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21화 (421/605)

정벌작전

2023년 11월 26일 22:00,

서해 공해상 상공(CMV-100 스카이버스 안).

도살장에 끌려가는 누렁소처럼 똥 씹은 표정으로 창 너머 바깥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남궁원, 첫날 출근하자마자 많은 일이 있었다.

오전 내내 여러 국장으로부터 우진길 교수와 관련된 기밀유출사건의 경위를 설명 듣고 오후에는 사이버보안국 직원들에게 음성통화 추적시스템의 운용법을 교육한 남궁원은 늦은 시간, 언제 다시 집으로 돌아갈지 모르는 긴 여정의 출장길에 올랐다.

현재 홍콩으로 가는 CMV-100 스카이버스 탑승한 인원은 싱글벙글 능구렁이처럼 웃고 있는 이자성 과장과 사이버보안국에서 근무할 당시에도 한 번도 접하지 못한 부서인 특수보안과 소속의 직원 2명과 함께 하고 있었다.

탑승하기 전, 알게 된 사실로 특수보안과는 사이버보안국의 비인가 부서로 이들이 하는 일은 필요로 하는 정보에 따라 해외 각국을 돌아다니며 해킹하여 정보를 빼돌리는 다소 불법적인 일을 행하는 부서였다.

이에 특수보안과는 비인가 부서였고 이들의 신분 또한 국가정보원에서도 철저히 베일에 싸인 비공식 위장 신분을 가진 자들이었다.

현재 남궁원이 특수보안과 소속의 요원 2명과 함께 이자성 과장을 따라나선 이유는 이번 기밀유출사건의 범죄조직이 일반적인 범죄조직이 아니라 타 국가정보조직일 수 있으며 그에 따라 유출된 기밀정보가 해당 국가에서 상당한 연구진척을 보일 수 있다는 추론이 나왔다. 그렇다면 범죄조직의 정체를 밝히고 기밀 된 유출정보를 폐기하는 거 이상으로 진척된 연구결과물까지 완전히 폐기해야만 했다.

이에 해킹과 관련하여 비공식적으로 국내 1위라 할 수 있는 남궁원의 실력이 필요했고 이에 옆에서 도움 줄 특수보안과 2명과 함께 이자성 과장이 이끄는 대외정보국 1과와 동행하게 되었다.

“야 원! 표정이 왜 이래? 얼굴 좀 펴라. 아무리 오랫동안 마누라 못 본다고 그런 썩은 표정을 하냐? 총각 생각 해주라? 하하하”

“시꾸랍다. 이잣성이······.”

“홍콩 가면 내가 맛난 거 사줄 테니 기쁜 마음으로 가자잉”

계속해서 놀려대는 이자성의 말에 남궁원은 귀찮다는 듯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두 눈을 감았다.

완전히 회복하지도 못한 와이프 이혜진 걱정은 물론 현재 세계적으로 핫이슈가 되어 가장 중요한 시점을 맞고 있는 자신의 회사도 걱정이 들었다. 이런 잡념에 집중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자성이 놀려대자 잠이나 자려고 두 눈을 감은 이유였다.

★ ★ ★

2023년 11월 27일 15:00, (러시아시각 09:00),

러시아 모스크바 벙커 스테이트 R-08(상황실).

대대적인 핵전력 투사 후 한국군의 동시다발적인 대규모 보복공격을 받게 되자 푸틴 대통령과 정부관계자 그리고 총참모부는 새로운 스테이트 R-08로 지휘본부를 옮겼다.

기존에 있던 스테이트 R-13 벙커에 대한민국의 보복공격이 염려되었기 때문이었다. 현재 모스크바에는 지휘본부 체계가 갖춰진 스테이트 벙커는 총 20개에 달했다.

야심 차게 준비한 핵전력 투사 공격은 물론 전략로켓군 소속의 대부분 로켓사단이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본 상황, 식음을 전폐할 정도로 충격을 넘어 좌절감에 휩싸인 푸틴 대통령은 안정제를 맞고 병상에 누워있는 상태였고 총참모부는 현재 위기상황을 돌파할 방안을 찾고자 모든 참모진은 머리를 맞대고 장기간의 회의를 했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뾰족한 묘수나 획기적인 방안이 나올 리가 만무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나온 방안은 현재 형성된 모든 전선 일대에 대한 고착화였다. 특히 극심한 타격을 받으면서도 여러 강을 도하 하여 구축한 서부전선이 중요했다. 만약 강 너머로 퇴각한다면 또다시 점령하기 위해 도하를 시도해야 했고 그렇다면 반복적인 전력 손실을 입을 수 있었다. 이에 지금까지 비밀리에 몽골 영토에서 대기 중인 붉은기갑군단과 현재 북부전선에서 한국군과 백중지세로 교전을 펼치고 있는 제36군 전력 일부를 급히 남단으로 우회시켜 전선 고착화에 사활을 거는 것으로 결정했다.

또한, 중부군구의 제41군과 제2군을 기존 계획과 다르게 제29군에 합류시킨 후 신중국이 상호군사보호조약에 따라 본격적으로 한국에 대한 군사적 행동에 들어갈 때를 노려 대반격을 한다는 작전 안을 수립했다.

하지만 총참모부는 동부전선에 관해서는 어떠한 대책이나 방안을 내놓지 못했다. 동부전선의 주력군인 제5군은 고작 20% 전력만이 살아남은 상태였고 우주항공군 소속의 제3항공군 역시 최신예 기종들은 죄다 격추되었고 전쟁 발발 시 공군기지를 대신해 각종 전투기를 지하격납고에 격납하고 운용하던 민간 비행장까지 전폭기의 공습과 순항미사일 공격에 격납했던 각종 로우급 전투기까지 모두 파괴되면서 동부전선 일대에 더는 러시아 공군전력이 없다고 봐야 했다. 그리고 극동함대 전력도 이제는 핵탄도미사일잠수함 2척과 재래식 잠수함 3척만이 북동해 깊은 심해에서 한국 해군의 대잠 추적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망 다니는 신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동부전선은 한국군 입장에서는 무주공산과 같았다. 극동함대의 모항이자 태평양 진출의 문호인 블라디보스토크를 시작으로 연해주 땅과 사할린 섬까지 모두 한국에 점령당할 위기였다. 하지만 이를 저지할 러시아군에는 없었다.

이에 총참모부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다. 남아있던 제5군까지 제35군으로 퇴각시켜 연해주에 대한 점령 길을 활짝 열어주겠다는 것이었다. 즉 한국군 시선을 최대한 연해주와 사할린 섬의 점령에 전념하게 하여 서부전선에 대한 고착화 작업을 확실히 하겠다는 것이었다. 뼈를 주고 살을 취하는 게 아니라 상처 난 살을 치료해보겠다는 것이었다.

“지금 접견이 가능한가?”

꼬박 하루 동안 회의에 회의를 걸쳐 수립된 작전 안을 보고하기 위해 벙커 내 마련된 의무실을 방문한 블라디미르 베샤스트니흐 총참모장은 대통령 주치의에게 물었다.

“지금은 힘들 거 같습니다. 충격이 너무 심해 지금 안정제를 맞고 주무시고 계십니다.”

“아직도 말인가?”

“네,”

“그럼 언제쯤 일어나겠소?”

“음, 투약한 안정제 양을 보자면 오후 4시나 5시 정도에는······.”

“그래, 알았네, 그때 다시 오도록 하지. 잘 보살펴 드리게”

“네, 알겠습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뒤돌아선 블라디미르 베샤스트니흐 총참모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상황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2023년 11월 27일 16:00,

남주 서울특별시 용산구 B2 벙커(국군 합동지휘통제소 작전브리핑실).

한러전 승패 양상이 급격히 대한민국으로 기울어진 가운데 어느 때보다 화기애애한 함동참모본부의 작전브리핑실은 이 분위기를 이어가고자 본격적인 시베리아 점령작전의 최종점검 시간을 가졌다.

시베리아 점령작전의 첫 시작은 블라디보스토크 점령이었다. 극동함대의 모항이자 각종 전쟁예비물자를 보관하고 있는 블라디보스토크는 1순위 점령 대상이었다. 또한, 핵잠수함을 제외한 재래식 잠수함 같은 경우 본항 없이는 장기전을 펼칠 수 없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즉, 재래식 잠수함에 있어서 블라디보스토크 모항은 매우 중요했다.

대형 스크린 옆에 선 양민춘 중장이 레이저 포인트로의 디지털 지도 곳곳을 가리키며 브리핑이 진행되고 있었다.

“현재까지 파악한 바로는 블라디보스토크에는 제5군 직할부대인 33친위전차여단과 4개의 동원사단이 방어하고 있습니다.”

작전본부장 양민춘 중장의 말에 따라 디지털 지도에서는 블라디보스토크가 원 기호로 선택되어 깜빡였고 꼬리말 형식으로 상세 정보가 나타났다. 또한, 현재까지 파악한 주둔부대까지 일일이 상세하게 표기되었다.

“동원사단은 신경 쓸 거 없고 전차연대 하나만 까부쉬면 되다는거구만 기래. 33연대 전력은 어떠네?”

윤기윤 대장이 의자에 상체를 깊게 파묻은 상태로 질문했다.

“네, 33친위전차여단은 2개의 전차대대와 2개의 차량화대대로 편제되어 있으며 전차대대는 T-90 전차를 운용하며 차량화대대는 나름 최신 장갑차인 쿠르가네츠-25 장갑차(IFV)을 운용하고 있습니다.”

설명과 동시에 스크린에는 T-90 전차와 쿠르가네츠-25 장갑차(IFV)의 그림과 상세 제원이 보였다.

“T-90 땅크는 뭔네?, 이거이 블라디보스토크는 그냥 먹겠구만기래. 백호 땅크는커녕 흑표 땅크만 가도 충분하갔어”

“합참차장님! 아무래도 블라디보스토크는 주로 시가전이 진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시가전에서는 전차보다는 장갑차 역할이 중요한데 러시아 쿠르가네츠-25 장갑차는 러시아 최신예 장갑차로 전투병들 역시 최신예 장비를 갖추고 있어서 쉽게 생각할 수만은 없을 듯합니다. 또한, 동원사단이긴 하지만, 이들 역시 대량이 휴대용 대전차 화기를 사용할 것입니다.”

“그래? 그럼 어쩌네”

“신속하고 확실한 점령을 위해, 블라디보스토크만큼은 제1야전군 소속의 제1중갑강습여단을 추가 투입하고자 긴급 제안합니다.”

양민춘 중장이 기존 작전 계획에 없는 추가 의견을 내자 신성용 합참의장은 제1야전군 사령관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의사를 물었다.

“오 대장! 괜찮겠나?”

합참의장의 질문에 오성덕 대장은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하하, 괜찮다니요? 영광입니다. 러시아 영토의 첫 점령지를 우리 야전군의 중갑강습대가 맡는다면 영광입니다. 맡겨만 주시면 확실히 할 겁니다.”

오성덕 대장의 말에 양민춘 중장이 고개를 한번 숙이고는 말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하기는 영광이라고 하지 않았나? 확실하게 써주게나”

“네, 알겠습니다.”

두 장성 간 훈훈한 대화가 오가는 동안 제3야전군 사령관인 서윤일 대장이 헛기침하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거! 섭섭하구먼, 우리 3야전군에서도 전공을 올릴 수 있는 뭐 하나는 줘야지 않겠나? 양 본부장!”

서윤일 대장의 농담에 순간 작전브리핑실은 웃음꽃이 피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시베리아 점령작전의 최종점검 회의가 끝났다.

시베리아 점령작전의 시초가 될 블라디보스토크 점령작전 안은 이랬다. 첫째, 공군전력을 이용한 정밀 타격으로 적 대공방어 시설 무력화 및 외곽에 있는 잔존병력 처리, 둘째는 양민춘 중장이 긴급 제안으로 추가된 제1중갑강습여단이 블라디보스토크에 공수로 침투하여 군사시설 파괴 및 주둔하고 있는 동원사단 병력과 시가전 돌입, 마지막 셋째는 제81기계화보병사단(해모수)이 국경선을 넘어 블라디보스토크 남단과 서단에서 진공하여 제33근위전차연대 섬멸 및 점령 완료였다.

기존 작전 안에서 제1중갑강습대대가 추가된 거 외에는 별다르게 바뀐 건 없었다.

2시간에 걸친 회의가 끝나고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각자 자리를 비우는 그때 양민춘 중장 옆으로 제3야전군 사령관인 서윤일 대장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양 본부장”

“네, 사령관님!”

“아까 말은 농담이긴 했지만, 사시 진담도 섞여 있네그려, 나중에 우리 야전군도 점령작전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주게나.”

“아! 알겠습니다.‘

“하하, 약속했네?”

“네, 적극적으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고맙네.”

양민춘 중장의 어깨를 가볍게 툭 친, 서윤일 대장이 방긋 웃고는 자리를 떴다.

사실 제1차 동북아 전쟁 당시 모든 주요 작전에는 제7기동군단이 중심이었다. 이에 수많은 전공으로 인해 일계급 특진부터 각종 훈장 역시 제7기동군단 지휘관과 장병들이 싹쓸이했다.

제1야전군이나 제3야전군 역시 피땀 흘리며 함께 고생했지만, 지원군 역할이나 제2전선 전투에 투입되면서 전공을 세우는 면에서 뒷전이긴 했다. 이번 제2차 동북아 전쟁에서도 자신의 부대와 지휘관들이 그런 처우를 받을까 봐 살짝 신경이 쓰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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