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제!
2023년 11월 25일 04:00,
북만주 북강도 북평(홍치쿤)시 북단 5km 지점.
1시간 전, 234차량화보병연대와 치열한 교전을 펼친 후 승리한 100경계대대는 상급부대의 명령에 따라 즉시 남서단 방향으로 퇴각 기동에 들어갔다.
234차량화보병연대가 괴멸된 직후 전방에서 제57차량화보병사단의 나머지 예하부대인 233차량화보병연대와 12전차연대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C-1000 해태 로봇과 10여 대의 장갑차만으로는 위 두 부대를 또다시 상대하기엔 100경계대대의 전력은 넉넉지 않았다. 그리고 장북 주둔지에서 긴급 기동한 제82기갑사단(발해)의 33기갑여단이 북평 북단에 도착했기에 상급부대에서는 즉시 100경계대대의 안위를 위해 퇴각 명령을 내린 이유였다.
100경계대대는 해태 로봇 13대와 현무 기동전투장갑차 4대가 피격되는 전력 손실을 입었지만, 경계임무 특화부대가 새롭게 구상된 대대방어전술로 연대급의 기계화부대를 이긴 것은 대단한 성과였다. 이에 100경계대대 장병들은 퇴각 길에 있었지만, 패잔병이 아닌 승전병이었다.
쿠르르르르릉!
퍼펑! 퍼엉! 퍼엉!
쿠앙! 쾅앙! 콰앙!
사방 수십 킬로미터까지 펼쳐진 광활한 설원은 이제는 수많은 캐터필러 자국에 진흙탕이 되어버렸다. 성난 들소가 뛰어다니듯 300여 대의 전차와 장갑차들은 서로를 향해 각종 전차포와 대전차유도탄을 쏘며 죽음의 향연을 벌렸다.
4.5세대급으로 분류되는 제82기갑사단(발해)의 33기갑여단 C-2A1 흑호 전차들은 탁월한 기동력을 앞세워 개미 떼처럼 몰려오는 12전차연대의 3.5세대급 T-90AM 전차들을 향해 플라즈마탄을 날렸다.
하지만, 앞서 100경계대대와 교전에서도 탁월한 성능을 보였던 T-90AM 전차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방호력과 전차포의 위력이 떨어지는 불리함을 수적으로 커버하듯 맹렬히 기동하며 125mm 활강포에서 대응 사격을 가했다.
퍼엉! 퍼엉! 퍼펑!
커엉! 콰아앙! 콰아앙!
1발의 플라즈마탄이 날아오면 대여섯 발의 날탄이 C-2A1 흑호 전차에 쏟아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33기갑여단의 상공에는 자탄을 뿌리는 미사일이 사정없이 떨어졌다.
한국 포병부대의 즉각적인 대포병 사격이 신경 쓰였던지 일반 포병부대가 아닌 사정거리 밖에서 대기 중이던 제20근위로켓여단에서 이스칸데르-M 미사일을 발사했다.
일부 이스칸데르-M 미사일은 자탄을 뿌리기 전, C-2A1 흑호 전차의 대공시스템인 흑룡 미사일에 요격되기도 했지만, 적 전차와의 교전에 집중한 터라 100% 요격하지 못했다.
여러 개의 이스칸데르-M 미사일에서 수백 개의 자탄이 상공에 뿌려지며 회피기동에 들어간 C-2A1 흑호 전차의 포탑 상단을 노렸다.
콰앙! 콰아앙! 콰앙!
마치 불꽃 축제라도 하듯 크고 작은 불꽃이 축구장 수십 개에 달하는 지역에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일순간 자욱한 화약 연기가 주변 일대를 휩쓸었다.
- 521호 전차 피격! 기동하는 데는 문제 없음!
- 614호 전차 피격! 포수 조준경 광학장비 손상! 기동 이상 무!
- 605호 전차 피격! 조종수 광학 카메라 손상! 기동 이상 무!
- 511호 전차 피, 피격! 조준경 및 SECM 센서 손상! 기동 이상 무!
33기갑여단의 통신망에서는 저마다 피격 보고가 이어졌으나 단순 외부 광학장비의 손상 보고뿐 완전히 피격되었다는 보고는 다행히도 없었다.
“단숨에 적 전력을 깔아 엎는다. 시간이 없다! 후방에 또 다른 기갑사단과 차량화보병사단이 몰려오고 있다. 대대장들은 물러서지 말고 그대로 돌파하도록!”
여단 통신망을 통해 여단장의 돌파 명령이 떨어졌다.
거리를 둔 상태에서 교전한다면 계속해서 적 포병의 표적이 되는 상황이었기에 여단장은 급속 돌파 명령은 상황 판단에 있어 적절했다. 단, C-2A1 흑호 전차의 강력한 방호력과 신뢰할 수 있는 능동파괴체제가 있었기에 가능한 명령이었다.
한차례 지옥 같은 적 미사일의 공격을 받은 33기갑여단 C-2A1 흑호 전차들은 터질듯한 엔진음을 내며 적 진형 한복판으로 뛰어들었다.
C-2A1 흑호 전차의 강력한 방호력과 능동파괴체제가 없더라면 이런 명령을 내릴 순 없었다.
6전차대대 3소대 흑호 전차 4대가 사방에서 날아오는 날탄을 피하며 적 진형 한폭판까지 들어섰다.
“와 이거 어떤 놈부터 잡아야 하나?”
632호 단차장은 파노라마 형식의 현시경을 보며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사방에 적 전차와 장갑차들이 우글우글하였다.
이런 생각도 찰라, 632호 단차장의 양손은 어느새 위험순위에 따라 표적 5개를 이미 지정했다.
표적 할당과 동시에 자동으로 포탑이 1번 표적을 향해 돌아갔다.
위이이이잉!
“1번 표적부터 강 병장이 알아서 쏴!”
야지 기동 간에도 부드럽고 신속하게 회전하는 포탑은 전방 2km 지점에서 사선으로 기동하는 T-90AM 전차의 옆구리에 포수 조준점이 정확하게 조준되었다.
“1번 표적 발사!”
단차장의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포수 강태원 병장이 발사 버튼을 당겼다.
쿠앙!
육중한 발사음과 함께 직선으로 날아간 플라즈마탄은 정확히 T-90AM 전차의 측면 포탑에 정확히 꽂혔다.
콰앙!
시원한 폭발음과 함께 옆으로 뒤집힐 정도로 들썩거린 T-90AM 전차는 검붉은 화염이 분출했고 그 사이로 시꺼먼 연기가 솟구쳤다.
“1번 표적 피격! 2번 표적 갑니다.”
피격과 동시에 632호 전차의 포탑은 2번 표적을 향해 회전했다.
전방 3200m 지점의 작은 언덕 위를 올라오는 T-90AM 전차의 하단에 포수 조준점이 조준됨과 동시에 또 한차례 120mm 활강포에서 불을 뿜었다.
쿠앙!
피이잉~
콰아앙! 쾅앙!
언덕 위를 올라 다시금 내려가려던 T-90AM 전차는 반응장갑을 덕지덕지 붙였음에도 재수가 없었던지 하필 몸체와 포탑 사이에 플라즈마탄이 직격 하자 거대한 폭발과 함께 깨져버린 포탑이 화염과 함께 하늘로 솟구쳤다.
10초도 안 되어 연달아 2대의 적 전차를 요리한 632호 전차는 3번째 표적을 향해 포탑이 회전하는 그때 크나큰 충격이 632호 전차 내부를 흔들었다.
커엉! 크크큭!
3시 방향에서 기동하던 T-90AM 전차에서 날탄을 발사한 듯했다.
“뭐, 뭐야! 저 방향에는 위험순위 전차는 없었는데?”
강한 충격에 잠시 뒤척거린 단차장은 급히 현시경을 돌려 방금 자신의 애마를 노린 적 전차를 찾았다.
3시 방향 4800m 지점, 길게 이어진 작은 능선 따라 기동하던 전차라 확인하지 못한 듯했다.
“강 병장아! 3번 표적보다 저놈부터 잡자! 긴급 표적 설정한다!”
“네, 맡겨만 주시지 말입니다.”
단차장이 긴급 표적을 설정하자 3번 표적을 향하던 포탑은 이내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고는 기동하며 포신만 632호 전차를 겨누고 있는 적 전차의 포탑 중앙에 십자 형태의 조준점이 도달했다.
퍼엉! 쿠앙!
플라즈마탄과 날탄이 동시에 발사되었다.
쉐이에엥!~
공기를 가르는 두 개의 전차 포탄은 지상과 일직선으로 날아가 서로 간 교차했고 이내 표적으로 삼았던 전차에 착탄 했다.
쾅앙! 콰앙!
동시에 도착한 날탄과 플라즈마탄,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T-90AM 전차에서 발사한 날탄은 이번엔 강력한 SECM(전파교란시스템)에 속아 632호 전차를 상단을 스치고 지나갔고 반대로 플라즈마탄은 정확히 T-90AM 전차의 포탑 정면을 강타했다.
2중 복합장갑과 반응장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공할 플라즈마탄은 여지없이 T-90AM 전차의 포탑을 날려버렸다. 포탑이 날아간 T-90AM 전차의 몸체는 서서히 속도를 늦추고는 이내 기동을 멈추고 말았다.
“격파! 격파!”
강태원 병장이 오른손을 치켜들며 환호했다.
“야! 강 병장아! 오늘 살아남으면 좋아하고 당장 3번 표적 잡아라!”
“아차차! 알겠습니다.”
★ ★ ★
2023년 11월 25일 04:20,
남주 서울특별시 용산구 B2 벙커(국군 합동지휘통제소 상황실).
전쟁 발발 4시간이 흐르자 국경선 일대, 러시아 각 군의 주공과 후공 부대의 분석이 대략적으로 확인되었다.
현재 가장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는 지역은 퇴각하는 100경계대대를 대신해 33기갑여단이 응전하고 있는 북평 북동단 설원이었다.
제5군의 주공으로 선봉인 제57차량화보병사단과 제59차량화보병사단, 제60차량화보병사단, 그리고 제212기갑사단이 몰려들고 있었다. 한국군 편제로 보자면 군단급 이상의 규모였다.
현재 33기갑여단은 수적 불리함에도 제57차량화보병사단을 상대로 기존 작전 안에 따라 효과적으로 교전했다. 하지만 나머지 3개 사단이 한꺼번에 몰려오면 33기갑여단 전력만으로는 고전을 면치 못할뿐더러 자칫 괴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응방안은 마련된 상태였다. 현재 제82기갑사단(발해)의 나머지 예하부대 34기갑사단과 35기계화보병여단이 북평 남서단 20km까지 기동한 상태로 조만간 교전에 합류할 예정이었다.
또한, 제2신속대응군사령부 소속의 4개 공수타격사단은 하바롭스크 일대에 공수작전을 펼쳐 제5군 주공부대의 후방 교란은 물론 주요 거점 도시를 점령하여 보급부대를 차단할 예정이었다. 이후 지금까지 명령만 기다리고 있던 전략급 무기를 총동원하여 한꺼번에 제5군 주공을 섬멸할 예정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전략급 무기란, 공군과 항공우주군 소속의 전폭기 공습과 전략미사일군의 각종 지대지 미사일이었다.
이렇게 러시아 동부군구 제5군에 대한 대응 작전은 물론 나머지 제35군과 제36군에 대한 대응 작전도 모두 마련된 상태였으나, 제29군이 문제였다. 제29군 역시 사전에 대응 작전이 마련된 상태였지만 생각지 못한 몽골 영토로 우회하여 침공한 통에 기존 대응 작전은 쓸모없게 되었다. 이에 합동참모본부에서는 다급히 새로운 대책안을 마련했다.
지난 동북아 전쟁의 중국전처럼 최대한 자국의 영토가 아닌 상대국 영토에서의 교전을 원칙으로 삼았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제29군을 어느 정도 내몽골자치주 영토 안으로 끌어드린 후 교전해야만 하는 한 불가피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이에 현재 내몽골자치주의 모든 시민에게 소개(疏開) 명령이 떨어진 상태였다. 이에 남만주나 중만주와 연결된 도로에는 피난 가는 시민들의 행렬이 줄을 이었다. 일부 고속도로는 국군의 기동을 위해 통제되었으나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오는 피난민들로 인해 큰 문제였다.
이런 문제로 작전본부의 참모진들은 공수타격사단을 제29군 후방인 몽골 영토로 투입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제5군에 대한 대응 작전 안도 대대적인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이유로 신성용 합참의장은 그 의견을 수렴하지 않았다. 대신 제36군을 상대할 2군단 7기갑사단(칠성)과 향후 연해주로 진격할 제7기동군단의 제30기계화보병사단(필승)을 긴급 투입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사실 합동참모본부는 이번 전쟁을 통해 러시아의 시베리아의 광활한 전 지역을 점령할 작전 안까지 계획하고 있었다. 아직 대통령에게 작전 안에 대해 보고를 하지 않은 상태였고 향후 러시아군의 모든 예봉을 꺾으면 시베리아로 향한 진공 작전 계획안을 올릴 예정이었다.
이런 큰 틀의 작전 안을 구상하고 있는 신성용 합참의장으로서는 기존 각 군의 대응 작전 안을 대폭 수정하기엔 큰 무리라 판단했다.
현재 합동참모본부가 생각하고 있는 시베리아 점령 지역의 한계선은 바이칼 호수부터 아나바르 강의 하류까지였다. 즉 러시아 영토의 1/3에 달하는 엄청난 지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