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면전
2023년 11월 25일 01:00,
북만주 북강도 제38 기계화경계사단(금강) 북동단 국경선 GOP 제5-13 섹터로부터 남서단 후방 30km 지점.
상급부대로부터의 퇴각 명령에 긴급 기동으로 후방 40km까지 퇴각한 지점에는 5중대 3소대뿐만 아니라 100경계대대 전체 병력이 모두 집결하고 있었다.
100경계대대가 경계 임무에 투입된 곳은 지리적으로 삼각뿔처럼 툭 튀어나온 곳이었고 북청강(아무르강) 줄기가 사방으로 갈라져 마치 섬과 같은 지역이었다. 이런 곳에서 시간을 지체했다가는 자치 다른 방향에서 국경선을 돌파한 러시아군에 포위될 수 있었다.
이에 27경계연대본부에서는 100경계대대에 긴급 퇴각 명령을 내렸고 후방 지점에서 대대방어전술로 전환하여 진공하는 러시아 제5군 제57차량화보병사단을 막으라는 임무가 주어졌다.
초반 교전에서 각종 광학 센서가 고장 나 대대 정비반에 입고된 로봇을 제외한 총 51대의 C-1000 해태 로봇은 각자 20m 간격을 두고 두 줄로 반원형 형태로 자리를 잡고 잠시 후 있을 대규모 교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경계 임무 당시 해태 로봇 간 800m라는 거리를 두고 독자적인 교전을 벌일 때와 대대에서 운용하는 모든 해태 로봇이 한자리에 모여 대응하는 대대방어전술 개념의 교전 능력은 비교 불가할 정도로 우수했다.
교전 시 사족 다리로 인해 기동능력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지만, 자체적인 대공 능력은 물론 대인 및 대전차 교전에서 상상 이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화력을 보유한 C-1000 해태 로봇이었다.
이론상 해태 로봇 1대는 중대급 병력 이상의 능력을 갖췄다고 했다. 즉 51대는 51개의 중대급 병력이 모인 상태였다. 상급부대 규모로 따지자면 12개 대대를 보유한 1개 사단급 전력이었다.
반원형 형태의 해태 로봇 뒤로 9대의 C-1100 콘솔장갑차와 대대 지휘장갑차가 보기 좋게 도열해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대대 및 중대 소속의 각종 장갑차가 사주경계 형식으로 2차 방어라인을 구축하고 있었다.
이 중 5중대 3소대 콘솔장갑차 안에는 보이지 않은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6명의 해태 로봇 조종 오퍼레이터들은 온 신경이 곤두선 채로 자신의 모니터를 주시했다.
한편 하늘에는 100경계대대에서 날린 스파이더-II 드론 여러 대가 국경선 일대까지 날아가 진흙같이 어두운 지상의 상황을 샅샅이 정찰했다.
현재 북청강 국경선에서는 가끔 떨어지는 포탄을 무릅쓰고 1차로 도하 한 2개 연대 중 233차량화보병연대가 12전차연대의 도하를 지원하기 위해 주변 일대에 대한 삼엄한 경계를 펼쳤다.
러시아의 대규모 포병부대와의 대포병 교전 때문에 적극적으로 도하 하는 러시아군에게 포격을 가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234차량화보병연대는 광활하게 펼쳐진 눈밭 위에 각종 캐터필러 자국을 남기며 진공에 들어갔다.
적어도 10여 분 후면 100경계연대와 맞추질 거리였다.
100경계대대 지휘장갑차 내부의 스크린에 스파이더-II 드론으로부터 정찰된 영상이 분할화면으로 보였다.
수많은 발광체가 파란색으로 표현되는 북청강(아무르강) 바닥을 건너고 있었다.
“지원부대는 언제쯤 도착하나?”
대대장 나상원 중령이 작전참모에게 물었다.
“현재, 82기갑사단의 33기갑여단이 후방 121km 지점까지 도달한 상태입니다.”
“음, 121km라······. 두 시간이면 이곳에 도착하겠군”
“네, 33기갑여단의 야지 기동 속도를 고려한다면 두 시간 이내면 도착하기에 충분할 것으로 보입니다.”
나상원 중령은 손목시계에 스톱워치를 설정하고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외쳤다.
“좋아! 2시간만 버텨주면 되는 거야.”
하지만 작전참모를 비롯한 대대 참모들의 얼굴은 굳어있었다.
“전방 22km 지점 234차량화보병연대의 선두 장갑차 확인!”
정찰 드론 운용 오퍼레이터로부터 통신망을 통해 보고가 올라왔다.
“생각보다 빠르게 진공하는군!”
스크린에 비친 영상을 확인 한 나상원 중령은 대대 통신망을 개방하고는 직접 통신 수화기에 대고 명령을 내렸다.
“각 중대! 10km 거리에서 교전 시작한다. 할당된 구역 책임지고 방어하도록! 그리고 기동중대도 출동 대기 하도록”
★ ★ ★
2023년 11월 25일 01:10,
내몽골자치주 몽골 인접 국경선 GOP 제22-3 섹터.
친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몽골과의 외교 관계에 따라 국경선에는 철책선은커녕 일체의 그 어떠한 장벽도 없었다. 단지, 100m 간격으로 국경선이라는 표지판만이 있었고 국경선 일대에 투입된 경계 임무를 담당하는 군대 역시 내몽골자치주의 자치연방군이었다.
내몽골자치주 차지연방군의 장병들은 대부분은 동북아 전쟁 이후 한국으로 귀화한 조선족과 중국인, 그리고 일부 몽골인들이었다. 장교나 부사관 같은 경우는 기존 한국인이었지만, 전체적인 비율로 보자면 1:20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대한민국 군대 중 군기가 가장 빠진 부대라는 오명과 함께 일부 젊은 사람들은 당나라연방군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지급된 무기들 역시 최신식 무기로 배치받고 반납한 무기들이 배치되었다.
러시아 쪽 국경선 일대 전체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진 상황에서 몽골 쪽 국경선은 초롱초롱한 별빛 아래 고요하기만 했다.
GOP 제22-3 섹터 초소 앞은 수 킬로미터까지 한눈에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널따란 게 펼쳐진 평지였다. 평지라고는 하나 척박했다. 몽골 부족민이나 유랑하며 살 수는 있으나 한곳에 정착해서 살 수 있는 땅은 아니었다.
“하암~ 얘기 들었소?”
오늘도 야간 경계 임무에 투입된 조선족 염동열 상병이 맞선임인 권성동 병장에게 물었다.
“뭘? 말이오?”
“초소 투입 전에 생활관에서 잠깐 라디오 뉴스를 들었는데 말이오. 지금 러시아와 전쟁이 났다고 하지 않소?”
나이 30살에 늦깎이 군대에 입대한 염동열 상병이 한참 어린 맞선임 권성동 병장에게 뉴스에서 들었던 얘기를 꺼냈다.
“그거이 정말이오?”
“내래 똑똑히 들었소.”
“이거이 우리까지 불똥 튀기진 않겠디?”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권성동 상병의 말에 염동열 상병 역시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 말이오. 내래 그 뉴스를 듣고 그냥 집으로 튈까 고민하지 않았같소?”
“그렇다고 탈영하면 골치 아푸지 않소? 어쩐지. 근래 데프콘이다! 경계강화 1호다! 한 게 다 이유가 있었구만기래”
“월급 많이 주고 제대 후에도 직업알선이다 뭐다 해서 지원했더니 제대 6개월 두고 이게 뭔 일인지 모르갔소.”
“어쨌든 우리야 여기서 몸 사리고 조용히 있어야겠소.”
GOP 제22-3 섹터의 2층 초소 안에서 쭈그려 앉아 쓸데없는 말을 주고받는 사이 전방 수 킬로미터에서는 어둠을 틈타 움직이는 수상한 그림자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삐익! 삐익!
- 둘둘 다시 삼! 여기는 둘둘 다시 공!”
중대본부로부터 통신이 날아왔다.
“귀찮게끔 자꾸 통신을 보내는 기야.”
벌써 두 번째인 통신에 짜증 난 염동열 상병이 귀찮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통신기의 수화기를 들고는 대답했다.
“여기는 둘둘 다시 삼!”
- 전방 상황 상태는 어떤가?
통신기 너머 들려오는 야간당직사관의 목소리에 염동열 상병이 대충 대답했다.
“양호! 양호!”
- 현재 데프콘1이 발령된 상황이니 경계 임무에 충실하도록
“여기는 둘둘 다시 삼! 알갔습니다.”
초소 경계 임무 시 한 명은 야간투시 망원경으로 전방 주시를 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귀찮음에 빠진 두 군인은 다시금 쭈그려 앉고는 쓸데없는 대화를 이어갔다.
“짜증 나는데 담배 한 대 피워야겠구먼, 염 상병님도 한 대 피우겠소?”
“그래 내도 한 대 피워야겠소”
급기야 초소 내에서 담배까지 피우려는지 한 개비씩 입에 물고 불빛이 새나가지 않도록 최대한 구석에서 몸으로 막고 불을 붙이려는 그때, 갑자기 주변 일대가 환해졌다.
“뭐! 뭐네?”
깜짝 놀란 나머지 입에서 담배를 떨어뜨린 권성동 병장이 급히 일어나 전방을 바라봤다.
수십 발에 달하는 조명탄이 어두운 하늘을 대낮같이 밝히고 있었다.
“이게 뭔 일이오?”
염동열 상병 역시 상체를 일으켜 초소 창문 넘어 전방을 바라봤다.
“이거이 혹시 러시아군 아니오?”
염동열 상병의 말에 권성동 병장의 얼굴은 설마 하는 표정으로 바뀌었고 순간 찰나, 초소 앞쪽에서 불빛이 번쩍이는가 싶더니 섬광이 작렬했다.
쿠앙!
으악!
섬광과 함께 엄청난 폭발이 2층 초소를 덮쳤다. 외마디 비명과 함께 염동열 상병과 권성동 병장은 폭발위력에 휘말리고는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으윽!
초소 폭발 잔해와 함께 땅바닥에 나뒹군 염동열 상병은 온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흐릿하게 보이는 자신의 몸을 확인하자 몸 곳곳은 파편을 맞았는지 붉은 피가 솟구쳤다. 그리고는 밀려오는 고통에 사지를 흔들며 비명을 내질렀다.
으악! 살, 살려줘!
염동열 상병이 극심한 고통에 발버둥을 치는 가운데 5m 정도 떨어진 땅바닥에는 얼굴 없는 권성동 병장의 시신이 축 늘어진 채 쓰러져 있었다. 폭발 당시 날카로운 파편에 목이 잘린 듯했다.
한편,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린 GOP 제22-3 섹터 초소의 전방 수 킬로미터에서는 거친 전차와 장갑차가 거친 엔진음을 울리며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들의 정체는 러시아 동부군구 제29군 소속의 예하 부대 중 하나인 제36차량화보병사단이었다.
사전 침공작전 안에 따라 불법적으로 몽골의 도르노트 지역을 침범하여 우회한 제36차량화보병사단이 내몽골자치주 관할의 몽골 국경선 일대로 진공한 것이었다.
이것은 국제 관계로 볼 때 몽골에 대한 선전포고와 같은 불법적인 군사적 행동이었다. 현재 몽골 도르노트 지역으로 우회하는 러시아 동부군구 소속의 부대는 제36차량화보병사단 이외에도 제18기관총포병사단과 제305포병여단이 뒤따르고 있었다.
쿠르르르릉!
얼마 지나지 않아 선봉 부대인 제36차량화보병사단의 제551기갑여단 T-14 아르마타 전차들이 60km에 달하는 야지 기동을 펼치며 하나둘 아무런 제약 없이 국경선을 돌파했다.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린 GOP 제22-3 섹터 초소 근방을 지나치던 T-14 아르마타 전차 한 대가 땅바닥에서 극심한 고통에 발버둥 치는 염동열 상병을 밟고 지나갔다.
으엑!
육중한 캐터필러에 짓이겨진 염동열 상병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즉사했다. T-14 아르마타 전차가 지나고 난 자리에는 인간의 형체는 온데간데없고 피떡이 되어버린 뼈와 살점만이 보였다. 일부 살점들은 캐터필러에 걸려 따라가고 있었다.
한편, GOP 제22-1 섹터부터 12 섹터까지 경계를 책임지고 있는 자치주방위군 제122보병사단의 33연대 8대대 병력이 각자 개인화기를 들고 임시 방어진지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잘 들어라! 30분만 버티면 된다. 현재 지원부대가 달려오고 있단 말이다. 훈련하던 대로 하면 모두 살 수 있다.”
관사에서 자고 있다가 비상 사이렌 소리에 급히 대대본부 건물에 도착한 오숭길 중령은 대대 모든 통신망을 개방하고 혹시나 두려움에 탈영병이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사기를 북돋는 말을 전했다.
그만큼 오숭길 중령 역시 대대 장병들의 충성심이나 군기가 빠져있음을 알고 있었다.
이때 누군가로부터 통신망을 통해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3번 섹터와 4번 섹터, 5번 섹터에서 적군이 몰려온다. 동요하지 말고 모두 제자리서 사수하라! 끝까지 진지를 사수하라! 지원부대가 올 때까지 버텨야 한다.”
88대대에서도 강직하기로 유명한 8중대장 남길원 대위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현재 88대대가 상대하는 러시아군은 일반 보병이 아닌 T-14 아르마타 전차를 운용하는 기갑여단이었다.
대전차 무기가 있다지만, 대대급 보병병력으로 최신예 T-14 아르마타 전차를 상대하는 건 불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과 같았다.
쿠앙! 쿠앙!
무인포탑시스템으로 움직이는 T-14 아르마타 전차의 주포는 우렁찬 발사음을 내며 불꽃을 뿜었다.
가공할 T-14 아르마타 전차의 고폭탄이 그대로 임시 진지 곳곳을 강타했다. 이에 임시 진지에서 고개를 숙이고 총구만 내민 채 사격하던 병사들이 사방으로 날아갔다.
개인화기가 C2 레이저 라이플도 아닌 C2C1 소총으로 무장한 88대대 병사들은 추풍낙엽 떨어지듯 학살당했다.
가끔 현궁 대전차유도탄이 날아가 무서운 속도로 기동하는 T-14 아르마타 전차를 노렸지만, 반응장갑으로 도배한 T-14 아르마타 전차의 정면장갑을 뚫지 못했다. 도리어 보복사격에 현궁 대전차유도탄을 발사했던 병사들은 시신도 찾지 못할 정도로 폭사했다.
일부, 두려움에 소극적인 교전을 벌이거나 뒤도 안 보고 도망가는 병사도 있었지만, 대부분 병사는 생각 이상으로 용감히 응전했다.
이렇게 88대대가 바위에 달걀 던지듯 힘겨운 교전을 펼치는 가운데 내몽골자치주에 주둔 중이던 제3야전군사령부 소속의 6군단 제65경갑보병사단(일몰)과 제5기갑사단(열쇠)이 신속하게 88대대 방향으로 기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