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90화 (390/605)

전면전

2023년 11월 25일 00:20 (이라크시각 18:20),

이라크 키르쿠크주 키르쿠크 111해병전차대대 임시 주둔지.

“길 뱅장님! 아직도 안 나왔습니까?”

중대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이해성 상병이 부풀어 오른 똥배를 두드리며 말했다.

“제길 극동함대와의 해상전만 주야장천 나오고 우리 뉴스는 아까 잠깐 나왔다.”

“어라! 그럼 우리 게양식 장면도 나왔습니까?”

“나오긴 개뿔! 고작 여성 앵커의 짤막한 멘트만 나왔다.”

오후 내내 임시 생활관에서 꿈쩍도 안 하고 위성과 연결된 TV 앞에서 KBS 뉴스만 보고 있던 길민준 병장이 벌러덩 침대에 눕고는 이불 발차기를 시전했다.

“아! 그러니까, 식사는 하고 보시라 했잖습니까? 살이 토실토실한 삼계탕이었는데, 아! 배불러~”

이때 다른 타 분대들도 하나둘 생활관으로 들어왔다.

“야! 길민준이~ 꼬시다. 꼬시다.”

131호 포수이자 길민준 병장과 동기인 오덕균 병장이 대화를 들었는지 얼굴에 함박꽃이 핀 채로 놀려댔다.

“아나! 저 오리 쉐낑”

“너 마! 집에까지 전화했다며? 뉴스 나오니까 다들 뉴스 보라고. 크크크”

“오리 병장! 아가리 닥치시지말입니다.”

“그렇게는 못 하지말입니다. 하하하”

“그러다가 병풍 뒤 송장 신세 되지말입니다.”

“그건 너지 말입니다.”

또 시작되었다.

다른 동기들은 전우애로 친하다는데 저 두 동기는 만날 때마다 저렇게 말도 안 되는 말을 주고받으며 말싸움을 했다. 1여 년간 이어온 일상이었다. 이제는 소대에서도 왕고급 짬밥이라 말릴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아 또 시작이네. 저 두 뱅장님!”

이해성 상병은 고개를 절레거리며 침대에 눕고는 TV를 봤다. 이때, 12시 야간 뉴스가 시작되고 앵커의 첫마디가 이번 쿠르디스탄 공화국의 독립전쟁에 있어 마지막 점령지인 키르쿠크시를 성공적으로 점령하고 태극기와 쿠르디스탄 공화국기기 게양식이 있었다는 멘트가 나왔다.

“아! 길 뱅장님! 나옵니다. 나와!”

순간 이해성 상병의 말에 서로의 얼굴을 보며 으르렁 되던 두 병장의 시선이 일제히 TV에 쏠렸다.

TV 화면 속의 뉴스에서는 낮에 있었던 태극기 게양식 영상이 클로즈업되면서 보이기 시작했다.

“예스! 그라줴! 그라줴!!”

길민준 병장은 동기인 오덕균 병장의 양 볼살을 잡아당기고는 그대로 자신의 침대로 날아와 TV 화면에 시선을 못 박았다.

“아! 나온다. 나온다. 봐라! 오리 병장아! 이 형님의 멋진 모습을······. 하하하”

천천히 확대되며 게양식을 하는 312호 승조원의 얼굴이 보이려는 그때, 갑자기 속보 자막이 뜨며 영상이 바뀌었다.

“속보입니다. 현재 동북부 국경선 일대에서 러시아군의 대규모 진공이 시작되어 교전이 발발했다고 합니다.”

앵커의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오며 영상 화면까지 바뀌자, 순간 길민준 병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 하필 이때 속보야 제길!”

만천하에 자신의 멋진 모습을 공중파 방송을 통해 내보낼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가 방금 속보뉴스로 바뀌자, 길민준 병장은 침상을 끌어안으며 절규했다.

“으아아악! 안돼!”

“캬캬캬, 안되긴 뭐가 안 되지 말입니까? 다 되지말입니다.”

배꼽을 잡고 웃어젖히며 다가온 오덕균 병장이 길민준 병장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이에 길민준 병장이 주먹을 허공에 휘두르며 소리쳤다.

“꺼져 이 오리 새끼야!”

“하앗! 크크 퀙퀙! 퀙퀙!”

오덕균 병장이 오리 시늉과 함께 오리 소리를 내는 가운데 나머지 소대원들은 속보뉴스에 귀를 기울였다.

“뭐, 뭐야? 러시아랑 전쟁이 난 거야?”

“아! 시파! 한반도에 또다시 전쟁?”

“엿 됐다. 우리 삼촌 러시아에 계시는데······.”

철없는 두 병장이 아웅다웅하는 사이 소대원들은 현재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저마다 한마디씩 던졌다.

★ ★ ★

2023년 11월 25일 00:30,

북만주 북강도 제38기계화경계사단(금강) 북동단 국경선 GOP 제5-13 섹터.

러시아군이 발사한 수많은 조명탄이 환하게 비추자 먹구름과 눈발에 어두웠던 하늘은 마치 대낮처럼 환해졌다.

그리고는 끊이지 않은 포성이 천지를 울렸고 국경선 너머 곳곳에서는 눈발 사이로 희미하게 불빛들이 번쩍거렸다.

쿠아앙! 콰아아앙!

513호 해태 로봇이 있던 자리에 수많은 포탄이 낙하했다. 귀청을 찢을듯한 폭발음과 함께 수많은 파편이 사방으로 비상했다. 간혹 513호 해태 로봇의 외부장갑판에 날아와 부딪쳤지만, 강력한 장갑은 흠집만 날 뿐 끄떡없었다.

현재 GOP 제5-13 섹터 방향으로 밀고 들어오는 러시아 육군은 제5군 소속의 제57차량화보병사단 병력이었다.

2년 전, 1차 동북아 전쟁 당시 제57자동화소총사단 일부 병력이 국경선을 넘어와 잠시 교전을 펼치고 괴멸 수준의 피해를 보고 후퇴했던 그 부대였다. 지금은 제57차량화보병사단이란 이름으로 새롭게 편제되었다. 대한민국 육군으로 말하자면 기계화보병사단과 같은 개념이었다.

최신장갑차는 물론 각종 차세대 무기가 배치된 제57차량화보병사단은 현대적인 기계화부대로 완전히 탈바꿈한 상태로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전투력 면에서 월등히 상승했다.

제57차량화보병사단의 예하부대인 233차량화보병연대와 234차량화보병연대가 선봉으로 국경선 돌파를 시도하는 가운데 그 길목에서 경계 임무를 수행하는 5중대 3소대의 C-1000 해태 로봇 6대가 가용한 무기를 사용하며 국경선 돌파를 저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C-1000 해태 로봇은 4.8km의 국경선에 총 6대뿐이었다. 평시의 경계 임무는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지만, 이렇게 한곳을 집중해 사단급 병력이 몰려오는 경우는 고작 6대의 경계 로봇만으로 막기에는 한계였다. 그렇다고 러시아군의 국경선 돌파를 두고 볼 순 없기에 5중대 3소대의 오퍼레이터들은 C-1100 콘솔장갑차에서 최선을 다해 C-1000 해태 로봇을 조종하며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쭈웅쭈웅쭈웅쭈웅~ 쭈웅쭈웅쭈웅쭈웅~

12mm 레이저 벌컨 빔은 러시아 포병이 발사한 각종 포탄을 요격하느라 쉴 새 없이 하늘에 붉은 빛줄기를 뿌려댔다.

붉은 빛줄기가 어두운 하늘에 뿌려질 때마다 크고 작은 폭발음과 함께 불빛이 번쩍였다.

날아오는 표적 20개를 동시에 추적하고 동시에 요격이 가능한 C-1000 해태 로봇의 대공방어 요격 시스템은 그 성능을 100% 발휘하고 있었다.

국경선 너머 러시아 포병사단의 각종 포병부대에서 발사하는 수많은 포탄을 요격하지 않았다면 이곳 대한민국 측 국경선 일대는 쑥밭이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 시각, 3소대 C-1100 콘솔장갑차 안에서는 오퍼레이터들의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

“아! 숫자가 너무 많습니다.”

513호 해태 로봇을 조종하는 오퍼레이터가 자신의 모니터에 여러 비전 모드로 비치는 각종 발광물체를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각종 장갑차와 인형들이 물밑 듯이 밀려오고 있었고 주변 일대에는 포탄들이 쉬지 않고 낙탄하고 있었다.

“아! 516호 피격! 피격! 비전 모드 센서 고장!”

자신이 담당하는 516호 해태 로봇이 포탄 파편에 피격되자 지직거리는 모니터를 보며 한숨을 내쉬며 보고했다.

“그냥 눈으로 보고 쏴!”

소대장 역시 현재 상황에 긴장했는지 평소와는 다르게 떨리는 음성으로 명령을 내렸다. 이에 516호 오퍼레이터는 비전 모드가 고장 난 상태로 일반 비전 모드로 확인하며 다가오는 러시아군을 조준하고 각종 무기를 발사했다.

“소대장님! 중대본부로부터 연락입니다.”

C-1100 콘솔장갑차의 통신병이 중대본부에서 하달된 명령을 전파했다.

“뭐, 뭐래?”

“현 시간부로 5중대는 전송한 좌표로 퇴각!”

중대본부로부터 전송된 좌표는 국경선으로부터 후방 40km 떨어진 지점이었다.

“퇴각하는 건가?”

소대장은 디지털 지도에 좌표 지점을 등록하고는 로봇 조종 오퍼레이터들에게 지시했다.

“모든 해태에 좌표 입력! 자율기동모드로 전환한다.”

소대장의 명령에 조종 오퍼레이터들은 이동할 좌표를 입력하고 자율기동모드로 전환했다.

그러자 바로 전에까지 전방을 향해 각종 무기를 투사하던 C-1000 해태 로봇은 사족 다리를 안쪽으로 접고는 이내 자세를 낮췄다. 그리고 4족 다리 중간에 달려있던 차륜형 바퀴가 돌아가자 마치 장갑차처럼 기동하기 시작했다.

전투 시에는 사족 다리를 움직이며 교전하지만 이렇게 긴급 이동 시에는 차륜형 바퀴를 이용해 이동할 수 있었다.

3소대 소속의 해태 로봇 6대는 이렇게 자율기동모드로 전환한 후 입력된 좌표 지점으로 기동하기 시작했다. C-1100 콘솔장갑차 역시 소대 소속 장갑차들과 함께 긴급히 후방으로 빠져나갔다.

현재 동부 국경선 일대에는 동부군구 제5군 소속의 모든 예하 부대가 동시다발적으로 국경선 일대에 대한 침공작전에 참여하고 있었다.

선봉 역할을 하는 제57차량화보병사단을 중심으로 제59차량화보병사단과 제60차량화보병사단이 좌우에서 서로 간 30km 간격을 두고 국경선을 돌파 중이며, 국경선 돌파의 교두보 확보 시 북만주 일대를 휘저을 러시아 최고의 레일건 전차인 T-14B 아르마타 전차로 편제된 기존 제10기계화군 소속이었던 제121기갑사단이 그 뒤를 이어 기동 중이었다.

또한, 달네레첸스크 국경선 일대에도 제70차량화보병사단과 제5군에서 최강의 부대라 할 수 있는 직할부대인 제81친위기갑사단의 T-14B 아르마타 전차 수백 대가 국경선을 돌파 중이었다.

이외에도 후방 포격 지원을 담당하는 제127기관총포병여단과 제129기관총포병여단, 리고 제130기관총포병여단 각종 포병부대가 쉬지 않고 포격 지원을 가했다. 또한, 원거리 타격 지원을 담당하는 제719다연장로켓연대와 OTR-21 Tochka SSM 이스칸데르-M을 운용하는 제20근위로켓여단도 지원 포격 요청을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었다.

현재 제5군 이외에도 북부 국경선의 제35군과 서부 국경선의 제29군이 제5군과 비슷한 전력으로 국경선을 일대를 진공 중이었다. 또한, 제29군 뒤에는 제36군이 뒤를 받치고 있었다.

총 병력은 30만에 달했고 전차와 장갑차 그리고 각종 자주포와 다연장포의 수량은 자그마치 일만 대에 달했다. 중요한 건 러시아군 내에서도 최신식 무기로 배치되었다는 것이었다.

쿠르르르릉!

쉬이~잉 쿠앙!

중대본부로부터 전송된 좌표 지점으로 긴급 기동하는 전장이 10m가 넘는 C-1100 콘솔장갑차 바로 위로 갑자기 요란한 포탄음이 울렸다. 이동 중이던 아군 포대가 대포병 사격을 위해 급속 방열 후 포격을 가하고 있었다.

제38기계화경계사단의 직할 사단포병인 88포병대대 소속의 알파 포대였다.

알파포대의 K-9A1 라이트닝 자주포 6문은 3분간 분당 16발이라는 경이적인 발사 속도로 포탄을 쏟아내고는 이내 이탈 준비에 들어갔다. 알파 포대 이외에도 부라보 포대와 찰리 포대 역시 널따란 평야를 이동하며 포격 요청 좌표가 떨어지면 즉시 급속 방열하여 3분간 포격을 가한 후 다시 이탈하는 방식으로 러시아 포병부대를 괴롭혔다.

이에 초반 상당한 양의 포탄을 국경선 전체에 포격하던 러시아 포병부대는 포격을 시작한 지 일이 분도 안 되어 한국 포병부대의 대포병 포격을 받아 피해가 늘어나자 초반처럼 섣부르게 맘 놓고 포격하지 못했다.

몇 분간 방열한 후 기껏 두세 발 포격하고 진지 이탈하는 정도였다. 이로 인해 포격 효율성은 떨어지고 포병들의 육체적 피로도만 쌓일 뿐이었다. 어떤 포대는 포격 지원이 와도 대포병 포격에 겁을 먹고 망설이는 포대장도 있을 정도였다.

포병부대에 있어서 즉각적인 대포병 포격의 중요성과 분당 포격 속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한 가지 예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