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98화 (398/605)

극복!

2023년 11월 25일 13:30,

남주 서울특별시 송파구 국가정보원 안전가옥병원 장례식장.

이런저런 지난 과거에 있었던 얘기로 한창 이야기꽃을 피우던 남궁원은 안연우 국장의 부탁으로 잠시 위층 휴게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 자리에는 사이버보안국 척혁준 국장도 함께했다.

“아! 미안하네. 조문왔는데 말이야. 긴히 할 말이 있어서 말이야.”

“아 괜찮습니다. 국장님, 그런데 무슨 일로 자리까지···.”

“사실 나보다 여기 척 국장이 자네한테 할 말이 있네.”

“아! 네, 그러시군요.”

“하하, 미안합니다. 남궁원 씨 제가 안 국장님께 부탁했습니다.”

이웃집 아저씨 같은 포근한 인상을 준 척혁준 국장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에 남궁원이 손사래까지 치며 활짝 웃었다.

“아닙니다. 하하, 괜찮습니다. 그래 무슨 얘기인가요?”

“다른 게 아니라, 안 국장님 말로는 남궁원 씨가 음성통화 추적시스템을 개발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척혁준 국장의 말에 남궁원의 시선은 안연우 국장으로 향했다. 이에 안연우 국장이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미안하네.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네.”

두 명의 스콜피온 요원을 쫓을 당시 안연우 국장으로부터 비공식적으로 여러 번 도움을 받았었다. 그런 이유로 안연우 국장 역시 음성통화 추적시스템이라는 장치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었다.

“하하, 아닙니다. 그동안 안 국장님한테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요.”

미안해하는 안연우 국장에게 환한 미소를 보이고는 이내 척혁준 국장의 질문에 대답했다.

“네! 예전에 호큘라의 도움을 받아 그런 장치를 만든 적이 있습니다.”

“그렇군요. 혹시 그 장치를 우리에게 제공할 수 있습니까?”

척혁준 국장의 단도직입적인 요구에 남궁원은 흔쾌히 승낙했다.

“그럼요. 당연하죠. 필요하시다면요.”

“아! 감사합니다.”

“사실, 불법적인 장치라 폐기할까 생각하다가 혹시나 해서 그냥 집에 보관했었는데 잘됐네요. 도움이 된다니.”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네, 와이프 통해 내일쯤 사보국에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퇴사 전, 마지막 부서가 사이버보안국 2과였습니다. 타 부서도 아니고 제가 다니던 부서에 도움이 되니 기분이 좋네요.”

“하하하, 그랬군요.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척혁준 국장은 옆에 있는 안연우 국장을 슬쩍 한번 보고는 말을 이어갔다.

“다시금 보안국으로 복직할 마음은 없습니까?”

“네? 복직요? 아!”

“곤란한 질문인가요?”

“하하, 제가 막 사업을 벌인 상황이라······.”

난처한 표정을 지은 남궁원은 슬쩍 안연우 국장을 봤다. 이에 안연우 국장이 입을 열었다.

“척 국장님! 제가 잠시 남궁원과 얘기 좀 하겠습니다.”

“아! 그러세요.”

짧게 대답한 척혁준 국장이 휴게실에서 나간 후 남궁원의 속사포 같은 질문이 이어졌다.

“워! 안 국장님! 대체 무슨 일이기에 저한테 복직해 달라는 요청하나요?”

“음, 현재 국정원 전체가 뒤집힌 상황이네.”

“뭔 일이 터졌는가 봐요?”

“맞아! 고인이 된 우진길 교수님과 연관된 일이야.”

“아! 그렇군요.”

“그것보다 자네, 이곳 기억나지?”

안연우 국장은 슬쩍 화제를 돌렸다.

“그럼요. 제가 그날을 잊을 수 있나요?”

이곳 국가정보원 안전가옥병원은 남궁원의 인생이 바뀐 첫 지점이었다. 8년 전, 가족과 친구가 스콜피온 요원들에게 암살당한 사건, 그 충격으로 쓰러진 후 이곳에서 안연우 국장과 이혜진 과장을 처음 만난 장소였다.

남궁원은 이곳에 오면서 내심 슬픈 기억이 떠올라 일부러 이혜진 과장과 과거 얘기를 하지 않았다. 당연히 이혜진 과장도 옛 추억에 대해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맞아. 이곳이 자네와 처음 만난 장소이고 자네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뀐 곳이지”

안연우 국장은 남궁원에게 가슴 아픈 추억인 걸 알면서도 일부러 얘기하는 듯했다.

“하하, 지금 생각하면 와이프를 처음 만난 장소이니 어떻게 보면 의미깊은 곳이기도 합니다.”

남궁원은 일부러 좋은 쪽으로 말했다.

“그렇게 되나? 긍정적으로 생각하니 마음이 좀 편하군.”

“하하 제가 긍정맨 아닙니까?”

“자네 왜 내가 이런 말을 꺼내는지 아나?”

“음, 혹 복직건 때문 아닙니까?”

“맞아! 자네 복직 문제야.”

안연우 국장은 둘만 있는 휴게실을 둘러보고는 이내 진지한 표정을 짓고는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우진길 교수의 자살과 플라즈마 핵심기술 유출 건에 대해 상세히 얘기해줬다.

“헉! 그게 정말입니까?”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된 남궁원은 두 눈을 크게 뜨고는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이 건으로 국정원 전체가 비상사태야. 최대한 빨리 핵심기술 자료를 회수하거나 폐기해야 해, 당연히 그 납치범들도 잡아야겠지”

“아니, 어떻게 그 아기들을 납치해 그런 일을 벌일 수 있습니까? 정말 화가 나네요.”

우진길 교수의 자살은 정말로 억울한 죽음 그 자체였다. 평생 국가를 위해 플라즈마 연구에 인생을 바쳤던 우진길 교수의 생의 마감은 국가를 배신한 불명예스러운 죽음으로 끝났다. 가족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지만, 그 사실은 바뀌지 않았다.

“그렇지, 극악무도한 놈들이지. 그런 놈들을 찾아내야지 않겠나?”

“그렇죠. 꼭 찾아내서 법의 심판을 내려야지요. 아니다. 잡아다가 평생을 고통 속에 살게 해야죠.”

남궁원은 과거 억울한 죽임을 당한 가족과 친구 일이 머릿속에서 교차 되자 순간적으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자네의 복직이 중요해! 그놈들을 잡을 수 있게 자네가 도와주게.”

“음, 그건, 제가 없어도 그 음성통화 추적장치만 있어도 찾아내지 않나요?”

“그 납치범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핵심기술의 회수나 아니면 완전 폐기도 중요하네. 그래서 자네의 실력이 필요한 거야.”

“그렇군요.”

짧게 대답한 남궁원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에 안연우 국장은 가만히 기다려줬다.

“저, 국장님!”

“그래, 결정했나?”

“지금 당장 결정은 힘들고요. 집에 가서 혜진이랑 얘기해볼게요. 벌어놓은 사업도 있고 여러 가지 걸리는 게 많습니다.”

“그래, 당장 결정은 힘들겠지. 아무튼, 최대한 빨리 이 과장과 상의해서 결정해 주게.”

“네, 죄송해요.”

“아니야. 무슨 죄송인가? 우리가 무리한 부탁을 하는 건데.”

★ ★ ★

2023년 11월 25일 14:00,

남자 주인공 서울특별시 용산구 B2 벙커(국군 합동지휘통제소 회의실).

러시아와의 전쟁 발발 13시간이 흐른 지금, 몽골 국경선으로 치고 들어오는 제29군을 제외하면 나머지 제35군과 제36군, 그리고 제5군에 대해서 효과적으로 방어 중이었다.

특히 제35군과 제36군의 주공부대의 침공 루트는 주로 험난한 산악지대였다. 이런 이유로 대대적인 침공을 가했음에도 침공 속도는 빠르지 않았다. 이에 산악에서의 교전이 특화된 여러 경갑산악사단이 주 침공 루트 틀어박고 확실히 방어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북부 전선은 그리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또한, 제5군 같은 경우는 연해주 진격의 시발점이 될 ‘삼각지 섬멸 작전’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북동 전선의 툭 튀어나온 삼각지 평원에 제5군의 여러 주력부대를 한곳에 모아놓고 적의 후방에 공수타격사단이 공수로 투입된 후 전방위적으로 포위된 상태에서 한 번에 격퇴하는 ‘삼각지 섬멸 작전’의 성공 여부는 한국군의 대대적인 반격의 서막이라 할 수 있었다.

문제는 몽골 국경선을 통해 침공하는 제29군이었다. 강진(후룬베이얼) 주둔기지에서 기동한 제65경갑보병사단(일몰)이 호룬 호수를 우회하여 위쪽으로 진격하는 제29군의 선봉부대인 제36차량화보병사단을 차단했다.

다양한 구경의 포병부대로부터 집중적인 포격을 받긴 했으나, 사단포병과 위쪽 국경선을 책임지고 있는 제13군단 소속의 제86기계화경계사단(철통) 사단포병의 대포병 지원 포격으로 어느 정도 러시아 포병부대의 포격을 잠재울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 포병의 대포병 사거리 밖에 있는 미사일여단의 집중적인 미사일 공격에 적잖은 피해를 보고 말았다. 이에 합동참모본부에서는 후방 이민 강까지 퇴각하라는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한편, 제29군의 전투서열 1위인 제11기갑사단과 제39차량화보병사단은 호룬 호수 아래쪽으로 우회해 진격했다. 무인포탑시스템에 16MJ 레일건을 장착한 제11기갑사단의 T-14B 아르마타 전차 300여 대는 마치 질풍노도와 같았다.

하지만 이들을 막는 것이 있었다. 바로 호룬 호수와 부어 호수로 이어지는 우어춘 강이었다.

거울이라 흐르는 물도 없고 강폭도 그리 넓지 않았지만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물주기 때문에 육중한 전차가 빠른 속도로 기동하는 건 불가능했다. 이러한 지형적 이점 때문에 시간을 번 제5기갑사단(열쇠) 먼저 이곳에 도착하여 매복했고 제11기갑사단이 우어춘 강 도하를 시도하자 기습공격을 감행했다.

제11기갑사단 지휘부는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 도하 전, 수색전차나 정찰 드론을 통해 강 건너편에 대한 상황을 먼저 파악하지도 않고 예하부대에 성급히 도하 명령을 내렸다. 기본 중의 기본인 도하 야전교범을 망각한 듯했다.

현저히 떨어지는 기동 속도로 도하 하는 제11기갑사단의 T-14B 아르마타 전차들은 갑자기 나타난 제5기갑사단의 C-2A1 흑호 전차 공격에 당황했고 처음에는 일방적인 피해를 보았다.

하지만 후방에서 대기 중이던 각종 포병전력과 미사일여단의 공격에 제5기갑사단(열쇠) 역시 합동참모본부의 퇴각 명령을 받고 후방으로 퇴각했다.

“아깝습니다. 저 11기갑사단만이라도 아작을 냈더라믄 29군의 전체 진격속도를 늦출 수 있었을 텐데 말입네다.”

윤기윤 대장이 혀를 차며 아까워했다.

“기회는 또 있지 않겠습니까? 그때 확실히 도려내야죠.”

김용현 대장이 팔짱을 끼고 담담하게 말했지만, 내심 그도 아쉬워했다. 이에 작전본부장 김용현 중장이 자신감 넘치게 말했다.

“일단 이민 강을 방어선으로 삼고 7사단과 30사단까지 합류하면 29군 놈들의 진공은 끝일 겁니다.”

“그렇긴 하디, 문제는 저 미사일여단 놈들이 아니네? 저놈들도 확실히 조져야지요.”

“자! 조금 후면 장관님 도착하십니다. 다들 회의실로 갑시다.”

아무 말 없이 상황실 스크린을 주시하고 있던 신성용 합참의장이 벽면에 설치된 디지털 시계를 보고는 말했다.

잠시 후 오전 내내 국가위기상황센터 지하 벙커에서 NSC(국가안전보장회의)에 참석한 강이식 장관이 고위급 장성들을 앉아있는 회의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예 모든 고위 장성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시간이 얼마 없으니 바로 회의 시작합니다.”

강이식 장관은 자신의 자리에 앉고는 곧바로 오늘 오전에 있었던 NSC 회의 내용에 관해 브리핑을 시작했다.

그리고 20여 분이 흐른 후, 회의실 분위기는 그리 썩 좋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서 쿠르디스탄에 군단급 규모의 병력을 파견할 수 없습니다.”

강이식 장관의 설명이 끝난 직후 신성용 합참의장이 내뱉은 첫 마디였다.

“힘들 거 알고 있네. 러시아와 전쟁 중인 상황이니까 말이야.”

“아시면서 어떻게 그런 지시를 내리시는 겁니까?”

신성용 합참의장이 강직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어쩔 수 없었네. 대통령님의 확고한 의지야. 쿠르디스탄의 독립을 말이야.”

“자국의 안위보다 타국의 독립이 더 우선순위란 말입니까?”

“허허, 자네, 무슨 말을 그렇게 하나? 대통령님께서 설마 그런 생각으로 이번 지시를 내렸겠나?”

“그게 아니면 어찌, 군단급 규모의 파병을 지시합니까? 제가 장관님께 향후 시베리아 점령 작전 안까지 따로 보고하지 않았습니까?”

신성용 합참의장은 물러서지 않고 반대의견을 쏟아 냈다. 이곳으로 오는 동안 합참의장의 반대가 심할 것이라고는 짐작하고 있었지만, 생각 이상의 강경한 반응에 강이식 합참의장은 난처했다.

“음, 전쟁 초반이기에 어렵다는 거 아네. 그래도 대통령님의 지시니 가용한 전력을 선정해 파병 준비를 서둘러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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