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93화 (393/605)

난제!

2023년 11월 24일 02:30,

남주 서울특별시 강서구 기밀보안국(안전가옥).

인천공항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밀보안국 소속의 경호1실 4과 3팀과 국가정보원에서 나온 대외정보국 2과 1팀은 사전에 출입국 관계자와 얘기가 되었는지 VIP 통로로 입국 수속을 마친 우은서 가족을 데리고 강서구의 어느 안전가옥에 도착했다.

급히 홍콩을 빠져나와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온 우은서는 아버지의 임종 소식을 듣고는 실신한 상태라 남편인 안민철 씨가 대신하여 이번 사건에 대한 조사를 받았다.

“처음 장인어른은 신고하려 했습니다. 국가의 극비 과학기술을 납치범들에게 절대 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안민철 씨는 쏟아지는 눈물을 머금고 그동안 있었던 일을 상세하게 쏟아냈다.

“하지만, 저와 와이프는 아이들 걱정에 절대 신고하면 안 된다고 장인어른을 말렸습니다. 3일간 고민하던 장인어른은 밤마다 손자 손녀가 눈에 밟힌다며 끝내 저희 말을 들어주셨습니다.”

“음, 중간 연락책은 누구였습니까?”

국가정보원 대외정보국 김진중 2과장이 질문했다.

“네, 납치범들은 요구사항을 와이프에게 요구했고 와이프는 장인어른에게 요구사항을 전달했습니다.”

“음, 이상하군요. 저희 경호팀에서 우진길 교수의 모든 전화 통화는 감청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따님과 통화하면서 그와 관련된 얘기는 저희가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기밀보안국 경호1실의 4과 3팀 박강원 팀장은 헛기침하면서 물었다.

국가 기밀과 관련하여 보안 때문에 감청을 하는 거지만 따지고 보면 다소 불법적인 행위였기 때문이었다.

“전화 통화는 납치범들이 알려준 암호화 형식의 대화로 통화를 했습니다.”

“음, 그랬군요.”

박강원 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부인께서 납치범들의 얼굴은 봤습니까?”

“아니요. 처음 납치되었을 때부터 얼굴을 가렸기에 못 봤다고 했습니다. 단지, 유창한 영어로 자기들끼리 대화했고 한 명이 북경어로 전화 통화를 한 것을 희미하게나마 들었다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안민철의 진술 내용은 우진길 교수의 유서 내용과 맞아떨어졌다.

“그럼 부인께서 중간 연락책으로써 납치범들과의 통화내용을 녹음한 건 있습니까?”

김진중 2과장의 질문에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가 싶더니 이내 자신의 무릎을 치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네, 있습니다. 잠시만요.”

안민철은 여행용 가방을 뒤적이더니 스마트폰 하나를 꺼냈다.

“이겁니다. 지금은 쓰지 않은 폰인데, 처음 납치범들과 통화할 때 몇 번 통화내용을 녹음했다고 합니다.”

“오! 잘됐군요.”

김진중 2과장이 환한 미소로 폰을 건네받자 안민철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그런데, 그들의 통화음성이 변조된 목소리로 통화를 해서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원음으로 복구할 수 있을 겁니다.”

“아~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처음 몇 번 통화내용을 저장하고 계속 변조된 목소리로 통화를 해서 와이프가 그다음부터는 녹음하지 않았습니다.”

“괜찮습니다. 이 정도면 수사하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장인어른은 언제쯤 한국으로 올 수 있습니까?”

“아! 그 부분은 현재 홍콩 수사당국과 조율 중입니다. 최대한 내일이라도 본국으로 호송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이후 조사는 2시간이 더 지나서야 1차 조사가 마무리되고 끝났다. 일단, 납치범들의 변조된 통화음성이 담긴 스마트폰을 확보했기에 실낱같은 납치범들의 정체를 파헤칠 수 있게 되었다.

★ ★ ★

2023년 11월 25일 02:30 (쿠르디스탄시각 24일 20:30),

쿠르디스탄 공화국 아리주 도우바야즛 신정부 청사.

쿠르디스탄 공화국의 수도 도우바야즛 시내는 온종일 축제 분위기였다. 현지 시각으로 오전 9시 30분경 쿠르디스탄의 마지막 점령지인 키르쿠크 시청에 태극기와 쿠르디스탄 공화국기가 게양식이 치러졌기 때문이었다.

마치 독립 전쟁이 끝난 거처럼 수많은 쿠르디스탄 공화국 시민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공화국기를 흔들고 독립을 외쳤다. 축제 아닌 축제가 이어지고 있었다.

차 한 대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인파가 도로와 길거리를 장악한 가운데 쿠르디스탄 공화국의 신정부 청사 앞 광장도 시민들의 함성과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빠방! 빠바바방!

어디선가 튀어나온 트럭 한 대가 경적을 울리며 광장 쪽으로 질주했다. 갑작스러운 트럭의 출현에 광장에 있던 시민들은 몸을 피하려 했지만,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빼곡히 몰려 있었던 시민들은 인간 장벽에 막혀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트럭과 부딪쳤다.

닥치는 대로 시민들을 치며 질주한 트럭은 급기야 광장을 가로질러 신정부 청사 앞까지 도달하더니 이내 엄청난 폭발음을 울리며 폭발했다.

콰앙! 쿠아아아앙!

작은 버섯구름 화염이 솟구치며 주변 일대를 삼켰다. 거대한 후폭풍이 순간속도로 퍼져나가며 시민들은 물론 신정부 청사 건물까지도 날려버렸다.

으악! 쿨럭! 크어억!

한 치 앞도 볼 수 없을 정도로의 희뿌연 먼지가 주변을 삼킨 가운데 여기저기에서 고통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몇 분까지 축제 분위기였던 이곳 신정부 청사 광장은 지옥의 아비규환으로 바뀌었다.

어느 정도 먼지가 가라앉자 보이는 광경은 끔찍했다. 부서진 건물 잔해 사이로 사지가 찢기고 피투성인 시신들이 즐비했고 운 좋게 살아남은 사람들은 무의식중에 살려달라는 비명을 내질렀다.

어느 엄마는 피투성이 채로 쭉 늘어진 아기를 끌어안고 절규하듯 하늘을 보며 소리쳤다. 하늘을 원망하는 성토였다.

삐용삐용삐용!

이날 도우바야즛 시내는 응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끊이지 않고 울렸다.

★ ★ ★

2023년 11월 25일 02:30 (쿠르디스탄시각 24일 20:30),

쿠르디스탄 공화국 반주 바쉬칼레 주청사.

아리주와 함께 1차 독립을 선포한 반주의 모든 도시에서도 수만에 이르는 시민들이 도로로 나와 도우바야즛와 마찬가지로 축제 분위기였다.

반주의 주도인 바쉬칼레 주청사 건물 앞도 시민들의 행렬이 이어졌고 각종 푯말과 공화국기를 들고 외쳤다.

“쿠르디스탄 공화국 독립! 쿠르디스탄 공화국 독립! 쿠르디스탄 공화국 독립!”

저마다 웃음꽃이 피고 온 가족이 나와 축제를 즐겼다. 곳곳에서 크고 작은 공연을 했고 통 큰 식당에서는 공짜로 음식을 시민들에게 대접했다.

시내 치안을 책임지는 주 보안군 역시 축제 분위기에 들떠 총을 등에 메고 그들과 함께했다. 100여 년간 나라를 잃고 타국의 이익 타산에 따라 수많은 고통을 받았던 쿠르드족의 한 맺힌 응어리를 오늘 죄다 풀려는 기세였다.

어린이나 어른이나 남자나 여자나 할 거 없이 목청이 터져라. 외치며 행진하는 시민 사이로 온통 검은색 아랍 복장을 한 몇 명의 사내가 갑자기 겉옷을 벗어젖히며 소리쳤다.

“알라후 아크바르(알라신은 위대하다)”

겉옷이 벗겨진 그들의 몸에는 IED(사제폭탄)이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가까이 있던 몇몇 시민들이 놀라며 피해라고 소리쳤지만, 시민들의 외침에 묻히고 말았다.

쿠앙! 쾅앙! 콰아앙아!

귀청을 찢을듯한 폭발음이 바쉬칼레시 전체에 울렸고 거대한 화염이 하늘로 솟구쳤다. 이러한 폭발은 총 6번이나 일어났다.

★ ★ ★

2023년 11월 25일 02:30 (쿠르디스탄시각 24일 20:30),

쿠르디스탄 공화국 키르쿠크주 키르쿠크 시청.

쿠르디스탄 독립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키르쿠크 시청 앞 광장!

온종일 임시 막사에서 달콤한 휴식을 취했던 111해병전차대대의 3전차소대원들은 선선한 밤이 되고 한창 진행되고 있는 축제 분위기를 경험하고자 중대장에게 외출 승인을 받고 밖으로 나왔다.

3전차소대원들이 지나갈 때마다 시민들은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어떤 노인은 굵은 눈물을 흘리며 막무가내로 안기도 했다.

“캬! 이 정도 인기면 여기서 살아도 되겠는데?”

아리따운 여인 두 명과 눈을 마주치고 손 인사를 건넨 김윤성 중사가 입에 귀까지 찢어진 채로 말했다.

“그냥 이곳 여인이랑 결혼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보니 저 두 여자도 그렇고 대체로 쿠르디스탄 여자들 한 미모 하잖습니까?”

놀리는 것인지 진심인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이해성 상병이 말하자 김윤성 중사의 표정이 진지해지며 대꾸했다.

“마! 서울에 있는 복순이가 기다린다.”

“헉! 복순이? 이름이 참!”

“참? 뭣 마?”

“아! 아름다우십니다.”

“자식아! 이름은 그래도 얼굴은 아까 두 여인보다 이뻐!”

“아예! 그러십니까?”

이때 길민준 병장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사진 한 장 안 보여줬습니까? 단차장님?”

“사진? 너희가 보여달라고 했냐?”

“아! 당연히 없는 줄 알고······.”

갑자기 올라간 김윤성 중사의 손에 길민준 병장은 움찔하며 말을 잇지 못하고 몸을 뒤로 뺐다.

“콱! 이 자식이! 자! 봐라! 봐!”

머리까지 올렸던 손을 가슴 주머니로 옮긴 김윤성 중사는 조그마한 수첩을 꺼냈다. 수첩 안에는 여러 장의 사진이 있었다.

“와! 진짜 보여주시는 겁니까?”

이해성 상병과 길민준 병장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내미는 사진을 보고는 이내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아 정말! 개 사진 아닙니까?”

“응! 맞아! 우리 복실이야.”

“아! 역시! 없었어.”

“하하하, 자식들! 표정들 봐라? 그렇게 실망스러우면 너희가 소개 좀 해주던가 이놈들아. 가자! 저 음식 맛나 보인다.”

김윤성 중사가 실망한 이해성 상병과 길민준 병장과 어깨동무를 하고는 길거리에서 음식을 파는 작은 자판점으로 끌고 갔다.

“쏘시는 겁니까?”

“당근! 너희들보고 내라고 할까 봐?”

“역쉬! 무적의 132호 단차장님이십니다.”

“이제 알았냐? 하하”

널따란 시청 광장에는 밝은 조명 불빛 아래 여러 공연이 펼쳐졌고 아랍 특유의 향신료가 풍기는 여러 음식을 파는 자판점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뭘 먹어볼까나?”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여러 음식을 이리저리 보며 고르려는 그때 시청 현관 쪽 광장에서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충격파가 몰아쳤다.

쿠아앙! 콰아앙아!

이어 거대한 후폭풍이 시꺼먼 먼지와 함께 광장 일대를 휩쓸었다.

“아악! 뭐, 뭐냐?”

후폭풍에 휘말린 사람들이 사정없이 날아갔다. 당연히 자판점에서 음식을 고르던 김윤성 중사 일행도 온갖 음식을 뒤집어쓰고는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다행히 보호슈트 덕분에 부상은 당하지 않았지만, 머리는 멍했고 눈앞은 먼지구름에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악! 머리야. 네들 괜찮냐?”

김윤성 중사가 땅을 엉금엉금 기어 다니며 이해성 상병과 길민준 병장을 찾았다.

“저! 여깄습니다.”

부서진 자판대 사이로 이해성 상병의 얼굴이 쑥 하니 튀어나왔다.

“길 병장은?”

“아 저도 여깄습니다.”

뒤쪽 벽에 부딪히고 쓰러졌던 길민준 병장이 옷에 묻은 음식을 떼며 다가오고 있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폭, 폭탄테러인 거 같다.”

“테러요?”

테러란 말에 놀란 이해성 상병이 실드 글라스를 내리고는 주변 일대를 살폈다. 아직도 먼지구름이 주변을 깔려 한 치 앞도 볼 수 없었지만 실드 글라스의 인버터 모드는 먼지구름을 뚫고 주변 상황을 상세하게 볼 수 있었다.

“아! 진심 심각한데요?”

실드 글라스를 통해 보인 광경은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특히 시청 현관 쪽 광장에는 어림잡아 300여 명이 쓰러져 있었다.

폭발 원천 지점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공연을 보고 있던 3소대 소대장인 김규환 중위가 뛰어왔다.

“다들 괜찮나?”

실드 글라스를 통해 정확히 소대원들을 찾아다니며 살피던 김규환 중위가 본대로부터 날아온 무선통신을 받았다.

“네, 알겠습니다. 바로 복귀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이번 폭발로 중대에서 복귀하라는 명령인 듯했다.

“3소대! 비상사태다. 지금 즉시 부대로 복귀한다. 서둘러!”

소대장의 복귀 명령이 떨어지자 오랜만에 외출해 축제 분위기에 젖어있던 마음을 털어내고 무작정 대대 주둔지로 뛰기 시작했다.

뛰고 있는 그들의 뒤편으로 아우성치는 시민들의 비명이 그들을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