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99화 (399/605)

극복!

2023년 11월 25일 15:00,

남주 서울특별시 용산구 B2 벙커(국군 합동지휘통제소 회의실).

강이식 장관이 국방부로 돌아간 후 참모진만 모인 회의실은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대통령의 쿠르디스탄에 대한 추가 파병 지시에 신성용 합참의장이 반대의견을 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의견일 뿐, 국군통수권자의 명령을 거역할 순 없었다.

이런 이유로 깊은 고민에 빠진 신성용 합참의장은 아까부터 가상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십 미터 지하인 이곳에는 벽마다 아름다운 자연경치를 보여주는 스크린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창문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의장님! 일단, 파병할 군부대를 선정해야지 않겠습니까?”

해병대사령관 출신인 작전기획본부장인 이훈상 중장이 말문을 열었다. 강이식 장관은 B2 벙커를 떠나기 전 어떻게든 금일 안으로 파병부대를 결정해 청와대에 보고해야 한다고 재촉했기 때문이었다.

“정말 이거 쉽지 않습니다. 가용한 병력이 있어야 결정을 하지요.”

작전본부장 양민춘 중장이 고개를 절레거렸다.

현재 합참본부에서 쿠르디스탄에 추가 파병할 가용한 부대는 마땅히 없었다. 앞으로 작전에 투입될 전투부대를 제외하고 예비병력이라곤 현재 각 주에서 예비군을 동원한 28개의 동원예비군사단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동원예비군사단을 파병할 수도 없었다.

통일 전보다 7배 이상 늘어난 영토에 비해 국경경계를 위해 창설된 제5경계군사령부와 일본본토에 주둔하기 위해 새롭게 창설된 해병 3개 사단을 제외한다면 특별히 전투부대가 늘어나지 않았다.

더불어 동주에 1군단 소속의 제25경갑보병사단(비룡)과 제9기계화보병사단(백마), 남주에 제2해병사단, 그리고 일본 3개 섬 중 시코쿠에 6해병사단, 혼슈 남서부에 1해병사단, 혼슈 북동부에 1해병사단, 마지막으로 홋카이도에 제3해병기동사단이 주둔하고 있었다. 즉 본토 외에 주둔 중인 사단급 부대만 7개로 러시아군과의 전쟁에서 투입할 수 없는 전력이었다.

가용한 전투부대를 굳지 나열해본다면 북주 북부를 방어하는 제1야전군 직할부대인 제11기갑사단(화랑)과 제36기계화보병사단(백호), 제3군단 제2경갑산악사단(노도), 제12경갑산악사단(을지) 정도였다. 하지만 이 부대들은 압록강과 두만강 경계로 한반도를 지키는 최후 방어선 부대이자 유사시 만주에 긴급 지원할 부대였다.

이외에도 평시에 남주 남부 전체를 방어하는 제2신속대응군사령부 소속의 공수타격사단 4개와 신속대응사단 4개가 있었지만, 이 부대는 향후 ‘시베리아 점령 작전’에 투입할 핵심 부대였기에 파병 리스트에 올릴 수 없었다.

“시베리아 점령 작전 안을 수정해서라도 만들어야지 않겠습니까?”

이훈상 중장은 자신의 부서에서 오랫동안 고심하고 연구하여 수립한 작전 안까지 수정하자는 말까지 꺼냈다.

“시베리아 점령 작전 안까지요? 저번에 29군 문제로 30기계화보병사단을 빼지 않았습니까? 그것도 무리인데 수정까지 한다면 그냥 시베리아 작전은 취소하는 게 나을 것입니다.”

정보본부장인 안길원 중장이 냉담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이에 윤기윤 합참차장이 자신의 의견을 제시했다.

“그렇디, 시베리아 점령 작전 안은 결코 수정할 수 없어야. 그래서 말인데, 이건 어떻습네까? 일반 전투부대는 지금 즉시 파병부대에 편입하기는 힘드니끼니 공수육전사단 4개를 쿠르디스탄에 파병하는 겁네다. 기존 작전 안을 보자면 그 부대들을 작전에 투입하려면 아직 시간은 많지 않습네까? 그동안 쿠르디스탄에 파병 후 어느 정도 안정화를 이루면 상황에 따라 다시 시베리아 점령 작전에 투입하는 겁니다.”

윤기윤 합참차장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는 은근슬쩍 합참의장의 표정을 살폈다.

“음, 괜찮은 방법이긴 합니다. 그런데 쿠르디스탄에 이어 시베리아 작전까지 투입되면 피로도가 상당하지 않을까요? 혹 전투력 저하로 이어질지 안을까 생각합니다.”

또 다른 합참차장인 김용현 대장이 약간 염려된다는 듯 말했다.

“그거이 신경쓰디 마시라요. 현재 공수육전사단 아들이 어떤 아들입네까? 산전수전 다 겪으며 특수임무에 최적화된 최강의 항공육전여단 출신들이 아닙네까? 그 정도 혹사한다고 피로도나 전투력이 저하되지 않습네다. 기렇고 말기요.”

북한군 출신답게 윤기윤 대장은 예전 북한 최고의 특수부대였던 황공육전여단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했다. 이에 김용현 대장이 멀쑥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그런가요?”

“두말하면 잔소리디요.”

윤기윤 대장이 턱을 치켜들고는 조금은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가장 좋은 방법인 듯합니다.”

“저 역시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양민춘 중장과 이훈상 중장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음, 그 방법뿐인가? 그럼 몇 개 사단을 보내야 되겠습니까?”

한동안 생각에 잠겨있던 신성용 합참의장 역시 마음에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좀더 상세하게 물었다.

“내래 볼 때는 4개 사단 정도면 될 거 같습네다.”

“1개 사단에 병력이 어떻게 되지?”

신성용 합참의장의 질문에 작전본부장 양민춘 중장이 즉시 대답했다.

“한 개 사단당 4,800명입니다. 4개 사단이면 총 19,200명 정도 됩니다.”

“부족하지 않겠나?”

합참의장의 질문에 윤기윤 합참차장이 대신 대답했다.

“부족하지 않다고 봅네다. 이번 파병 목적이 각 도시의 테러 경계 임무가 아닙네까? 일반 전투부대원보다는 특수훈련을 받은 특수부대원들이 두세 배 역할은 하고도 남디요. 완전 딱이디 않습네까? 하하”

“음, 그럴 수도 있겠군요. 좋습니다. 그럼 이번 파병부대는 공수육전사단 4개를 보내는 거로 결정합시다. 양 중장은 특전사사령부에 바로 연락해서 파병 준비에 대해서 조율하도록 하게.”

“네, 알겠습니다. 의장님”

윤기윤 대장이 내놓은 의견에 파병 건이 생각보다 쉽게 해결되자 신성용 합참의장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자! 그럼 상황실로 돌아갑시다.”

★ ★ ★

2023년 11월 25일 15:30,

북만주 북강도 북평(홍치쿤)시 남단 10km 지점.

쿠르르르릉!

제82기갑사단(발해)의 33기갑여단과 교전 중에 합류한 34기갑여단 소속의 C-2A1 전차 160여 대와 K-23P 현무 보병전투장갑차 100여 대 그리고 각종 모델의 장갑차들은 진흙 판이 되어버린 설원에 케터필러 자국을 남기며 북평(홍치쿤)시를 지나쳐 남서단 방향으로 빠르게 퇴각 중이었다.

제57차량화보병사단의 예하부대인 233차량화보병연대와 12전차연대를 격파한 직후 사단본부로부터 퇴각 명령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반면, 동부군구의 선봉부대인 제57차량화보병사단이 잇따른 교전을 벌이면서 괴멸에 가까운 손실을 보자 제5군의 나머지 부대인 제59차량화보병사단과 제121기갑사단, 그리고 제60차량화보병사단을 비롯한 제5군의 직할부대는 복수를 위함인지 삼각지 형태의 설원 지대를 맹렬한 기세로 밀려오고 있었다.

사실 33기갑여단과 34기갑여단의 퇴각은 어떻게 보면 적의 주공부대를 유인하는 작전이기도 했다. 즉 ‘시베리아 점령 작전’의 초석이 될 ‘반격의 서막 작전’이자 ‘삼각지 섬멸 작전’이 먹혀들어 가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퇴각하는 후방 90km 지점에는 제82기갑사단(발해)의 35기계화보병여단과 직할부대가 합류를 위해 전진 기동 중이었고 바로 뒤에는 대한민국 아니 세계 최강의 부대인 제7기동전단 소속의 제20기갑사단(결전)과 수도기갑사단이 야지에서 낼 수 있는 최고속도로 뒤따르고 있었다.

더불어 남주 곳곳에 주둔 중인 제2신속대응군 소속의 4개 공수타격사단도 전용 수송기에 일체의 모든 중장비 무기를 싣고 출격명령만 기다리고 있었다.

4개의 플라즈마 엔진을 장착한 공수타격사단의 전용 수송기 CC-1000TSP는 마하 2에 달하는 속도를 자랑하며 호버시스템이 장착된 무인 6세대급 C-5 가리온 전차 8대와 운용콘솔장갑차 2대 그리고 무장병력 100명을 동시에 수송할 수 있는 현존 가장 큰 군용수송기로 현재 공군에서는 120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 ★ ★

2023년 11월 25일 16:30 (러시아시각 10:30),

러시아 모스크바 벙커 스테이트 R-13(회의실).

미하일 이바노프 국방장관의 보고가 끝나자 푸틴 대통령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망할 중국놈들, 얼마 전까지 애원 복걸하던 놈들이 갑자기 저러는 이유가 뭐요?”

“그, 그것이, 현재 파악 중입니다.”

미하일 이바노프 국방장관 역시 원인 파악이 되지 않은지라 우물쭈물했다.

“상호군사보호조약을 맺었음에도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고? 그걸 대체 나보고 믿으라는 건가? 그놈들은 한국 시각으로 24일 자정을 기해 우리가 한국을 침공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았소?”

“무슨 속셈이 있는 듯합니다. 단순 핑곗거리라 봅니다.”

발레리 카르핀 외교장관이 외교 전문가답게 단번에 중국의 의도를 파악했다.

“속셈? 무슨 속셈? 감히 러시아를 상대로 꿍꿍이를 쓰겠다 이건가?

잔뜩 화가 난 푸틴 대통령은 삐딱하게 앉은 자세로 관료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자 블라디미르 베샤스트니흐 총창모장이 조심스럽게 답변을 늘어놨다.

“아무래도 우리 러시아와 한국 간의 치열한 교전을 지켜보고 이후 양국의 힘이 빠지면 그때 다음 만주 일대를 먹으려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중국놈들이 서부 전선 흔들기 용으로 써먹으려는 우리 러시아의 의도를 알아챘다는 말인가?”

“현재로선 그렇다고 보입니다.”

“건방진 중국놈들! 외교장관!”

“네, 대통령님!”

“지금 당장 외교라인을 통해 다시 한번 정식으로 상호군사보호조약에 따라 한국을 공격하라고 요청하시오. 만약 이번에도 말 같지 않은 이유로 핑계를 댄다면 경제적 군사적 원조를 즉시 중단하며, 조약 위반에 따른 대가를 톡톡히 받아내겠다고 강력하게 항의하시오.”

“네, 알겠습니다. 대통령님!”

24일 자정을 기해 대대적인 한국 침공을 한 러시아 동부군구는 초반 교전의 정석인 대대적인 미사일 공격과 공군 전력을 활용한 융단 폭격을 감행하지 않았다. 단지 육군 전력만으로 4개 군 주공부대로 국경선 돌파를 시도했다.

군사 전문가들이 생각하기에 아이러니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대한민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현재 양 국가는 육군 전력만으로 국경선 일대에서 힘겨루기만 할 뿐이었다.

사실 이러한 전쟁 양상이 펼쳐진 이유에는 양국 모두 때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러시아 같은 경우, 첫째로 제35군과 제36군은 북부 전선의 고착화 정도가 목표였고 제5군은 한국의 주력 부대를 잡아두는 미끼였다. 고로 제29군이 러시아 동부군구의 주공 중에 주공부대였다.

현재 제29군에는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에서도 파악하지 못한 붉은기갑군단 전력이 숨을 죽이고 대기하고 있었다. 이번 전쟁을 위해 오랫동안 철저한 보안 속에 만들어진 제27기갑사단과 제28기갑사단, 그리고 제58방공포격사단이었다.

이러한 숨은 전력까지 총동원해 몽골 영토로 긴급 우회하여 취약한 몽골 국경선을 돌파하고 빠르게 내부까지 진공하면 이때를 준하여 대대적인 미사일 전력과 공군전력을 투여할 예정이었다. 더불어 신중국이 러시아의 공격 요청에 즉시 군사력을 서부 국경선에 투여했다면 그야말로 이 작전은 제대로 먹였을 것이다.

어쨌든 제29군 전력이 국경선 돌파하고 만주 깊숙한 곳까지 진격하여 내부 흔들기에 성공했다는 가정하에 전선 고착화를 구축했던 제35군과 제36군이 중부군구의 제41군과 제2군의 지원을 받아 남단으로 치고 내려간다는 계획이었다. 두 번째는 침공 전, 대한민국의 주요 부대가 주둔지를 떠나 이동했기에 정확한 위치 파악이 안 된 상황에서 미사일과 공군전력 즉 전략 급 무기를 투여하기엔 무리라 판단했다.

이런 두 가지 이유로 지금까지 전략 급 무기를 사용을 자제한 것이었다. 이어 대한민국 같은 경우 첫 번째는 러시아가 육군 전력만으로 침공한 이유였고, 두 번째는 시베리아 점령 작전을 염두에 둔 이유였다.

제5군을 상대로 ‘삼각지 섬멸 작전’에 1차로 대대적인 전략 급 무기를 사용하고 이후 광활한 시베리아 전 지역을 점령할 때 사용하기 위해 남겨둘 필요가 있었다. 만약 합동참모본부에서 시베리안 점령 작전 안을 수립하지 않았다면 지난 중국전처럼 처음부터 대대적인 전략 급 무기를 총동원했을 것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이유로 초반에 전략 급 무기를 사용하지 않은 대한민국과 러시아는 국경선 일대에서 육군 전력만으로 서로 간 힘겨루기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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