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복!
2023년 11월 25일 00:30,
북만주 남강도 소양산(리멘민)시 남단 5km 지점(5경계대대 본진).
쿵!
자신의 해태 무인로봇이 피격당했는지 신호가 끊긴 모니터를 보는 한 오퍼레이터가 주먹으로 콘솔을 내려치며 일갈했다.
“아! 제길! 저놈까지는 잡아야 했는데······.”
아쉬움을 내 비췬 오퍼레이터는 더는 할 일이 없게 되자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오퍼레이터의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1시간 30분째 60여 대의 해태 무인로봇으로 1개 기갑사단과 1개 차량화보병사단을 상대한 5경계대대는 서서히 방어적인 한계점에 도달하고 있었다.
매복 기습공격과 지형적 유리함으로 초반에는 상당한 타격을 입히며 양 산릉선 사이의 농경지 길로 한 대의 러시아 전차도 못 지나가게 했지만, 후방에서 포각도를 확보한 T-14B 아르마타 전차의 가공할 공격과 끊이지 않은 포격에 5경계대대의 해태 무인로봇 숫자는 이제 10여 대만이 기동하며 처절한 교전을 펼쳐나가고 있었다.
강력한 실드 자기장이 있었지만, 계속되는 공격에 대용량 축전지의 플라즈마 에너지는 급속도로 소진되었고 이런 이유로 원활한 실드 자기장을 펼치지 못하면서 피격되는 해태 무인로봇이 늘어난 이유였다.
쿠캉! 쿠캉! 쾅앙! 쿠캉!
연달아 날아오는 레일건 금속탄에 해태 무인로봇 한 대가 폭발과 함께 옆으로 기울어지며 바닥에 처박혔다.
키이이잉 쿵앙!
쓰러진 상황에서도 해태 무인로봇은 끝까지 조준했던 목표물을 향해 12mm 레이저 벌컨 빔을 뿌려댔다.
쭈쭈쭈쭈쭈웅~ 쭈쭈쭈쭈쭈쭈웅~
4km 밖 회피기동을 펼치며 최대 포각도로 레일건을 발사하던 T-14B 아르마타 전차 한 대가 쏟아지는 레이저 빛줄기를 맞고는 무인포탑에서 크고 작은 폭발이 연달아 일어났다.
이에 쓰러져 있던 해태 무인로봇은 마지막 남은 S-LLAM 40 흑룡 미사일을 발사했다.
퓨엉! 슈우어와!
푸른빛을 발산하며 상공으로 치솟은 흑룡 미사일은 이내 고도를 낮추고는 반응장갑이 너덜너덜해진 아르마타 무인포탑 상단을 강타했다.
쿠앙! 콰앙!
강력한 흑룡 미사일에 피격당한 아르마타 전차의 무인포탑 레일건이 통째로 떨어져 날아갔다. 하지만, 차체 내부 2중 격벽 안에 있는 승조원들은 무사했는지 아르마타 전차는 계속해서 회피기동을 펼치며 앞으로 나아가는 장면이 오퍼레이터의 모니터 화면에 선명히 보였다.
휘이이이이잉!
해태 무인로봇으로부터 산릉선 따라 수 킬로미터 떨어진 지점, 특수 위장막을 펼치고 해태 무인로봇을 조종하는 대대본부와 각 중대 운용콘솔장갑차가 모여있는 상공에는 제81친위기갑사단에서 날린 정찰 코사르 무인기 여러 대가 어느새 고도 6km에서 조용히 비행하며 정찰 중이었다.
고도 6km 정도의 비행체에 대해서는 충분히 대대본부 대공소대에 탐지할 수 있었으나 현재 대공소대의 모든 C-30 비호A3는 해태 무인로봇 위로 떨어지는 수많은 포탄을 요격하느라 정신없는 상태였다.
잠시 후 하늘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대대본부와 중대 운용콘솔장갑차가 모여있는 지대로 수많은 포탄이 낙탄했다.
콰앙! 콰앙!
특수 위장막을 펼쳤음에도 코사르 무인기에 대대 본진이 정찰된 듯했다.
콘솔운용장갑차 상단에 장착된 12mm 레이저 벌컨이 자동으로 돌아가며 떨어지는 포탄 요격에 들어갔다.
총 18개의 레이저 빛줄기가 하늘을 향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떨어지는 포탄 수는 생각 이상이었다.
급기야 3중대 소속의 운용콘솔장갑차 상단에 포탄이 착탄 하며 폭발했다.
콰앙
2S35 코알리치야-SV 자주포의 152mm 고폭탄 위력은 상당했다. 12m에 달하던 콘솔운용장갑차의 상단은 흉물스럽게 찢겨나갔고 그 사이로 거대한 화염과 시꺼먼 여긴가 분출했다.
으악!
장갑차 안에서 각가지 비명이 흘러나왔고 잠시 후 후방 해치문이 열리더니 하얀 분말 가루를 뒤집어쓴 여러 명의 승조원이 콜록거리며 밖으로 뛰쳐나왔다.
다행히 상단 장갑은 이중 장갑으로 장갑차 내부까지는 피격되지 않았고 화재제압시스템이 작동했을 뿐이었다.
강한 충격에 놀란 나머지 승조원들이 본능적으로 해치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거뿐이었다.
“야이 새끼들아! 안으로 들어와!”
밖에서 허우적거리는 승조원들을 향해 해치문 사이로 얼굴만 내민 소대장이 목청이 터져라. 소릴 질렀다.
밖은 그야말로 지옥과 같았다. 사방에서 크고 작은 폭발이 연달아 울리며 천지가 진동했고 시꺼먼 연기와 불기둥이 솟구치고 있었다.
소대장의 외침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승조원들은 얼굴에 묻은 하얀 분말을 닦아내고는 죽을 힘을 다해 운용콘솔장갑차 안으로 뛰었다.
이러한 피해 현황은 실시간으로 대대 지휘장갑차에 보고되었다.
“대대장님! 이러다가 사상자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진작부터 퇴각명령을 요청했던 작전과장인 나강길 소령이 다시 한번 대대장에게 간청하듯 말했다.
이에 묵묵히 각종 모니터를 지켜보고 있던 대대장 오필승 중령은 고개를 끄덕인 후 조용히 말했다.
“현재 20사단 위치는 파악되었나?”
“네, 5분 전, 42km까지 접근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45km라! 아직 부족한데.”
“대대장님!”
“알았네. 알았어! 대대 현 시각 기준으로 퇴각한다.”
대대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나상길 소령은 즉시 대대통신망을 개방하고 퇴각명령을 내렸다.
이에 악전고투를 펼치던 5경계대대는 즉시 퇴각에 들어갔다. 하지만 퇴각도 그리 쉽진 않았다.
하늘에서는 계속해서 포탄이 떨어졌고 제81친위기갑사단의 전차와 장갑차에서도 각종 대전차유도탄과 레일건 금속탄을 쏟아냈다.
퇴각하다가 전멸할 수 있는 급박한 상황이었다.
조금 전, 4족 다리를 접고 급속기동 모드로 전환한 해태 무인로봇 한 대가 날아온 금속탄 여러 발을 맞고 대폭발을 하며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었다.
현재 기동이 가능한 C-1000 해태 무인로봇은 8대, 괴멸 수준이었다. 하지만, 2개 기갑사단을 상대로 1시간 30분 동안 분전한 것은 대단한 성과였다.
살아남은 해태 무인로봇과 각종 장갑차가 양 산릉선에서 반대편 방향으로 기수를 전환하고 기동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늘에서는 쉬지 않고 각종 포탄이 5경계대대를 노렸다.
이때 저편 하늘에서 하늘을 가르는 괴기한 울림이 들리더니 이내 5경계대대를 지나쳤고 순식간에 제81친위기갑사단 상공에서 연달아 폭발음이 울렸다.
콰앙! 콰앙! 콰아아앙! 콰앙! 콰아앙!
제20기갑사단(결전) 예하부대 포병여단의 MRLS인 K271 천뇌에서 발사한 300mm 플라즈마 확산탄이었다.
백여 발에 달하는 300mm 플라즈마 확산탄은 제81친위기갑사단은 물론 후방에서 5경계대대를 상대로 무자비한 포격을 가했던 포병부대에 불벼락을 선사했다.
갑작스러운 한국 포병부대의 대포병 공격에 러시아 포병부대는 잠시 포격을 멈췄고 이때를 놓칠세라 5경계대대는 전속력으로 퇴각에 들어갔다.
30여 대의 각종 장갑차와 살아남은 해태 무인로봇이 양쪽 산릉선 아래로 부리나케 내려가 북동단 설원으로 달렸다. 반대로 북동단 설원에는 500여 대의 각종 전차와 장갑차로 편제된 동북아 최강의 부대인 제20기갑사단(결전)이 야지에서 낼 수 있는 최대속도를 내며 달려오고 있었다.
★ ★ ★
2023년 11월 26일 01:00,
내몽골자치주 강진(후룬베이얼)시 남단 123km 이민강(제5기갑사단(열쇠) 방어선).
90km에 달하는 이민강 상류 쪽 드넓은 설원에는 제5기갑사단(열쇠)의 기갑전력이 기다란 횡대 대형을 갖추고 제29군의 선봉 부대인 제11기갑사단과 치열한 교전 중이었다.
선봉 부대답게 러시아 차세대 무기로 편제된 제11기갑사단은 이민강 상류 아래쪽으로 크게 우회하며 밀려들어 왔다.
이에 제5기갑사단(열쇠)의 3개 기갑여단 중 C-3 백호 전차를 운용하는 27기갑여단이 가장 먼저 조우하여 살벌한 교전에 들어갔다.
통일 전, GOP 경계 부대였던 제5보병사단(열쇠)은 통일 후에는 기갑전력 확대 계획에 따라 전격적으로 기갑사단으로 재편되었다. 재편 초기에는 C-2 흑표 전차를 운용했고 차츰 최신예 C-3 백호 전차로 전환해 갔다. 이에 현재 3개 기갑여단 중 27기갑여단은 최신 전차인 C-3 백호 전차를 운용했고 나머지 35기갑여단과 36기계화보병여단은 C-2A1 흑호 전차를 운용 중이다.
제5기갑사단(열쇠)은 2024년 후반까지 모든 전차를 C-3 백호 전차로 전환한다는 계획을 하고 있었다.
음속의 8배에 달하는 강력한 16MJ 레일건 금속탄이 사정없이 C-3 백호 전차에 쏟아졌다.
유효사거리 면에서 C-3 백호 전차와 별다른 차이가 없는 T-14B 아르마타 전차들은 수적우세를 앞세워 야지에서 낼수 있는 최고속도로 기동하며 사격을 가했다.
하지만, 10km 밖 거리에서 날아오는 레일건 금속탄은 C-3 백호 전차의 강력한 SECM(전파교란시스템)에 영향 때문인지 정확한 타격을 가하지 못했다. 반대로 C-3 백호 전차의 100mm 광자포 입자는 그대로 T-14B 아르마타 전차의 무인포탑을 사정없이 날려버렸다.
아무리 단단한 티타늄 이중 장갑에 반응장갑을 두르고 능동방어장치를 장착했어도 입자 물질 형식의 광자포 앞에서는 아무 소용없었다.
빛 속도에 버금가는 속도로 날아간 광자포 입자에 대전차유도탄은 물론 각종 전차탄도 요격할 수 있다는 능동방어장치인 Afghanit (Russian : Афганит)는 아예 작동하지도 않았다.
또한, 광자포의 가공할 파괴력은 반응장갑 자체를 소멸시켰고 티타늄 이중 장갑 역시 종잇장 찢어지듯 쉽게 뚫려버렸다. 이에 T-14B 아르마타의 레일건 무인포탑 전체가 날아가 버리거나 커다란 구멍이 뚫린 채 형광색상의 화염이 춤을 췄다.
한국의 최신예 전차인 백호 전차와 처음으로 맞닥뜨린 제11기갑사단 전차들은 처음 밀어붙이던 기세는 온데간데없고 일제히 회피기동을 펼치며 광자포의 조준점에서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다량의 표적 설정 시 순서대로 표적을 따라 포탑이 회전하는 자동화 사격통제시스템의 놀라운 성능에 러시아 최신예 전차인 T-14B 아르마타 전차들은 눈보라 속에서 하나둘, 불꽃 쇼를 벌이며 산화했다.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제11기갑사단이 밀리는 건 아니었다. 300대에 가까운 T-14B 아르마타 전차의 공격력은 상당했다.
C-3 백호 전차에서 광자포가 발사되면 반대편에서는 공기를 가르는 레일건 금속탄 여러 발이 날아왔다. 마치 한국전쟁 당시 중공의 인해전술과 같았다.
이로 인해 강력한 SECM(전파교란시스템)을 방출함에도 불구하고 가끔 레일건 금속탄에 피격되는 C-3 백호 전차도 발생했다. 완전 피격은 아니었으나 광학장비가 손상되는 피해를 보았다.
또한, 제11기갑사단 외에도 39차량화보병사단이 위쪽에서 밀려오고 있었고 후방에는 200포병여단, 338다연장로켓여단, 49기관총포병연대, 46기관총포병연대가 본격적인 포격을 감행했다.
더불어 제27기갑사단, 제55차량화보병사단, 56차량화보병사단으로 편제된 제29군 직할 독립군단이 몽골영토 아래쪽으로 크게 우회하여 제5기갑사단의 좌측면을 노리며 기동 중이었다.
마지막으로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에서도 아직 파악하지 못한 동부군구의 최강 직할부대인 붉은기갑군단 소속 3개 사단도 본격적인 기동에 들어갔다.
다시 말해 제7기동군단 제30기계화보병사단(필승)의 지원이 늦는다면 제5기갑사단(열쇠)으로서는 자칫 대부분 기갑전력으로 편제된 8개 사단을 상대하게 되는 위험한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