21 보병전투장갑차도 뒤질세라 앞다퉈 기동했다. 그리고 시가지에 진입하자마자 전투병들을 하차시켰다. 그리고 우수리 고속도로를 타고 남단으로 기동하던 58전차대대도 서서히 도심 진입을 시도하고 있었다.

어젯밤부터 1중갑강습여단 병력이 쉬지 않고 도심 곳곳에서 치열한 교전을 펼쳐 안에서 흔들고 33친위기갑여단을 격퇴한 102기갑여단 예하부대 마저 11시 방향과 2시 방향에서 압박에 들어가자 병력 발로 버티던 4개 동원사단은 급속도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본진에서 떨어진 소규모 병력은 싸울 의지마저 잃었는지 한국군에게 항복하는 사태가 속출했다.

하지만, 시가전은 쉽지만은 않았다. 다른 도시와는 다르게 미로처럼 얽히고설킨 도로와 우후죽순 세워진 각종 건물에 엄폐하고 기습공격을 감행하는 러시아군을 일일이 수색하여 제압해 나가자 상당한 시간이 소모되었다. 다행인 것은 1중갑강습여단이 도심 중심부와 남단 지역 대부분을 점령한 상태였다.

도심 중심지로 이어지는 편도 3차선 도로 위, 보병전투장갑차에서 하차한 전투보병 분대가 양쪽 도롯가 건물들을 차례대로 수색하며 앞으로 나아갔고 그 뒤로 포구를 건물 쪽으로 지향한 C-2 흑표 전차 2대와 C-21 보병전투장갑차 2대로 편제된 혼성소대가 수색 속도에 맞추어 따라가고 있었다.

쿠르릉! 콰지직!

선두에서 기동한 C-2 흑표 전차가 대각선으로 세워진 승용차를 그대로 밟고 지나갔다. 육중한 전차 중량에 승용차는 그대로 납작하게 찌그러져 고철 신세가 되었다. 도로 위에는 혼성소대의 기동을 방해하는 차량이 곳곳에 아무렇게나 세워져 있었다.

“다음 건물로 이동!”

분대장 목소리가 분대원의 헬멧에 장착된 터키온-Xa 통신기를 통해 흘러나왔다. 이에 분대원들은 수색을 마친 건물에서 나온 후 다음 건물 현관 쪽으로 신속하게 움직였다.

러시아 특유의 양식으로 지어진 4층 건물에 들어온 분대원들은 1층부터 차례대로 수색에 들어갔다. 실드 글라스를 통해 3층에 사람으로 보이는듯한 인형 발광체 여러 개가 확인되었다.

2층까지 수색을 완료한 분대원들은 동료의 엄호를 받으며 3층으로 가는 계단 앞에 섰다.

“백합 제로, 여기는 백합 둘, 현재 확인된 인형 발광체는 6개, 개인화기로 보이는 물체는 확인되지 않음. 이상!”

제압에 들어가기 전, 분대장 오원준 병장은 혼성소대 소대장에게 현재 상황을 알렸다.

- 백합 둘, 여기는 백합 제로, 민간인을 위장한 러시아군일 수 있으니 제압 시 조심하도록, 만약 민간인이라면 최대한 다치지 않게 조심하고. 이상!

“백합 제로, 백합 둘 확인 이상!”

통신을 마친 오원준 병장은 부분대장에게 손바닥을 편 상태로 치켜들고는 앞으로 가리켰다. 이에 부분대원이 일제히 계단을 타고 3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복도를 따라 인형 발광체가 보이는 현관문 양쪽에 기대어 섰다.

부분대장인 김준일 병장이 손가락으로 하나, 둘, 셋을 지었고 셋과 동시에 나명준 상병이 현관문을 힘껏 발로 찼다.

쾅!

강력한 발차기에 현관문은 여지없이 열렸고 그 사이로 부분대원들이 신속한 동작으로 들어가 총구를 지향하고는 소리쳤다.

“다들 손들어! 반항하면 쏜다.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있어!”

알아듣든 말든 부분대원들이 한국말로 외치며 총구를 가리키자 안에 있던 가족으로 보이는 러시아인들은 두려운 표정을 지으며 손을 높이 들었다.

잠시 후 옥상까지 수색하고 돌아온 오원준 병장이 손들고 있는 러시아인 가족을 살펴보고는 부분대장에게 말했다.

“무기는?”

“없습니다. 그냥 이 집에 사는 민간인 가족 같습니다.”

벌벌 떨며 손을 들고 있는 러시아인들은 전형적인 러시아 가정집 가족들 같았다. 할머니 1명, 중년의 남자와 와이프로 보이는 중년의 여자, 그리고 자녀로 보이는 아이들 3명이었다.

“총구 내려!”

떨고 있는 러시아인들이 안쓰러웠는지 오원준 병장은 분대원들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분대장님! 다음 건물로 이동할까요?”

“오케이! 이,”

명령을 내리던 오원준 병장은 얼핏 본 중년의 남자 얼굴이 생각 이상으로 긴장한 것에 이상함을 느꼈다.

“헤이! 너! 일어나봐!”

오원준 병장은 왼팔에 장착한 컨트롤 X-K02 단말기를 조작해 한국어를 러시아어로 통역시키는 기능을 활성화했다. 오원준 병장의 말은 중성적 기계음의 러시아어가 흘러나왔다.

이에 손을 들고 있던 중년의 남자 공동이 흔들렸다.

“이놈 수상한데? 입고 있는 옷도 커 보이고.”

“어! 그러게 말입니다.”

부분대장 김준일 병장 역시 식은땀까지 흘리는 중년의 남자가 수상하다 느꼈다.

“너, 너 일어나라고.”

알아듣고도 우물쭈물하는 중년의 남자, 다시금 강한 어조로 일어나라고 하자, 중년의 남자는 천천히 일어나는 척하더니 갑자기 소파 아래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뭔가를 뽑고는 그대로 분대원 쪽으로 던지고는 창문 쪽으로 뛰었다. 눈 깜짝할 사이였다.

쭈웅! 쭈웅!

돌발적인 행동에 분대원들은 본능적으로 레이저 빔을 발사했다. 여러 발의 레이저 빔이 창문으로 뛰려던 남자 등을 뚫었다. 그리고 사이 오원준 병장의 목소리가 거실 안을 울렸다.

“수류탄이다. 피해!”

바닥에 떨어진 후 빙글빙글 도는 수류탄을 확인한 오원준 병장은 생각할 것도 없이 그대로 몸을 날려 수류탄을 감쌌다.

쾅아!

폭발과 함께 오원준 병장의 몸이 들썩였다. 쾌쾌한 연기가 슬금슬금 오원준 병장 몸에서 피어올랐다.

“오쉣! 분대장님!”

“괜찮습니까?”

“제길!”

순간 동작으로 수류탄을 온몸으로 막아낸 오원준 병장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쓰려져 있었다.

- 백합 둘, 여기는 백합 제로, 뭔가? 무슨 일이야? 뭐가 터진 거야?

도로 위에서 전투보병대원들이 수색을 마치길 기다리고 있던 소대장은 3층에서 폭발이 일어나자 바로 통신을 날렸다.

“백합 제로, 여기는 백합 둘, 아! 분대장이 수류탄을 몸으로 막았습니다.”

- 수류탄? 러시아군인가?

“그런 듯합니다.”

- 오 병장은 괜찮나?

“지금 확인하고 있습니다.”

부분대장이 소대장과 통신을 주고받는 사이 다른 분대원이 오원준 병장을 살폈다. 천장을 보고 똑바로 누운 오원준 병장의 복부 쪽 방탄 쪼기는 시꺼멓게 그을린 상태로 화약 냄새와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다.

“콜록! 콜록!”

컨트롤 X-K02 단말기로 자가 진단을 하려는 그때, 오원진 병장이 기침하며 깨어났다.

“야! 됐어! 난 괜찮다.”

순간 충격에 의식을 잃었던 오원진 병장은 분대원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났다.

“아! 이런 경험 다신 하고 싶지 않다야”

그을린 자신의 방탄조끼를 툭툭 털어내고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는 분대원들을 향해 농담을 던졌다.

“아! 방금 분대장 깨어났습니다. 다행히 다친 데는 없는 듯합니다.”

- 정말인가? 다행이군. 천천히 상황 정리하고 내려와라! 이상!

“백합 제로, 백합 둘 확인 이상!”

통신을 마친 부분대장이 오원진 병장에게 다가와 살펴보며 말했다.

“아 걱정했습니다. 분대장님!”

“김 병장아! 나 제대 2개월 남기고 저세상 갈뻔해다. 하하”

“워메! 지금 웃음이 나오십니까?”

“그럼 우냐? 살았으니 웃어야지”

만약 보호슈트와 방탄조끼가 아니었다면 오원준 병장의 몸은 벌집이 되어 즉사할 수도 있었다.

“이 새낀 대체 뭐지 말입니다. 미친 새끼가 여기 있는 사람 다 죽이려고”

나명준 상병이 엎어진 채로 쓰러져 있는 중년의 남자를 군홧발로 툭툭 치며 분노를 표출했다. 그러자 벌벌 떨고 있던 중년의 여자가 알아들을 수 없는 러시아어를 속사포 쏘듯 마구 내질렀다.

“이 아줌마 뭔 말이야?”

눈치 빠른 분대 막내 김길수 이병이 컨트롤 X-K02 단말기에서 번역 기능을 켰다. 그러자 중년의 여자가 하는 말이 단말기 화면에서 한글로 표기됐다.

“아! 이놈, 가족이 아니랍니다. 탈영병인데 오늘 아침에 자기 집에 침입해서 아이들을 협박하며 숨어있었다고 합니다.”

김길수 이병은 대충 번역된 글을 풀어서 설명했다.

“미친놈, 누가 러시아 군인이면 죽이나? 별 미친 짓을······. 뒤져봐! 탈영병이라 뭣도 없겠지만”

“네, 분대장님!”

잠시 후 탈영병을 뒤진 나명준 상병이 고개를 절레거리며 양손을 좌우로 뻗어 올리며 말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럴 줄 알았다. 대충 정리하고 가자, 수색할 건물이 한두 개도 아니니 시간 소비만 했다.”

떨고 있는 러시아 가족을 뒤로하고 오원준 병장의 분대는 다음 건물을 수색하기 위해 이동했다.

★ ★ ★

2023년 12월 2일 07:00 (러시아시각 08:00),

러시아 프리모르스키 크레이 블라디보스토크 시청.

밤새 치러진 시가전은 새벽 5시가 돼서야 끝이 났다. 시가전에 투입된 102기갑여단과 1중갑강습여단도 50여 명의 부상자가 나왔지만, 다행히 전사자는 없었다.

시청 건물과 옆 건물에는 시가전 당시 항복하거나 포로로 잡은 러시아군들이 즐비했다. 대부분 동원사단 군인들이었고 인원은 대략 5,000여 명에 달했다.

생각 이상의 포로 때문에 현재 블라디보스토크 점령 작전에 투입된 102기갑여단과 1중갑강습여단 지휘부는 매우 난처한 상황에 직면했다. 마땅한 포로수용소도 없는 상황이라 임시로 시청과 옆 건물에 집어넣고는 감시하고 있지만, 앞으로가 문제였다.

5,000여 명에 달하는 포로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식량 조달도 그렇고 1중갑강습여단이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면 102기갑여단 병력이 감시 임무를 수행해야만 했다.

이에 한가지 의견이 나왔다. 블라디보스토크 교도소에 있는 범죄자들을 풀어주고 대신 포로들을 수용하자는 의견이었지만 범죄자들을 풀어주면 도시 치안유지가 힘들 수 있다는 반대 의견이 나오면서 무시되었다.

이에 합동참모본부에서는 간부급을 제외한 일반 사병 포로는 모두 풀어주라는 명령을 내렸다. 정규병력도 아니고 전시체제에서 동원하는 동원사단 병력이기에 현재 상황에서 큰 위협이 되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현재 시청 앞 광장에는 포로 5,000여 명이 양손이 묶인 채로 나와 섰다. 그리고는 포로 가슴에 달린 계급장을 통해 하사급 이상의 간부와 일반 사병을 양쪽으로 갈라놨다. 하사급 이상의 간부는 대략 800여 명이었고 나머지 4,000여 명은 일반 사병이었다.

잠시 후 하사급 이상 간부는 다시금 시청 옆 건물로 들어갔고 나머지 사병들은 묶여있던 양손도 자유로워졌다. 이에 포로들은 묶여있던 손목 부위를 어루만지며 앞에서 확성기를 들고 있는 한국군 간부를 주시했다.

“아아, 테스트, 테스트, 지금부터 너희들은 자유다. 각자 집으로 돌아가라. 그리고 다시는 우리 한국군을 향해 총을 들지 마라, 만약 다시 전장에서 보게 된다면 그때는 지금과 같은 행운은 없을 것이다. 모두 집으로 돌아가라”

항복하거나 잡힌 지 몇 시간도 안 된 상황에서 풀어준다는 한국군 간부의 말에 포로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자유라고. 어서 집으로 돌아가 따뜻한 밥이나 먹어라. 아! 밥이 아니고 빵인가? 어쨌든 너희들은 자유다. 돌아가라”

몇 번이나 확성기에 대고 돌아가라고 외치자 그제야 분위기를 파악한 사병 포로들은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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