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84화 (384/605)

불타는 북동해

2023년 11월 24일 15:40,

동해 북위 43°20'20.37" 동경 136°19'47.79" 공해상(극동함대)

전술통제관 김혁민 중령의 말만 따라 극동함대의 중거리 대공망을 돌파하고 근접방어체제 안까지 뚫고 들어온 해성A 대함미사일은 총 11기였다.

팝업 기동까지 완료하고 각자 정해진 표적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떨어진 해성A 대함미사일 1기는 그대로 소브레멘니급 베스트라시니함(DDG-434)의 정 중앙을 강타했다.

쿠앙! 콰아아아앙!

순간 폭발에 만재배수량 7,940t의 베스트라시니함(DDG-434)은 V자로 꺾어지더니 이내 용골이 뒤틀어지는 기이한 굉음이 함 전체를 울렸다. 그리고는 솟구치는 붉은 화염과 함께 시꺼먼 연기가 사방에서 피어올랐다.

쿠아앙! 콰아아앙!

폭발은 멈추지 않고 함 양 측면에서도 일어났다. 발사대기 중이던 대함미사일이 내폭한 듯했다.

이렇게 연속적인 내폭이 베스트라시니함(DDG-434) 곳곳을 두드리자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너덜너덜해졌고 곧바로 두 번째 해성A 대함미사일이 날아와 함수 쪽을 날려버리자 급속도로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한편, 1km 떨어진 해상에서 항진하던 우달로이급 어드미럴 판텔레예프함(BPK-548) 역시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버섯구름 피어오르듯 거대한 화염 구름이 솟구쳤다. 1차 폭발에 살아남은 수병들은 퇴함 명령이 떨어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본능적으로 살기 위해 바다로 뛰어들었다.

이러한 광경을 기함 함교에서 지켜보던 마라트 이즈마일로프 함장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우리만 이렇게 죽을 순 없다. 재장전 끝난 함은 있는 대로 발사하라고 전해!”

치를 떠는 분노를 표출하는 마라트 이즈마일로프 함장과는 다르게 발레리 까르핀 제독은 지긋이 눈을 감고 조용히 말했다.

“우리가 발사한 대함미사일은 어떻게 된 건가?”

발레리 까르핀 제독의 말에 마라트 이즈마일로프 함장은 통신 콘솔로 다가가 전투정보통제실과 연결된 통신기를 낚아채듯 집어 들고는 소리쳤다.

“우리 대함미사일은 상황은 어떻게 된 건가? 왜 보고가 없어?”

현재 본 함을 향해 날아오는 해성A 미사일에 대한 요격에 정신없었던 전투정보통제실에 분노에 찬 함장의 음성이 들려오자 깜짝 놀란 전투정보통제관이 바로 답했다.

- 죄, 죄송합니다. 요격상황 때문에 보고가 늦었습니다. 현재 121기가 요격되어 현재 29기만이 근거리까지 도달했습니다. 미사일 종류는 그라니트 초음속 대함미사일 12기!, KH-35 우란 아음속 대함미사일 17기입니다.

쿵!

기대 이하의 답변에 마라트 이즈마일로프 함장이 통신 콘솔 상단을 주먹으로 내려치며 일갈했다.

“제길! 150기 중 고작 29기라니. 그것도 아음속 미사일이 17기라고?”

현재 호큘라 구축함의 근접방어체제는 아음속 대함미사일 같은 경우는 100% 요격하고도 남을 성능이었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그라니트 초음속 대함미사일 12기에 기대를 해야겠지만, 확률은 그리 높지 않았다.

이때 눈치만 보고 있던 알렉산더 케르자코프 작전관이 함교 내 승조원들의 사기를 위해 긍정적인 발언을 했다.

“함장님! 우리 함대의 미사일이 모두 요격되더라도 현재 킨잘 극초음속 미사일 등 7기동전단을 노리는 미사일만 해도 아직 98기가 남았습니다. 충분히 괴멸시킬 수 있는 미사일 수량입니다.”

작전관의 말에 잠시 흥분을 가라앉힌 마라트 이즈마일로프 함장은 함교 창문 너머 이제는 마스트 일부만 보이는 어드미럴 판텔레예프함(BPK-548)을 보며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후우~ 우리 함대의 복수는 우리 함대 미사일로 끝장내야지 않겠나?”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그래······.”

함장의 심정이 이해가 되는지 알렉산더 케르자코프 작전관은 말끝을 흐리며 이내 입을 닫았다.

이런 대화가 오가는 와중에도 극동함대의 파멸은 계속되고 있었다. 어드미럴 라자레프함(CGSN-181) 오른쪽에서 항진하던 마지막 소브레메니급 베즈보야즈네니함(DDG-672) 마저 2기의 해성A 미사일을 맞고 대폭발했다.

폭발음과 함께 공기를 찢는 파공음이 어드미럴 라자레프함(CGSN-181)의 함교를 덮치자 함교의 각가지 물건들이 흔들렸다.

- 베즈보야즈네니함 피격! 베즈보야즈네니함 피격!“

전투정보통제실로부터 절규하는 오퍼레이터 목소리가 통신망을 타고 함교 전체에 울려 퍼졌다.

그 사이 알렉산더 케르자코프 작전관으로부터 2차 대함미사일 공격 명령을 하달하자 키로프급이자 기함인 어드미럴 라자레프함(CGSN-181)과 리데르급 순양함 스피리도노프함(CGN-902), 베즈프리츠니함(CGN-904)에서 재장전 된 초음속 대함미사일을 발사했다.

그리고 재장전이 늦었던 우달로이급 어드미럴 비노그라도프함(BPK-572)에서 대함미사일을 발사하려던 찰라, 근접방어체제를 뚫고 떨어진 해성A 미사일에 그만 함교 전체가 날아가며 폭발했다. 이에 발사 직전의 대함미사일은 그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고 멈추고 말았다.

빠바바바바바방! 빠바바바바바바방!

리데르급 순양함인 스피리도노프함(CGN-902)과 베즈프리츠니함(CGN-904)에서 아자크 레일건이 발사한 수많은 금속탄이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을 수놓았다.

여러 개의 붉은 금속탄 빛줄기가 일정하게 엿가락 휘듯 휘어지며 뭔가를 따라갔다. 그리고 이내 공중에서 뭔가가 폭발했다.

베즈프리츠니함(CGN-904)을 노리던 2기의 해성A 미사일 중 1기였다. 하지만 나머지 1기는 끝내 베즈프리츠니함(CGN-904)의 함미 쪽 헬기 격납고를 강타하며 폭발했다. KA-28 대잠헬기 2기가 폭발위력에 휘말리며 사정없이 날아갔다.

수많은 파편이 비상했고 함미는 흉물스럽게 찢긴 채로 바닷물이 급속도로 들어왔다. 이로 인해 베즈프리츠니함(CGN-904)은 함미 쪽으로 천천히 기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함 내 스피커에서는 함장의 명령인지 아니면 다른 지휘관의 명령인지 알 수는 없었으나 퇴함하라는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에 함 좌우에서는 수많은 수병이 앞다퉈 바다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11월의 북동해 바닷물은 매우 차가웠다. 몇 분도 안 되어 모든 수병은 저체온 증세를 보이며 사망할 것이 자명했다.

이렇게 수병들이 거친 파도 위에서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가운데 방공 순양함인 리데르급 3번함 스피리도노프함(CGN-903) 역시 좌우측면에서 회피기동을 펼치며 팝업 기동까지 마친 해성A 대함미사일을 요격하느라 정신없이 아자크 레일건의 금속탄을 뿌렸다. 하지만 운이 없게도 끝내 동시다발적으로 함교와 함수에 적중했다.

거대한 폭발이 두 곳에서 동시에 일어나자 만재배수량 18,000t의 스피리도노프함(CGN-903)은 들썩였다. 그리고는 이글거리는 고온의 붉은 화염이 함 전체를 휘감았다. 이에 승조원들은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시꺼먼 숯덩이로 타버렸고 단단했던 철재마저 흐물흐물 녹아들었다.

전생에 죄를 지어 지옥 불에 빠진 사람들처럼 한순간 수백 명의 승조원은 이렇게 비참한 생을 마감했고 스피리도노프함(CGN-903) 역시 그 뒤를 따랐다.

이렇게 마지막 방공 순양함인 스피리도노프함(CGN-903)까지 연쇄적인 폭발과 함께 시꺼먼 연기를 내뿜으며 바닷속으로 침몰하자 이제 남은 건 극동함대의 기함이자 키로프급 2번 함인 어드밀러 라자레프함(CGSN-181) 뿐이었다.

자신의 함대가 차례대로 불구덩이로 변하며 차디찬 북동해 바닷속으로 침몰하는 가운데 발레리 까르핀 제독이 찹찹한 목소리로 케르자코프 작전관을 불렀다.

“작전관!”

“네, 제독님!”

“상륙함에 연락해서 지금 즉시 항로 변경하여 복항하라고 하게.”

“네? 복항 입니까?”

복항이란 말에 깜짝 놀란 알렉산더 케르자코프 작전관이 되물었으나 발레리 까르핀 제독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리고는 함장용 디스플레이에 시선을 고정했다.

현재 함장용 디스플레이에는 극동함대에서 발사한 대함미사일이 푸른 삼각점 기호로 표기되어 보였다.

“죽기 전에 우리 함대 대함미사일로 한국 구축함 한 척이라도 침몰하는 것을 봤으면 좋겠구먼”

푸념하듯 말하는 발레리 까르핀 제독의 말에 마라트 이즈마일로프 함장이 힘주어 말했다.

“제독님! 한 척이라니요. 6척 모두 수장시킬 수 있습니다.”

함장의 말은 그냥 희망 사항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팝업 기동 전환 후 상공으로 솟아오른 해성A 대함미사일 3기가 극동함대의 마지막 전투순양함 어드미럴 라자레프함(CGSN-181)을 향해 돌진했다.

전투정보통제실로부터 다급하게 보고가 올라왔다.

- 충격 대비! 충격 대비!

아자크 레일건 4문에서 빛 속도에 버금가는 속도로 금속탄 뿌려댔지만, 운이 나쁜 것인지 아니면 사격통제장치의 성능이 떨어지는 것인지 단 1기만 충돌 직전 요격하는 데 성공했고 나머지 2기는 함수와 함미를 강타했다.

콰아아앙! 콰아아앙!

1차 폭발 충격에 어드미럴 라자레프함(CGSN-181)이 심하게 흔들렸다. 이에 함교에 있던 승조원들은 충격에 대비해 각종 구조물을 잡고 버티려 했지만, 순간적인 충격에 사방으로 날아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발레리 카르핀 제독 역시 바닥에 나뒹군 후 벽에 머리를 부딪쳐 정신을 잃었고 마라트 이즈마일로프 함장과 알렉산더 케르자코프 작전관 역시 같은 신세였다.

승조원들의 신음은 물론 울먹이는 소리가 들리는 함교의 바닥은 깨진 창문 파편들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으으으윽!

살, 살려줘!

으아아악~

알렉산더 케르자코프 작전관이 앞에 있는 콘솔을 부여잡고 힘겹게 일어나 제독을 찾았다. 발레리 까르핀 제독은 함교 뒷면 벽면에 머리를 박고 쓰러져 있었다.

“제, 제독님 괜찮습니까?”

힘겹게 걸어간 알렉산더 케르자코프 작전관이 발레리 까르핀 제독을 살폈다. 머리 부분이 깨져 약간의 피가 흐르는 거 외에는 외관상으론 괜찮아 보였다.

“으윽! 난, 난 괜찮네. 함장은?”

정신이 돌아왔는지 발레리 까르핀 제독은 함장을 찾았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알렉산더 케르자코프 작전관은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쓰러져 있는 승조원 중에 함장을 찾았다.

통신 콘솔 앞에 마라트 이즈마일로프 함장이 엎어져 쓰러져 있었다.

“함장님 괜찮습니까?”

다가가 함장을 바르게 눕히려던 작전관은 그만 놀라 뒤로 넘어졌다.

함교 창문 파편이 함장의 얼굴은 물론 가슴 배 전체에 박혀 흉측한 몰골로 변해 있었다. 폭발 당시 창문 파편을 고스란히 받은 듯했다.

“제, 제길! 제독님! 함장이 전사했습니다.”

“뭐?”

정신을 가다듬은 발레리 까르핀 제독이 엉금엉금 기어와 흉측한 몰골로 변해 있는 마라트 이즈마일로프 함장을 보고는 고개를 떨궜다.

- 여기는 전투정보통제실! 무장관입니다. 함교 응답 바랍니다. 함교 응답 바랍니다.

전투정보통제실로부터 통신이 날아왔다.

“뭐, 뭔가? 통제관은 어쩌고 무장관이 연락해?”

- 통제관 전사했습니다. 퇴함합니까?

“퇴함은 무슨 퇴함이야? 끝까지 싸워야지”

작전관이 통신기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현재 통제실 일부 시스템이 먹통입니다. 더는 응전이 불가합니다.

“제, 제길, 기다려”

알렉산더 케르자코프 작전관이 고개를 돌려 깨진 창문 너머 함수를 봤다.

이글거리는 붉은 화염이 마치 춤을 추듯 마구마구 솟구쳐 올랐고 자칫 함수에 있는 VSL(수직발사대)의 유폭이 우려스러운 상황이었다.

퇴함뿐이었다. 하지만 퇴함 명령은 함내 최고 지휘관만이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이에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떨구고 앉아있는 발레리 까르핀 제독에게 다가가 다급히 말했다.

“더는 가망 없어 보입니다. 함수 수직발사대 유폭이 있기 전에 퇴함 명령을 내리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그래, 퇴함하게, 함 전체에 퇴함 명령을 내리게.”

“네, 알겠습니다. 퇴함! 퇴함! 퇴함 명령이다.”

작전관의 고함에 하나둘 정신을 차리고 일어선 함교 승조원들이 앞다퉈 함교를 빠져나가려 했고 통신사관이 함 전체 통신망을 개방하고 퇴함 명령을 전파했다.

“제독님의 명령이다. 모든 승조원은 퇴함하라! 퇴함하라! 즉시 퇴함하라!”

“가시지요. 제독님!”

알렉산더 케르자코프 작전관이 발레리 까르핀 제독을 부축해 일으키려 했다. 이에 발레리 까르핀 제독은 작전과의 손을 뿌리치고는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난, 본 함과 운명을 같이 하고 싶네. 사실 그보다는 적 함의 침몰 결과를 보고 싶기도 하고 말이야.”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늘어 논 발레리 까르핀 제독은 천천히 걸어가 함장 의자에 앉고는 함장용 디스플레이에 시선을 고정했다. 운 좋게도 디스플레이의 화면은 정상적으로 작동되고 있었다.

“제독님! 지금 나가셔야 합니다.”

“내가 한 말 모르겠는가? 어서 자네나 다른 승조원들과 함께 빠져나가게”

“제독님!”

“허허, 이 사람이 명령일세. 어서 나가게나”

“죄, 죄송합니다. 제독님!”

척!

거수경례한 알렉산더 케르자코프 작전관은 흐르는 눈물을 옷소매로 훔치며 함교를 빠져나갔다.

“그래, 자네라도 살아 돌아가게.”

함교를 빠져나가는 작전관의 뒷모습을 보면서 힘겹게 말했다. 그리고는 다시금 디스플레이에 시선을 돌렸다. 화면에는 여러 개의 푸른 삼각점 기호가 제7기동전단 구축함을 나타내는 붉은 사각 점을 향해 근거리까지 도달했다.

“그래 조금만 힘내라”

발레리 까르핀 제독은 극동함대의 대함미사일이 제7기동전단의 호큘라 구축함을 피격했는지 못했는지 결과를 보지 못하고 끝내 전사하고 말았다.

콰앙앙! 콰앙아! 콰앙아!

함수 수직발사대에 장착되어 있던 각종 미사일이 유폭을 일으켰고 가공할 폭발력은 그대로 함교 전체를 날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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