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87화 (387/605)

전면전

2023년 11월 24일 15:50,

동해 북위 43° 1'17.06" 동경 139°23'53.69" 공해상(제7기동전단).

“우와! 만세!”

광해함(DDG-1001)의 전투지휘실 승조원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서로 간 부둥켜안으며 기쁨을 만끽했다. 어떤 승조원은 울먹이는 표정으로 자신의 십자가 목걸이를 부여잡고 신을 외치기도 했다.

몇 분 전, 수십 미터까지 솟아오른 물기둥과 검은 연기가 거치자 KH-47M2 킨잘 대함미사일에 피격된 줄만 알았던 효성대왕함(DDG-1003)이 함수 좌측만 흉물스럽게 찢겨 나갔을 뿐 피격되거나 침몰할 위기는 모면했기 때문이었다.

충돌 직전! 탐지정보를 데이터 링크하던 ‘아이온 글럼’ 6개가 하페르 K-1 함포에서 발사한 플라즈마 확산탄에 손상을 입으면서 기능이 정지되었다.

이에 데이터 링크가 끊긴 KH-47M2 킨잘 대함미사일은 자체 능동형 레이더로 효성대왕함(DDG-1003)을 재차 표적을 탐지하려 했지만 강력한 SECM 전파 교란에 표적을 탐지하지 못했다.

이에 KH-47M2 킨잘 대함미사일은 표적 신호가 끊기기 전 마지막 위치 정보를 기준으로 날아와 급선회한 효성대왕함(DDG-1001)의 함수 왼쪽을 스치며 바다로 추락하며 폭발했다.

폭발 위력에 함수 좌측이 찢겨 나가고 약간의 피해를 보았지만, 전사자 없이 부상자 11명만 발생했고 항해도 문제없다는 효성대왕함(DDG-1003) 함장의 보고가 올라왔다.

천운 그 자체였다. 탄두의 가공할 500kg 재래식 폭탄의 위력은 제쳐놓더라도 마하 10에 달하는 물체가 충돌하면 그 자체가 재앙이었다.

승조원들이 기쁨의 난리를 떠는 동안 안형균 제독은 그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힘없이 의자에 철퍼덕 앉고는 좋아하는 승조원들을 바라보며 깊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지금까지 전투지휘실의 모든 상황을 통신망을 통해 듣고 있던 71기동전대장이자 광해함(DDG-1001)의 함장인 조태현 대령의 음성이 통신망을 타고 날아왔다.

“제독님! 그만 함교로 오시지요. 그곳에 더 있으시면 10년은 더 늙을 실 겁니다.”

함장의 농담에 안형균 제독은 손사래를 치며 피식하고 미소를 보였다.

이때 김혁민 전술통제관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러시아 상륙함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현재 페이터급(앨리게이터) 강습상륙함 3척은 항로를 변경하여 블라디보스토크로 복항 중이었다.

“극동함대 전투함들이 모두 수장된 상황에서 강륙함까지 공격할 필요는 없다고 보네”

“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문제는 러시아 핵잠들이야. 극동함대의 복수를 하려고 눈을 시퍼렇게 뜨고 우리 쪽으로 잠항할 확률이 커! 모든 구축함에 대잠 경계 강화하라고 전하게.”

안형균 제독의 말만 따라 북동해 심해에서 숨 숙이고 잠항 중이던 10여 척의 핵잠수함은 현재 제7기동전단이 있는 해상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난, 이만 함교로 올라감세.”

“수고하셨습니다. 일동 차렷!”

전투지휘실의 모든 승조원이 부동자세를 취하는 가운데 김혁민 전술통제관이 대표로 거수경례했다.

“그래, 자네들도 수고했네. 맞경례를 한 안형균 제독은 전술통제관의 어깨를 툭 치고는 전투지휘실을 나갔다.

★ ★ ★

2023년 11월 24일 16:30 (신중국시각 15:30),

신중국 베이징 흑호대 본부.

“물건은 확실한가?”

예사롭지 않은 눈빛을 보이는 사내, 흑호대 대장인 신바이칭은 검은색 제복을 입고 곧은 자세로 보고하는 사내에게 물었다.

“네, 짱천 팀장이 확실히 확인했습니다.”

“후후, 열매의 결실을 이제야 보는군”

신중국 탄생 이후 왕징위 주석은 특수부대 출신들을 모아 주석실 직속 첩보기관인 흑호대를 만들었다.

설립 초기에는 중국 통일을 염려해두고 동방공화국과 중화민국에 대한 해킹과 기밀 수집을 주 임무로 활동하였으나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초강대국으로 성장하는 대한민국을 타켓으로 국가 기밀에 해당하는 정보수집 활동을 벌였다.

“그럼 그 아이들은 어떻게 할까요?”

“약속대로 보내야지!”

“꼭 보낼 필요까지 있겠습니까?”

“젖비린내나는 애들 뭐에다 쓰려고? 괜히 안 보냈다가 그놈이 다른 맘 먹고 신고하면? 물건이 물건인 만큼 한국 정보부가 움직이면 골치 아파!”

신바이칭은 귀찮다는 나가라며 손짓을 했다.

“네, 알겠습니다.”

검은 제복의 사내가 나가고 혼자 남게 된 신바이칭은 책상 위에 놓인 수화기를 들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신바이칭입니다.”

- 그래, 일은 잘 처리되었나?

“네, 4시간 후면 북경에 도착합니다.”

- 수고했네, 이번 공로는 기억해 두지!“

“감사합니다.”

- 북경 도착하는 즉시 총장비부 연구기관으로 보내도록!

“네, 알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신바이칭은 책상 위에 다리를 올리고는 흐뭇한 미소를 보였다. 이번 전과를 기회 삼아 이제 자신도 정치계에 뛰어들 수 있는 발판이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생각만 해도 미소가 절로 나왔다.

★ ★ ★

2023년 11월 24일 17:00 (러시아시각 11:00),

러시아 모스크바 벙커 스테이트 R-13(회의실).

극도의 분노에 입을 굳게 다물고 기다란 책상 좌우로 앉아있는 고위 관료들을 바라보는 푸틴 대통령 눈빛에서는 보이지 않은 레이저가 나오는 듯했다.

그의 따가운 시선을 온몸으로 받는 고위 관료들은 죽을 맛이었다. 그냥 화를 내거나 욕먹는 게 천 번 만 번 나았다.

이번 극동함대의 패전은 단순한 패전이 아니었다. 이번 해상전에 쏟아부은 무기 금액만 해도 총 300억 달러라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더 중요한 것은 북방함대나 발트함대가 북극해를 통과하여 이곳 동해로 오지 않은 이상 당분간 러시아의 해군 전력을 투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태평양함대에는 아직도 30여 척에 달하는 핵잠수함과 재래식 잠수함이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잠수함 전력이었다.

바닷속에서 은밀히 잠항하며 동해 심해를 휘저을 순 있지만, 푸틴 대통령이 원하는 홋카이도 상륙작전을 수행할 전력은 아니었다.

이렇게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큰 타격을 받은 결과에 이곳 스테이트 R-13의 회의실에는 써늘한 기운만이 감돌았다.

앞선 회의에서 푸틴 대통령의 말을 기억하고 있던 베샤스트니흐 총참모장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난 푸틴 대통령에게 발언했다.

“이번 패전에 따른 모든 책임을 지고 총참모장에서 물러나겠습니다.”

베샤스트니흐 총참모장의 발언에 회의실 분위기는 한층 더 무거워졌다.

“총참모장! 한국과 막 전쟁이 시작되려는 중요한 지금, 사직을? 아직 그럴 때가 아니오.”

가재는 게 편이라 했던가? 미하일 이바노프 국방장관이 만류했다.

다른 고위 관료들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반대하는 늬앙스를 보였다. 그런 관료들을 지켜보고 있던 푸틴 대통령이 한쪽 턱을 비스듬히 치켜들고는 말했다.

“총참모장! 그래! 옷은 벗어야겠지, 하지만 국방장관 말대로 중요한 시기에 러시아군의 총 책임자인 총참모장이 바뀌면 군의 사기도 그렇고 아닌 듯하군. 베샤스트니흐 총참모장! 당신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겠소. 저 빌어먹을 한국놈들에게 복수 할 기회를 말이오.”

작은 체구임에도 카리스마가 펄펄 넘치는 푸틴 대통령의 말에 베샤스트니흐 총참모장은 절도있게 거수경례를 하고는 소리치듯 말했다.

“러시아 총참모장 베샤스트니흐! 대통령님의 주신 기회로 목숨 바쳐 수행하겠습니다.

남들이 볼 때 총참모장의 행동은 조금은 과장되어 보였다. 하지만 당사자인 베샤스트니흐는 진심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지금부터는 총참모장의 판단하에 모든 작전을 시행하시오. 하나하나 나에게 승인받을 필요 없소이다.”

“네, 알겠습니다. 대통령님!”

파격적인 푸틴 대통령의 말에 베샤스트니흐 총참모장은 충성심은 물론 자신감이 솟구쳐 올랐다.

대답과 동시에 베샤스트니흐 총참모장이 자리에 앉자 푸틴 대통령은 외교장관을 불렀다.

극동함대의 사령관과 이름이 같은 발레리 카르핀 외교장관이 대답했다.

“네, 대통령님!”

“동부군구 육군이 움직이면 외교장관은 즉시 신중국에 상호군사조약에 따라 지원요청을 하시오.”

“네, 알겠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고개를 돌려 이번에는 SVR(대외정보국) 국장을 불렀다.

“네, 대통령님!”

“쿠르디스탄에 대한 준비는 모두 되었겠지?”

“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대기 중에 있습니다. 명령만 내려주시면 됩니다.”

“좋아! 이고르 셈쇼프 장관!”

“네, 대통령님!”

“국가비상사태 선포 후 군수공장체제로 전환하는 준비는 어떻게 돼가고 있소?”

“네, 현재 생필품부터 중장비까지 모든 공장과 기업에서는 24시간 안에 군수공장체제로 전환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습니다.”

전쟁 발발로 인한 국가비상사태 선포 시 러시아의 모든 기업과 공장은 24시간 안으로 군수공장체제로 전환절차를 1개월 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다.

“좋아! 모든 준비는 끝난 듯하군”

여러 관료에게 직접 하나하나 확인을 한 푸틴 대통령은 급기야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회의실 한쪽 벽면에 걸려있는 한반도는 물론 시베리아 지역 전체가 보이는 지도를 보며 소리쳤다.

“금일 24시를 기준으로 한국의 만주 일대에 대한 진공을 시작하시오.”

“네, 알겠습니다.”

★ ★ ★

2023년 11월 24일 19:30 (태국시각 17:30),

태국 방콕 사톤지구 실롬 호텔(1022호)

쇼핑 후 호텔로 돌아온 우진길 교수는 줄곧 방에만 있었고 경호원 2명은 거실에서 TV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인터폰으로 호텔 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룸서비스입니다.”

이에 경호원 한 명이 호텔 문을 열자 호텔복을 입은 2명의 여직원이 이동식 탁자에 여러 음식과 레드와인을 가져왔다.

“교수님! 교수님이 룸서비스 시켰나요?”

다른 경호원 한 명이 방문 쪽으로 다가가 말을 건넸다.

“아! 왔나요? 네 제가 시켰습니다. 안으로 들이세요.”

“네, 알겠습니다.”

잠시 후 거실 탁자에는 고급스러운 음식과 레드와인이 펼쳐졌다.

“자! 다들 앉으세요. 괜히 저 때문에 이곳까지 와서 고생하는 거 같아서 맥주보다는 와인이 나을 거 같아서 제가 시켰습니다.”

포근한 인상의 우진길 교수는 두 경호원에게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교수님! 죄송한데 경호 중에는 술은 금지입니다.”

경호원 중 선임인 김동진 대리가 난색을 보이면 말했다.

“아! 오늘은 외출 없습니다. 낼이나 외출할 테니 걱정하지 말고 한잔들 합시다. 호텔에만 있을 건데 뭔 문제가 되겠습니까?”

우진길 교수의 계속되는 청에 두 경호원은 어절 수없이 소파에 앉았다.

“하하, 그래요. 와인은 딱 한 잔씩만 하고 음식이나 많이 드세요.”

“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후임인 오상태 주임이 감사의 표현으로 고개를 한번 꾸벅하고는 보이게도 맛있어 보이는 음식에 포크를 갖다 댔다.

“제가 혼자 여행을 와도 이렇게 두 분 때문에 혼자 온 거 같지가 않아요. 저 때문에 두 분은 고생하는 거지만요 하하하”

우진길 교수는 평소보다 더 상냥하게 말을 건넸다. 뭔가 미안한 일을 했을 때 나타나는 그런 행동 패턴과 같았다.

“하하, 뭔 그런 말씀을요. 저희는 그냥 맡은 임무를 수행할 뿐입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평소와 다른 느낌이 들었지만, 김동진 대리는 미안해서 그런 거겠지 하고 좋게 생각했다.

“자 한잔합시다.”

우진길 교수는 레드와인이 담긴 외인 잔을 두 경호원에게 건넸다.

짱!

3명이서 와인 잔을 부딪치고 마시려는 그때, 우진길 교수의 스마트폰에서 벨이 울렸다.

“아! 이거 땔래미군요. 잠시만요.”

착신번호가 딸 번호인 걸 확인한 우진길 교수는 방으로 들어가 통화했다.

- 아, 아빠!

“그, 그래, 어떻게 되었니? 애들은?”

거실의 경호원들이 들리지 않도록 조그마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애들은 왔니? 왔어?”

- 흑흑, 네, 방금 왔어요.

“애들 건강은?”

- 괜찮아요.

“아! 하느님 감사합니다.”

우진길 교수는 무슨 일인지 스마트폰을 부여잡고 기도하듯 말했다. 그의 두 눈에 굵은 눈망울이 맺혀 있었다.

“은서야. 잘 들어! 지금 당장 이 서방하고 애들 데리고 내가 준 항공권으로 바로 한국에 가라! 알았지?”

- 네, 그럴게요. 아빠는요?

“난, 내일 정도 한국으로 돌아갈게. 내 집에서 기다려.”

- 아빠도 오늘 오세요. 너무 무서워요.

“무서워하지 마! 괜찮을 거야. 먼저 가서 기다려라. 알았지?”

- 네, 알았어요. 내일 봬요.

“그래, 이만 끊자!”

통화를 끝낸 우진길 교수는 자신의 입을 막고는 이내 흐느꼈다. 거실의 경호원이 들을까 봐 속 시원하게 울지도 못하는 우진길 교수는 그렇게 몇 분을 더 흐느꼈다.

‘자네들한테 피해가 갈까 봐 걱정이네. 미안하네’

벽 너머 거실에 있는 경호원을 생각하며 우진길 교수가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하나는 두툼한 편지였고 다른 하나는 알약이었다.

침대 위에 편지를 올려놓은 우진길 교수는 오른손에 든 알약을 한참 바라봤다.

‘이것으로 조국을 배신한 나의 죄를 씻을 순 없지만, 최소한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이거뿐인 것을······.’

잠시 생각에 잠겼던 우진길 교수는 한 번에 알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는 극심한 고통이 밀려왔는지 두 눈에는 실핏줄이 터졌고 입에서는 하얀 거품이 흘러나오더니 이내 힘없이 침대 위로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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