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97화 (397/605)

난제!

2023년 11월 25일 09:00 (중화민국시각 08:00),

중화민국 홍콩특별구역시 신계지(국가정보원 홍콩지부 안전가옥).

새벽에 CMV-100 스카이버스를 타고 홍콩에 도착한 대외정보국 1과 요원들은 홍콩지부 안전가옥에서 잠시 취침을 취한 후 지금은 거실에 모여 앞으로 투입될 임무에 대해서 간단한 회의 시간을 가졌다.

“새벽에 임무 지침 사항이 변경되었다. 고로 스카이버스에서 있었던 브리핑은 모두 잊고 다시금 간단히 브리핑하겠다.”

조금 전, 본국의 대외정보국으로부터 날아온 보안문서를 든 이자성 과장이 거실 한쪽 벽면으로 나왔다. 그러자 소파와 바닥 그리고 소파 팔걸이에 걸터앉은 요원들의 시선이 자동으로 이자성 과장에게 쏠렸다.

“우리가 최우선으로 조사하려 했던 홍콩 내 범죄 조직은 2순위로 내려고 대신 홍콩 내 활동하는 모든 국가의 정보조직을 조사한다. 오 대리 명단 나눠줘!”

이자성 과장의 지시에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오석진 대리가 팀별로 한 움큼의 서류들을 나눠줬다.

“이 서류들은 대외정보국 3과 요원들이 밤새 조사하고 취합한 홍콩 내 활동하고 있는 모든 국가의 정보조직과 관련된 자료다.”

“워메! 많기도 하다. 아니 홍콩이 뭐 대단한 도시라고 이렇게들 몰려있는 거야 자식들”

박기웅 팀장이 건네받은 서류를 몇 장 넘기고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 모든 조직을 다 조사하는 겁니까? 우리 인원으로는 턱도 없을 거 같습니다.”

2팀 윤태진 팀장 역시 서류들을 보고는 울상을 지며 말했다.

“많긴 하지? 윤 팀장 말대로 시간이 없는 상황에서 모든 정보조직을 조사하는 건 어려울 거 같다. 그래서 말인데, 일단 10개 정도만 추려서 1차로 조사를 했으면 한다.”

“그 기준은 무엇입니까?”

팀장급에서 막내인 성상윤 4팀장이 손을 들고 질문했다.

“그 기준이 뭘까?”

이자성 과장은 질문으로 답변을 대신하자 2팀 신은하 팀장이 핵심을 찔렀다.

“영어와 북경어를 사용한다고 했으니, 일차적으로 영어권과 중국어권 국가겠네요.”

“그렇다. 신 팀장 정답이다. 단순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런 문제는 복잡하게 생각하면 접근하기 힘들다.”

이에 윤태진 2팀장이 곰곰이 생각하는 듯하더니 여러 국가 이름을 나열했다.

“영어권과 북경어권이면 미국과 영국, 그리고 3개국으로 쪼개진 중화민국과 동방공화국, 신중국 정도겠네요?”

“그렇다. 저 국가 외에도 호주와 일본, 대만, 싱가포르 그리고 다들 아침 뉴스를 통해 들었을 것이다. 어제 자정을 준하여 러시아와 전쟁이 시작된 것을 그래서 러시아도 포함 시킨다.”

“아! 러시아놈들, 좀 평화롭게 살면 안 되나. 뭐 믿고 우리나라와 전쟁을 하는지······.”

윤태진 2팀장이 러시아란 말에 화가 나는지 온갖 인상을 쓰며 씩씩거렸다.

“전쟁은 우리 국군에게 맡기고 우리는 주어진 임무에 신경 쓰자!”

“네! 알겠습니다.”

팀원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일단 지금까지 나열한 10개국에 대해서 조사를 시작한다. 나눠준 서류 마지막 장에 각 팀에서 조사할 국가명이 쓰여 있다. 참고해라.”

“워! 미국과 대만이네.”

서류 마지막 장을 확인한 윤태진 2팀장이 고개를 절레거리며 말했다. 그러자 신은하 3팀장도 바로 마지막을 넘겨 확인했다.

“우리 팀은 영국과 동방공화국”

“헐래? 우리 1팀은 왜 3개국입니까? 중화민국, 일본, 러시아”

“불만이냐? 우리 1과의 선봉 팀 아니냐? 능력 있어서 3개국 넣었다.”

“워! 무슨 선봉 팀이고 이럴 때만 능력입니까?”

“나도 3개국이다. 넌 불만만 있고 담배는 없지?”

“헉! 아재 개그!”

순간 튀어나온 아재 개그에 몇몇 팀원들이 낄낄대며 웃었다.

“자! 자! 시끄럽고 오늘부터 발이 땀나도록 움직이도록, 다시 한번 말하지만, 시간과 싸움이다. 늦으면 늦을수록 유출된 기밀정보를 회수하거나 폐기할 수 없다. 알았나?”

“네, 알겠습니다.”

“좋아! 해산! 팀별로 장비 챙기고 출발해!”

이자성 과장이 손뼉을 치며 회의 종료를 알리자 2팀 오혁수 대리가 손을 번쩍 들고는 물었다.

“아침밥은 안 먹습니까?”

“그건 너희 팀장한테 물어봐!”

“눼!”

오리 입처럼 튀어나온 오혁수 대리가 일어나려 하자 뒤에서 윤태진 팀장이 귀를 당기며 속삭였다.

“넌 짐 아침밥 생각이 나냐?”

“아야! 그럼, 안 먹습니까? 이것도 다 먹고 살라고 하는 건데. 전 아침 밤 안 먹으면 하루 일이 안 됩니다.”

“그러냐? 난 군대 이후로 아침밥을 먹어보질 못해서 먹으면 소화가 안 된다.”

“그럼 저 혼자라도 햄버거라도 먹겠습니다.”

“제꺼두!”

“내꺼는?”

“나도!”

“저둡니다. 오 대리님!”

“다 죽을래요? 암튼 후임이건 동기건 선임이건 맘에 드는 인간이 없어!”

“크크크크”

★ ★ ★

2023년 11월 25일 12:30,

남주 서울특별시 송파구 국가정보원 안전가옥병원 장례식장.

러시아와 전쟁을 벌이는 상황에서도 서울 시내는 평소와 다름없이 평온했다. 단지 길거리에 동원예비군으로 편제된 완전무장한 군인들이 곳곳에 위치해 경계 임무와 순찰 임무를 서고 있는 그 차이일 뿐이었다.

송파구 복정 교차로에서 산성역 방향 342번 도로를 따라가다가 창곡 교차로에서 좌측으로 이어진 도로에는 다른 곳보다 군인들의 수가 많았다. 또한, 일반 동원예비군이 아닌 왼쪽 가슴에 하얀 독수리 마크와 공수 마크를 부착한 제3공수특전여단 소속의 특전사였다.

여단 전 병력이 투입된 듯 길게 이어진 도로에 2인 1조로 경계를 펼치고 있었고 후방 500m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남산 방향 쪽으로 꺾어지는 도로에는 바리케이드까지 치고 오가는 차량에 대해서 정밀 수색을 했다.

이곳은 특별히 군사 시설물이 들어선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여단 전 병력이 투입되어 삼엄한 경계를 펼치는 이유가 있었다.

도로 끝자락에는 일반 건물과 다를 게 없는 3층 건물이 있었다. 하지만 건물 안은 지하 10층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각종 첨단 의료시설이 마련된 바로 국가정보원 안전가옥병원이었다.

그렇다고 공수특전여단 전 병력이 투입되어 경계할 정도는 아니었으나 오늘 오전, 우진길 교수의 시신이 이곳 안전가옥병원에 안치되었고 임시로 만든 장례식장에서 장례식이 치러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재 플라즈마 핵심기술 유출 사건은 철저한 보안 속에서 언론 통제 중이었다. 이로 인해 우진길 교수의 장례식은 일반적인 장례식이 아닌 보안을 염려한 비밀 장례식을 치르게 되었다. 당연히 조문객 역시 일반인은 조문할 수 없었고 대부분 파르테논 연구소에서 함께 연구했던 1급 경호 대상자인 연구원들만이 조문할 수 있었다.

이렇게 1급 경호 대상자들이 연구소가 아닌 외부에서 그것도 전쟁 기간에 수십 명이 한꺼번에 모이는 자리라 경계가 심할 수밖에 없었다.

조문객을 경호하기 위해 따라온 경호원들도 연구소에서 오가며 인사를 건네는 관계였기에 함께 조문했다. 그리고 조문을 마치면 장례식 주변에서 굳은 표정으로 경호 활동을 이어갔다.

잠시 후 누군가가 조문을 마치고 우은서 씨를 보며 대성통곡했다. 고 우진길 교수의 스승이자 플라즈마의 연구 동반자인 박진우 박사였다. 현재 대한우주과학센터 내에 있는 우주과학원의 초대 원장이기도 한 박진우 박사는 장례식을 한다는 말을 듣고 단숨에 달려왔다.

우은서 씨가 어렸을 때부터 딸처럼 대했던 박진우 박사는 오열했다. 우은서 씨 역시 박진우 박사를 끌어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러한 모습을 식장 문 앞에서는 누군가가 보고 있었다.

남궁원이었다.

남궁원 역시 과거 지하연구소에서 몇 년간 동고동락하며 친하게 지냈었다. 한순간 사건으로 천지에 고아가 되어버렸던 남궁원은 연구원 활동을 하면서 고 우진길 교수를 어떤 때는 삼촌처럼 어떤 때는 아버지처럼 다정하게 지냈었다.

“원아! 조문해야지!”

입구에서 박진우 박사와 우은서 씨가 서로 끌어안고 오열하는 장면을 보고 눈물을 흘리던 남궁원에게 이혜진 과장이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아! 그래야지!”

대충 옷소매로 눈물을 훔친 남궁원은 이혜진 과장과 함께 식장으로 들어가 향을 피우고 절을 했다. 오열하고 있는 상주 우은서 씨를 대신해 남편인 남민철에게 위로의 말을 전한 남궁원과 이혜진 과장은 식사할 수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원을 정말 아들처럼 대해주셨는데······.”

“그랬었지, 정말 좋은 분이었는데 말이야. 그런데 자기는 다리 괜찮아? 그냥 집에서 쉬라니까”

이혜진 과장은 병원 밥이 질린다며 끝내 퇴원했다. 첨단 의료기술 덕분에 관통당한 허벅지는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지만, 아직 밖으로 다니는 건 무리였다. 하지만, 이혜진 과장도 지하연구소에서 2년간 경호 임무를 하면서 우진길 교수와 안면이 있었기에 떼를 쓰며 함께 왔다.

“괜찮아. 이 정도 움직이는 건,”

이때 출입구 쪽에서 한 무리의 조문객이 모습을 보였다. 남궁원도 한때 친하게 지냈던 X-19 플라스마 연구실의 연구원들이었다.

“아! 자기야 나 저분들과 인사 좀 나누고 올게. 자긴 그냥 여기서 식사하고 있어!”

“응, 알았어. 천천히 인사 나누고 와!”

“그래, 고마워!”

조문을 마치고 나오는 연구원들에게 남궁원이 깍듯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남궁원입니다.”

“어! 남궁원 수석! 정말 오랜만에야.”

연구원 일행 중 가장 친했던 김규석 수석연구원이 반갑게 맞아줬다.

“어머! 남궁원 오랜만이에요.”

“네, 오 수석님도 그동안 잘 지내셨죠?”

“그럼요.”

“남 수석! 저번에 연구소 왔었으면 들렀다가 가지 그냥 갔어?”

“아! 죄송해요. 남 수석님! 그땐 정신이 없어서요.”

“서운했어.”

“죄송합니다.”

“그래. 요새 결혼 생활은 어때?”

“하하, 좋죠. 매일 이쁜 와이프가 아침밥도 차려주고 좋습니다.”

“거짓말하네? 국정원 과장님이 밥해 줄 시간이 있나?”

“애고, 걸렸네요.”

“자네는 거짓말하면 다 얼굴에 표나요. 그래 와이프도 왔는가?”

“네, 저쪽에서 식사하고 있습니다.”

“오, 그럼 우리도 저쪽으로 가서 식사합시다. 남궁원 수석의 색시인 혜진 씨도 보고요.”

“그럴까요?”

“아! 왜 그러세요.”

“왜 그러긴? 반가우니까 그렇지!”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지 잠시 슬픔을 잊고 이야기꽃을 피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아직 회복이 덜 된 이혜진 과장은 집으로 돌아갔고 남궁원은 대부분 안면이 있는 지하연구소 출신의 조문객들과 인사를 건네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두 차례 더 다른 연구실의 연구원들과 인사를 건네며 여러 얘기를 나누던 중 검은 정장을 말끔히 입은 중년 신사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국가정보원 소속의 간부급들이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남궁원이 가장 좋아하는 대테러수사국의 안연우 국장이 있었다.

“아! 국장님! 안녕하세요.”

“어? 남궁 사장!”

“아! 다들 왜 그러실까.”

“아 맞다. 인사해! 사이버보안국의 척혁준 국장이고 아! 이 친구는 알지? 윤 국장!”

“그럼요. 윤 국장님은 잘 알죠. 잘 지내셨죠?”

“그래, 잘 지냈네. 자네는?”

“잘 지냈어요. 음 그런데 척혁준 국장님이라는 분은 처음 뵙네요. 제가 국정원 직원은 웬만하면 다 아는데.”

“아 그렇지! 처음 보는 거겠군. 미국 그쪽에서 스카우트한 분이셔.”

척혁준 국장은 한국계 미국인으로 CIA(중앙정보부)에서 보안 쪽으로 이름을 날리던 인물이었다. 남궁원이 국가정보원에 퇴사한 직후 국가정보원에서 스카우트했다.

“아 그렇군요. 저도 한때 사이버보안국에서 틈틈이 함께 일했던 남궁원이라고 합니다.”

남궁원이 예의 바르게 인사하자 척혁준 국장은 환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한때 국정원에서 최고의 해커였지요?”

“네? 아닙니다. 그냥 그럭저럭밖에 안되는 실력입니다.”

“자자! 저기 앉아서 마저 얘기 나눕시다.”

시간이 갈수록 조문객이 늘어나면서 한산했던 장례식장은 사람들도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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