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00화 (400/605)

극복!

2023년 11월 25일 21:00,

내몽골자치주 강진(후룬베이얼)시 남단 이민 강(제65경갑보병사단(일몰) 방어선).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이민 강은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작은 물줄기 때문에 마치 대동맥에서 작은 핏줄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생김새와 같았다. 이런 강의 특성은 추운 날씨로 인해 꽁꽁 얼어붙었지만, 그렇다고 수십 톤에 달하는 전차나 장갑차가 안심하고 지나가기엔 무리였다. 자치 거대한 진흙탕에 빠져 기동 불능에 빠질 수 있었다.

또한, 북쪽에는 가로로 길게 이어진 하이라 강이 수많은 S자 굴곡 형태로 뻗어있어서 이곳은 도하 자체가 불가능했고 전방에는 140km에 달하는 C자 형태의 늪지대가 형성되어 있었다. 고로 제29군은 C자 형태의 늪지대를 위쪽과 아래쪽 두 곳으로 우회하여 진공할 수밖에 없었다. 즉 방어하는 한국군은 제29군의 진공로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이민 강은 방어하는 측에서는 최적의 장소였다. 이에 제65경갑보병사단(일몰)은 위쪽 진공로를 방어, 제5기갑사단(열쇠)은 아래쪽 진공로 방어를 맡았다.

만약 이러한 지형적 유리함이 없었더라면 160km에 달하는 방어 라인을 2개 사단만으로 방어하기엔 무리였을 것이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밤이 되자 눈보라는 더욱 세차게 불었고 바깥 온도는 영하 15도까지 내려갔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온도는 더욱 내려갔다. 금일 일기예보에 따르면 새벽 5시에는 영하 30도까지 떨어진다고 했다.

실로 시베리아의 추위가 어떤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날씨였다.

제5기갑사단은 기갑부대라 대부분 전차와 장갑차 안에 있기에 추위 걱정은 없었지만, 제65경갑보병사단의 장병들이 문제였다. 보호슈트 덕에 영하의 날씨에도 그럭저럭 체온을 유지하며 버틸 순 있었지만, 밖에서 전투를 벌여야 하는 보직이다 보니 이런 날씨에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피로도가 상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사단본부에서는 예하부대에 분대별로 순번을 정해 돌아가며 수송장갑차에서 쉬게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온몸에 경갑슈트를 장착한 37연대 101대대 3중대 1소대 2분대가 수송 장갑차로 들어왔다. 부분대장이자 사병 중에 최고선임인 박원영 병장이 머리 전체를 감싸는 경갑헬멧을 벗고는 의자에 털썩 앉으며 투덜거렸다.

“와! 살벌하다. 살벌해! 오늘따라 유독 눈보라가 심하냐?”

“그러게 말입니다. 낮에는 멀쩡하더니만 밤 되니 뭔 눈보라가 이리 심한지 온도도 영하 16도나 됩니다.”

옆자리에 앉은 신명호 상병이 왼쪽 팔목에 장착된 단말기의 액정에 표기된 온도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그러게 말이다. 완전히 칼바람이야. 그런데 말입니다. 박 병장님! 불곰 놈들 오늘 넘어오겠습니까? 아무리 추운 나라 놈들이래도 이런 날씨에 공격할 거 같지는 않은데 말입니다.”

맞은편에 앉은 오성완 병장이 팔짱을 끼고는 투덜대던 박원영 병장에게 물었다.

“넨들 아냐. 불곰 놈들 지휘관 마음이겠지”

“제길슨, 하필 많고 많은 곳 중의 이런 곳으로 자대배치 받아서리 개고생이네. 4개월만 있으면 제대인데, 에잇”

“오 병장! 너 짐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냐? 어디 물 병장이 말년 병장 앞에서 제대를 논해?”

이에 오성완 병장은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히죽 웃으며 말했다.

“아! 같은 병장끼리 왜 그러십니까? 쫄따구들 보는데.”

“어라! 같은 병장? 내가 먹다 만 짬밥 국물에 너는 수영치고도 남아 자식아! 어디서 맞먹으려고 해. 콱!”

이때 하사 계급을 단 오동길 분대장이 가장 늦게 들어와 자리에 앉고는 둘러보며 핀잔을 줬다.

“쉴 때는 좀 조용히 하자! 우리 두 병장님! 그리고 이 병 둘!”

“이병 김병규”

“이병 상현철”

“너희 전지 용량 체크 했어?”

“네. 했습니다. 현재 80%입니다.”

“네, 방금 했습니다. 저는 75%입니다.”

“그래, 까먹지 말고 틈날 때마다 전지 확인하고 20%로 떨어지면 즉시 교환해라! 여유분도 완충이지?”

“네, 그렇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두 이병은 부동 차려자세로 힘차게 대답했다.

“좋아! 그리고 쉴 때는 조용히 대답하고 편히 쉬어”

“네, 알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역시 우리 이병들 군기 하나는 마음에 들어”

절도있는 두 이병의 대답에 오성완 병장이 엄지 척을 하며 흐뭇해했다.

“이게 다 제가 교육해서지 말입니다.”

신명호 상병이 어깨를 으쓱이며 보란 듯 거만한 표정을 짓자 오성완 병장이 눈을 부라리고는 두 개 손가락으로 눈을 찌르는 시늉을 했다.

“콱! 신 상병아! 네가 교육해서 그런 게 아니라 제들이 마! 군 생활을 할 줄 아는 거야.”

“군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게 한 것도 다 저의 교육 때문이지 말입니다.”

“예휴, 입만 살아서리.”

“야! 오 병장! 네 입은 안 살았냐? 네가 그러니까 신 상병이 따라 하는 거 아니냐? 선임한테 개기면 후임한테 똑같이 당하게 된다. 키키”

“그건 아니지 말입니다. 같은 병장과 계급이 다른 상병과 차원이 다르지 말입니다.”

“어휴! 곧 죽어도 같은 병장이라네. 말을 말자. 난 잘란다.”

콰앙! 콰앙! 쾅! 콰아앙!

동시다발적인 폭발음이 천지를 울리며 메케한 화약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뭐, 뭐야! 벌써 넘어오는 건가?”

이때 분대장의 경갑헬멧에 장착된 터키온-Xa 통신기로부터 중대장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 지직! 여기는 물뿌리 영! 러시아군의 공준사(공격준비사격)로 보인다. 모든 물뿌리는 현재 위치에서 고수! 현재 장갑차에서 쉬고 있는 모든 분대도 각자 위치로 이동한다.

“휴우~ 공준사라면 러시아 놈들이 본격적으로 도하를 시작하겠다는 거네?”

좀 쉬려던 찰나에 러시아군의 포격이 시작되자 박원영 병장을 크게 한숨을 쉬고는 경갑헬멧을 썼다.

쭈쭈쭈쭈쭈쭈쭈쭈웅~ 쭈쭈쭈쭈쭈쭈쭈쭈웅~

후방에서 20mm 레이저 벌컨 빔을 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101대대의 대공방어를 책임지고 있는 본부소속의 최신형 모델인 C-30 비호A3였다.

기존 12mm 레이저 벌컨 빔을 20mm 벌컨 빔으로 교체한 C-30 비호A3는 강력한 붉은 빛줄기는 사정없이 상공으로 뿌렸댔다.

쾅! 콰아앙! 콰앙!

빛줄기가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하늘에서는 여러 빛깔의 폭죽이 터졌다.

“나갈 준비해! 각자 슈트 확인!”

“슈트 장비 확인!”

분대장 오동길 하사의 명령에 경갑헬멧을 쓴 분대원들은 복명복창과 함께 각자 경갑슈트 이상 유무를 확인했다.

C-LA이라 불리는 경갑슈트는 하이드리늄 합금과 리퀴드메탈 합금을 적절히 혼합하여 만든 경량 갑옷이었다. 1벌 당 천만 원가량의 고가였지만, 웬만한 포탄도 방호할 수 있어서 보병들 사이에서는 천사의 선물이라 불리기도 했다.

“전원 이상 무!”

“기어 작동 이상 무!”

“전면 디스플레이 이상 무!”

슈트 확인 절차에 따라 이상 무를 외친 부대원들이 마지막으로 개인화기인 CS11 복합 레이저 라이플을 확인했다.

“CS11 이상 무!”

“좋아! 하차한다.”

분대장의 최종 명령과 동시에 수송장갑차의 후방 해치가 열리자 분대원들은 신속한 움직임으로 하차했다.

콰앙! 콰아앙!

C-30 비호A3의 2연장 20mm 레이저 벌컨 빔이 착탄 하는 포탄을 요격했지만, 날아오는 포탄 수가 상당했는지 주변 일대에 착탄 하며 크고 작은 폭발이 일어났다.

2분대는 소나기처럼 떨어지는 포탄 비를 피해가며 할당받은 책임 구역인 312섹터에 도착한 후 각자 위치에서 전방을 주시했다. 경갑헬멧의 전면 디스플레이에는 작은 능선 넘어 각가지 발광체 점으로 표현되는 전차와 장갑차가 눈보라 사이로 보였다.

“지독한 놈들이다. 확 다들 동태 돼서 뒈져버려라!”

부분대장 박원영 병장은 휴식시간을 방해한 러시아군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크크, 저놈들보다 우리가 동태 되는 거 아닙니까?”

부분대장조 오성완 병장이 CS11 복합 레이저 라이플을 전방에 지향한 자세로 박원영 병장을 보며 농담을 던졌다.

“동태 되기는 짐 내 마음속은 붉은 용암이 활활 솟구치고 있다!”

“아~ 예!”

- 지직! 현재 위치 고수하고 중대로부터 공격 명령이 떨어지면 돌격한다.

분대 통신망을 통해 분대장의 명령이 떨어졌다. 이에 2분대 막네인 김병규 이병이 소리 날 정도로 꿀꺽하며 침을 삼켰다. 자대배치 받은 지 1개월밖에 안 된 신병 아닌 신병이었다.

“마! 괜찮다. 네 경갑슈트 뚫을 무기는 러시아에 없어! 그러니 자신감 가지고 싸우면 된다. 알았지?”

신병관리와 교육을 담당하는 신명호 상병이 김병규 이병의 경갑헬멧을 살짝 두드리고는 용기를 북돋아 줬다.

“이병! 김병규! 알, 알겠습니다. 열심히 싸우겠습니다.”

“그라제! 그리고 교전 시에는 관등성명 대지 마라!”

“네, 알겠습니다.”

어느덧 주변 일대에 사정없이 떨어지던 포탄 소리도 잦아들었다. 아마도 사단포병부대의 대포병 포격이 가해지자 포격을 중지하고 진지를 이탈하는 것으로 보였다.

★ ★ ★

2023년 11월 25일 22:00,

북만주 남강도 소양산(리멘민)시 남단 5km 지점.

제82기갑사단(발해)의 두 기갑여단을 잡기 위해 3곳 방향에서 제5군 주력부대가 밀려오자 합동참보본부에서는 ‘삼각지 섬멸 작전’을 가동했다.

이에 북평으로부터 남단 70km 지점에서 제82기갑사단은 방어 전술로 전환했고 후방에서 기동하던 수도기갑사단은 왼쪽 위로 우회하여 합류했다. 제20기갑사단(결전)도 역시 합류할 예정이었으나 아폴론 정찰위성으로부터 달레네첸스크 지역에서 2개 사단급 규모의 기갑부대를 포착했다는 보고에 급히 방향을 꺾어 남단으로 향했다.

이들의 정체는 제5군 제81친위기갑사단과 제70차량화보병사단이었다. 아마도 제82기갑사단(발해)의 후방을 공격하기 위해 아래쪽으로 크게 우회한 것으로 보였다.

생각지 못한 제5군의 추가 전력을 막기 위해 제20기갑사단(결전)이 ‘삼각지 섬멸 작전’에서 빠지게 되었지만, 합동참모본부에서는 수도기갑사단과 제82기갑사단(발해)만으로도 충분히 방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한편 8군단 소속 제23기계화경계사단의 모든 예하부대가 후방으로 물러나 곳곳에서 대대방어전술 개념으로 구역 방어에 들어간 상황에서 국경선을 돌파 한 제81친위기갑사단과 제70차량화보병사단은 사선으로 길게 이어진 두 개의 산 사이로 뚫려있는 작은 농지 쪽으로 빠르게 기동 중이었다.

만약 이쪽 입구가 막히면 남서단 쪽으로 80km나 더 우회해야 했다. 이런 이유로 신속하고 빠르게 통과하려 했다. 하지만, 이곳 양쪽 능선에는 사족 다리를 완전히 접어 최대한 자세를 낮추고 주변 지형지물과 비슷한 색상으로 변하는 특수 위장막을 덮은 채 강력한 SECM(전파교란시스템)를 방사하여 러시아 기갑부대의 정찰 드론과 수색전차중대를 속이고 매복 중인 부대가 있었다.

이들은 제23기계화경계사단 소속의 58경계연대 5경계대대였다.

양 능선 따라 각각 24대씩 배치한 C-1000 해태 무인로봇은 숨죽이고 러시아 기갑부대가 통과하기만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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