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88화 (388/605)

전면전

2023년 11월 24일 20:30,

남주 서울특별시 강북구 기밀보안국 건물.

방콕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긴급회의가 소집된 기밀보안국 경호 1실 회의실은 한층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화상통화로 보고하는 김동진 대리의 모습이 보였다.

50분 전, 딸과의 통화를 위해 방으로 들어간 우진길 교수가 20분이 넘도록 나오지도 않고 인기척도 들리지 않아 잠겨있는 문을 부수고 들어갔더니 침대 위에 쓰러져 있었다는 보고였다.

두 경호원은 인근 종합병원으로 긴급 호송했지만, 병원에 도착하기 전부터 이미 사망한 후였다는 의사의 말을 전했다.

현재 우진길 교수의 시신은 태국 수사국과 본국 호송과 관련한 절차에 대해 협의 중이며 협의가 완료되는 대로 본국으로 호송할 예정이었다. 또한, 이번 비극의 자살과 관련된 중요한 단서가 될 유서형식으로 남긴 편지 원본은 두 경호원이 직접 본국으로 가져올 예정이었고 대신 편지 내용에 대해 디지털 정보로 전환하여 기밀보안국으로 보낸 상태였다.

이렇게 우진길 교수의 자살 사건 경위에 대해 대략 보고를 받은 경호실 간부들은 잠시 후 디지털 정보로 전환되어 전송된 유서편지 내용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하는 시한 충격을 받고 말았다.

우진길 교수가 목숨을 끊고 남긴 유서 내용은 이랬다.

“먼저 가족의 안위를 위해 부득이 조국을 배신한 죄, 죽음으로써 그 죄를 대신 하겠습니다.”로 시작된 우진길 교수의 유서, 이어진 내용은 상상 이상이었다.

2021년 6월 22일, 홍콩에 있던 딸 아이한테서 연락이 왔습니다. 정체불명의 사내들이 아파트에 무단 침입하여 자신은 물론 아이들까지 납치하여 하루 동안 알 수 없는 장소에서 감금시키고 자신만 막 풀려났다는 연락이었습니다.

저는 놀란 나머지 홍콩 경찰에 신고하라고 하였지만, 납치범들은 신고 즉시 두 아이를 죽이겠다는 협박을 하였다고 했습니다. 이래 신고도 못 하는 상황에서 딸로부터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돈을 목적으로 한 일반적인 납치범들이 아니었습니다. 납치범들은 정확히 저의 신분을 알고 있었습니다.

납치범들은 딸아이 통해 저에게 요구한 것은 플라즈마 핵심 기술 정보를 제공하지 않을 시 인질로 삼고 있는 손자와 손녀를 죽이고 그 시체를 홍콩 바다에 뿌리겠다는 협박을 했습니다.

저는 하루하루를 뼈가 깎이는 고통 속에서 선택해야만 했습니다. 조국이냐, 아니면 가족이냐, 그렇게 며칠간 고민하던 저는 끝내 가족을 선택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연구소에서 제 권한 한에 접근할 수 있는 등급의 모든 플라즈마 핵심기술 일체를 스마트폰 유심칩에 저장한 후 연구소의 보안시스템을 속이고 외부로 가지고 나올 수 있었습니다.

저는 지난달까지 플라즈마 관련 핵심 기술 정보를 총 4차례에 걸쳐 납치범들에게 제공했습니다. 그리고 권한 밖의 등급으로 접근할 수 없었던 플라즈마의 핵심 중의 핵심 기술 정보는 3주 전 책임연구원 승진과 동시에 접속 권한 상승으로 정보를 취극 할 수 있었고 금일 저는 납치범들에게 핵심기술의 마지막 정보를 전달하고 말았습니다.

마지막 플라즈마 핵심 기술 정보까지 제공하자 납치범들은 약속대로 2여 년간 인질로 데리고 있었던 손자와 손녀를 딸아이 품으로 돌려보내 줬습니다.

가족의 안위를 위해 조국을 배신한 저는 이렇게 죽음으로써 조금이나마 죄를 갚겠습니다. 부디 한국으로 돌아가는 딸아이 가족을 지켜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납치범에게 제공한 정보의 리스트는 연구소에 있는 저의 개인 컴퓨터 D 드라이브에 있으며, 그들에게 제공한 모든 정보 속에는 인터넷 연결 시 추적할 수 있는 암호 코드를 집어놨습니다. 2여 년간 저를 비롯한 딸아이 가족에게 고통을 준 납치범들을 잡아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저를 위해 밤낮으로 경호해 준 경호원 두 친구에게 정말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2013. 11. 24, 우진길.

우진길 교수의 유서 내용을 모두 읽어 나간 경호1실 간부들은 먹먹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무거운 공기가 경호 1실 회의실을 무겁게 짓누르는 가운데 오현훈 1실장이 찹찹한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

“우 교수가 매우 괴로웠을 거야. 우 교수 딸 가족은 확인되었나?”

“네, 한국시각으로 21시 항공편으로 한국으로 올 예정입니다.”

경호 1실 정보과 허승태 과장이 대답했다.

“인천공항 도착부터 신변 보호 조치한다. 지원 가능한 부서가 어디지?”

“네, 4과 3팀입니다.”

“좋아! 우 교수 딸 가족들은 4과 3팀이 전담하도록! 혹, 인원 부족하면 4과장은 바로 말해! 어떻게든 인원 붙여주겠다.”

“네, 알겠습니다. 실장님”

“그런데, 실장님! 지금 즉시 국정원에 이와 같은 사실을 알려야지 않겠습니까? S급 기밀도 아니고 국가 기밀 최고등급인 SSS급 기밀이 정체불명의 집단에 넘어갔는데 말입니다.”

“당연히 알려야겠지. 먼저 국장님과 면담 후에 말이야.”

오현훈 1실장은 앞으로 벌어질 일을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해지려 했다. 이에 뒷골을 잡고는 머리를 크게 돌렸다.

“이거 국가적으로 후폭풍이 이만저만 아니겠다. 제길!”

경호1실 간부들도 걱정되는 표정으로 오현훈 1실장을 바라봤다.

“뭐들 해? 회의 끝! 4과장은 즉시 3팀 인천공항으로 보내고 나머지 과장들은 각 팀장에게 전달해 현재 경호 중인 대상자에 대한 경호 강화하라고 말이야.”

“네, 알겠습니다.”

대답과 동시에 경호 1실 간부들은 부리나케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을 나가거나 어디론가 다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기밀보안국이 설립된 이후로 최고의 비상사태였다.

★ ★ ★

2023년 11월 24일 22:30,

남주 서울특별시 강남구 국가정보원(대외정보국 회의실).

기밀보안국으로부터 플라즈마 기밀 유출 건이 국가정보원에 통보된 후 대외정보국은 기밀 유출 건에 대한 사건에 바로 착수했다. 먼저 해외에서 일어난 일이고 기밀이 요구되는 상황이었기에 대외정보국이 자연스럽게 사건을 맡게 되었다.

“현재 유출된 기밀정보는 플라즈마 관련 핵심기술이라 한다. 더 자세한 건 사실 말해봤자 모르기에 이 정도로 하고 먼저 고인이 된 우진길 교수의 딸인, 우은서 씨와 두 아이를 납치한 납치범들에 대한 추적이 가장 시급한 상황이다. 현재까지 확인된 정보는 납치범들은 홍콩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것과 영어를 능숙하게 한다는 것, 그리고 납치범 중 한 명이 북경어를 했다는 것이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강기원 국장이 직접 사건 경위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다.

“앞으로 2시간 후면 우은서 가족이 인천공항에 도착한다. 기밀보안국에서 신변 보호 조치로 경호를 맡게 되었다. 우리 대외정보국에서는 1개 팀을 차출해 우은서 씨로부터 최대한 많은 정보를 확보해야 한다. 현재 정보로는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다.”

강기원 국장이 설명하는 가운데 회의실 스크린에는 우은서와 가족들의 얼굴은 물론 여러 신상정보가 보였다.

“1과는 즉시 홍콩으로 날아가 현장 조사에 착수한다. 2과에서 1개 팀을 차출해 인천공항으로 이동 나머지 팀은 홍콩 내 범죄 조직에 대해서 하나도 놓치지 말고 모두 조사하도록 한다. 3과는 홍콩 외 동남아와 마카오 등 전반적인 범죄 조직을 조사하기 바란다. 4과와 5과는 현재 1과부터 3과에서 진행하고 있는 임무를 인수인계 받도록 한다. 질문 있나?”

속사포처럼 쉬지 않고 지시를 내린 강기원 국장은 과장급 간부들을 둘러봤다.

“네, 있습니다.”

1과 이자성 과장이었다.

“뭔가?”

“유서에도 나왔듯이 납치범들에게 제공한 정보 속에는 추적할 수 있는 암호코드가 삽입되어있다고 하는데, 그 부분은 타 부서가 맡습니까?”

“그렇다. 그건 사이버보안국에서 조사하기로 했다.”

“국장님! 중대한 사건인 만큼 효율성을 극대화해야지 않겠습니까? 사이버보안국 요원들을 우리 부서에 편입시켜 합동 수사를 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이자성 과장의 의견에 강기원 국장이 잠깐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쁘지 않은 의견이군, 척 국장과 의논해 보고 알려주겠다. 일단 우리 국 자체만으로 시작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번 유출된 정보는 국가 기밀 SSS급이다. 현재 청와대가 발칵 뒤집혔다고 한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네, 알겠습니다.”

“좋아! 항상 말하지만, 몸조심하도록”

1과 사무실로 돌아온 이자성 과장은 회의실로 팀장들을 불러모았다. 현재 해외에 있는 5팀 김기호 팀장을 제외하고 4명의 팀장이 자리에 앉았다.

“다들 대충은 얘기를 들었을 거다. 국가 기밀 중에서도 최고등급인 SSS급 정보가 유출되었다. 플라즈마 관련 핵심기술이라 한다. 자세한 자료와 설명은 스카이버스 안에서 해주겠다. 본론만 말하자면 앞으로 2시간 후 5팀을 제외한 4개 팀 모두 홍콩으로 이동한다.”

“모두 말입니까?”

박기웅 1팀장이 손을 들고는 질문했다.

“뭘 들은 거야? 모두라고 하지 않았나?”

“와! 갑자기 홍콩이라니요. 저 다음 주 월요일부터 1년 만에 얻은 휴가 입니······.”

울상을 진 박기웅 팀장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하다가 끝내 말끝을 흐렸다.

“야! 박 팀장! 그거 잘됐네, 홍콩이 휴가지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냐?”

“이 자식이 정말?”

국가정보원 동기인 윤태진 2팀장과 박기웅 1팀장이 티격태격하자 이자성 과장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이번 건으로 모가지 날아갈 사람이 한둘이 아닌 거 같다. 그만큼 심각한 사건이다. 쉽게 생각하지 말고 진지하게 듣도록, 뭐 박 팀장 휴가는 안 됐지만 무기한 연기다. 다른 요원들도 마찬가지다. 이번 사건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우리 과 휴가는 없다.”

윤태진 2팀장이 개구쟁이 같은 얼굴로 싱글벙글하는 반면, 1년 만에 얻은 휴가를 반납해야 하는 박기웅 1팀장의 얼굴은 저승사자 얼굴로 변해 있었다. 그런 얼굴이 재밌던지 신은하 3팀장이 활활 타는 불에 기름을 부었다.

“박 팀장님? 예전에 홍콩 가고 싶다고 하지 않았나요? 지금 홍콩은 특별세일 기간이라는데 쇼핑센터에서 쇼핑 좀 하세요. 그 정도 시간은 과장님이 빼주지 않겠어요?”

“하! 신 팀장까지 정말······.”

“호호호”

이때 박기웅 1팀장의 시선이 성상윤 4팀장에게 쏠렸다. 팀장급에서도 막내인 성상윤 4팀장은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쏘아보는 박기웅 1팀장의 시선에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양손을 벌리는 시늉하며 말했다.

“박 팀장님! 가만히 있는 저를 왜 그런 눈으로 보십니까?”

“너도 뭔가 말하려고 했잖아?”

“에엑? 하늘 같은 선배에게 어찌 제가 농을 칠 수 있겠습니까?”

“웃기지 마라! 네 얼굴에 쓰여 있다. 자식아!”

“헐!”

마른하늘에 날벼락 맞듯 욕까지 얻어먹은 성상윤 4팀장이 억울한 표정으로 윤태진 2팀장을 봤다. 그러자 윤태진 2팀장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마! 내가 보기에도 네 얼굴에 쓰여있다. 너도 박 팀장 놀리려고 입이 근질근질한 거.”

“와! 이런 사람들이 선배라고, 난 직장복도 없어!”

“자자! 시간 없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 들 하고 시간 없다. 각자 팀원들한테 즉시 홍콩 출장 준비하라고 어서들 전해! 정확히 24시에 본관 옥상 착륙장에서 모인다. 움직여.”

“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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