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면전
2023년 11월 24일 23:40,
남주 서울특별시 용산구 B2 벙커(국군 합동지휘통제소 상황실).
단, 제7기동전단만으로 극동함대를 괴멸시킨 승리감을 만끽 한 합동지휘통제소 상황실은 러시아의 추가 도발을 예상하고 현재 3,200km에 달하는 러시아와의 국경선 일대 전체를 아폴론 정찰위성 5기를 동원해 개미 새끼 하나 움직임까지 파악 중이었다.
이러한 정찰 정보 영상은 실시간으로 합동지휘통제소 상황실의 스크린에 수십 개의 분할 화면으로 보였다.
“역시나 러시아 놈들이 넘어선 안 될 선을 넘으려고 하는군요”
분할 화면으로 보이는 영상들을 두루 눈여겨본 신성용 합참의장의 입에서 한탄 섞인 음성이 들려왔다.
현재 국경선 일대에 주둔 중인 동부군구의 모든 병력이 수상함 움직임을 보였다.
“언젠간 터질 일이디요. 그게 오늘 밤이고 말입네다. 이번 기회에 확 하니 쓸어담아야지 않겠습네까?”
합참의장과는 반대로 오늘을 기다렸다는 듯 북한 출신인 윤기윤 합참차장이 팔짱을 낀 채로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자신감이 넘치는 말들을 내뱉었다. 다소 강경한 성품인 윤기윤 합참차장은 그 누구보다 이번 사태를 즐기고 있는 듯했다.
“합참의장님! 이왕 이렇게 된거이! 우리 쪽에서 선제공격하는 건 어떻습네까? 아무리 우리가 만만의 준비를 했다고 해도 초반 피해는 자명합네다. 그럴 바에야 우리 쪽에서 선방을 날리디요.”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전쟁에 있어서 아무리 준비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갑작스러운 공격에 피해는 불가피했다.
윤기윤 대장의 말에 상황실은 일순간 웅성거렸다. 선제공격을 찬성하는 지휘관과 반대하는 지휘관의 웅성거림이었다.
“저 역시! 윤 차장의 말에 찬성합니다. 하지만, 선제공격은 대통령님의 재가가 필요합니다.”
“합참의장께서 대통령님께 강력하게 요청하시디요.”
“그것이, 현재 미국을 중심으로 국제정세가 요상하게 돌아가는 듯합니다. 이에 청와대에서는 러시아와의 전쟁에 신중해진 듯합니다.”
“이거이, 이거이, 언제까지 외세 놈들 신경을 써야 하는지 답답합네다.”
윤기윤 합참차장이 답답한 마음을 성토했다.
“윤 대장! 우리는 군인이지 않습니까? 정치적인 것은 윗분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맡은 임무에 충실합시다.”
“그래야겠디요. 안 그럼 화병 나서 죽을 거 같습네다.”
이때 보좌관으로부터 뭔가를 보고받은 작전본부장 양민춘 중장이 두 지휘관 앞으로 다가와 대화에 끼어들었다.
“신속대응군사령부로부터 병력 이동과 관련하여 모든 준비를 마쳤다고 합니다.”
남북통일과 동북아 전쟁을 걸치면서 기존보다 7배 이상으로 확장된 대한민국 영토로 인해 국방부에서는 새로운 군 개편 필요성을 느끼고 육군부터 대대적인 재개편을 진행했다.
먼저 5,000km 넘는 신중국과 몽골, 그리고 러시아와의 국경선을 지키기 위해 기존 2개 군단 6개 기계화경계사단으로 편제되어 있던 제5경계군사령부에 1개 군단을 추가 편제했고 군단마다 예하로 산악경갑사단을 추가 편제시켰다.
이로써 제5경계군사령부는 3,100km에 달하는 러시아 국경선 일대에 배치했고 신중국과 맞닿은 국경선과 몽골 국경선은 제1야전군사령부를 주축으로 일부 사단을 기계화경계사단으로 개편하여 배치했다.
또한, 국방부는 유사시 광활한 영토에 신속한 부대를 파병할 수 있는 필요성을 느끼고 기존 제2작전군사령부를 전격적으로 제2신속대응군사령부로 개편했다.
제2신속대응군사령부는 군단 체제를 없애고 미국의 스트라이커여단을 모델로 한 독립적인 8개 사단으로 편제했다. 8개 사단 중 4개 사단은 동주나 서주, 그리고 일본 지역처럼, 육로가 끊긴 지역에 사단 전체 병력은 물론 운용하는 모든 장비를 공수로 투입하는 공수타격사단이 있었고, 이 외 육로로 이뤄진 지역 어느 곳이든 신속하게 투입해 대응하는 신속대응사단이 있었다.
신개념 형식의 부대답게 제2신속대응군사령부의 8개 사단은 올림푸스 기지로부터 새로운 개념의 최신예 무기를 배치받았다.
그런 이유로 전쟁에 있어 전장의 특성에 따라 적법한 부대가 있겠지만, 총체적으로 봤을 때 8개 신속대응사단의 전투력은 제7기동전단의 제20기갑사단(결전)이나 수도기갑사단(맹호)에 결코 밀리지 않는다는 군 관계자의 설명도 있었다. 다른 부대와 다르게 실전 경험이 없기에 확신할 순 없지만, 21세기 미래형 무기 장비를 운용하는 부대인 만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예로 현재 피스부대에 파견한 제11해병기동여단의 K-27P-M 기린 해병전투장갑차 같은 경우 신속대응사단에서 운용하는 K-27P-A 기린 기동전투장갑차의 파생형이었다. 실전경험이 없었기에 피스부대 파병 당시 파생형인 K-27P-M 기린 해병전투장갑차를 파병부대에 합류시킴으로써 실전에서의 전투력 측정을 하기 위함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파생형 K-27P-M 기린 해병전투장갑차는 반중력 호버 시스템이라는 강력한 비행 기동력 덕분에 험준한 산악이든 평지이든 장소의 구애를 받지 않았고 상대가 보병이든 기갑전력이든 가리지 않고 강력한 전투력을 보여줬다.
이렇듯 운용 중인 장갑차 전력만으로도 강력한 전투력을 보유했다고 생각할 만한 제2신속대응군사령부의 예하 8개 사단에는 우리가 상상도 못 할 신개념의 무기들이 즐비했다.
평시에는 남주의 주요 거점 지역에 주둔하다가 유사시 신속하게 작전구역으로 파병이 가능한 제2신속대응군사령부의 직할부대인 8개 사단은 모든 이동 준비를 마치고 작전 투입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음, 생각보다 빨리 마쳤군, 평소에 훈련이 잘된 듯하군”
제2신속대응군사령부에 작전 투입 명령을 내리게 제7기동전단과 극동함대간의 해상전이 벌어진 7시간 전이었다. 즉 8개 사단은 7시간 만에 사용하던 휴지까지 모두 챙기고 사단 전체가 이동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마쳤다는 얘기였다.
“평소 하는 훈련이디 않습네까?”
흐뭇한 표정으로 윤기윤 대장이 대꾸했다.
“하하, 그렇지요.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고 이제 러시아의 도발만 남았군요.”
몇몇 스크린에는 국경선 일대에 배치된 C-1000 해태 로봇의 카메라가 촬영한 국경선 야간 전경이 보였다. 뼛속까지 시릴 정도의 매서운 시베리아 겨울바람이 휘몰아치는 국경선 야간 풍경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그냥 평온 자체였다.
하지만 이것은 폭풍전야와 같았다.
★ ★ ★
2023년 11월 24일 23:40,
남주 서울특별시 강남구 국가정보원(사이버보안국 회의실).
우진길 교수의 자살과 물론 플라즈마 기밀 정보 유출 소식이 전해진 파르테논 연구소는 현재 발칵 뒤집힌 상태였다.
과거 지하연구소란 단순한 이름으로만 불릴 때부터 현재 파르테논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때까지 7년간 연구소장을 역임하고 있는 이수진 박사와 플라즈마 학계의 대한민국 일인자이자 우주과학원의 초대 원장에 임명된 박진우 원장, 그리고 몇 명의 수석 연구원이 우진길 교수의 개인 컴퓨터를 가지고 현재 국가정보원 사이버보안국 회의에 참여했다.
회의가 시작되고 가장 먼저 박진우 원장은 우진길 교수가 유출한 플라즈마 관련 정보에 대해서 학술적 용어가 아닌 일반인들도 알기 쉬운 용어를 사용하며 설명했다.
20여 분 후 박진우 원장의 대략적인 설명이 끝나자 가장 먼저 사이버보안국의 척혁준 국장이 질문했다.
“그렇다면, 고인인 우진길 교수가 유출한 모든 정보를 연결하면 플라즈마 초광자 발전소는 물론 핵폭탄 위력의 플라즈마 증폭탄을 만를 수 있다는 겁니까?”
“네, 이론상으론 가능합니다. 조금만 응용한다면 우리 군이 사용하는 레이저 빔 같은 무기들도 시간은 걸리겠지만, 연구에 착수한다면 개발할 수 있습니다.”
박진우 원장이 답변이 이어갈수록 회의실 분위기는 어두워졌다.
“이거 정말 큰 일이군요.”
척혁준 국장이 이마를 쓸어내리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에 이수진 소장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어떻겠든 회수를 하거나 그게 안 된다면 확실히 폐기해야 합니다. 다행히 추적할 수 있는 암호코드를 우 교수가 심어놨다니 그것으로 추적의 단서는 될 것입니다.”
말을 마친 이수진 박사는 옆에서 노트북을 들고 기다리던 한 수석 연구원에게 눈짓으로 사인을 보냈다. 그러자 그 수석 연구원은 회의 탁자에 노트북을 올려놓고는 전원을 켜고는 뭔가를 실행했다.
“아! 이분은 정보통신분야 연구 수석 연구원인 이현 박사입니다.”
이수진 박사가 소개하자 이현 박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인사를 하고는 바로 프로그램 실행에 전념했다.
“현재 이현 박사가 실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은 우진길 교수가 남긴 암호코드를 추적할 수 있는 추적프로그램입니다.”
이수진 박사의 부가 설명이 이어졌다.
“문제는 인터넷이 연결된 환경에서 유출된 정보를 확인해야만 추적프로그램이 체킹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터넷이 연결된 상태라······.”
납치범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인터넷에 연결된 상태에서 플라즈마 기밀 정보를 확인할 확률은 낮았다.
“현재 총 12개의 추적프로그램을 만들어놨습니다. 우리 연구소는 보안상 이와 같은 프로그램을 실행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추적프로그램만 실행하는 노트북 12개를 모두 가져왔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이렇게 지원해 주셔서 말입니다.”
척혁준 국장이 감사의 말을 전하자 이수진 박사는 고개를 절레거리며 도리어 미안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파르테논 연구소의 총 책임자로서 이번 사건에 대한 무한한 책임을 갖고 있습니다. 도울 수 있는 건 무엇이라도 돕도록 하겠습니다.”
이날 회의는 다양한 의견 속에서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추적프로그램으로 위치를 체킹하는 방법 외에는 달리 다른 방법은 찾지 못했다.
★ ★ ★
2023년 11월 25일 00:00,
북만주 북강도 제38기계화경계사단(금강) 북동단 국경선 GOP 제5-13 섹터.
10월부터 시작된 시베리아의 겨울, 다른 곳보다 일찍 찾아온 제38기계화경계사단 소속의 GOP 제5-13 섹터 담당인 무인경계로봇 C-1000 해태 513호기는 영하 20도까지 떨어지는 혹독한 날씨에도 꿋꿋이 4개 다리로 지탱하고는 각종 감시카메라 모드를 변경해가며 전방 일대를 경계 중이었다.
현재 경계강화 1호는 물론 데프콘 1호가 발령된 상황이라 513호부터 518호기를 운용하는 5중대 3소대 역시 모든 병력이 대기 중이었다.
현재 제5-13 섹터 하늘에는 먹구름으로 가득 차 달빛조차 보이지 않았고 매서운 바람 따라 하얀 눈이 흩날리며 온 세상이 하얀 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날씨도 심상치 않고 경계강화 1호가 발령된 상황이라 각 소대에서는 2시간마다 자신의 소대 경계 섹터를 순찰하며 무인경계로봇의 이상 유무를 확인하고 있었다.
3소대 역시 24시가 되자 경갑기동분대장인 오동일 하사는 분대원들과 C-23P 현무 기동전투장갑차에 몸을 싣고 순찰에 나섰다.
3소대가 맡은 경계 섹터 총 길이는 4.8km였다. 최대 1km까지 거리를 벌리고 경계 임무가 가능한 C-1000 해태 무인경계로봇은 현재 해태 로봇 간 800m 거리를 두고 경계 임무 중이었다.
3소대 경갑기동분대 장갑차가 수북이 쌓인 눈밭을 달리며 막 513호 해태 로봇의 외관 이상 유무를 확인하려는 그때, 513호 해태 로봇의 상체가 민첩하게 움직이더니 전방을 향해 16연장 발사관에서 40mm 로켓탄이 경쾌한 발사음과 함께 포물선을 그으며 날아갔다.
그리고 C-1100 콘솔 장갑차에서 지휘하는 3소대장이 다급한 목소리가 통신망을 타고 경갑기동분대의 장갑차 내부를 울렸다.
“여기는 파라다이스! 모든 섹터 전방 5km 지점에서 대규모 러시아군 포착! 순찰 중인 푸켓! 즉시 소대본부로 귀환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