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
2023년 11월 26일 02:50, (러시아시각 20:50),
러시아 모스크바 벙커 스테이트 R-13(상황실).
여러 스크린을 통해 실시간으로 국경 일대의 전장 상황을 지켜보던 푸틴 대통령은 시간이 흐를수록 인상이 험악하게 변해갔다.
서부전선과 북부전선에 비해 동부전선 상황이 러시아군에 매우 불리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동부전선의 주공전력이 각종 한국군의 전술 무기에 괴멸 직전에 몰렸고 남단에서 진격하던 제81친위기갑사단과 제70차량화보병사단도 제20기갑사단에 막혀 상당한 피해를 보고 있었다.
다를 때 같으면 총참모부의 지휘관들을 질타하고 난리 쳤을 푸틴 대통령은 미간을 좁히고 인상을 쓴 채로 조용히 일어나 상황실 문을 나섰다.
극동함대 전멸 이후 러시아군의 사기를 위해 총참모장에게 전권을 위임한 푸틴 대통령은 일단 믿어보겠다는 생각이었다.
“당장 신중국 주석과 핫라인 연결하도록”
지하 벙커의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온 푸틴 대통령은 비서관에게 소리쳤다.
“앗! 대통령님! 지금 중국은 오전 1시입니다.”
“그게 뭔 상관인가? 국가 간 수장과의 연결인데 시간이 뭐가 중요해? 당장 연결해!”
“네, 알겠습니다.”
순간 질타에 금일 당직인 호엘 아길라르 비서관이 경직된 자세를 취하고는 대답했다.
“그 빌어먹을 주석과 연결될 때까지 계속 연락해”
버럭 지시를 내린 푸틴 대통령은 집무실에 들어와 소파에 철퍼덕 앉고는 이내 시가렛 하나를 입에 물었다.
퓨우우우~
불을 붙인 후 길게 연기를 내뿜은 푸틴 대통령은 핫라인 전화기에 시선을 고정했다.
잠시 후 인터폰을 통해 비서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음, 음, 대통령님! 신중국 주석이 취침에 들어가 당장 연결할 수 없다는 답변입니다.”
그랬다. 말이 핫라인이지 실시간으로 언제든 연락이 되는 건 아니었다. 사전에 양 국가의 비서관이 시간 조율을 한 후 핫라인으로 연결하는 게 관례였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한쪽 국가에서 연결 요청하는 건 정말 급한 상황이 아닌 이상 관례를 무시하는 일이었다.
러시아 입장에서 보자면 관례를 무시할 만큼 급한 상황일 수는 있으나 신중국 입장에서는 아니었다.
“연결될 때까지 계속 요청해!”
그런 반응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는 듯 푸틴 대통령은 인터폰에 대고 짧게 소리를 지르고는 끊어버렸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호엘 아길라르 비서관의 얼굴에는 난처함이 역력했다.
“하! 이거 참! 뭣들 해? 자네는 주석실에 다시 연락하고 자네는 주 신중국 우리 대사관에 연락해! 어떻게든 최대한 빨리 핫라인을 연결해야 한다.”
호엘 아길라르 비사관은 자신을 보고 있는 비서실 직원들에게 다그치듯 지시를 내렸다.
★ ★ ★
2023년 11월 26일 03:00,
북만주 남강도 소양산(리멘민)시 서단 12km 지점(제20기갑사단(결전).
26전차대대에 돌격 명령이 떨어진 상태! 현재까지 한 대도 피격되지 않은 26전차대대 C-3A1 백호 전차들은 엔진 출력을 최대로 끌어올리며 앞다퉈 앞으로 튀어 나갔다. 그리고는 보이는 대로 적 전차와 장갑차 그리고 곳곳에서 대전차유도탄을 발사하려는 러시아 보병들을 짓밟았다.
적 진형 한복판까지 돌격할 수 있었던 건 지난 제1차 동북아 전쟁 당시 없었던 하드킬인 요격용 25mm 레이저가 탁월한 성능을 보였다. 16MJ 레일건 금속탄은 물론 각종 대전차유도탄과 포병부대의 포탄까지 모조리 요격하여 무력화시켰다.
그리고 또 한가지, 각종 대공화기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최첨단 DIRCM(Directional InfraRed Countermeasures)을 장착하고 지상에 여러 중화기를 퍼붓는 FAH-91SP 송골매 공격헬기의 지원 화력 역시 한몫 단단히 했다.
매우 유리한 조건 속에서 적 기갑부대 한복판까지 뛰어든 26전차대대의 712호 전차장인 김영주 하사가 현시경을 통해 표적 설정을 하며 흥분된 어조로 말했다.
“야! 이거 완전 표적 밭이다. 사정없이 날려라! 염 하사야!”
김영주 중사의 표적 설정에 따라 712호 주포탑은 쉬지 않고 이리저리 회전하며 적 전차와 장갑차를 노렸다.
쮸웅! 콰아앙!
방금 쏜 광자포 한방에 옆구리를 강타당한 쿠르가네츠-25 장갑차가 거대한 화염을 뿜으며 옆으로 뒤집혔다. 300m도 안 되는 가까운 거리에서는 가공할 광자포의 위력은 장갑차 정도는 그대로 뒤집고도 남았다.
“예스! 3번 표적 피격!”
“좋았어!”
순간 LWR(Laser Warning Receiver) 경보음이 712호 전차 실내를 울렸다.
삐빅! 삐빅! 삐빅! 삐빅!
“김 상병! 왼쪽 작은 언덕 쪽으로 돌아!”
전차장 김영주 중사의 명령에 따라 조종수 김일수 상병이 운전 레버를 왼쪽으로 크게 당겼다.
키이이이이잉!
712호 백호 전차가 90도에 가까운 급격한 회피 기동을 했다. 마치 드래프트를 하듯 부드럽게 미끄러지며 방향을 바꾸자 일순간 승조원들이 몸이 한쪽으로 쏠렸다.
“야야! 살살해라! 표적 놓친다.”
순간 쏠림에 다음 표적을 노리던 염훈기 하사가 조준경에서 눈을 떨어트리자 일갈했다.
“이 정도 움직임으로 대대 스나이퍼가 불평하면 안 되지 말입니다.”
김일수 상병이 조종 레버를 좌우로 움직이며 농담을 던졌다.
“얏 마! 대대 스나이퍼라니? 여단 스나이퍼지”
“이놈들아 잔소리 말고 집중해라!”
모니터의 디지털 지도상에 레이저 조준 송출 지점을 확인한 김영주 하사가 흑룡 미사일을 발사하며 일갈했다.
슈와아아앙!
시원한 발사음과 함께 S-LLAM 40 흑룡 미사일이 하늘로 솟구치고는 이내 고도를 떨어뜨리며 레이저 송출 지점으로 날아갔다.
콰앙!
시꺼먼 연기를 흩날리며 멈춰버린 전차 뒤에 숨어서 대전차유도탄을 발사한 보병들의 머리 위에서 S-LLAM 40 흑룡 미사일이 폭발했다.
반경 십여 미터를 쑥밭으로 만들 수 있는 파편이 일제히 지상에 쏟아졌다. 이에 대전차유도탄을 발사하고 도망가려던 러시아 보병들이 파편을 뒤집어쓰고는 그대로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어떤 병사는 흑룡 미사일의 하이드리늄탄에 관통당하고는 걸레 조각 찢어지듯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또한, 발사된 대전차유도탄은 강력한 SECM(전파교란시스템)에 표적을 잃고 그대로 하늘에서 빙글빙글 돌다가 25mm 요격용 레이저에 요격을 당하고는 그대로 공중 폭발했다.
콰아앙!
이처럼 능동방어시스템 성능이 대폭으로 향상된 712호 백호 전차는 다음 표적을 향해 사정없이 광자포를 발사했다.
쮸웅! 쮸웅!
전방 11시 방향에서 레일건을 발사하며 기동하는 적 전차 2대를 동시다발적 사격으로 피격했다.
그러자 2시 방향 2.2km 떨어진 지점에서 중대급 규모의 전차들이 일제히 712호 전차를 향해 레일건을 지향했다.
이것을 뒤늦게 확인한 김영주 중사는 그대로 연막탄을 발사했다. 여러 발의 복합연막탄에서 상공에서 폭발하며 연막을 피어올랐다.
밀리미터파와 적외선, 그리고 가시광선까지 모두 차단하는 복합연막탄은 이내 712호 전차를 주변 일대를 뒤덮었다. 더불어 강력한 SECM(전파교란시스템)까지 출력을 높여 방출하자 712호 전차를 노리던 T-14B 아르마타 전차들은 순간 타켓을 잃었는지 바로 사격을 가하지 못했다.
이때를 놓칠세라 김영주 중사는 미리 설정된 표적 세팅을 리셋하고 방금 자신의 전차를 노렸던 소대급 적 전차를 현시경을 보며 차례대로 표적 설정에 들어갔다.
712호 전차장용 현시경의 인버터 비전모드는 복합연막탄의 시야 방해에도 불구하고 뚜렷이 적 전차를 탐지해 표적 설정이 가능했다.
“김 상병! 왼쪽으로 빠르게 빠진다. 그리고 염 하사! 연막탄에서 빠지면 그대로 1번 표적부터 자동으로 날려라!”
순간적으로 5개의 표적을 설정한 김영주 하사는 조종수에게 지시를 내렸다.
- 네 알겠습니다.
“옛설!”
김일수 상병과 염훈기 하사가 동시에 대답했고 이어 복합연막탄에 잠시 엄폐했던 712호 전차가 순간적인 기동력을 발휘하며 왼쪽으로 빠르게 기동했다. 그리고는 미리부터 적 전차를 향해 지향하고 있던 광자포가 연막탄 지대를 벗어남과 동시에 자동 사격에 들어갔다.
2초 단위로 1번 표적부터 5번 표적까지 광자포를 발사했다. 광자포의 붉은 입자는 번쩍함과 동시에 적 전차를 차례대로 박살을 냈다. 하지만 적 전차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뒤에서 기동하던 적 전차들도 일제히 712호 전차를 향해 레일건 금속탄을 발사했다.
퍼엉! 퍼엉! 퍼엉! 퍼엉!
“다시 연막탄 안으로 기동해!”
다급한 김영주 중사의 명령에 712호 전차는 후진하듯 다시금 연막탄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쏟아지는 금속탄 여러 개가 그대로 712호 전차를 향해 덮쳤다.
쭈웅! 쭈웅! 쭈웅!
주포탑 3곳에 장착된 하드킬 요격용 25mm 레이저 빔이 자동으로 발사되었다.
레이저 빔 3개는 정확히 금속탄 3개를 요격하는 데 성공했다. 712호 전차와 적 전차 중간지점의 상공에서 크고 작은 폭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나머지 3개의 금속탄 역시 강력한 SECM(전파교란시스템)의 영향 때문인지 712호 전차를 스치며 빗나가고 말았다.
“좋아! 다시 설정한다. 아까와 같은 방법으로 다시 간다.”
빠른 손 돌림으로 다시금 표적 5개를 설정한 김영주 하사는 침 한번 꿀꺽 삼키고는 지시를 내렸다.
이때 하늘에서 우렁찬 엔진음이 울리는가 싶더니 이내 적 전차를 향해 수많은 레이저 빔이 쏟아졌다.
장착했던 공대지 화기를 모두 쏟아붓고 기지로 복귀하려던 FAH-91SP 송골매 공격헬기 중 30mm 레이저 벌컨 전지가 남아있던 2기가 지상으로 기수를 돌려 지원사격에 가담한 것이었다.
마치 소나기가 떨어지듯 30mm 레이저 벌컨은 T-14B 아르마타 전차의 무인포탑을 사정없이 걸레로 만들었다. 말 그대로 무인포탑이라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외부 각종 광학장비는 물론 무인포탑 내부의 각종 전자장비가 파괴되면서 레일건 사격 능력을 잃고 말았다.
파괴된 광학장비와 뚫려버린 곳곳에서 시꺼먼 연기가 피어올랐다. 어떤 전차는 기동능력까지 상실했는지 그대로 주저앉은 채로 꿈쩍도 하지 못했다.
한바탕 지상을 향해 30mm 레이저 벌컨 빔을 퍼붓은 FAH-91SP 송골매 공격헬기 2기는 레이저 벌컴 전지가 모두 소진되자 그제야 공격을 멈추고는 서서히 고도를 올렸다. 그리고는 이내 비행모드로 전환하고는 서단 방향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이런 땡큐가 다 있냐?”
뜻하지 않은 아군 공격헬기로부터 화력 지원을 받은 712호 전차는 다시금 연막탄 지대에서 벗어나 이미 벌집이 되어버린 적 전차를 향해 마무리 사격에 들어갔다.
쮸웅! 쮸웅! 쮸웅! 쮸웅! 쮸웅!
마치 사격 연습하듯 반격하지 못하는 적 표적을 향해 차례대로 광자포로 피격시킨 712호 전차는 또 다른 표적을 향해 기수를 돌리며 앞으로 기동했다.
“저것도 우리가 피격한 거에다 포함입니까?”
마지막 표적이 거대한 폭발과 함께 산산조각이 나는 걸 확인한 포수 염훈기 하사가 흐뭇한 표정으로 물었다.
“당근이지! 공격헬기는 단순 지원사격일 뿐이지! 저것들 다 우리가 피격한 거다.”
“그렇지 말입니다. 하하하”
712호 전차장의 모니터에는 전차 21대, 장갑차 18대를 피격했다는 수치가 숫자로 입력되어 있었다. 이를 본 김영주 중사가 함박웃음을 보이며 소리쳤다.
“현재까지 여단 1위다! 아자! 아자! 가자!”
이때 중대통신망으로부터 중대장의 명령이 내려왔다.
- 중대장이다! 아군 전투기로부터 폭격 지원이 할당되었다. 현 위치에서 후방 3km까지 퇴각하도록. 다시 한번 말한다. 현재 아군 전투기의 폭격 지원이 있을 것이다. 모든 중대 전차들은 현 위치에서 후방 3km까지 퇴각하도록 한다. 이상!
“아 갑자기 무슨 퇴각이야? 아나 끗발 올라왔는데······. 전투기 폭격 지원 없어도 다 쓸어버릴 수 있겠구만”
중대장의 명령에 아쉬움을 내비친 김영주 중사는 전차 내 통신망으로 조종수 김일수 상병에게 퇴각 명령을 내렸다.
“김 상병! 디지털 지도상에 파란 마커 지점 있지? 그곳까지 퇴각한다. 서둘러라”
“네,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