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자충수
2023년 11월 26일 06:30,
북동해 북위 42°25'18.76" 동경 133°31'28.04" 해심(크냐즈 올레그함(K-553)).
2분도 안 되어 마지막 20번 발사관에서 R-30(RSM-56) 불라바(나토명 : SS-NX-30)가 빠져나와 수면을 박차고 솟구치는 그때, 음탐실으로부터 음탐병의 절규가 터져 나왔다.
“악! 방. 방위각 1-7-5, 거리 5300에서 어, 어뢰로 추정되는 물체 매우 빠르게 접근 중!”
“어뢰? 대체 무슨 소리야?”
음탐실 책임자인 비탈리 데니소프 음탐관이 일갈을 하며 음탐병의 헤드셋을 가로채듯 뺐고는 자신의 귀에 갖다 댔다. 그리고 잠시 후 헤드셋을 통해 들려오는 소음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게 된 비탈리 데니소프 음탐관은 재차 확인차 음탐병의 콘솔 모니터에서 파장을 분석한 정보를 보고는 곧바로 CIC(전투정보실)으로 달려갔다.
“함, 함장님! 당장 잠항해야 합니다. 거리 5500에서 어뢰로 추정되는 물체가 갑자기 음탐됐습니다.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초공동으로 보입니다.”
갑작스러운 어뢰 출현 보고에 CIC(전투정보실) 승조원들은 순간적으로 얼어붙든 움직이지 않았다.
“대체 어뢰라니? 반경 10km 내 아무것도 없지 않았나?”
“네, 그랬었습니다.”
“제길! 도달까지 얼마인가?”
“대, 대략, 20초입니다.”
“미쳤나? 5km라면서 20초라니? 아무리 초공동 어뢰라고 해도 말이 안 되잖아!”
“정말입니다. 당장 잠항해야 합니다.”
이때 음탐실로부터 최악의 보고가 날아왔다.
- 어, 어뢰! 앞으로 도탄까지 10초!
“조타장! 긴급 잠항한다. 잠항각 최대! 출력 최대!”
“무장관! VIST-2 4개 사출!”
* VIST-2 : 러시아에서 최근에 개발하여 핵추진잠수함에 탑재한 소형수중음향대응장비로 적 잠수함이 발사한 어뢰의 표적탐지 장치를 교란하거나 소나를 완전히 마비시키는 현존 자주항주식 닉시나 디코이보다 한 단계 이상 개량된 기만기다.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을 인식한 맥심 샤츠키흐 함장은 베테랑답게 어뢰를 회피하기 위한 긴급 잠항 명령을 내렸다. 이에 상단 갑판의 루프도어가 일제히 닫히고 배수량 24,000t에 전장이 170m에 달하는 크냐즈 올레그함(K-553)은 4곳의 밸러스트 탱크에 해수를 충수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디스펜서 2곳에서 VIST-2 4개가 차례대로 사출되면서 사방으로 잠항해 나가며 강력한 수중 방해 음을 방사했다.
“잠항합니다.”
조타장은 엔진 출력을 최대로 끌어올리고는 기동 레버를 끝까지 당겼다.
이에 밸러스트 탱크에 해수가 가득 차자 잠수함은 무거워졌고 대형 스크루가 최대출력으로 회전하자 크냐즈 올레그함(K-553)은 45도에 가까운 기울기로 빨려 들어가듯 잠항했다.
하지만, 접근하는 정체불명의 어뢰 속도가 워낙 빨라 회피할 가능성은 희박했다. 또한, 실전에 처음 사용하는 VIST-2가 제대로 역할을 해줄지도 미지수였다.
“도달까지 5초! 거리 980! 4초, 으아악!”
음탐병은 도달 시간을 보고하다 말고 갑자기 헤드셋을 벗어던지고는 비명을 질렀다. 헤드셋을 통해 초공동 어뢰의 항주하는 소리가 마치 저승사자가 달려오는 듯 느꼈던 것이었다.
현재 크냐즈 올레그함(K-553)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항주하는 어뢰의 정체는 숙종대왕함(DDG-1005)에서 발사한 S-SSSFM-500B 트라이던트 초공동 미사일어뢰였다.
마하 3의 속도로 비행하다가 목표물로부터 5km 지점의 수중으로 침투한 S-SSSFM-500B 트라이던트 초공동 미사일어뢰는 잠항 방식으로 전환했고 즉시 초공동을 일으켜 최대 660노트라는 엄청난 속도까지 끌어올리고는 항주했다.
저마다 단단한 고정물체를 부여잡고 두려움에 떨고 있던 잠수함 승조원들은 음탐병의 비명에 더욱 큰 두려움이 들었는지 울먹이거나 두 눈을 질근 감았다.
쿠아앙! 콰지지지직!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는지 엄청난 크기의 크냐즈 올레그함(K-553)에 순간적인 충격이 가해졌다. 이에 승조원들은 사방으로 튕겨 날아갔다. 이어 거대한 수중 회오리 휩싸이며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다.
끼이이잉! 쿠아악! 콰지직직!
잠수함 곳곳에서 괴기한 소음과 함께 외부장갑이 깨지는듯한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그런데도 크냐즈 올레그함(K-553)은 꾸역꾸역 깊은 심해 속으로 계속해서 잠항 중이었다.
“뭐, 뭐지? 산 건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잠수함 실내가 조용해지자 바닥에 나뒹굴었던 승조원들이 하나둘 일어나며 꿈인지 현실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저마다 자신의 몸을 살폈다.
이때 누군가가 양손을 번쩍 들고는 소리를 질렀다.
“살, 살았다. 만세”
여기저기서 승조원들의 환호가 터져 나왔다.
CIC(전투정보실) 한쪽 구석까지 내동댕이쳐져 쓰러져 있던 맥심 샤츠키흐 함장도 부하들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났다.
“어떻게 된 건가?”
힘겹게 의자에 앉은 맥심 샤츠키흐 함장은 머리에서 흐르는 피를 옷소매로 닦으며 야수르 하사노프 전술통제관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VIST-2의 방해에 목표물을 잃고 자체 폭발한 듯합니다.”
“그거참 천운이군. 부서별로 피해 현황 확인하게”
“네, 알겠습니다.”
함장 말대로 천운이었다.
S-SSSFM-500B 트라이던트 초공동 미사일어뢰는 크냐즈 올레그함(K-553)과 충돌 직전 운이 좋게도 사출된 VIST-2의 교란에 속아 순간적으로 표적을 잃자 근방 200m 근처에서 자폭했다.
거센 회오리 수중 폭풍파가 휘몰아쳤지만, 대형 핵잠수함인 크냐즈 올레그함(K-553)은 일부 외부장갑이 손상되기 했지만, 잠항하는 데는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그 천운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38km 떨어진 심해에서 660노트의 속도를 내는 새로운 초공동 어뢰가 다가오고 있었다. 새로운 어뢰의 정체는 도산안창호함(SSP-089)에서 발사한 흑상어B 초공동 다탄어뢰였다.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고 다시금 안정에 들어간 크냐즈 올레그함(K-553)의 CIC(전투정보실)는 부서별로 피해 현황을 보고 받고 있었다.
- 기관실입니다. 원자로 이상 없으며, 동력 전달 기관장치도 이상 없습니다. 이상!
- 무장실입니다. 어뢰발사관 6개 모두 손상 없으면 상갑판 발사관 20개 역시 이상없습니다. 이상!
- 선체관리실입니다. 좌현 밸러스트 탱크와 후미 벨러스트 탱크 외벽이 손상당해 기능 상실입니다. 긴급 조치는 했으나 수리요망입니다. 나머지 2개 밸러스트 탱크 이상 없습니다. 이상!
- 음탐실입니다. 엑티브 소나 시스템 및 페시브 소나 시스템 모두 이상······. 어? 어?
음탐실의 음탐관은 피해 현황을 보고하다 말고는 말을 끊었다. 이에 전술통제관이 신경질적으로 반문했다.
“음탐관! 뭔가? 보고하다 말고 뭐 하는 거야?”
- 죄, 죄송합니다. 잠시만······. 아! 새, 새로운 어뢰 출현! 새로운 어뢰 출현! 거리 25400, 이번 어뢰도 초공동으로 추정! 속도가 600노트가 넘습니다. 본 함 도달까지 앞으로 74초!
피해 현황을 보고하던 비탈리 데니소프 음탐관은 새로운 어뢰를 탐지한 음탐병의 보고를 그대로 통신망 통해 전술통제관에게 보고했다.
“새로운 어뢰? 확실한가?”
- 네, 확실합니다. 너무 빠릅니다.”
“알았다. 계속 음탐 정보 전투정보실로 링크하도록”
- 네, 알겠습니다.”
“전 부서 피해 현황 보고는 잠시 보류한다.”
통신을 마친 야수르 하사노프 전술통제관은 손짓으로 함장을 데리고 오라는 지시를 내렸다. 맥심 샤츠키흐 함장은 현재 의무실에서 깨진 머리를 치료받고 있었다.
잠시 후 맥심 샤츠키흐 함장이 머리에 하얀 붕대를 두른 채로 달려왔다.
“틈을 안 주는군. 틈을 안 줘! 개자식들”
CIC(전투정보실)에 들어온 함장은 헐떡이는 숨을 쉬며 대형 스크린을 확인했다. 스크린에는 음탐실에서 보내온 정보를 토대로 현재 잠수함의 위치와 새롭게 출현한 어뢰가 표기되어 있었다. 또한, 음탐병의 보고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 거리 19,800! 도달까지 58초!
“한국놈들은 초공동 어뢰밖에 없는 건가? 제길! 어쨌든 시간은 충분하다. 하드 킬로 해결한다. 후미 1번과 2번 발사관에 중어뢰 장전! 그리고 VIST-2 4개 사출 준비!”
짧게 불만을 내뱉은 맥심 샤츠키흐 함장은 좀 전과 같이 침착하게 명령을 내렸다.
“네. 후미 1번, 2번 발사관에 중어뢰 장전, VIST-2 4개 사출 준비!”
“조타장! 방위각 3-4-5로 좌현 반타! 잠항각 상향 20으로 전환하고 출력은 현재 출력 그대로”
“방위각 3-4-5로 좌현 반타! 잠항각 상향 20으로 전환! 출력은 현재 출력 그대로”
크냐즈 올레그함(K-553)은 무섭게 다가오는 어뢰와 정확하게 일자 상태 유지했다. 그리고 후미 발사관 2곳에 633mm VA-111 쉬크발 초공동 어뢰가 장전되었다. 그리고 조금 전, 큰 효과를 본 VIST-2도 사출 준비를 마쳤다.
사실 크냐즈 올레그함(K-553)은 2021년에 취역한 최신예 잠수함으로 기존 보레이급 955A III 아닌 보레이급 955A IV였다. 기본 제원과 성능은 같았지만, 운용하는 어뢰가 기존 533mm 중어뢰에서 633mm 쉬크발 초공동 어뢰로 교체되었고 후미에도 2개의 발사관이 추가로 장착되었다.
“1번 2번 어뢰 장전 완료!”
어뢰무장관의 보고에 함장은 발사 명령을 내렸다.
“1번 어뢰 발사! 2번 어뢰는 실패 시 추가로 발사한다.”
잠시 후 후미 발사관에서 쉬크발 초공동 어뢰가 발사되었다. 유도장치가 없는 쉬크발 초공동 어뢰는 어느 순간 초공동을 일으켰고 최대 200노트의 속도까지 끌어올리며 빠르게 뻗어 나갔다. 그리고 다시 한번 디스펜스 2곳에서 VIST-2가 연달아 4개가 사출되었다.
만약 쉬크발 초공동 어뢰가 하드 킬에 실패해도 다시 한번 하드 킬을 시도할 수도 있었고 이마저 실패해도 조금 전 탁월한 성능을 발휘한 VIST-2도 기대해볼 만했다.
심해 깊은 곳에서 양국의 초공동 어뢰가 서로를 향해 빠르게 접근했다. 그리고 얼마 후 음탐실로부터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는 보고를 받았다.
이에 CIC(전투정보실)와 음탐실 승조원들의 환호가 이어졌다. 하지만 그 환호는 몇 초도 안 되어 수그러들고 말았다.
분명 1번 발사관에서 발사된 쉬크발 초공동 어뢰는 한국 초공동 어뢰를 요격했다. 하지만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도산안창호함(SSP-089)에서 발사한 흑상어B 초공동 어뢰는 1발이 아닌 2발이었다.
2발의 어뢰가 가까운 거리에서 동시에 잠항하며 항주했기에 크냐즈 올레그함(K-553) 음탐실은 한발로 착각한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뒤늦게 음탐실로 듣게 된 맥심 샤츠키흐 함장은 2번 어뢰 발사 명령을 내렸다.
투앙!
2번 발사관에서 빠져나온 쉬크발 초공동 어뢰가 다시 한번 흑상어B 초공동 어뢰를 향해 항주했다.
- 요격까지 앞으로 12초, 11초..... 5초, 4초, 3초, 2초, 1초, 충돌!
쿠아앙!
음탐실은 폭발음을 확인하고 요격했다는 보고를 하려던 찰라, 2명의 음탐병과 음탐관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요격한 건가? 왜 보고를 안 해!”
통신망을 통해 전술정보관의 질타가 쏟아지자 황당한 표정으로 보고마저 잃고 있었던 음탐관이 울먹이듯 말했다.
- 폭, 폭발음은 확인했으나, 뭔가 잘못되었는지 어뢰 8개가 추가로 확인되었습니다.
“거리와 도달 시간은?”
- 그것이······. 거리는 3720, 본 함 도달까지 앞으로 11초!”
“그게 대체 무슨 말이야? 11초라니?”
쉬크발 초공동 어뢰와 흑상어B 초공동 어뢰가 충돌하기 직전 흑상어B 초공동 다탄어뢰의 페어링이 분리되고 안에 있던 소형자탄어뢰 8개가 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며 튀어나갔다. 이에 쉬크발 초공동 어뢰는 소형자탄어뢰가 빠져나간 껍데기뿐인 흑상어B 초공동 다탄어뢰와 충돌하며 폭발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전개되자 지금까지 침착하게 지휘하던 맥심 샤츠키흐 함장도 더는 할 게 없었던지 그냥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다시 한번 VIST-2가 성능을 발휘하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함장의 바람과는 다르게 8개의 소형자탄어뢰 중 2발만이 VIST-2에 속아 자폭하며 폭발했고 나머지 6발은 크냐즈 올레그함(K-553)과 충돌했다.
콰앙! 쾅아! 콰아쾅! 쿠앙! 콰아아아앙! 쾅!
소형자탄어뢰 한발 한발 위력은 약했지만, 동시다발적으로 터진 폭발력은 크냐즈 올레그함(K-553)의 외부장갑을 깨버렸고 동체를 휘감은 충격파는 실내에 있는 승조원들을 사정없이 사방으로 날려버렸다.
3중 외벽과 다중격벽 시스템으로 다행히 잠수함 전체 피격은 모면했지만, 소형자탄어뢰 한발이 대형 스크루와 충돌하면서 파괴되어 추진 능력을 상실했고 외부장갑이 손상된 곳으로 해수가 빨려 들어가면서 잠수함의 무게가 급격히 무거워졌다.
설상가상으로 1차 어뢰 공격 당시 밸러스트 탱크 2개가 망가진 상태였기에 잠수함의 부력능력은 현저히 떨어지고 말았다. 이에 잠수함 실내에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승조원이 있었음에도 자체 잠항 능력을 잃은 크냐즈 올레그함(K-553)은 깊고 깊은 심해 바닥으로 서서히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