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23화 (423/605)

정벌작전

2023년 12월 1일 11:30 (홍콩시각 10:30),

중화민국 홍콩특별구역시 구룡반도(흑호대 비밀은신처 근처).

홍콩 내 활동하는 신중국 첩보조직인 흑호대에 관한 조사가 들어간 지 3일째, 은신처로 추정되는 몇 장소 몇 곳을 알게 되었다. 이에 대외정보국 1과 소속팀 중 남궁원과 함께 북경으로 간 3팀을 제외한 나머지 3개 팀은 각자 장소로 이동하여 근접 조사에 들어갔다. 이중, 박기웅 팀장이 이끄는 1팀은 구룡반도 중심지에서 조금 외곽에 있는 한 건물을 주시했다.

세계 최고의 금융 도시임에도 구룡반도 외곽은 허름한 건물들이 즐비했고 건물과 건물 사이에는 여러 전깃줄이 어지럽게 걸쳐 있었다. 2팀 요원들은 맞은편 건물 옥상에서 조심스럽게 각종 장비를 이용해 탐색에 들어갔다.

“팀장님! 놈들 은신처가 맞는 듯합니다.”

엎드린 상태에서 벌어진 틈 사이로 VR-M2 투시경을 내밀고 확인하던 양정석 대리가 혀를 차며 말하자 옆으로 다가온 박기웅 팀장이 대꾸했다.

“그거 잘됐군, 며칠 더 개고생하나 생각했는데 말이야.”

“그런데 팀장님! 이거 침투는 힘들겠는데요?”

“왜!”

“이놈들 사용하는 장비들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뭐가 있는데?”

“직접 보시죠.”

양정석 대리는 VR-M2 투시경을 건넸다. 이에 박기웅 팀장은 VR-M2 투시경을 들고는 직접 건너면 건물을 1층부터 옥상까지 건물 내부 전체를 투시하며 확인했다. 4층 건물에는 8개의 인형 발광체가 보였고 곳곳에는 여러 장비가 설치되어 있었다.

“오! 이것들 봐라! 행동인식탐색기에 적외선 카메라, 그리고 진동파감지기까지 건물 구석구석에 엄청나게 깔아놨네?”

“네, 다른 건 모르겠는데 진동파감지기가 마음에 걸립니다.”

TCS 모드로 침투 시 행동인식탐색기나 적외선 카메라는 충분히 기만할 수 있었으나 미세한 진동파까지 모조리 감지할 수 있는 진동파감지기를 속일 수는 없었다.

“제가 한번 시도해 보겠습니다.”

팀 막내인 윤길수 주임이 어느새 다가와서는 조용히 말했다.

“아니, 기다린다. 괜히 섣부르게 움직였다가 놈들이 눈치채면 골치 아파진다.”

“그럼, 마냥 기다리는 겁니까?”

양정석 대리가 다시금 VR-M2 투시경을 건네받으며 물었다.

“그래야겠지? 들어갈 수 없다면 밖으로 나오는 놈들을 낚아채야지”

“음”

“나랑 막내는 1층으로 내려가 차에서 대기할 때니 양 대리와 강 주임은 계속 감시하고 있다가 밖으로 나오는 기미가 보이면 바로 알려! 그리고 4팀에 얘기해서 미리 준비해놓으라고 해! 무슨 말인지 알지?”

“네, 그럼요.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작전 아닙니까?”

“그렇지! 눈치 하나는 빨라. 윤 주임! 장비 챙겨라! 내려가자!”

“네, 팀장님!”

계단을 통해 1층까지 내려온 박기웅 팀장과 윤길수 주임은 골목길 안쪽에 주차해놓은 검은 밴에 몸을 싣고 기다림이란 시간과 싸움을 시작했다.

★ ★ ★

2023년 12월 1일 12:00 (신중국시각 11:00),

신중국 북경시 창핑구(국가정보원 특수보안과 임시 거처).

3일 전, 대외정보국 1과 3팀과 함께 스카이스버스를 타고 북경 외곽에 도착한 남궁원 일행은 일반 관광객 행세를 하면서 북경 시내로 무사히 들어왔고 지금은 창핑구의 어느 모텔을 임시 거처로 하여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여행 가방에 싣고 가져온 첨단장비가 한쪽 방에 즐비하게 놓여 있었고 남궁원을 비롯해 특수보안과 요원 2명은 자신의 노트북 화면을 보며 뭔가의 작업에 열중했다.

그리고 이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3팀 요원들은 모텔 밖과 로비, 그리고 거실에서 수상한 자들이 있는지를 실시간으로 감시 중이었다.

현재 남궁원이 노트북의 화면을 보며 키보드를 두드리며 열중하고 있는 것은 외부망과 연결된 신중국 주석실의 서버였다. 나중에 직접 침투하여 내부망으로만 운용되는 서버 해킹을 해야겠지만, 일단 지금은 외부망과 연결된 서버의 해킹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방에서는 첨단장비에서 가끔 울리는 기계음과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울렸다.

“아! 이거 오랜만에 하니 실력발휘가 안 되네?”

남궁원이 키보드를 두드리다 말고 머리를 끌쩍거리며 푸념했다.

사실 남궁원의 해킹 실력은 대학생일 때가 전성기였다. 이후 국가정보원에 들어온 후에는 100% 자신의 실력으로 해킹을 시도한 적이 없었다. 대부분 호큘라가 도와줬다. 이런 이유로 남궁원의 해킹 실력은 늘기는커녕 줄어든 상태였다.

“남궁 과장님! 현재까지 접근한 것도 대단한 실력입니다.”

특수보안과 나성현 대리가 엄지 척을 하며 방긋 웃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쪽 세계에서는 남궁 과장님은 전설입니다. 하하”

또 다른 특수보안과 팀원인 김영균 주임 역시 잠시 키보드에서 손을 내려놓고는 자랑스럽다는 듯 말했다.

“전설은 무슨! 그땐 호큘라가 도와줘서 그런 거지······.”

남궁원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손사래를 쳤다.

“에이~ 51구역 뚫은 건 사실이지 않습니까?”

“맞아! 그건 전설이자 앞으로 우리 세계에서는 신화로 남겨질 일이지요. 하하하.”

특수보안과 요원들은 마치 남궁원을 영웅으로 떠받았다.

“이 친구들 그만해! 낯간지럽게······. 그거 다 과장된 얘기야. 그나저나 점심시간이니 밖에 나가서 식사나 하러 가지?”

“아, 시간이 벌써 이리되었네요?”

“근데 밖에 나가면 좀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정체가······.”

“관광객이면 관광객답게 나가서 맛난 거 먹는 거야. 괜히 정체 숨기려고 위축되면 더 의심받게 되어 있어! 안 그런가? 신 팀장?”

“네, 맞아요. 이럴 때일수록 더 자연스럽고 과감하게 행동해야 의심을 안 받아요.”

3팀 신은하 팀장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들었지? 다들 나가자고. 오늘 점심은 내가 살 테니”

“네, 알겠습니다. 고고하시죠.”

★ ★ ★

2023년 12월 1일 14:00 (러시아시각 15:00),

러시아 프리모르스키 크레이 블라디보스토크 북단 외곽.

제5군 전력이 와해 된 후 시베리아 점령작전에 따라 2일 전, 형산(무단장)에서 주둔하던 제8군단 직할부대인 102기갑여단이 동부 국경선을 최단거리로 기동하며 돌파했다. 이어 블라디보스토크와 연결된 A-370 도로에 오르고는 최고속도로 4.2km에 달하는 다리 위를 달리고 있었다.

적지형에서 그것도 주변 일대로 피할 수 없는 기다란 다리 위를 여단 전체가 기동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만에 하나 적의 공격으로 다리가 붕괴하거나 대규모 공격을 받는다면 큰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102기갑여단은 이러한 위험을 감수하며 기동할 수 있었던 건 현재 연해주에는 러시아의 공군전력이나 미사일전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선봉에서 기동하는 102기갑여단의 131기계화보병대대 장갑차들이 왕복 6차선을 모두 차지하고 2줄로 빠르게 다리 위를 기동했고 그 뒤로 33전차대대를 비롯한 536포병대대와 여단 본진이 기다란 행렬을 보이며 뒤따랐다. 그리고 58전차대대는 A-370 도로가 아닌 해안가를 크게 우회하여 남단으로 이어지는 우수리 고속도로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고 있었다.

한편, 블라디보스토크를 방어하는 부대 중에서 유일한 기갑전력인 33친위기갑여단은 도시 외곽에서 102기갑여단을 막기 위한 배수진을 쳤다. 원래 계획은 4개 동원사단과 함께 적군을 도시 내로 끌어들여 시가전을 펼치려 했다. 하지만 어젯밤 공수를 통해 침투한 제1중갑강습여단의 기습 공격에 제33친위기갑여단은 동원사단에 시가전을 맡기고 도시 외곽에서 방어하는 것으로 방어작전을 긴급 수정했다.

현재 러시아 전차 편제 기준으로 보자면 구형에 속하는 T-90 전차 백여 대가 A-379 도로를 향해 기다란 횡대 대형을 갖추고 조만간 있을 대규모 기갑전을 대비했다.

★ ★ ★

2023년 12월 1일 14:50 (홍콩시각 13:50),

중화민국 홍콩특별구역시 구룡반도(흑호대 비밀은신처 근처).

비좁은 밴에서 지루한 시간을 보내며 기다린 지 3시간째, 밀려오는 졸음에 하품하며 기재기를 하는 그때, 옥상에서 통신이 날아왔다.

- 팀장님!

“어! 왜? 무슨 일 있어?”

- 이놈들 외출하려는 듯합니다.

“인원은?”

- 확실친 않지만, 2명인 듯합니다.

건물 안에서 2명이 두꺼운 외투를 입는 걸 확인한 양정석 대리가 대답했다.

“알았어! 우리는 이놈들 뒤쫓을 할 테니, 자네랑 강 주임은 계속해서 감시해”

- 네, 알겠습니다. 조심하십쇼.

“오케이~”

통신을 마친 박기웅 팀장은 곧바로 운전석에 앉아있는 윤길수 주임에 손가락으로 시동을 켜라는 지시를 내렸다.

부릉! 부릉!

검은 밴의 잔잔한 엔진음이 골목길에 퍼지는 가운데 건물에서 나온 흑호대 요원 2명은 길가에 세워둔 검은 세단으로 향하고는 이내 탑승했다.

“거리 유지하고 쫓아, 이놈들 은신처에서 좀 멀어지면 작업한다.”

“네, 팀장님!”

미끄러지듯 검은 세단이 출발했다. 그러자 검은 밴 역시 골목길을 빠져나온 후 일정 거리를 두고 뒤따랐다.

그리고 검은 세단을 뒤쫓은 지 20여 분이 지난 시각, 구룡반도의 복잡한 시내를 빠져나와 지금은 한산한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탐장님! 여기서 해도 될 거 같습니다.”

“음, 적당하군, 윤 주임 슬슬 거리 좁혀!”

“네,”

대답과 동시에 윤길수 주임은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있는 오른발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검은 밴은 속도를 높이며 100m 앞에서 달리고 있는 검은 세단과의 거리를 좁혔다.

철컥! 철컥!

뒷좌석 장비 가방에서 총기류 같은 장비를 꺼내든 후 여기저기 작동 여부를 점검한 박기웅 팀장은 오른쪽 창문을 열었다.

“1차선으로 붙어!”

“네,”

검은 밴은 추월하듯 1차선으로 진입하고는 이내 검은 세단과 나란히 달렸다. 그리고 열린 창문으로 박기웅 팀장이 뭔가를 쐈다.

날아간 발사체는 검은 세단의 보닛과 왼쪽 프론트휀다 사이에 꽂혔고 바로 강력한 전자기를 방출했다. 이에 검은 세단은 ECU는 물론 각종 전자부품이 파손되면서 자체제어능력을 상실했고 이에 검은 세단을 운전하던 요원은 기겁하며 브레이크를 밟으며 핸들을 돌리려 했지만, 뭐 하나 작동하지 않았다.

키이이이익! 콰앙!

이에 속도를 그대로 유지하며 달리던 검은 세단은 커브 길에서 방향을 틀지 못하고 그대로 가드레일을 박고는 튕기고는 그대로 뒤집혔고 십여 미터까지 미끄러지고는 멈췄다.

찌그러진 보닛 사이로 희뿌연 연기가 솟아오르고 냉각수가 터져 도로 바닥에 흐르는 검은 세단 옆으로 검은 밴은 썼다. 그리고는 바로 내려서 뒤집힌 검은 세단 문을 열고 탑승자를 확인했다. 충돌 당시 충격에 정신이 없던지 터진 에어백에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어느샌가 사이렌을 울리는 엠블런스가 무서운 속도로 달려와 섰다. 그리고는 하얀 가운을 입은 사내 두 명이 엠블런스에서 내리고는 검은 세단 쪽으로 달려왔다.

이들은 박기웅 팀장을 보고는 별말 없이 고개를 한번 끄덕이더니 뒤집힌 검은 세단의 문을 열고 의식을 잃은 흑호대 2명을 끌어내고는 이동식 침대에 눕혔다.

박기웅 팀장과 윤길수 주임 역시 하얀 가운의 사내들을 도와 그들을 엠블런스에 싣는 걸 도왔다.

2개 차선을 막은 교통사고에 천천히 구경하며 지나가는 운전자들이 있었지만, 남 일에 신경 쓰지 않은 정서가 만연한 홍콩시 운전자들은 단순히 구경만 하며 그대로 지나쳤다.

교통사고 이후 자연스럽게 나올법한 일이기에 더욱 의심을 받지 않았다.

엠블런스가 다시금 사이렌을 울리며 떠나자 박기웅 팀장과 윤길수 주임은 검은 세단에 박힌 뭔가를 회수하고는 바로 검은 밴을 타고 엠블런스를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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